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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둑 쪽 세 이랑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내가 생각해 보아도 나는 괴이한(?) 짓을 하는 이다. 내 소유의 밭 두 뙈기가 있고, 농막을 기준으로 서로 나란히 붙어있어 그야말로 문전옥답(門前沃畓)이며, 각각 480여 평, 300여 평이 된다. 그러한데 몇 해 전부터 300여 평의 밭을 떼어 넷째누님 내외한테 이른바 도지(賭地,賭只,桃枝)를 놓았다. 그러고서는 나 자신은 남이 버려둔 이 곳 저 곳의 묵정밭을 수시로 일구어 무려 3000여 평으로 농토를 늘였으니... . 심지어 벼논 400여 평과 복숭아밭 200여 평은 해마다 그 주인한테 임차료를 주면서까지 농토를 늘여 놨다.
그러자 가끔씩 누님은 내 본심을 떠 볼 요량으로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동생, 우리가 부치는 밭을 도로 돌려주면 더 이상 토지 욕심 부리지 않을 게 아닌가?”
그때마다 나는 천만의 말씀이라고 손사래를 치곤 한다. 내 경험으로, 내 지식으로 남이 묵혀 잡초와 잡목이 무성한 토지일수록 유기질이 풍부하여 화학비료를 적게 쓸 수 있으며, 병충해도 덜하다는 걸 누누이 강조한다. 남의 힘을 빌려 트랙터로 털면 될 것을. 그렇게 하는 것이 ‘이어짓기[連作]’의 피해를 줄이는 ‘돌려짓기[輪作]’의 변형임을 너무도 잘 알기에. 사실 일찍부터 광활한 농토를 지녔던 서양의 농부들은 전형적인 ‘돌려짓기’인 ‘삼포식농업(三圃式農業)’을 해 온다는 사실.
매형도 나처럼 농과대학을 나왔고, 농협에서 전무로 몇 해 전 정년을 맞았다. 누님 내외는 시골 생활을 정리하고 생질(甥姪)들과 생질녀(甥姪女)가 사는 대구로 아주 이사를 했다. 누님은 동기간(同氣間)에 정도 새롭게 낼 겸 주말농장을 하겠다며, 그 300여 평의 밭을 임대하라고 하였던 것이다. 사실 대구와 이곳 경산은 인접해 있긴 하지만, 승용차 연료비와 이 처남의 농주(農酒) 구입비 등을 감안하면, 전혀 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소일거리로는 그런 대로 괜찮을 성싶기는 하다. 실제로, 농사에 관해서만은 매형이 누님 수준에 못 미친다. 이론적으로는 이렇다 저렇다 하지만... . 물론, 관리기와 경운기와 전동 분무기 등을 두루 갖춘 나한테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고. 나아가서, 괭이며 낫이며 호미며 온갖 농기구를 시도 때도 없이 전동 그라인더에 갈아 쓰는 등의 나의 농사기술에는 아무래도 못 미치는 게 사실이다.
윗녘 내 밭에서 일을 하다가 보면, 누님이 매형한테 닦달하는 소리가 이따금씩 들리곤 한다.
“ 당신, 농사 이 따구(이 따위)로 할 거면 당장 때려치웁시다.”
마음씨 너그러운 매형은 대꾸를 좀체 않는 편이다.
대신, 나는 매형한테 큰소리로 소리치곤 한다.
“매형, ‘야메’로 막걸리 한 대포 마시고 일합시다.”
‘새참술’이되, 내가 누님 내외와 품앗이를 할 적마다 어떤 어떤 연장을 들고 와야겠다는 등 핑계를 대며 몰래몰래 농막으로 돌아와 혼자 쭈욱 마시는 술을 두 분은 언제부터인가 ‘야메 술’이라고 웃자고 말하곤 한다.
이야기가 제법 장황했다. 바로 오늘 낮 새참 때에 매형이 이 수필작가인 처남한테 아주 귀중한 말을 했다. 사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이 글을 적게 된다.
그 300여 평 밭둑에조차 아깝다고 빈틈없이 이런 저런 작물을 심기에, 내가 주운 너른 밭을 떼서 공짜로 드리겠다고 한 데 대한 답변이기도 하였다.
“처남, 농부들이 자기가 부치던 농토를 버리고 시골을 훌쩍 뜰 수 없는 이유가 있다던데, 그 이유를 아는가?”
내가 “글쎄요?” 하니까, 매형이 일러주었다.
“밭둑 쪽 세 이랑이 아까워 다들 그렇게 한다는군. ”
그제야 나는 매형의 부연설명 없이도 말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밭은 논과 달리, 대체로 경사면에 위치한다. 작물에 유용한 유기질이나 화학비료 등이 밭둑 쪽에 쏠리게 된다. 아울러, 쟁기질이나 로터리작업 등으로 토양조차 밭둑 쪽에 더 깊이 쌓이게 되는 편이다. 이래저래 그 쪽은 비옥해지고, 토심(土深)이 깊어져 작물이 무럭무럭 자랄밖에. 더 이상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다. 내가 국민학교 시절에 외웠던 ‘인류 사대문명발상지(四大文明發祥地)’를 다시 떠올려보아도 금세 알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양강(兩江) 사이(mezzo)],나일강, 인더스강, 황하강. 다들 아시다시피, 그곳들은 강 하류에 위치해 있다. 홍수가 나서 상류에서야 산사태가 나든지 말든지 작물재배에 유용한 온갖 유기물이 떠내려 와서 퇴적된 곳들이 아니더냐고?
과연 농부들이 밭둑 쪽 세 이랑이 아까워 시골을 한평생 떠나지 못한다는 말이 크게 무리는 아닌 듯하다. 그래서일까, 어린 시절 내 양친으로부터 곧잘 이런 말을 듣곤 하였다.
“임하 영감(그 어른 택호였음.), ‘게타분키는(게을러 일을 엉망으로 하는 걸 이름.)’ 한량없어. 저 밭둑 한번 봐봐. 멀쩡한 토지를 저렇게 버려두었으니... .”
사실 나도 틈만 나면 내 이웃 밭 반거들충이 농사꾼인 ‘강OO’ 선배한테 말하곤 한다.
“성님, 밭 주변이 일단 깨끗해야 합니다. 이렇게 두면 자꾸자꾸 칡덩굴이나 환삼덩굴이 기어들어 올 게 아닙니까?”
그러한 면에서 내 매형은 설령 누님한테만은 마음에 쏙 들지 않아도, 농부의 기본은 적어도 되어 있는 분임에 틀림없다. 하여간, 오늘 낮 새참시간은 아주 유익했다. 나는 그 귀중한 글감(?)을 준 것에 보답으로 매형을 편들었다.
“누님, 그까짓 거 농사가 문제에요? 그래도 매형은 자식 농사를 제대로 지었잖아요? 생질들 둘, 생질녀 하나 어디 내어 놓아도 손색없을 만치요. ”
그랬더니, 누님도 질세라 응수했다.
“이 사람아, 씨보다는 밭이 더 좋았으니까 그리 되었겠제!”
창작후기)
저는 자주자주 이런 생각을 합니다.
' 나의 둘레에는 글감으로 가득차 있어.
그 글감들은 새로운 진실과 마주치게 해.
그리고 수필은 선비가 적을 수 있는 문학장르가 결코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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