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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수필가, 시리아에 오다(1) - ‘팔미라(Palmyra)’에서 -수필/신작 2025. 4. 22. 23:07
윤 수필가, 시리아에 오다(1)
- ‘팔미라(Palmyra)’에서 -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사랑하는 당신,
나는 일주일 전쯤에 당신께 휴대전화 메시지를 아래와 같이 남겼지요.
<이번에는 시리아로 해외여행 떠나요. 나는 그곳에서 ‘루카’를 만날 겁니다. 외과의사였던 그는 어느 날 수술가위를 내던져버리고서, 예수님의 증언자로 나섰지 않겠어요? 신약성경 가운데서 27.5%를 차지한다는 그가 적은 <루카복음서>. 주일미사 때에 종종 듣는 그 복음은 여타 복음서에 비해 비교적 문장이 세련되고 깔끔하데요? 그가 그리스어에도 능통했고 문학적 재능도 충만했던 것으로 짐작되어요. 앞으로 일주일가량 그곳 시리아에 머무를 겁니다. 편지를 써서 당신께 부치겠어요. 안뇽.>
그리고 며칠 지난 다음 당신께 다시 문자메시지를 띄웠어요.
<부활절 축하해요. 마침 당신께서 미사포를 쓰고 미사참례하는 장면을 ‘셀카’해서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보내주셨네요. 나는 지금 시리아 여행 중. 수도인 ‘다마스쿠스’에서 사도 바오로를 만났고, 지금은 튀르키에에 속하는 안티오키아에서는 외과의사 루카도 다시 만났으며, 이곳 안티오키아에서는 총대주교 이나시오 성인도 만난 걸요. 이나시오 성인은 로마 콜로세움에서 사자한테 잡아먹혀 살점 하나 없이 순교했다지요. 이나시오 성인, 당신은 미리 그걸 예언하며 유언편지도 썼대요. 며칠 동안은 고대 오아시스 제국 ‘팔미라’유적지도 둘러볼 계획인 걸요. 팔미라 유적지에서는 이들 시리아인들의 슬픈 역사도 온 몸으로 익힐 겁니다. 다음까지 안뇽.>
보고싶은 당신,
그랬더니, 나의 뮤즈이시도 한 당신께서는 이내 문자메시지로 답해 오더군요.
< 시리아인들의 슬픈 역사? 설명해주세요.>
해서, 두서없으나마, 부득이 당신의 그 궁금증(?) 시리아인들의 슬픈 역사부터 소개하겠어요. 이들 시리아인들의 슬픈 역사는요, 우리 고국이 되놈들과 왜놈들로부터 겪은 그 많은 수난이, 그들에 비해‘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는... . 왜? 지정학적 이유 때문이지요. 이곳 시리아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튀르키에(구 터키)·레바논·이라크·이스라엘·요르단에 에워싸여 있거든요. 우리야 기껏 두 놈의 나라와 인접할 뿐. 그러니 그곳 인접국들로부터 인구 입출입은 얼마나 많았겠으며, 문화적 종교적 충돌은 또 얼마나 많았겠어요? 거슬러, 고대 로마 등의 외침(外侵) 또 얼마나 많았겠어요? 게다가, 쿠데타 등으로 말미암아 정체(政體)도 수없이 바뀌었대요.
그러다가 2011년에 이르러, 그 고름이 제대로 터진 겁니다. 내전(內戰)이 발발했던 게죠. 여러 원인이 있었어요. 1970년 국방부장관이었던 ‘하피즈 알 아사드’가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주의 선거방식을 가장한 집권 이후 말년에 이르러 2000년에 아들 ‘바사르 알 아사드’한테 부자 세습으로 정권을 넘겨주었대요. 그는 말년에 심장마비로 죽었고요. 독재정권으로 말미암은 국민 불만과 흉년으로 말미암은 국민 절반의 절대빈곤과 빈부격차 심화 등으로 국민이 봉기를 일으킨 게죠. 끝내 ‘바사르 알 아사드’는 지난해인 2024년에 자기 옹호국인 러시아로 탈주했고요.
사랑하는 당신,
나는 팔미라 유적지 앞에 닿았어요. 1980년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 제254호로 지정된 이 유적지. 고대 로마시대 오아시스를 낀 상업도시였다는 이곳. 알리라신전·타드무르 동상·극장·벨 신전·바알샤민 등이 있으나, 거의 폐허상태입니다. 온전한 것은 거의 없어요. 이처럼 만신창이가 된 데에는 1089년 대지진 탓도 있지만, 위에서 언뜻 소개했던 대로 내전으로 인하여, 반정부 극렬무장단체 ‘IS(이슬람 국가)’가 이곳을 점거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무차별 파괴하였기에. 그들 입장에서, 이교도인 내가 객관적으로 바라보더라도, 그들 무장단체의 주장도 영 틀린 것만도 아닌 듯해요. 무슬림인 그들 논리대로라면, ‘팔미라’를 건설했던 고대 로마인들이야말로 이교도이며 우상숭배자들일 테니까요. 해서, 설상가상 이곳 팔미라 유적지들은 죄다 파괴가 되었어요.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뜻 있은 많은 나라들이 합심하여 이 유적지를, 첨단 기술 과학으로 복원 중에 있는 거.
