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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로(風爐)’에 관한 추억(1)
    수필/신작 2025. 2. 12. 14:14

     

                  ‘풍로(風爐)’에 관한 추억(1)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날이 갈수록 꾀가 늘어난다. 10년 넘게 격일제 아파트 경비원으로 지내오는 동안, 근무일에는 점심밥과 저녁밥을 1인용 전기밥솥으로 ‘뜨끈뜨끈’지어먹는데, 그 동안 반찬만은 아내가 챙겨왔다. 더러는 아내가 보온통에다 시래기국이나 콩나물국을 담아주었는데... . 사실 내 근무초소에는 세 개의 전기밥솥이 있고, 제각각 몫을 달리 하고 있음을 밝혀둔다. 누룽지 전용, 밥 전용, 온수 전용. 어쨌거나, 그렇게 갖추어준 아내의 반찬이 아침 식탁에서와 달리, 제 맛이 아님을 차츰 알게 되었다. 마치 제철 음식이 아닌 듯. 해서, 보온통째로 이튿날 새벽 반납하는(?) 일도 잦았다.

       최근에는 더 발전된(?) 요구를 하게 되었다. 콩나물, 시래기, 곤드레나물 따위를 두 끼 분량 따로 장만해달라고. 그러고서는 경비초소에서 낮 동안 전기밥솥에 쌀을 안칠 적에 그것들을 함께 넣어서... . 그러면 고추장과 생김[生金;파래김]과 비비면 콩나물밥이, 시래기밥이, 곤드레밥이 잘도 되곤 하였다.

       그러해 왔던 내가 요 며칠 전부터 아내한테 또 다른 까다로운 요구를 하게 되었다.

       “ 초소에, 어느 주민이 ‘쓰레기분리배출장’에 내다버린 새것‘전기곤로’가 하나 있어요. 자루 달린 냄비도 하나 있어요. 주워서 사포(砂布)로 날 갈아둔[磨] 가위도 여래 개 있어요. 그러니 앞으로 된장찌개 대신, 된장찌개를 재료로 챙겨주심이?”

       친절한(?) 아내, 차 마리아님은 남편의 분부를 잘도 따랐다. 그날부터 나는 내 입맛에 맞는 요리로 아파트 경비원생활을 즐기고 있다. ‘내 손이 내 딸’이라던 우리네 조상들의 말씀은 한 치 오차도 없다.

       오늘은 아내가 이른 새벽 내 출근에 맞춰 따로 챙겨준 된장찌개 재료를 냄비에 담아, '전기풍로'에 올려놓았는데... . 요리가 되어가는 색다른 체험과 그 익어가는 내음으로 말미암아 추억을 더듬게 되다니!

       경비초소에서, 전기풍로에 올려 있는 냄비가 들썩대며, 술꾼인 내가 숙취제로 즐겨하는 ‘아스파라긴’의 왕자(王者)인 콩나물이 내뱉는 내음에 황홀지경. 내가, 명색이 40여 년 수필작가 행세를 해온 내가, 그 동안 빚어온 작품들만 하여도 5,000여 편은 될 터인데... . 그 제목들만 늘여 놀아도 여러 권 책이 될 내가 이런 걸 놓칠 리가? 이 분위기 놓칠 리가?

       2025년 지금으로부터 시계바늘을 60여 년 전으로 훽 돌려버린다. 그때 내 나이가 10대였다. ‘놋쇠 화로’가 있었다. ‘풍로(風爐)’ 가 있었다. 그 풍로는 ‘풀무’와는 사뭇 다른 모양이었고, 특수한 일을 수행하는 화로의 변한 꼴이었다. 토관(土管)을 양철 양동이에 넣고, 황토로 치장을 하고, 중간에 그 크기에 알맞은 불똥거름체[篩膜]를 끼웠던... . 그리고 그 아래 켠에는 공기구멍도, 마치 쥐구멍처럼 뚫려 있었다. 손위 시누이 둘, 손아래 시동생 넷, 손아래 시누이 셋을 두었던 내 큰형수님. 즉, 열 남매 가운데 큰 형수님. 그 박 여사님은 가마솥에 밥을 지어 대식구들 안방에 상을 받치고, 아궁이에서 숯불을 그 풍구에 부삽으로 담고, 그 위에다 ‘토장찌개’  뚝배기를 올려놓고... 우리 조무래기들 시동생들과 시누이들 도움으로,그나마  맨 나중 식사에 참여하곤 하였다. 온 방 가득 풍기던 그 ‘토장찌개’의 내음이여! 사실 낭패의 날도 없지 않았다. 참나무숯을 담은 그 풍로에서 일어난 ‘일산화탄소’로 온 식구가 몽롱해져, 동치미국물로 해독했던 날도 있었으니... .

        그게 풍로였다. 풍로는 휴대용 조리기구의 1세대였다. 그로부터 50,60년이 흐른 지금. 이 글 제 2화, 제 3화, 제 4화로 이어지면서 여러 이야기 펼쳐질 텐데... .

       하더라도, 나는 결코 잊지 못하는 게 하나 있으니... . 그때 풍로의 시절보다 더 맛깔나는 토장찌개를 그 어느 맛집에서도 여태 맛본 적 없다는 거. 풍로. 미자바리(밑) 거무튀튀했던 그 토기(土器)와, 몇 년 째 장독대에 머물렀던 땐땐한 된장과, 겨우내 목숨 부지했던 토종파와, 청양초와, 몇 마리 멸치와, 냉이와, 달래 등이 어우러져 토해내댄 그 맛을 내 어찌 잊으리.

        나도 나이 칠십 목전에 두었으니, 이제는 말해도 되지 않겠나. 감히 말하노니, 가난했던 그 어린 날, ‘풍로 시절’이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다. 그 토장찌개 내음은 죽는 그날까지 잊지 못하리.

     

       작가의 말)

       나이가 들어갈수록 잔소리가 많아졌다. 해서, 나름대로 말수를 줄이고자 이 글을 연작으로 지을 수밖에.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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