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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명을 숙청한 황제(1)수필/신작 2025. 3. 2. 15:20
10만 명을 숙청한 황제(1)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나이 칠십에 이르러, 때늦게 동서양의 역사를 새삼 심층 공부하게 되는데, 동서고금 어느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들의 DNA는, 일반 백성과 사뭇 다름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 권력자들한테는 ‘살인·암살’등의 고약하고 비뚤어진 ‘DNA나선구조’가 더러 있는 듯. 사실 그러한 인간은 인간 축에도 못 드는 숫제 야생동물이다. 인간백정이다. 정신감정 후 그러한 인간은 어릴 적에 일찍이 정신병동에 쳐 넣어야 한다. 그 눔의 권력이 다 뭣이기에?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거늘... .
한줌도 아니 되는 권력으로, 재위기간 딱 30년 동안 백성을 무려 10만 명이나 여러 종류 잔인한 형벌로 숙청한 황제도 중국에 버젓이 있었다. 그가 자기 맨눈으로 지켜본 처형들 가운데에는 허리를 잘라 죽이는 요참형, 손발을 수레에 묶어 떼서 죽이는 거혈형, 살점을 포를 떠서 죽이는 능지형, 오장육부를 다 들어내고 그 뱃속에다 풀을 대신 잔뜩 채워 순대형으로 만드는 초충형 등등. 그 광경을 보고 낄낄댔을 그는, 사이코패스였음이 분명타. 그런 인간이 30년이나 거대한 중국을 버젓이 통치했다니!
며칠 동안 여러 유튜브 등을 통해 A4용지에 메모를 10여 장 해가며 익힌 중국 명 태조(明 太祖, 1328 ~ 1398년). 그는 묘호로 홍무제(洪武帝, 朱元璋)로도 잘 알려지는 인물이다. 재위기간은 30년(1368~1398)이고, 셈해본즉 나이 40에 몽고족이 세웠던 원나라를 완전 쓰러뜨리고 한족의 후예인 명나라를 세웠다.
그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별별 이유로 무자비하게 백성을 죽여 나갔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황권(皇權)을 공고히 해나고자 그리하였다는데... . 사실 명 왕조는 277년간 유지되었지만,면면히 흐르는 장구(長久)한 인류역사에 그 또한 한 조각 뜬 구름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슬하에 아들을 무려 26명이나 두었고, 정말 천년만년 중국 대륙을 다 해먹을 듯, 그 아들들을 각각 지역 왕, 이른바 ‘번왕(藩王)’으로 두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후일 그가 71세로 생을 마감할 즈음에는 맏이 주표(朱標,1355~ 1392)한테 황제자리를 이양하였지만, 주표는 37세로 요절하고 만다. 그런 다음, 황위(皇位) 다툼으로, 숙질(叔姪) 사이에 서로 죽이고 빼앗고 하는 피비린내를 중국 대륙에 일으키고 만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성계가 쿠데타로 개국한 조선에서도 형제간, 숙질간 권력다툼이 이어져, 한강을 붉은 피로 온통 더럽혔다. 곰곰이 생각해보라. 이는 인간사의 비극 아니냐고? 오늘날까지 별반 다르지 않은 동서양 인류의 역사여! 다시 더듬고 갈 점인데, 권력 그깟 게 다 무엇이기에?
이 대목에서, 어린 날 내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외조모님의 이르심이 다시 떠오를 줄이야!사실 나는 코흘리개시절 외조모님을 딱 한 번 봬온 적밖에 없다.
“야들아, 느그 외할머니는 충청도 청주의 한씨네 어느 부잣집 무남독녀셨다더라. 본디는 손위 오라버니들도 여럿 계셨다던데, 다들 어린 나이에 이런저런 변고로 죽고... . 요즘 식으로 말해, 느그 외할머니 양친은 가정교사를 들여, 졸지에 무남독녀된 딸한테 학문을 가르쳤대. 느그 외할머니는 <鄭鑑錄(장감록>도 공부하셨던 모양이야. 한번은 처녀시절 이 에미한테, ‘팔공산(八空山)’이 피난처라고 말씀하시더군. 느그 외할머니는 그 ‘八空山’의 의미를 스스로 깨치셨다더구나.”
