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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쓰는 농학개론 (74)수필/신작 2026. 1. 11. 16:13
작가의 말) 이 글은 2014. 11.8. 본인의 티스토리인 '이슬아지'에 올린 글로서,
이참에 '농학개론' 시리즈물에 편입한다.
75) 나무를 심은 사람들
윤근택 (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평론가)
올 가을, 나와 아내는 우리 농장 단골손님인 넷째 누님 내외분 말마따나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내가 ‘저 많은 감 언제 다 따노(따느냐)?’ 탄식 아닌 탄식을 할 적마다 두 분은 나더러 행복한 고민이라고 했다.
우리 ‘만돌이농원’ 개울가에 늘어선 감나무들과, 십여 년째 무상(無償)으로 부치는 300여 평 남의 감나무들이 가지가 찢어질 지경으로 너무너무 감을 많이 달았기 때문이다. 사실 내남없이 올해는 감이 대풍년이다. 자연, 감 값이 폭락하여 박스 값도 제대로 안 나오겠다며 농민들은 울상을 짓기도 한다. 하지만, 다 지은 농사인데 버릴 수도 없고… . 해서, 10월초부터 시작한 나의 감 따기는 11월 초순 지금에 이르러서야 겨우 절반을 넘겼다. 그 동안 딴 감은 10kg들이 종이박스로 200여 박스가 된다. 다행스레, 그 많은 감을 거의 다 소비했다. 감 박스를 승용차에 싣고, 옛 직장 사무실마다 순회하여 후배들한테 팔기도 하고, 지인들한테 선물로 부치기도 하고, 감말랭이를 만들기도 하는 등. 아내도 나름대로 성당 교우들한테 파는 등 부지런을 떨었다.
오늘 이른 아침, 승용차를 몰고 어느 댁에 또 감 배달을 가고 있었다.물론 나는 평소 애청하는 ‘출발 F.M.과 함께’를 또 틀었다. ‘박지현’이란여성 아나운서의 그 달콤한 목소리. 그가 이번엔 인도의 어느 위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이름은 ‘물라이 자다브 파엥’이며, 그는 16세 때 시작한 나무심기를 33년째, 그것도 매일매일 이어오고 있다고 하였다. 그가 그렇게 하여 만든 숲을 일컬어 ‘물라이 숲’이라고 한다는데… . 참으로 감동적이고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이야기였다. 진행자인 그 여성 아나운서의 매력적인 말씨로 하여, 더욱 감동적으로 들렸다. 명색이, 나는 대학에서 임학(林學)을 전공하였고, 숲과 지금도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인데… . 그 내용을 방송으로 소개받자니, 이런저런 생각이 어우러졌다.
지금은 다시 수필가의 방, 수필가의 밤. 인터넷 매체를 통해 ‘물라이 자다브 파엥’을 비롯한 ‘나무를 심은 사람들’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일제히 살펴보았다. 그래서 여기 짧게짧게 그들을 소개코자 한다. 아래는 출몰연도와 상관없이 무순(無順)이다.
1. 물라이 자다브 파엥
그는 16세가 되던 해에 어떤 충격을 받고 학교도 그만 둔다. 그가 사는 곳은 ‘아삼’이란 섬 지방인데, 폭풍우가 휘몰아쳐 주민이며 집이며 숲이며 모두를 앗아가고 만 것이다. 살아남은 이들은 모래밭으로 변한 그곳을 시나브로 떠나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곳을 결코 떠나지 않는다. 혼자서 모래밭에다 나무를 매일 심게 된다. 30여 년 그 일을 하다가 보니까, 나무들은 어우러져 숲을 이루고, 샘을 만들고, 호랑이를 비롯한 온갖 야생동물도 모여들게 하였다. 그곳을 떠났던 이들은 귀향(歸鄕)하여 두 개의 커다란 촌락을 이룬다. 그는 요즘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내와 함께 나무를 심는다.
