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윤 수필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취하다(3)- 수메르(Sumer), 찰흙문명 -
    수필/신작 2025. 3. 20. 14:57

     

                           윤 수필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취하다(3)

                            - 수메르(Sumer), 찰흙문명 -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윤 수필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취하다(2) - 수메르(Sumer), 찰흙문명 - ’에서 이어가기로 한다.

     

        2. 점토문자(粘土文字)

     

       그들 수메르인들의 인류사적 위대한 업적은 ‘찰흙’즉, 점토를 떡 주무르듯 하여, 이런저런 건축물과 조형물과 문자(文字)를 창조해내었다는 점. 이번에는 그 가운데에서 ‘점토문자’에 관해 이야기 집중할 터인데... .

       그러기에 앞서, ‘점토’와 관련된 나의 추억담 등을 소개하기로 하자. 어릴 적 내 고향 경북 청송은 비포장도로였다. 그 자갈 깔린 신작로에 먼지를 일으키며 시도 때도 없이 내달리던 GMC 트럭. 그 트럭에는 하얀 조각돌이 언제고 잔뜩잔뜩 실려 있었는데, 어른들은 그 돌들을‘고령토(高嶺土)’라고 일러주었다. 그 고령토를 바수어 가루로 만들면, 새하얀 도자기 원료가 된다고 하였다. 줄잡아 60년 세월이 흐른 오늘에야 알게 된 사항이지만, 솔직히 말해 이 글을 쓰기 직전에 자료를 챙기다가 새로 알게 된 사항이지만, 그 ‘高嶺土’는 암석 가운데에서 장석(長石, feldspar)이 변질되어 생긴 광물. 중국의 유명한 점토 산지(産地)인‘가오링[高嶺, Gaoling]’에서 처음 백색 점토가 발견되어 이 지역 이름을 딴 것이란다. 당연히, 가오링에서 만드는 도자기는 유명할밖에. 그런데 채산성(採算性)이 떨어져서인지, 고갈로 인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언제부터인가 내 고향에서는 그 고령토가 채광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 고향 청송의 백자기는 뽑혀, 임금님들 수라상에도 올렸다는 기록만은 분명 남아 있다.

        한편, 농학도(農學徒)였던 나는 전공 필수과목인 <토양학>을 한 학기 동안 아주 흥미롭게, 관심있게 공부하였다. 덕분에, A학점도 받았다. 여담. 농학도와 농부들은 ‘흙’을 함부로 ‘흙’이라고 부르지 않고, 격을 높여‘토양’이라고 부른다. 토양은, 우리네 양식이 되는 작물을 길러내는, 동식물 사체(死體)를 포함해서 풍부한 유기물을 함유하고 있는 ‘살아 꿈틀대는 흙’ 개념이다. 그때 <토양학> 교재에는 우수한 토양으로 ‘체르노젬( Chernozem)’도 소개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기름진 검은색 흙’을 가리키는 용어이다.‘흑토(黑土)’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여, 우크라이나의 ‘르비우(르비브)’는 곡창지대로, 우리네 인류가 소비하는 ‘밀’주산지로 소개하고 있었다. 또, <토양학> 교재에는 그 유명한 캐나다 늪지대의 이탄토(泥炭土) 곧,‘피트 모스(peat-moss)’도 소개하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peat-’는 석탄이 되기 전 동식물 부식(腐植)으로 이뤄진 토양인 이탄[찰흙]을 일컫고, ‘-moss’는 ‘이끼’를 이른다. 여기서 다들 놀라지 마시길. ‘moss’는 그리스어로‘mother’를 뜻한다. moss 즉, 이끼는 습성상 자기 몸집에 비해 수백, 수천 배 물기를 머금기에 수백, 수 천 종의 미생물을 번식케 하여 작물의 발아(發芽)를 도와준다. 해서, (많은) 미생물의 ‘어머니(품)’이라 하여 ‘moss’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거. 덧붙여, 요즘 나를 포함한 농부들은 그렇게 여러 부산물로 배합한 ‘피트 모스(peat-moss)’를 20킬로그램들이 포대당 8,000원 내외로 사와서 여러 종류의 묘를 계란 난좌(卵座)처럼 생겨먹은 ‘플러그’에 심곤 한다. 내 신실한 애독자 여러분께 이를 덤으로 알려드린다. 그걸 ‘상토(床土)’라고 한다. ‘peat-moss’에서 말하는 ‘moss’는, 마치 영덕의 ‘대게[竹-]’의 그 어린 암컷이, 자기 종족의 알만이 아닌 수백, 수천 종의 수족(水族) 알을 품고 지내듯. 그러기에 법적으로 대게의 암컷은 그물에 체포되더라도 바다로 도로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도 이참에 다들 알아두시길.

       사설이 길었다. 이제 내 이야기는 수메르인들의 점토문자로 이까리(고삐)를 바투잡는다.

       그들이 살았던 수메르의 토양은 두 성질을 각각 다 지녔을 거라는 점. 사실 그들이 살았던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두 강 사이 곧, 메소포타미아 하구(河口)에 켜켜이 쌓인 흙의 양태(樣態)가 각각 달랐을 거라는 데 기초한다. 그 하나는, ‘고령토’처럼 순수하고 찰져 문자판을 만들기에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또 하나는, ‘체르노젬’이나 ‘피트모스’처럼 유기질이 풍부해서 주농작물이었던 밀과 보리 재배에 유용했을 거라는... . 사실 후자(後者) 태깔의 흙은 ‘지구라트’를 비롯한 여러 건축 자재로 쓰기에 알맞은(?), 흙벽돌용으로는 만판이었을 듯. 대신, 그 입자(粒子)가 고울 대로 고운 전자(前者) 이토(泥土)야말로 진정한 점토문자판의 재료로 쓰였을 듯.

