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깃털과 볏
    수필/신작 2015. 1. 27. 01:35

     

    깃털과 볏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깃털

     

         이 겨울밤, 막상 글감도 마땅찮은데, 잠은 쉬이 오지 않고... . ‘오리털 파커를 입은 채 책상 맡에 앉아, 여태 하릴없이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자료와 신문기사를 검색하여 읽어댔다. 그것조차도 심드렁해져 이번엔 A4용지에 적어둔 메모 뭉치(?)를 정리하게 이르렀다. 그러다가 드디어 글감을 낚아챘다. 내가 이 삼동(三冬)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하는 오리털 파커를, 아니 이 파커의 속에 가득 채워진 오리의 깃털을 왜 여태 놓치고 있었던고? 도대체 이 파커를 만드는데 몇 마리 오리 의 목숨이 달아났을까? 실은, 애초부터 깃털만을 뽑고자 그 애꿎은 오리의 목숨을 거둔 것은 아니리라. 유황오리니 훈제오리니 하며 요리감으로 만들고, 그 부산물인 깃털을 활용하여 우리네 겨울 의복의 속을 채우게 되었을 터. 하여간, 그 많은 오리들은 죽어서 깃털을 남기고, 그 깃털은 가볍고도 포근하여 우리네 월동을 도와준다.

          깃털은 삼척동자도 다 알다시피,현생(現生) 조류(鳥類)의 몸을 덮고 있는 구조다. 조류에만 유일하게 있는 이 깃털은, 조류의 조상인 파충류의 비늘이 진화한 거라고 한다. 새들 깃털은 종류에 따라 너무도 다양하고, 특수화 되어 있다. 몸의 열을 보존할뿐더러 날아다니기에 편리하게 되어 있다. 나아가서, 새들 몸의 윤곽을 형성하고, 몸치장으로도 쓰이며, 감각기관으로서도 역할을 한다. 그 빼곡한 깃털로 공기의 층을 만들어 보온토록 하며, 물에 뜨기 쉽도록 하여 백조의 호수말 그대로 유영(遊泳)토록 한다. 그 성분은 우리네 손톱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케라틴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깃털이 내가 단벌인 듯, 이 겨울 내내 씻지도 않고 입고 지내는 파커에만 쓰인 게 아니다. 문맹사회든 선진국이든 할 것 없이 장식용으로 써 왔다는 사실. 깃털은 왕위(王威)의 표상으로도 쓰여 왔으며, 모자나 그밖의 장식에도 쓰여 온 게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화살의 날개로도 유용하게 쓰여 왔다. 그리고 배트민튼 선수에게는 없어서는 아니 될 필수품 셔틀콕에도 쓰인다. 한편, 깃털·깃대·깃자루 등으로 조합된 새의 날개는, 우리네 인간한테 날고 싶은 욕망을 한껏 부추겼다. ‘라이트 형제가 새의 날개를 본 따 수 없는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 낸, 세상에서 가장 큰 날개. 인류는 그 날개 즉, 비행기 덕분으로 오대양육대주를 자유자재 횡단하게 되었으니! 그러니 인디언들의 깃털 몸치장을 두고, 그저 미개의 문화라고 전혀 깎아 세울 게 못 된다. 새들이 지닌 깃털이 이렇듯 소중함을 안 이상, 나만이라도 요즘 너무도 흔히 쓰는 말, “몸통은 없고 깃털만 남았다!”를 더 이상 아니 써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기왕에 새들의 주요 구조인 깃털 이야기를 했으니, 새들 가운데 닭이 지닌 에 관한 이야기마저 해야겠다. 닭의 정수리에 세로로 난 은 대단히 특별한 장식이다. ‘을 두고, 경상도 북부권 우리 쪽에서는 벼슬이라고 부른다. ‘닭의 볏, ‘관아에 나가서 나랏일을 맡아 다스리는 자리 또는 그런 일.’을 일컫는 벼슬과는 통하는 바도 많다. 사실 그러한 벼슬구실보다 높은 직()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벼슬은 그 어원(語源)조차도 같으리라는 생각 떨칠 수 없다. 벼슬께나 하던 이들은 닭의 정수리에 난 모양으로 장식한 관()을 쓰게 되었다. 서양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알렉산더대왕의 출신지인 그리스의 지방도시 마케도니아의 군인들은 철볏() 달린 투구 곧 이일리안(Illyrian)’을 썼다는데, 그 투구는 강인함과 우월함을 상징했단다. 우리나라 고전 상례(喪禮)에 따라, 저승길에 오른 망자(亡者)는 상여에 타게 되는데, 그 상여에 닭을 형상화한 조각물 곧 꼭두가 있지 아니한가. ‘꼭두자체만 하여도 정수리또는 꼭대기를 일컫는 말인데, ‘닭의 정수리에 난 볏을 일컫기도 하는 것 같다. 우리네 선조들은 닭이 이승과 저승을 연결한다고 믿었기에 그리 장식했단다. 물론 그 꼭두에도 닭의 볏이 장식되어 있다. 아마도 꼭두새벽이란 말도 상여의 장식물인 그 꼭두()’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 ‘꼭두새벽첫 꼭두()가 우는 새벽’?