2. 엔리코 달가스( Enrico Mylius Dalgas,덴마크, 1828~1894)
그는 그룬트비(Nikolai Frederik Severin Grundtvig)와 더불어 덴마크의 위인으로 추앙받는 이다. 그는 현역 대령으로 지낼 동안, 이미 토지개량사업과 토지매립 등을 연구했다. 마침 자기의 조국 덴마크가 1864년에 프로이센과 전쟁에서 패하게 되자, 온 국민이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는 국민에게 호소했다. ‘나라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고. 그는 황무지에다 나무를 심기 시작했으며, 주민들은 그를 따라 자발적으로 나무심기에 동참하게 되었다. 한편, 그룬트비 목사도 이른바 ‘삼애(三愛)’를 주창하였다. ‘하느님을 사랑하자. 이웃을 사랑하자. 땅을 사랑하자.’가 그것이었다. 그룬트비는, ‘힘이 아닌 국민성으로 위대한 국가를 건설하자.’고 호소했다. 이들 양인(兩人)의 노력으로 덴마크가 세계적인 낙농국가가 되었다는 거 아닌가. 사실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은 이들 양인의 활동을 그대로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덴마크인들은 ‘달가스 그룬트비 깃발’이란 걸 만들었다는 거. 내가 그 문양을 이 글에다 그대로 소개하면 좋겠는데, 솜씨가 없어서 작가답게 글로 설명하련다. 큰 네모 안에 작은 네모가 들었고, 그 작은 네모의 네개 꼭지점에서 큰 네모의 꼭지점까지 줄이 네 가닥 그어진 모양이다. 그 문양은 보기에 따라, 작은 네모꼴이 두드러지는 듯도 하고, 움푹 들어가는 듯도 하다. 그들 양인은 그 깃발을 통해, ‘모든 거 생각하기 나름.’이란 걸 국민한테 깊이 심어주었단다.
3. 인위쩐(殷玉眞,중국, 1963~)과 그의 남편 바이완샹(百萬祥,1962~)
인위쩐은 양친이 정해준 혼처에 묵묵히 시집을 가게 된다. 막상 가본즉, 중국 4대 사막 중 하나인 자치구 네이멍구(內蒙古) 모오스 사막. 그가 하루는 사막에 나섰다가,사람의 발자국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인적이 드문 그곳에 그 발자국이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는 그 발자국이 지워질세라 세숫대야를 엎어놓게 되는데, 매서운 모래바람이 그만 세숫대야도 날려버리고 발자국도 지워버리게 된다. 그래서 그는 나무를 심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다. 그의 나무심기는 가히 눈물겹다. 과로로 인해 첫아이는 조산하고, 둘째아이는 유산하고… . 그와 남편이 끊임없이 심은 나무는 울창한 숲을 이루었고, 불모지였던 그곳이 옥토가 되어, 떠났던 이들이 다시 들어와 산다. 그들 내외가 여태 이룩한 숲은 8백만 평이고 여의도 크기의 40배가 된다니!
3. 뮐러
그는 독일인이며, 한국에 귀화했다고 전한다. 대학시절, 수목학 강의를 하셨던 명문대인 서울대 농대 출신, ‘백승언’ 노은사(老恩師)께서는 기회 있을 적마다 그분을 추켜올렸다.
“자- 자네들 말이여, 명색이 임학도이면 충청도 천리포에는 꼭 한번 가봐야 혀. 그곳에 뮐러씨 수목원이 있어. 그 양반은 전세계 나무들을 종류별로 죄다 갖다 심어 두었어. 참말로 장관이라네.”
안타깝게도, 나는 여태 ‘천리포 뮐러씨 수목원’에 가 보지 못하였다. 자기 나라도 아닌 이국(異國)에서 수목원을 만들 생각을 그렇게 하였다니 존경스럽지 아니 하냐고? 나의 애독자들께서는 그곳에 꼭 한번 가보시길… .
4. 이스라엘인들
그들은 자녀들한테 귀중한 가르침을 준다. 바로 ‘탈무드’가 그것이다. 그 탈무드 내용 가운데는 과일 씨 이야기도 들어 있다. 사실 나는 탈무드 가운데서도 그 가르침을 최고로 귀중하게 여긴다. 과일을 먹되, 씨를 아무 데고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이른다. 그 씨앗들을 길섶에라도 정성스레 심으라고 이른다. 그러면 그 씨앗이 싹을 틔워, 먼 훗날 오게 될 후손들이 맛있는 과일을 따먹을 수 있게 된다는 가르침.
