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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촌옹(村翁)
    수필/신작 2015. 5. 6. 22:12

     

                                                        

                                                  어느 촌옹(村翁)

     

                                                                                   윤요셉(수필가)

     

         임종(臨終)

     

         환후(患候)가 깊어져, 큰 데 병원으로 모신 지 한 달째. 남매들은 맏이 내외의 고충을 고려하여 간병(看病) 당번제를 정했다.

         토요일 하오. 당번은 아니지만 맘이 켕겨 퇴근하자마자 시외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가기를 잘했다. 노인은 무척 반가워했다. 정신이 초롱 같았다. ‘특기사항을 인수하고 큰형수와 임무교대를 하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노인은 근택이가 올 텐데... .” 하며 이 넷째아들을 가장 보고 싶어했단다. 하기야, 지난번에 문병 갔을 때 남매들과 달리,환자에게 자극적인 말만 많이 했으니. 그때 주로 이런 말을 했다.

        아버지, 보고 싶으셨다면서요? 통장 감추어 두신 게 있으면 주셔요.”

         노인은 해쓱히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노인은 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을 때 구박하여 집을 나가게 한 적이 있다. 청년은 그 길로 오기(傲氣)가 생겨나 일자리를 구했고, 달셋방 생활부터 시작하였다. 그리고 최근에 과장이 되었다. 보고 싶어했음은 그러한 둘만의 숨겨진 추억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아버지, 농땡이치지 말고 몸을 움직이셔요. , 이렇게 주먹을 쥐어보셔요. 지난 날 화로며 밥상이며 내던졌던 힘 다 내어보셔요. 우리한테 버럭버럭 고함지르시던 힘 다 내어보셔요. 나뭇짐을 지고 저 미싯골 오르막길을 오르시던 힘 다 어디 갔어요?”

         노인은 착하리만치 말을 잘 들었다. 고통스러워 음독자살을 해야겠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살고 싶어 몸부림이었다. 미음도 넘어가지 않는 입에다 그 쓴 알약을 넣어 씹고 있었다.

         저녁 무렵, 옆 병실 할머니한테서 휠체어를 빌렸다. 또 다른 병실의 남자 보호자한테 도움을 받아 노인을 휠체어에 태웠다. 복도를 거쳐 밖으로 밀고 나갔다. 가고픈 곳 어디라도 모시겠다고 했더니, 괜찮으니 병실로 그만 돌아가자고 졸랐다. 서산의 태양은 붉게 타고 있었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노인은 무척 힘들어 했다. 이따금씩 헛소리를 했다. 모든 근심 잊어버리고 한숨 주무시라고 했다. 눈 감으면 무서워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투정을 부렸다. 이번엔 금곡노인을 만났다고 했다. 그 노인은 벌써 오래 전 세상을 뜬 사람이다. 노인은 곁에 있던 이 보호자가 사라질까봐 자꾸자꾸 이름을 불러댔다. 짜증스러워 일부러 한두 번씩 대답을 빼먹었다. 신음소리가 거칠어져 갔다. 어젯밤도 그랬냐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의 오른쪽 코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노인은 손가락으로 그 붉은 액체를 닦으면서 말했다.

        이런? 이런?”

          노인은 코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려고 애썼다. 이 간병인은 안타까웠다. 어처구니없는 일이기도 했다.

        아버지, 그냥 내버려 두셔요. 그깐 피가 대수입니까? ”

          그런데도 노인은 한사코 이런? 이런?” 하면서 흐르는 피를 닦으려고 애썼다.

          자정이 넘었다. 노인은 목까지 숨이 차올랐다. ‘흐르르흐르르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닦아도 닦아도 한이 없었다. 여전히 정신은 초롱 같았다. 이 간병인은 환자의 요구를 거의 다 들어 주었다. 병상(病床)의 핸들을 감고 풀고 하여 상체를 일으켰다 눕혔다 하는 등. 한편,응급벨을 눌러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도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휴대폰으로 큰형 내외한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간단했다.

        형님, 병원으로 속히 오셔야겠습니다.”

         집에 가시겠느냐 물어봤다. 어디라도 괜찮다고 했다. 남매들을 부를까 물어보았다. 모두 부르라고 했다. 이 간병인은 왜 그런 말을 했던고?

