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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로(風爐)’에 관한 추억(2)
    수필/신작 2025. 2. 22. 12:02

     

        ‘풍로(風爐)’에 관한 추억(2)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이 글은 ‘풍로(風爐)에 관한 추억(1)’에 이어지는 글이다. 지난번에는 ‘풍로 제 1세대’에 관한 추억담으로 적고 있다. 흙풍로에다 아궁이에서 부삽으로 퍼 담은 숯불로, 뚝배기를 얹어놓고 겨우내 토장국을 끓여 반찬으로 삼던 이야기였다. 이 글은 풍로의 변천사 내지 발전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즉, 풍로의 제 2세대.

       1970년대에 이르러 우리네는 다소 불편했던 ‘흙풍로’에서 획기적으로 발전된 요리기구를 새로 갖게 되었다. 바로 ‘석유곤로’가 그것이다. 살펴본즉, 여기서 말하는 ‘곤로’는 ‘풍로’혹은 ‘화로’의 일본어 ‘焜炉(こんろ/コンロ)’에서 온 듯한데, 하여간 그걸 ‘석유곤로’라고 불렀다.

       아래 켠에 자리한 기름통에다 읍내 기름방(주유소를 당시는 그렇게 불렀다.)에서 됫병에 사담아 온 백등유를 잔뜩 부어 넣고, 유리섬유로 된 심지를 돋우고, 성냥으로 그 심지에다 불을 붙인 다음, 레버로 심지 높낮이를 조절하기만 하면 만판이었던 그 석유곤로. 제1세대 흙풍로에 비하지면 거의 획기적인 발전이었으나, 약점이 영 없지는 않았다. 석유내음과 그을음 만만치 않았다. 이따금씩 신문지상에 폭발사고 소식도 전해졌다. 사실 당시 신문들은 ‘가로쓰기’를 하는 요즘과 달리, ‘내려쓰기’기사였다.

       그 석유곤로는 신부들 혼수 필수품이었고, 읍내에서는 그 석유곤로 심지를 팔거나 수리하는 장인(匠人)이 따로 있었다. 그 석유난로가 나올 즈음 ‘라면’이 출현했고, 양은냄비와 더불어 삼자(三者)는 죽이 척척 맞았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석유곤로의 출현이 후일 1986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패스트푸드(Fast-food)’개념의 예고편이었으며, 여성들을 장작 아궁이에서나 연탄아궁이에서 해방시킨 촉매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이후 석유곤로는 전기곤로로, LPG 도시가스레인지로, 전자 레인지로, 인덕션(Induction)으로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덕분에, 우리네는 매캐한 연기로 인한 눈물흘림 한 방울 없이 온갖 요리를 맘껏 즐기는 시대를 살고 있다. 신비스런‘문명의 이기(利器)들’이여!

       사실 위 단락에 소개한 조리기구의 변천사(?)에는 열(熱)의 독특한 성질을 여러 갈래로 응용한 데서 비롯되었음을. 다들 잘 아시겠지만, 열의 이동방식은 전도·대류·복사 셋이다. 이들 셋 가운데에서 요리에는 주로 복사를 응용한다. 복사란, 어느 물체에서 방출된 전자기파가 또 다른 물체에 흡수되어 열로 변하는 걸 이른다. 대표적인 복사는 태양의 열이 진공상태의 우주를 지나면서도 우리네 지구에 닿아 따뜻하게 해주는 메커니즘. 이 에너지를 한껏 응용한 것이 위에서 소개한 조리기구들 가운데에서 인덕션이다. 철 성분이 있는 용기에 담긴 음식물을 ‘자기장’으로 가열하는 것이다. 연기도, 불꽃도 없이 조리가 잘도 되고마는... . 위에서 소개하지 않았지만, 전자레인지는 마이크로파를 이용하여 비금속용기에 담긴 음식물을 입맛대로 덥히거나 굽거나 한다.