5. 내 이웃 감나무밭 주인(主人)과 ‘만돌이농원’ 전주인(前主人)
사실 내가 오늘 그 이른 새벽에 승용차를 몰고 감을 팔러 간 것도 그분들 덕분이다. 10여 년 전, 우리 내외가 이곳 농토를 사게 된 것은, 감나무 때문만은 아니었다. 개울가에 주욱 늘어선 10여 년생 감나무가 운치롭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갈겨니,버들치,다슬기 등을 노닐게 하는 개울을 끼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우리 내외는 그 감이 ‘남성현’ 재 너머 청도와 마찬가지로, 씨 없는 반시(盤柴;쟁반감)인 줄도 몰랐다. 그랬던 것이 세월이 점차 흐르자, 우리 내외의 농산물 가운데 용돈이라도 제대로 마련해 주는 효자상품이 되었다. 이 밭 전주인인 그 김노인이 심은 덕분이다. 사실 우리가 이 밭을 살 때만 하여도 벌써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고, 첫해엔 그 노인이 고생하셨을 테니, 맘대로 따가시라고 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과일 나무든 일반 수목이든 성목(成木)이 되자면 적어도 30여 년 걸린다. 우리 인간의 한 세대와 비슷한 셈이다. 그 가운데서도 감나무는 적어도 10여 년 나이를 먹어야 풍성하게 과일을 맺는다. 전주인이 감나무를 그렇듯 심어 두었기에, 우리는 해마다 감 부자가 되었으니, 감사해 해야지 않겠나. 그리고 저 건너편 300여 평의 감나무밭도 마찬가지다. 그분 후손은 객지에 나가 사업을 하고 있고, 우리더러 묵히느니 그냥 부치라고 하였다. 멋대로 자라는 도장지(徒長枝)를 해마다 베서 키를 낮추는 등 약간의 손질만 했을 뿐인데… . 더더군다나, 감나무는 한 해 한 두 차례의 농약만 치면 되고, 거름 등을 오히려 과하게 넣으면 아니 되는 등. 정말이지, 한 그루의 과일나무를 심는 일은, 먼 훗날 찾아올 후손을 위해서라는 거.
6. 가장 빼어난 독림가(篤林家) 내지 조림가(造林家)
조림학을 강의하셨던 또 다른 노은사(老恩師)께서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훌륭한 독림가 내지 조림가를 소개해 주었다.
“자네들 말이여, 이 지구상에서 가장 빼어난 조림가는 다람쥐라네. “
처음엔 괴이한 말씀 같았으나, 끝까지 듣고 보니 과연 그러했다. 다람쥐들은 바지런을 떨며, 도토리며 밤이며 호두며 온갖 열매를 겨울 양식으로 삼으려고 굴에다 감추어 두게 된다. 보이는 족족 씨앗을 그렇게 물어다가 감추어 두는데, 녀석들은 따로 표시를 해두지 않아 깜박깜박 잊어버리는 수가 있다는 거 아닌가. 또, 녀석들이 구멍구멍 감추어 둔 열매의 행방을 기억한다고 해도, 약간의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다. 그곳은 습도와 온도가 발아(發芽)에 알맞아 촉을 틔우고 마는 수도 더러 있으니까. 내가 살펴본 바, 성미 급한 도토리는 흙에 묻히자마자 촉을 틔우는 예도 있었으니… . 하여간, 노교수님은 임학도인 우리더러 조림의 수고를 덜어주는 다람쥐한테 꾸벅꾸벅 인사를 해야 한다고 일러 주었다.