        아버지, 이젠 올 데까지 왔어요. 아버지의 허파가 다 녹아 내렸어요. 미련 버리셔요. 남들한테 모진 말 했던 거, 모질게 했던 거,어머니와 싸우셨던 거... 이젠 모두모두 정리할 시간인 걸요. ”

         노인은 일어나겠다고 병상의 난간을 잡고 한바탕 악을 썼다. 그러다가 이 아들의 남방소매를 움켜잡고 놓지 않았다.

        제발 살려 줘. 제발 살려 줘.”

         간병인은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다. 84세의 노인은 이승에 없는 당신의 어머니까지를 다급하게 불러대며 울부짖었다. 사실 나는 할머니의 얼굴도 본 적 없다.

       엄마! 엄마! 엄마!”

         큰형 내외와 둘째형 내외가 당도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노인을 구급차에 모시고 노인의 집, 노인의 방에 도착했다. 노인의 담요 위에 뉘었다.

         큰형과 둘째형은 한눈을 팔고 있었다. 노인의 목에서는 더 이상 피가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벽을 노려보던 눈동자가 풀렸다. 그러더니 숨을 길게 몰아쉬었다.

        형님들, 가까이 오셔요. 아버지가 가시는 중입니다.”

         노인의 외마디였다.

        “!”

         큰형은 황급히 대접에 물을 떠왔다. 큰형은 물을 먹이며 흐느꼈다.

        아부지, 이 물 한 모금 마시고 가소. 한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흐흐.”

        크르르소리와 함께 노인의 입에서 거품이 일었다. 큰형과 둘째형은 벌써 소리내어 울어댔다. 노인의 넷째아들은 두 손으로 노인의 얼굴을 감싸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형님들, 울지마소. 이제 아버지 좋은 곳으로 가십니다.”

        이 넷째아들은 기도문을 외듯 노인을 도와주고 있었다.

        아버지, 이젠 모든 고통 끝났습니다. 이승의 모든 미련 버리고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십시오. 아버지, 편히 가십시오.”

         노인은 스르르 눈을 감았다. 가슴에 손을 얹어 보았다. 시나브로 심장의 박동이 잦아들고 있었다.

     

         (

      

         염사(殮士)가 도착했다. 그는 상제(喪制)들을 불러들였다. 고인(故人)의 아들 다섯, 딸 다섯은 나란히 섰다. 염사는 고무장갑과 마스크를 끼고 가운을 입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의 지시는 엄격했다. 맏상제는 그의 지시에 따라 고인을 가려 두었던 이불을 걷었다. 고인은 배 위에 두 손을 모은 채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오척(五尺) 단신(短身)이었다.

        방안의 분위기는 엄숙했다. 염사는 상제들한테 소독약을 묻힌 거즈(gauze)를 건네주며, 정성스레 온몸을 닦아드리라고 했다. 모두 꿇어앉아 몸을 닦아드리고 있었다. 깡마른 다리였다. 복숭아뼈 부위의 살이 불거져 나와 있었다. 홀쪽한 배였다. 왼 가슴엔 폐 수술 흉터가 커다랗게 있었다. 신체의 다른 부위에 비해 가슴이 유난히 발달된, 새가슴의 노인이었다. 지게질로 단련된 어깨는 무쇠처럼 단단하게 느껴졌다.

         염사는 고인의 손톱, 발톱을 깎고 있었다. 손톱이 두꺼워 손톱깎이에 쉬이 물리지 않았다. 고인의 손은 굳은살이 박이고 마디가 굵었다. 거북등 같았다. 상제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손을 번갈아 가며 잡아주었다.

         염사가 수의(壽衣)를 입히려는 듯했다. 큰상제는 고인의 등도 닦아드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염사는 윽박았다.

        알고 있어요. 시키는 대로만 하세요.”

         염사는 고인의 몸을 모로 뉠 것을 명했다. 상제 둘은 염사가 일러주는 요령에 따라했다. 고인의 등을 바라보던 상제들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그 동안 덤덤해했던 고인의 넷째아들도 그 순간만은 참을 수가 없었다. 달포 병석(病席)에 지내면서 등창()이 생겨 엉망이었다. 피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고인의 넷째아들은 가슴이 미어졌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

         고인의 넷째아들은 지난 밤 간병(看病) 담당이었다. 환자는 마구 보채고 있었다. 핸들을 틀어 병상(病床)을 올려달라 내려달라, 몸을 모로 뉘어 달라, 등 뒤에다 베개를 받쳐 달라... . 정작,원하는 대로 해줄라치면 아프다고 고함을 지르곤 했다. 응석을 부리는 것 같았다. 짜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간병인은 병실이 갑갑하여 환자를 남겨 둔 채 휴게실로 가서 담배를 피우곤 했다.