       요컨대, ‘요지경 세상’이다. 원하는 대로 요리는 금세 다 된다. 입맛 대로다. 그야말로 우리네는‘요술방망이 시절’을 살고 있다. 내일 모레면 나이 70이 되는 나. 이처럼 윤택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니! 참말로, 나는 복 받은 게 분명타. 내가 이따금씩 가게에 가서 상품을 사면서, 젊디젊은 점원들한테 지폐를 대금으로 건네줄 적마다 특유의 유머로, 그 지폐들 초상화 옆에 적힌‘(1502-1571)’등의 잔글씨를 읽어보라고 권하곤 한다. 그러면 그들은 하나같이 놀란다.

       “어머, 선생님, 이 퇴계 선생의 출몰년이 여기에 정말로 적혀 있네요? 69세까지 사셨군요.”

       그런 방식으로, 내가 외운 위인들의 향년(享年). 오천 원 권 이 율곡은 47세, 일만 원 권 세종대왕은 54세, 오 만 원 권 신사임당은 48세.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이시여! 40여 년 째 수필작가 행세한 내가 왜 느닷없이 위 문장을 지었을까? 다 이유가 있다. 한마디로, 오래 살고 일이라는 뜻. 왜? 앞으로 우리네 후손들한테는 좋은 날이 올 테고, 인류는 거듭거듭 발전해나갈 테고... . 왕이 아닌 나는, 석빙고가 아닌 냉장고에서, 비닐하우스에서 한겨울임에도 제철 아닌 과일과 채소를 맘껏 즐길 수 있는... . 게다가, 위에서 소개한 여러 지폐의 위인들보다도,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 나리 사회보장제도들 가운데에서도 하나인 의료보험제 덕분으로 ,그분들보다 장수(長壽)를 누릴 듯한 예감.

       하더라도, 하더라도, 이 글을 마감하자니 못내 아쉬워지는 게 웬일이람? 오는 음력 정월 그믐날에, 때맞춰 아내, 차 마리아님한테 졸라, 소문난 ‘알콩OO 전통 메주·된장’댁으로 기어코 가야겠다. 거기서 그분의 비책(祕策)을 전수받으며 수강료를(?) 듬뿍 드리고서, 이미 빚은 그분의 된장을 항아리째로 사는 한편, 된장 담그는 요령까지 커닝해서, 아니 ‘업 그레이드’ 해서 돌아와야겠다. 이 또 무슨 이야기냐고? 사실 나이 칠십 목전에 둔 나는, 이날 이때까지 그 유년의 ‘숯불 풍로’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거 아닌가. 그 질그릇뚝배기를 잊지 못한고 있다는 거 아닌가. 그 토장찌개 맛을 잊지 못한다는 거 아닌가. 정말로, 그때 그 군색스러웠던 시절 토장찌개의 맛을 여생동안 손수 만들어 즐기겠다는... .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 덤 하나. 이 두서없는 글을 끝까지 따라 읽어주신 데 대한 보답이오니... .

       내 오랜 경험상 된장만큼은 이 댁 저 댁 된장을 한 데 섞어서, 다시 자기네 된장항아리에 담아 먹어버릇하시길. 왜냐고? 집집 된장 맛은 다른 법이다. 집집 아낙네들 손맛도 손맛이지만, 그분들이 각각 쑤는 메주를 감싼 짚이 지닌 황국균[黃麴菌;누룩곰팡이]이 다양하기에. 이것까지 알아야 완결판이 된다. 정말, 내 사랑 ‘ 포항’처럼 고집불통은 곤란하다.

       요컨대, 다채로운 된장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여러 댁의 된장을 조금씩 얻어다가, 공들이며 자기네 된장독에 섞어 담고... 그런 다음 숯불풍로에다, 바닥 제대로 닦지 않는 뚝배기에다 ... 겨우내 안방에서... .

       끝으로, 된장찌개의 참맛은‘느림’이다. ‘조바심’이다. ‘보챔’이다. 그리고 세월이다. 적어도 나이 칠순은 되어갈 즈음에야 아는 게 참된 된장 맛이겠거니.

     

       작가의 말)

      어쨌든, 또 해내었어요.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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