사랑하는 당신,
이들이 겪은 내전은 더욱 더 기막힌 양상으로 변질하게 되어요. 온갖 외세 잡놈들이 갈까마귀떼처럼 개입된 겁니다. 대리전 내지 ‘덤불싸움’으로 확대된 겁니다. 저마다 그럴싸한 이유를 대었어요. 러시아는 장기 임차한 부동항 유지를 위해, 이란은 ‘수니파’가 아닌‘시아파(마호메드 사위 알리의 추종자들)’인 부자세습‘아사드 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미국은 친러 국가 확산방지를 위해, 이스라엘은 안보를 지켜준다는 미명(美名)으로, 튀르키에는 자국 내 1,000만 넘는 산악 민족 쿠르드족 세력 확산을 막으려 시리아 반군을 지원하고자 등등. 대체, 무고한 시리아 국민은 대체 뭐냐고요? ‘주객전도’니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니 하는 말이야말로 이곳 시리아 국민한테 딱 어울리는 말이군요. 인구 절반에 해당하는 1,300만이 인접국들로 뿔뿔이 흩어져 난민이 되어있다는... . 그들이야말로 천주교인인 나와 당신이 공히 교리에서 익힌 대로, 옛 이스라엘 백성의‘디아스포라(diaspora)’못지않은 비극 아닌가요? 즉, 특정 민족이 자의적이나 타의적으로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집단을 형성하는... .
여기서 잠시. 내 사랑하는 당신을 떠나, 내 고국과도 같은 당신 곁을 떠나, 이리저리 방황하는 당신의 남자인 나. 하더라도,‘디아스포라’는 결코 아님만은 분명히 해두자고요. 덧붙여,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시인이신 당신께서는 나의 이 편지글에서 영감을 얻어, 특히 위 문장에서 영감을 얻어, ‘디아스포라’라는 시를 적었으면 좋겠는데요? ‘나는 디아스포라입니다’ 혹은 ‘나는 결코 다아스포라가 아닌 걸요. 내 고국과도 같은 당신이 늘 내 곁에 계시니까요.’등으로요.
사랑하는 당신,
나는 시리아의 중부에 자리한 이 팔미라 고대도시에만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어요. 현 수도인 ‘다마스쿠스’도 가 보아야 해요. 그곳은 사도 바오로가 동족인 이스라엘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다그닥다그닥’달려갔던 곳이지요. 사도 바오로가 중도에서 날벼락을(?) 맞아 사흘 동안 앞을 못 보는 소경이 되었다가 눈을 뜬 곳. 그 다음 코스는 고대 시리아 수도였던 ‘안티오키아(현 튀르키에에 속함)’. 위에서 이미 적었듯, 그곳은 외과의사였던 ‘루카’의 병원이 여태 있을까요? 그리고 그곳에는 인류최초로 ‘그리스도교’라는 말이 생겨나게 한 ‘안티오키아 교회’도 있을 것이고, 예수님의 12제자들 가운데에서 으뜸이었던 ‘베드로’가 ‘바르바라’를 선교사 제1호(?)로 뽑아 이교도들한테 내보내었던 말씀도 머무를 겁니다. 아울러, 로마 콜로세움에서 사자의 밥이 되었던 순교자 총대주교 이나시오도 계실 겁니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바올라님,
당신은 사도 바오로를 모본으로 삼고자 ‘바오로’의 여성형인 ‘바올라’로 본명을 삼았다고 나한테 일러준 적 있어요. 그런 이유만으로도, 내 사랑하는 당신의 모본이신 바오로 사도의 본향 방문을 이 시리아 역사기행에서 빠뜨릴 수야 없지요. 그분 사도 바오로의 고향은 현 튀르키에 남단 해안 ‘타르수스(다소)’였던 거 아시는지요? 거리상으로는 서로 제법 떨어져 있으나, 외과의사 개업의(開業醫) 루카가 살았던 안티오키아와 마찬가지로, 지중해 최남단에 자리해요. 덤으로, 사도 바오로는 3차에 걸친 세계 대전도 여행 20,000킬로미터 출발지가 안티오키아였으며, 귀환점은 언제고 안티오키아였다는 거.
너무나도 사랑하는 당신,
나이가 들어갈수록 수다스러워지는 것 같애요. 하고픈 말은 너무도 많고, 여행 수첩에 메모한 것도 빼곡한데, 재능이 부족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글(편지글)을 압축해서 적지 못해 너무나도 죄송해요. 하더라도, ‘차시예고(此時豫告)’인양 이 말만은 해야겠어요. 사도 바오로는 이교도들한테 선교활동하다가 죽을 고비도 많이 겪었대요. 뭇매질 당해 골병든 몸을 치료하러 갔다가 안티오키아 명의(名醫), 루카를 만났고, 그길로 그를 주치의 삼았으며, 제 2차 세계전도 여행 때부터 동행하게 되었고... 루카는 후일 <루카복음서>’와 <사도신경>을 적게 되었다는 거 아녜요? 오롯이 이방인이 적은 <루카 복음>. 그가 직접 모시지도 않았고, 살아생전 한 번도 뵈온 적 없는 예수님의 행적을, 그 동안 전승으로 전해오던 예수님의 행적을 눈에 선히 보이도록 실감나게 적은 것이 바로 <루카복음>. 이 대목에서 내 사랑하는 당신께서도 짚이는 게 하나 있을 걸요? 당신의 남자인 윤근택 수필가도 거의 루카 수준이라는 거 말입니다. 당신의 남자 윤근택 수필가는 여태 제주도 여행도 해 본 적 없다는 거 익히 아시죠?
다음 호 계속)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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