        야야, 너희 남매들 모조리 새파랗게 칼을 갈아 와서 매달리거라. 개 껍데기 벗기듯 내 등을 한 거죽 벗겨 주었으면 좋겠다.”

         죽음에 이르게 한 병은 따로 있었거늘, 환자를 더 괴롭힌 것은 등창이었다니... .

         염사의 얼굴에서 콩죽같은 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막대와 솜으로 양치질을 해주고, 턱수염도 깎아주고, 머리도 정갈하게 닦아 주었다. 그리고는 입이며 귓구멍이며 콧구멍이며 솜으로 막았다.

        염사는 수의를 입히기 시작했다. 저승 가는 길엔 웬 옷이 그리도 많이 필요한지. 고인은 생전에 입어본 적 없는 도포까지 입었다. 고인은 생전에 그렇게 정갈하게 옷을 입어본 적이 없다. 흙먼지와 땀에 절은 잠방이와 적삼을 입고 지냈다. 염사는 옷고름, 대님 매는 데까지 세심했다. 그는 절대로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창호지와 삼베천과 무명천으로 고인을 치장해 나갔다. 접고 묶고 매듭짓고... 그의 손놀림은 가히 예술이었다.

        상제들은 염사의 지시에 따라 곡()을 했다. 고인은 칠성판에 얹혀졌다. 염사는 관을 땄다. 상제들은 고인을 관 속으로 옮겼다. 염사는 관 뚜껑을 닫고 '쾅쾅!' 못질을 했다. 다시는 이승으로 돌아오지 말라는 듯 관을 흰 밧줄로 매듭을 지어가며 꽁꽁 묶고 있었다.

     

         하관(下棺

      

         발인제(發靷祭)를 지냈다. 상여꾼들은 어느새 만가(輓歌)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인의 딸들, 며느리들은 더 이상 따라 올 수 없는 법. 그들은 일제히 상여에 매달렸다. 막내딸은 기절하였다. 노인의 대소변을 받아내던 큰며느리도 자지러졌다.

        아버님, 이녁 집을 두고 어디로 가신단 말이니껴?”

         마을 사람들도 몰려나와 노인의 마지막길을 지켜보았다.

         상여는 노인이 평소 다니던 마을 골목길을 한 바퀴 돌아 양지재를 넘고 있었다.

         만가(輓歌)는 이어졌다.

        너호호 너호호 너허넝차 너호호. 너호호 너호호 너허넝차 너호호... .”

         고인과 운 때가 맞다는 정오 무렵, 상여는 산지(山地)에 도착했다. 상제들은 광() 곁으로 다투어 다가갔다. 풍수(風水)는 물론이거니와 이웃 어른들조차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훌륭한 묘터라고 치켜 올렸다. 상제들은 흡족해하는 표정이었다. 노인의 넷째아들은 왜 그리도 편안하던지. 더욱이, 옆에는 이태 전 노인의 아내가 먼저 와 있었다. 노인은 병석에서 자주자주, “느그 어마이(어머니)가 속히 데려갔으면 좋겠다.” 했다.

         광짓기가 마무리 되자,광 바닥에 창호지가 깔렸다. 관이 뜯겼다. 상제들은 가례(家禮)에 따라 시신(屍身)만을 광에 고이 내렸다. 하관이었다. 몇 차례 의식절차가 더 남아 있었다. 잠시 후 맏상제는 두루마기자락에다 고운 흙을 담아 와서,“취토(取土)! 취토! 취토!”하며 시신 위에다 뿌렸다. 그러자 상여꾼들은 일제히 삽질, 가래질을 했다. 더 이상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노인은 그렇게 갔다. 그 누구도 함께 갈 수 없는 길이었다. 생전에 잔병치레 하지 않았다. 여든넷이었다. 불과 달포 전까지도 지게를 지고,이틀에 됫병소주 한 병꼴 마시던 노인이었다. 그러다가 한 달 동안 병석에 누워 지냈다. 통증이 도지면 음독자살이라도 해야겠다던 노인. 와병(臥病)이 길어지면 자식들한테 짐이 될세라 일러주곤 했다.

        야들아, 공연히 오래 끌 것 없다. 내 죽거든 3일 만에 져다 묻고,웃으면서 내려가면 된다.”