       내가 딱 한번이라도, 그곳 수메르(현 이라크 남부지방) 메소포타미아에 가보고, 그들의 점토판을 찬찬히 들여다보았으면 참 좋으련만... . 점토판을 만들자면, 그 태깔고운 찰흙은 점도(粘度)가 생명이다. 찰지게 뭉쳐지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결코, 그 입자들이 콩가루 같은 성질이어서는 아니 되었을 터. 사실 우리네가 자주 쓰는“콩가루집안이다.”라는 말도, 알고 보면 콩가루의 그 특유 성질에서 비롯된 말이다. 콩가루는 보릿가루, 호밀가루, 밀가루 등이 지닌 그 특유의 접착성분인 ‘글루텐(gluten)’이 들어있지 않아서, 입자간 서로 뭉쳐져 결코 한 덩어리가 되지 않음에서 비롯된 말이 아니던가. 다시 더듬고 넘어갈 점. 그들 수메르인들한테 흙알갱이 크기 따위는 그다지 문제가 아니 되었을 듯. 본디 그들의 솜씨는 빼어났으니, 설령 내 고향에서 출토되던 고령토처럼 바윗돌 형태였더라도, 그다지 문제되지는 않았을 듯. 왜? 절구에다 그 바윗돌을 바수어 가는체[細篩]로 치면 될 일이었을 테니까. 마치 지난날 내 어머니가 디딜방앗간 ‘확’에다 불린 쌀을 우겨넣고, 인절미를 만들고자 여러 공정을 거쳐 인절미를 만들고자 방아를 찧던 과정을 떠올려보면서.

        사실 그들은 그처럼 어려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아주 미세한 가루의 흙을 쉽게 구할 수도 있었을 듯. 이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증거도 있긴 하다. 메소포타미아 소도시국들 가운데에서 ‘우르’는 ‘우르크’,‘아카드’, ‘라가쉬’,‘키쉬’보다 아래 켠에 위치했다. ‘우르크’는 강(江)이 부린 무슨 조화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르’보다 더 태깔나는 흙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 그러자 ‘우르’는 ‘우르크’한테, 그 흙을 얻고자 분쟁을 일으켰다. 힘 약한 우르크의 제 5대왕 ‘길가메시’는 처음에는 이에 굽히려고 하였다. 그러나 신하들과 백성은 일제히 들고 일어나, “대왕마마, 절대 아니되옵니다. 싸워서라도 우리 찰흙만은 지켜야하옵니다.”했다.

        이에 힘을 얻은 ‘길가메시’는 우르와 겨룸,찰흙싸움에서 끝내 이기게 된다. 그처럼 용맹하였던 거구(巨軀)의 길마메시. 난폭하고 초야권(初夜權)까지 함부로 행했던 길마가메시는 하늘이 대적자(大敵者)로 내린 야생인간 ‘엔키두’와 싸움 끝에 결국은 벗이 되고... 엔키두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인생허무를 생각하고... 영생을 조언하는 ‘방주의 주인공’인 남신(男神),‘우트나피쉬팀’을 만났으나, 결국 인생의 유한함을 깨닫고 현실에 만족하는... .

        그것이 바로 인류 최초 문학. 구전되어 오던 설화가 수메르 점토판에 여러 필사본으로 적혀있다는 사실. 후일 수 천 년 후 ‘함무라비의 고 바빌로니아’를 거쳐, 신바빌로니아 제2대왕 ‘네부카드네자르2세’를 거쳐... 페르시아(현 이란)의 ‘키루스 2세’에 거쳐... 성경 창세기 ‘노아의 방주’에까지 윤색되어 왔나니!

        그들 수메르인들이 점토판을 이용하여 적은 글들이 수 천 수 만 조각으로 남아있어, 근현대에 이르러 활발히 그 조각들을 꿰맞춰 해독하게 이르게 된다. 그분들 학자들 노력도 참으로 대단하다. 그 문구들은 죄다 ‘수메르어’로 적혀 있어, ‘아카드어’, ‘아람어’와 달리, 해독하기에 무척 어려웠다는데... .

        그 많은 수메르 기록문들. 그림문자에서부터 비롯된 그들 기록문을 현대에 이르기까지 거듭거듭 해독해나간다는 게 마치 수 천 년 전에 살다간 그들 혼을 일깨우는 것 같아 흐뭇할 따름. 특히나, 여러 버전의‘길가메시 서사시’가 차례차례 해독되어간다니, 그들이 애당초 택한 ‘점토판 문자’의 혜안에 다시 한 번 감탄할밖에. 사실 컴퓨터 ‘USB’도, ‘인터넷 블로그’도, ‘종이 인쇄물’도 ... 영구보존성에서만은 그들 ‘점토문자판’을 절대로 따라가지 못할지니!

        그들의 점토문자판 내용에 관해서는, 너무도 일반화된 내용이라 과감히 생략토록 한다. 점토판 문자라면,‘길마메시 서사시’ 하나만으로도 족하니까.

     

       작가의 말)

     

        거의 보름 동안 몸살 앓으며 ‘메소포타미아 역사 기행’을 하였다. 이제 털고 일어나 다시 ‘여행 배낭’을 짊어져야겠다. 물론, 그 동안 메모하고 스케치한 A4용지 20여 장이 아쉽지만, 미련없이 불쏘시개로 삼아야겠다.

        딴에는, 그 많은 고고학자들의 시각과는 다른, ‘찰흙’에다 초점을 맞춰 적었노라고... .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