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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蔥]를 또 다시 노래함
    수필/신작 2014. 7. 9. 00:27

     

     

                      []를 또 다시 노래함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이미 한 두 차례 파를 예찬한(?) 수필이 있어, 부득이 제목을 위와 같이 정했음을 미리 밝혀둔다. 사실 동물과 식물은 생명활동면에서 큰 차이점이 없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스스로 움직일 수 있으면 동물인 것이고,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누군가가 (옮겨)심어 주어야 하면 식물일 따름이다. 특히, 동물이든 식물이든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 후사(後嗣)를 보려 하는 본능은 매한가지다. 그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우리네 생명체의 공통된 미션(mission)이기도 하다. 당연히 나는 그러한 관점에서라도 동성연애를 결코 인정치 않는다. 설령, 그들로부터 뭇매를 맞더라도 할 이야기는 해야겠다. 물론 선천적인 불임(不姙)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

         내 농장 텃밭에는 몇 해째 파가 한 자리에서 자라고 있다. 실제로,파는 몇 대()째가 된다. 만돌이농원에 거의 주기적으로 드나드는 넷째누님 내외. 둘은 혀를 내둘린다.

    동생, 도대체 저 파가 몇 대째인가? 우리 밭에 심어둔 파를 뽑아다 자시면(잡수면) 될 터인데 .

    사실 나는 내 토지 가운데 300여 평 밭 한 뙈기를 떼어 누님 내외한테 임대해 주어 주말농장으로 삼도록 하였다. 둘 내외는 파 농사만큼은 거의 전문가 수준이다. 이른 봄에 파 종자를 가는가 하면, 초여름에 잡초 나지 말라며 비닐피복에 구멍을 뚫어 실파를 이식(移植)하는 등. 그러나 내가 그 밭으로 수고롭게 몇 걸음 더 걸어 파를 뽑으러 부러 갈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내 파만 하여도 남아 돌아가기에 더욱 그렇다.

     농학도(農學徒)였던 나는 소위 분얼(分蘖)의 개념을 너무나 잘 알고 지낸다.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파의 번식은 까만 씨앗 파종법도 있지만, 여름날 뻣뻣한 대궁을 싹뚝싹뚝 베어냄으로써 회춘(回春)시키는 법도 있다. 후자(後者)는 이른바 무성생식(無性生殖)의 한 방법인 뿌리나누기 또는 분주(分株)에 해당한다. 다들 아시다시피, 파는 백합목 백합과에 속한다. 대개 백합과의 식물은 분얼, 포기 벌임이 잘 되는 편이다. 정작 백합화(百合花)는 종자가 아닌 포기 나눔으로만 후사를 보게 되지만, 파는 놀랍게도 파종과 포기 벌임 두 방법 다 쓴다. 파는 어버이 세대가 스러지면, 그 뿌리의 자양분까지 고스란히 먹고서 두 쪽, 세 쪽, 넷 쪽, 다섯 쪽 새로운 개체로 늘어난다. 이들 형제자매를 그대로 두어도 더북하게 자라지만, 내 꾀가 거기에 멈출 리 없다. 나는 그것들 동기(同氣)를 한꺼번에 머리채를 잡아당기듯 하여 뽑은 후 따로따로 떼어내어 다시금 줄을 지어 그 자리에다 심어준다. 그렇게 하면 일손도 줄이고, 개체수도 금세 늘일 수 있고,수확기도 파종법보다 앞당길 수도 있고 . 해서, 수시로 뽑아 먹어도 파의 총량(總量)은 늘 일정하다. 아니, 오히려 더 늘어나는 셈이다. 무엇이든 어설프게 알고 섣부르게 행하면 실패하기에 딱 좋지만, 이처럼 경험에서 얻은 것을 그대로 실천해 보면 여간 효율적이지 않다. 그 무엇보다도 합리적이며 유연한 사고를 가지는 게 살아가는 데 이롭다. 속된 말로, 벽창우는 아무짝에도 못 쓴다. 특히, 오랜 장마철에는 여린 실파는 녹아버리는 일이 잦은데, 나처럼 하면 이녁이 먹을 파는 일년 내내 키울 수 있다. , 누님 내외의 경우는 파밭에 우거진 바랭이풀을 비롯한 온갖 김을 맨다고 애를 쓰는 데 비해, 나는 아예 반대로 하곤 한다. 어떻게? 파밭에 잡초가 무성하면, 잡초 대신 파를 모조리 뽑는다는 사실. 그런 연후에 파를 하루, 이틀 따로 한 자리에 수북이 가식(假植)해두고 본디 밭에다는 속효성 제초제를 확 뿌려버린다. 그러고는 다시 그 자리에 파를 되심게 된다. 모든 작물재배에 적용할 방법은 아니겠으나, 독자님 여러분께서도 이러한 김매기 요령 쯤은 익혀두면 이로울 것 같다.