         노인의 넷째아들은 남매들만치 울지 않았다. 왠지 슬프지 않았다. 참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다만, 섭섭할 뿐이었다. 그 신음을 떠올리며, 죽음이란 게 때로는 축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웃 사람들 말마따나 행복한 노인이었다. 슬하에 열 남매씩이나 두었다. 그 자식들은 또 씨를 퍼뜨려 쉰, 아니 백은 될 것이다. 노인의 유전형질은 대대손손 이어져 갈 것이다.

     

         생전(生前

      

         이제, 생전의 노인을 나의 후손들에게 생생하게 소개해야 한다. 열두 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나 철딱서니 없이 자라났다. 면장인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책가방을 던져버린 통에 고생길로 접어들었다. 일본의 탄광에서, 저수지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여 살림을 일구었다. 하루에 두 짐 나무를 하고, 소를 치고, 개간을 했다. 고추농사, 담배농사를 등골 빠지게 지어 자녀들을 길렀다. 올망졸망한 새끼들이 눈에 밟혀 어느 술자리에도 선뜻 끼어들 수 없었다. 성미가 불같아서, 화가 나면 밥그릇도 내팽개쳤다. 노인의 넷째아들은, 그렇게 찌그러진 놋그릇을 제기(祭器)로 쓸 거라고 엄포를 놓곤 했다. 까까머리, 5() , 넓적코, 성긴 턱수염, 작은 눈,범털이 몇 개씩 돋아난 눈썹, 무명저고리, 잠방이, 까만 고무신, 말똥담배, 됫병소주, 미역귀, 멸치젓갈, 지게 따위를 연상하면 된다.

         노인의 생활철학은 진합태산(塵合泰山: 티끌 모아 태산)’이었다.노인은 욕쟁이었다. 친자식들은 물론이고 며느리들한테까지 듣기 민망한 욕을 하였다. 자식들이 일자리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할 때는 역정을 내곤 했다.

        이 눔의 자슥, ()에 돈 다 깐대이. 돈은 하늘에서 떨어지나?”

         돈에 포부가 진 노인이었다. 정작, 쌈지에는 당시 28,630원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노인은 음식을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음식에 빗대어 꿀 빨듯 한다는 말을 즐겨 썼다. 노인은 게으름 피우는 사람을 무척 싫어했다.

          노인의 아내는 자식들에게 타이르곤 했다.

        느그 어른 오실 때 되었대이. 마당을 쓸든지 쇠죽을 쑤든지, 하여간 꿈적여야 된대이.”

          노인은 여행을 간 적 없다. 화투를 칠 줄 몰랐다. 바둑을 둘 줄 몰랐다. 여가선용 역시 일뿐이었다. 새끼를 꼬았다. 짚멍석, 삼태기, 바소쿠리, 다래끼, 짚신 등을 잘 만들었다. 국문은 쓰고 읽을 줄 알았다. 읽을 줄 아는 한자(漢字)도 제법 되었다. 자식들이 자전거 짐실이에 도시락을 달고, 관공서에 출퇴근하기를 바랐다. 인사성이 밝았다.그러기에 읍내에서 송호영감[당신의 택호(宅號)였음.]’을 모르는 이들은 그리 흔치 않았다. 노인은 바람도 피웠다. 떠나는 날까지 여섯 살 연상인 애인이 있었다. 노인의 아내는 그 일로 말년(末年)에 의부(疑夫) 증세까지 보였다. 부부의 불화가 잦았다.

         노인은 속이 좁았고 맘이 여렸다. 눈물이 많았다. 나무를 하러 갔다가 산마루에 올라 구슬픈 노래를 부른 적도 많았다고 했다.

         '이 눔의 새끼들, 조선 천지에 다 흩여 놓고... 아득한 저 산 너머 자꾸자꾸 가다보면 한 녀석이라도 만날 수 있을까?’

         나의 후손들아, 이 애비의, 이 할애비의 말까지 마저 새겨들어 주렴. 지금 나의 심정이야말로 그 노인의 그때 그 노래만치나 절절하단다. ‘아득한 저 산 너머 자꾸자꾸 가다 보면 그 노인을 만날 수 있을까?’ ”

     

         * 이 글을 저승에 가 계신 아버님께 바친다. 삼가 명복비오며... .

     

         * 작가의 말)

          사실 많은 이들은 자기 조상들에 관해 온통 미화하여 비문(碑文)에 새기는 등 하는 편이다. 적어도 나는, 수필작가인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 이 글은 2000727일에 쓴 것으로, 그 동안 원고를 잃고 지내다가 컴퓨터 프로그램 복구하면서 운 좋게도 다시 복원함.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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