          과연 우리네 선조들이 벼슬길에 올라 닭벼슬(’닭볏의 방언)‘ 모양의 관을 쓰게 된 진짜 이유가 뭘까? 우리네 선조들은, 닭이 하늘과 땅을 연결하여 천지를 여는 신()이며 광명을 가져오는 창조의 힘을 가진 동물로 여겼다. 여명이 밝아오면 홰를 치고 어둠의 세력 곧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동물로 보았다. 우리네 12(十二支) 가운데 유일하게 깃털과 날개를 지닌 동물은 닭[]이고, 그 닭은 여느 새들과 달리 볏을 지녔다는 거. 12지에서 닭의 덕목은 ····로 대변된다. 날카로운 발톱 덕분으로 용감하고(), 먹을 것 못 먹을 것 가려 콕콕대고(), 꼬꼬댁 새벽을 알리는() .

           외국인들이 닭과 닭볏을 대하는 태도도 우리 선조들과 크게 다르지 는 않았다. 이미 위에서, 용맹을 보여주기 위해 철볏으로 장식한 투구를 썼던 로마군의 사례를 언급했지만, 그밖에도 제법 된다. 기원전 2500년경 인더스 문명 때에 사육을 시작했다는 닭.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챙기다가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란 말의 본디 뜻을 알아내고서 깜짝 놀라게 되었다. ‘노블리제(noblesse)’닭의 볏을 뜻하며, ‘오블리제(oblige)’달걀의 노른자위를 뜻한다는 사실. 이 말은 닭의 사명이 자기 자신의 벼슬()을 자랑하고 뽐내는 데 있지 않고, 오직 알을 낳는데 있음을 암시하고 있단다.

          , 이제 밑도 끝도 없는 나의 이야기를 비교적 깔끔하게 정리해보아야겠다. 깃털 덕분에, 특히 오리깃털 덕분에 긴 겨울 오리털파커로 따뜻하게 지낸다.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닭볏의 의미를 새삼스레 새기게 되었다. 우리네 어른들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일러주셨다.

          벼슬은 높이고 뜻은 낮추어라.’, ‘벼슬하기 전에 일산(日傘) 준비를 해서는 아니 된다.’, ‘닭의 볏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말아라.’ . 참말로 벼슬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 역시 젊디젊은 날 반짝쇼에 불과하다는 사실. 해서, 나는 더 이상 그 어떤 일에도 안달부릴 까닭이 없어져 버렸다.

          끝으로, 굳이 사족을 하나 붙인다면, 새해 벽두에 한국문인협회 장르별 대표자들을 뽑는 선거가 있는 모양인데... 출마자들의 행태가 퍽 유감이다. 어찌 알았는지 하루에도 수십 개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가 들어오는 등 몹시 귀찮게 한다. 제대로 된 글쟁이라면, 제 흥에 겨워 작품만 제대로 쓰면 될 것을, 마치 그 자리가 무슨 큰 벼슬자리라도 되는 듯 요란법석들이다. 그분들 공히 아름답고 붉은 볏을 지닌 닭한테서, 포근하고 가벼운 깃털을 지닌 오리한테서 인생을 새롭게 공부하였으면 참 좋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져보며 이 글 접기로 한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수필 > 신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든 둘! 맨발의 신문배달 할아버지'  (0) 2015.02.01
    대구의 돈벼락 사건  (0) 2015.01.30
    오동  (0) 2015.01.24
    톱집에 다녀와서  (0) 2015.01.21
    곶감을 걷고  (0) 2015.01.18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