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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新)도라지타령
    수필/신작 2014. 12. 21. 19:29

     

    신(新)도라지타령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일전, 아내는 내 농막에 찾아들어, 프라이팬에다 고추장을 잔뜩 바른 더덕을 얹어 더덕구이를 해서 술상을 차려 주었다. 초겨울까지 농사하느라 고생했으니, 특별 농주(農酒) 안주로 더덕구이를 그렇게 내어놓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전의 그 맛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달큰한 것 같았다. 아내는 빙그레 웃으며, 그제야 그것이 더덕이 아닌 도라지요리라는 게 아닌가. 사실 더덕구이는 먹어봤어도, 도라지구이는 생전 처음인 것 같다. 하여간, 맛있게 술안주로 삼았다.

    해는 지고, 아내는 시내 아파트로 돌아가고... 농막에 쓸쓸히 전등을 켠다. 거나하게 마신 술로 인해서인지, 예기치 않았던 뜨거운 눈물이 양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린다. 또 다시 살아생전 내 어머니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어머니, 당신은 다래끼를 메고 온 산을 헤매곤 하였다. 이웃들은 말하곤 하였다.

    “송호할매(어머니의 택호임.)는 산도라지 캐는 데 척척박사시더(박사입니다).”

    참말로 그랬다. 당신은 온 산을 헤매며 산도라지를 캐오곤 하였다. 그렇게 싸리다래끼에 가득 캐온 산도라지를 물에 불려, 다듬잇돌에 얹은 후 방망이로 자근자근 두드리곤 하였다. 그러고는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치린 짚으로 엮어 한데에다 내다 말리곤 했다. 다음 장날에는 여지없이 그것들을 들고 가서 팔아 돈을 장만하곤 하였다. 그것이 부전자전(父傳子傳)이 아닌, 모전여전(母傳女傳)이었을까? 내 셋째누님 ‘봉자(鳳子)’는 처녀시절에 이웃 과수댁(寡守宅) 숙화엄마랑 겨울마다 창출(蒼朮)이니 백출(白朮)이니 하며 ‘삽주’를 산약재로 캐러 다니곤 하였다. 누님은 그렇게 해서라도 자력으로 돈을 벌어야겠다고 하면서. 그러다가 한번은 ‘미시골’이란 국유림에서 추위를 녹이려고 모닥불을 피우다가 산불을 내고서는 머리카락을 다 태우고 혼비백산 집으로 돌아온 일도 있었다. 그렇게 아등바등했고, 그렇게 고왔던 자식부잣집 셋째딸 누님. 53세의 나이에 뇌졸중으로 우리 열 남매 가운데서 맨 먼저, 그것도 홀로이 저승으로 달아났지만... .

    모르긴 하여도, 내 어머니와 내 셋째누이는 온 산을 헤매며 도라지타령도 흥얼흥얼 부르곤 했을 것이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한 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에 반실만 되누나/ (후렴) 에헤요 에헤요 에해애야/어려라 난다 지화자 좋다/ 네가 내 간장을 스리살살 다 녹인다.//

    맞다. 어머니, 당신과 누님, 당신은 그 후렴구 끝 부분이 지역에 따라서는, 부르는 이에 따라서는 ‘ 저기 저 산 밑에 도라지가 한들한들’로 되어 있으나, 굳이 당신들 둘은 ‘네가 내 간장을 스리살살 다 녹인다’ 하면서 불렀을는지도 모르겠다. 참말로 가슴 미어지는 그 후렴구.

    나는 어머니가 캐왔던 산도라지의 그 독특한 ‘사포닌’ 내음과, 내 누님이 캐왔던 ‘백출’의 그 특유한 ‘한방약 내음(?)’을 참말로 여태껏 잊지 못하겠다. 해서, 내 이야기는 이제 ‘홱’ 돌아갈밖에. 나는 벌써 10여 년째 농사를 하는 농부이면서도, 이웃들과 달리 여태 제대로 익히지 못한 농사가 있다. 우선, 콩 농사로 재미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무성하게 우거지기는 하나, 수확 때에 이르면 죄다 쭉정이가 되어버리곤 한다. 콩고투리가 생길 적에 ‘노린재’라는 벌레가 즙액을 모조리 빨아먹어서 그렇다고 했다. 해서, 노린재 방제를 해 보았건만, 영 신통치가 않았다. 다음은, 도라지 재배로 재미를 본 적이 없다. 올 봄에도 농약사에서 씨를 여러 봉지 사다가 뿌려보았으나, 당초에 싹을 틔우지를 않았다. 기관지가 좋지 않은 아내가 약으로 쓰겠다며 나더러 도라지를 키워달라고 했건만... . 모르긴 하여도, 그것이 묵은 씨앗이었거나, 파종 때에 그 깊이가 적정치 않았거나 해서 빚어진 일로 여겨진다.

       사실 도라지는 여느 작물에 비해 제법 재배가 까다롭다. 녀석들이 발아하기 이전에 바랭이풀이 활개를 치는 바람에, 뒤늦게 발아하는 도라지가 맥을 영 못 춘다. 설령, 도라지가 고르게 싹을 틔우더라도, 잡초의 그늘에 치이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편이다. 자연, 도라지가 유묘(幼苗)일 적엔 사흘돌이 잡초를 뽑아야 한다. 뒤늦게 안 일이지만,‘선택성 제초제’로 바랭이풀을 다스릴 수 있으니, 내년 봄엔 오기가 상해서라도 기어이 다시 도라지씨를 뿌려보기로 마음먹는다. 나아가서, 뒷산에 드문드문 자라나는 ‘삽주’의 씨앗마저도 고이 받아 온 산에다 뿌리고 싶다. 가급적이면 우리네 모든 산야(山野)에 그것들 씨앗을 흩이고 싶다.

    창작후기)

    어느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유품’ 이후 모처럼 절제된 언어로 한 편의 수필작품을 빚은 듯하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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