7. 소설가 장 지오노(Jean Giono,프랑스, 1895-1970)
그는 <<나무를 심은 사람>>이란 20쪽짜리 소설을 적었다. 그는 미국의 어느 출판사로부터, 평생 만난 사람 중에서 잊을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글을 써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출판사에서 그의 글을 받아 확인한 결과, 주인공 ‘엘자아르 부피에( Elzéard Bouffier)’는 실존인물이 아님이 밝혀져, 1953년 <<리더스 다이제스트>>지에 처음 발표되었고,그 이듬해 미국의 <<보그(Vogue)>>지에 ‘희망을 심고 행복을 가꾼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첫 출판된 이래 전세계 13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장 지오노는 원고청탁을 받고 ‘잊을 수 없는 사람’을 찾다가 적합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자, 잊을 수 없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서문에 밝혀 놓았다.
‘(상략) 한 인간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발견해내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만 한다. 그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한 잊을 수 없는 인격과 마주하는 셈이 된다(하략)’
소설 내용은, 한 젊은이가 프랑스 알프스 근방에서 55세의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를 만나는 데서 시작된다. 아내와 아들을 잃은 부피에는 혼자 살면서 황무지에 도토리 나무와 자작나무를 심었다. 길이 1,5미터쯤 되는 쇠말뚝으로 땅에 구멍을 내고, 도토리 10만개를 묻는다. 거기서 2만개가 싹을 틔우고 떡갈나무로 자라는 놈은 겨우 1만 그루다. 그렇게 34년 동안 힘들게 나무를 심었다. 혼자 지내니 나중에는 말하는 방법을 잊은 상태였다. 고독과 슬픔과 싸움이었다. 세월이 지나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그 동안 파종한 10년생 나무들은 우람하게 성장했다. 수십 만 그루 나무가 숲을 이룬 것이다. 나무가 자라자 물이 흐르고 풀이 자랐다. 벌 나비가 모이고 새가 모여들었다. 주민들이 하나 둘 돌아와 살기 시작하더니, 그 숫자가 1만 명에 이르렀다. 1935년, 나무심기는 정부 정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47년, 89세가 된 ‘엘제아르 부피에’는 마농의 요양원에서 평화롭게 죽는다.
이 소설을 세상에 알린 사람은,1987년 5년간의 만화 수작업을 거쳐 <<나무를 심은 사람>>이란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프레드릭 백(Frédéric Back,캐나다,1924–2013). 30분 분량의 이 애니메이션을 본 캐나다 사람들은 무려 2억 7천 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단다. ( 죄송하지만, 이 ‘7’의 이야기는 어느 블로그에서 죄다 베껴왔음.)
자, 이제 내 이야기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실 내가 덧붙일 말도 없다. 이미 위 ‘7’의 예화(例話)에서 소개한 그 작가의 책 서문에, 내가 할 말을 다 적어 두었으니까. 사실 그도 그 많은 독림가 내지 조림가들의 고결한 정신을 요점정리 하듯 적었을 따름이다. 그렇지만 수필작가이기 이전에 명색이 임학도였던 나는, 나의 애독자들께 감히 권유할 이야기가 단 하나 있다. 바로 이 말이다.
‘살아생전 본인이 혜택 누리자고 심지 않더라도, 죽기 전에 남을 위해단 한 그루의 나무라도 심으시라. 그곳이 설령 본인 소유의 땅이 아닐지라도.’
작가의 말)
저는 기회 있을 적마다 말했습니다.'수필은 전문가가 쓰는 글이며, 생활인이 쓰는 글'이라고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전문가란, 자기가 관심 있고, 자신이 있는 분야에 몰입하는 이를 일컫습니다.늘 더듬이를 곤두세우는 작가한테만 새로운 글감 낚인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죠.
자, 어떤 모티브로 글이 만들어졌으며,어떻게 요리를(?) 해나가는지 살펴볼까요?
아래는 어느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맡은 여성 아나운서한테 쓴 편지입니다.
'박지현 아나님,
엊그제 (11.5.) 님께서 소개한 인도의 어느 조림가 내지 독림가 이야기.
님의 그 마력적인(?) 목소리가 곁들여져,
어느 수필작가를 울렸지 뭡니까?
해서, 그 방송은 이 수필작가한테 모티브가 되었으며... .
방금 빚은,동일 작품명의 '나무를 심은 사람들'을
그대한테, 방송작가한테 바치오니... . ''수필 > 신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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