내 어머니를 통해 들은 외조모님의 ‘八空山’해석. 나이 70에 이르자 이제야 제대로 알 듯하다. 그게 ‘십승지지(十勝之地)’를 일컫는 말인데, 외조모님은 나름대로 해석하여, 당시 10대였던 당신의 딸인 내 어머니한테 가르쳐주었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또, 그걸 ‘대물림’으로 우리한테 전해준 내 어머니의 입담도 놀랍다. 외조모님은 그 ‘八空山’이, ‘지게’를 일컫는다고 해석하셨다는 거 아닌가. 지게의 구조가 8개의 구멍[空,孔]으로 되어 있으니... . 지게는 두 짝의 ‘y’가 서로 짜여 있도록 가로질러 박은 나무 가로대인 ‘새장’이 있다. 지게에는 보통 4개의 새장이 있다. 그러니 8개의 구멍이 된다. 맨 위의 새장을 ‘윗새장’ 또는 ‘까막새장’이라고 하고, 윗새장 바로 아래의 것을‘밀삐새장’이라고 한다. 밀삐 위끝을 매며 등태끈도 닿는다. 하여간, 지게 두 짝 ‘y’에 뚫린 구멍[空,孔] 개수는 여덟[八空,八空]이다.
위 장황히 소개한 내 외조모님의 풀이를 통해,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만이라도 눈치챘으면 참 좋으련만... .
지금부터는 연상작용이다. 아니, 사슬구조다.
여덟 구멍[空,孔]이 난 지게 밑이 피난처 - 지게를 지는 이들이 화(禍)를 면해 - 나라의 왕이 누구가 되든 말든 - ‘무지렁이’로 지게 지고 지내는 이와 무슨 상관 - 식자우환(識字憂患).
내 외할머니는 당신의 맏딸인 내 어머니를 통해, 외손주들인 우리한테 전해주셨다.
요컨대, 지식인들은 한국전쟁 중에 납북되거나 살해되거나 했다. 하지만, 무지렁이들인 지겟꾼들은 온전히 살아남았다. 이밖에도 내 외할머니의 <鄭鑑錄> 풀이 가운데에는 ‘제 자리 곰배치기’는, 꼼짝 못하고 제자리에서 죽은, ‘히로시마 핵 폭탄 투하’등도 있었다.
내 이야기가 샛길로 많이 빠져들었다. 해서, 다시 폭군 ‘주원장’으로 이야기고삐를 바투 잡으련다. 황제인 폭군 ‘주원장’ 어전(御前)에 무릎을 꿇고, 읍소(泣訴)하는 개국공신이 있었다. 그가 바로 탕허[湯和,1326~1395].
그가 고해바쳤다.
“존엄하신 폐하, 저는 그 동안 너무 행복하게 살아왔나이다. 폐하와 함께 했던 그 오랜 시간들. 이제 너무 늙어서 군대를 지휘할 힘도 없사옵니다. 하오니, 낙향하여 제가 묻힐 묏자리를 찾아볼 수 있도록 윤허(允許)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하여 그는 자신을 포함해서 개국공신들 ‘서달’, ‘덕흥’ 3인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자연사한 이다. 사실 위 셋은‘주원장’과 10대 시절 ‘소치기친구들’이었고, 주인 몰래 배고파 송아지를 잡아먹고 곤욕치르고... .명 나라 창업에 함께해했던 ‘탕화’의 스토리야야말로 “팔공산이 피난처다.”라고 했다던 내 외조모님 청주 한씨의 지혜에 맞닿아있음을 .
반면, 서달’과 ‘덕흥’도 그 많은 이들과 더불어 반역죄로 몰려, 폭군 ‘주원장’한테서 진즉에 죽임을 당했다.
이제 나는 탄식조로 혼잣말을 한다.
‘다들 허튼 소리 말어. 휘둘리지 말어. 팔공산(八空山)이야말로 피난처인 기라(거라).’
다음 호 계속)
작가의 말)
어쨌든, 인류의 역사는 반복된다. ‘깨달음’은 언제고 늦게 오고... . 이는 아주 중요. ‘팔공산’만이 피난처다.
그리고 실존주의 철학자 여러분,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요?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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