      6~7월에 이르면, 새벽에 성인 남자의 거시기처럼 빳빳하던 파의 비늘줄기는 그 끝마다 꽃을 맺는다. 사실 파는 2년차가 되어야 꽃을 맺는다. 그 꽃과 비늘줄기는 어우러져 성인 남자의 거시기를 연상케 한다. 둥근 산형화서(傘形花序; 우산꼴 꽃차례)는 귀두(龜頭)를 떠올리기에 족하다. 대체로, 어린 남자아이의 거시기 귀두가 포경(包莖)에 싸여 있듯,파꽃도 처음엔 총포(總苞) 라는 비늘 모양의 조각에 싸여 동정(童貞)을 그대로 지니게 된다. 그러다가 때가 되었다 싶으면, 자연적으로 포경수술이 된다. 그러고서 얼마 아니 있어 그 뻣뻣하던 꽃대 내지 비늘잎은 하나하나 미련 없이 쓰러진다. 그때쯤이면, 우리네는 파가 억세어서 더 이상은 먹을 수 없게 되었다고 낙망한다. 그러나 바로 그때가 종자채취 적기(適期)이다. 제대로 남자 구실을 다 한 듯, 후사까지 본 파의 일대기는 그렇게 장렬하게 마감된다. 다소 푸른 기운이 감돌아 씨가 제대로 여물지 않았으리라 우려 할 필요는 없다. 공처럼 생겨먹은 씨를 모조리 꺾어 자리를 펴고 말리면 된다. 대체로, 종자로 쓰기 위한 채취인 경우엔 음달에서 말리라고들 하는데, 파 씨앗은 뙤약볕 아래서 말려도 하등의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이것도 경험상 알게 된 사실이다. 그처럼 단 하룻만에 말린 까만 씨앗을 이내 파종하여도 발아가 되곤 하였다. 다들 아시는 바,작물의 씨앗은 나름의 휴면기(休眠期)라는 일종의 생명시계가 있어, 시도 때도 없이 발아하는 일은 없는 편인데, 파는 별도로 휴면기를 필요치 않았다. 이것도 경험에서 얻은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파 씨앗의 파종 적기는 따로 없는 듯하였다. 경험상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언제든지 뿌려도 발아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파의 종류가 두엇 있었다. 한지형(寒地형), 난지형(暖地形), 중간형(中間形)으로 대별되며, 각각 추위에 강하다든가 더위에 강하다든가 연백재배(軟白栽培)가 가능하다든가 그렇잖다든가 한다. , 줄기파(여름파)라든가 잎파(겨울파)라라든가 구분하기도 한다. 그리고 움파(대파), 실파 따위로도 구분하기도 한다. 시장에 내다 팔 요량으로 대량으로 재배하는 것이 아닌 바에야 크게 따질 것도 없다. 그저 나처럼 거듭거듭 한 자리에다 세워두고 베어 먹고 뽑아 먹고 하면 될 터.

    나는 이제 파를 새삼스레 예찬한다. 그것들의 그 튼실하던 뿌리가 세월에 겨워 스러지더라도 무의미하게 그냥 가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온몸을 자녀들한테 자양분으로 내어 주어 끝내는 쭈그렁탱이가 다 된다. 아니, 숫제 겉껍데기만 남곤 한다. 말년에 이른 내 어머니의 젖꼭지 모습 그대로다. 사실 내 어머니의 젖꼭지도 우리 열 남매가 번호표에 의해 순차적으로 빨았던 것이지만 .  뿌리가 그렇게 최후를 맞을 동안, 꽃대 끝에는 까만 열매를 맺는다.  온 몸을 다 녹여 하느님으로부터 명 받은 미션을 오롯이 실행하는 파. 그러기에 나는 그 과업을 물려받은 파의 후손들마저도 함부로 다룰 수가 없다. 일제히 포기 나누기를 하여 널따란 자기 공간을 만들어 주는 한편, 정성되이 받아둔 까만 씨도 이곳 저곳에다 더는 늦지 않게 뿌려주곤 한다. 그 일 또한 농부의 미션이기에. 더욱이, 내가 농부일지라도 장명종자(長命種子)니 단명종자(短命種子)니 하며 씨앗마다의 수명까지도 익힌 농학도였으니 .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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