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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덕 씨앗을 갈무리하며
    수필/신작 2015. 10. 16. 02:14

     

     

        

                          더덕 씨앗을 갈무리하며

     

     

                                                  윤요셉(수필가/수필평론가)

     

          이 밤 나는 뉴 에이지 피아니스트 조지 윈스턴‘Thanksgiving(추수감사절)’을 거듭듣기로 흘려놓고 더덕 씨앗을 갈무리하고 있다. 이 더덕 씨앗은 내 밭 이웃 신호영감님 부처(夫妻)200여 평 더덕밭에서 10월 초순에 받아 말린 것으로, 족히 한 되[]는 될 듯하다. 사실 지난 봄 그분들로부터 솎아낸 1년생 어린 더덕 묘를 내리 사흘 꼬박 이 밭, 저 동산에 온통 심었건만 어인 일로 거의 실패하고 말았다. 지금 갈무리하는 더덕 씨앗은 10월 중순인 요즘 곧바로 뿌려도 되지만, 내년 봄에 온 산에 흩여 뿌릴 요량으로 종이 봉지에 곱게 넣어 매직펜으로 더덕씨앗이라고 표기해서 농막 벽에다 걸어둘 참이다. 이미 농막 벽엔 난쟁이 수수며 찰옥수수며 상추씨앗이며 대파씨앗이며 온갖 작물의 씨앗이 마치 한약방 약재들처럼 그렇게 걸려 있다.

          이처럼 더덕 씨앗을 갈무리 하자니, 식물의 씨앗 한 알이 지닌 생산성이 참으로 대단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고작 한 알의 씨앗에 불과하였으나, 그것은 뿌리를 내리고 덩굴마다 무수한 꽃을 피우고 그 꽃들은 다시 열매로 영글어 열매마다 헤아릴 수 없으리만치 종자를 간직하고 있으니! 참말로, () 같기도 하고 청사초롱 같기도 하던 더덕 꽃이 종실(種實)이 되어 이렇듯 많고 자잘한 씨앗을 간직하고 있으니 놀랍기만 하다. 이 씨앗의 분량이면 온 뒷산이 온통 더덕밭이 될 것만 같다. 이러한 과정을 거듭 거침으로써 어떤 특정한 생명체가 이 지구상에서 멸하지 않고 면면히 이어왔다.

          이 밤, ‘농부는 굶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는 말도 새삼스레 새기게 된다. 우리네 선조들은 그 많은 외침(外侵)을 겪었고, 난리통에 자신들이 지닌 곡식을 마저 빼앗기거나 잃기 싫어 안전하게 베갯속으로 삼았을 테고, 피란을 가서 새로운 곳에다 터전을 잡게 되면 그곳에서 베개를 헐어 곡식을 꺼내 씨앗으로 삼아 다시금 농사를 이어가지 않았을까? 그처럼 곡식 씨앗을 온전히 간직하였던 덕분에, 현재를 사는 우리들한테까지 세세연년 전해져 내려왔다.

           그 말 농부는 굶어도... .’는 또 다른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어린 날 내 아버지, 어머니를 통해 익히 보았던 일이다. 당신들은 곡식을 수확하게 되면, 맨 먼저 행하는 의식(儀式)이 따로 있었다. 그 곡식들 가운데서 알이 굵고 벌레 따위의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을 골라 떡과 '메(귀신이 먹는 밥을 '메'라고 한다.)'를 지어 조상들께, 천지신명께 감사제(感謝祭)를 올렸을 거라고 생각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 감사제는 차후의 행사였으며, 그 이듬해에 농사할 씨앗으로 따로 간직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참말로, 그것은 엄숙하고도 경건한 의식이었다. ‘농부는 굶어도... .’와 맥을 같이 하는 일이기도 했다. 당신들은 가령 해마다 지어오던 참깨가 소출이 영 시원찮다든지 하면 씨를 지운다하면서 더는 그 종자를 간직하지 않았다. 대신, 그 이듬해에 다시 참깨농사를 할양이면, 어느 이웃으로부터 미리 눈여겨 봐둔 참깨씨를 구해다 두곤 하였다. 농부로 돌아와 십 수년째 이런 저런 농사를 하는 나도 내 양친이 하던 대로 따른다. 미리 눈여겨 봐둔 남의 집 자두나 복숭아나 매실의 햇가지를 베다가 쪼개접 접수(椄穗)로 삼는 일도 당신들이 종자를 바꾸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농부는 종자를 간직하되, 되도록이면 우수종자를 베갯속 등으로 간직하고자 한다. 여러 해 경험상, 소출은 종자선택에서 거의 판가름 난다. 나는 위에서 난쟁이 수수와 찰옥수수도 내년을 위해 종자로 간직하고 있다고 했으나, 실은 그것들이 한낱 예비품에 불과하다. 옥수수는 자가수정(自家受精)이 아닌, 타가수정(他家受精)이 잘 되는 작물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옥수수는 잡종이 잘 되어버리는 통에 수확한 옥수수를 다시 씨앗으로 삼아서는 곤란하다는 이야기. 해서, 다소 돈이 들더라도 유명 종묘사의 옥수수 씨앗을 사다 심어야 한다. 감자는 퇴화(退化)가 심한 작물인 관계로, 자기네가 심었던 감자를 다음 해 씨감자로 삼으면 해롭다. 감자 역시 검증된 우수 종묘사의 씨감자를 사다 심는 게 옳다. 요컨대, 농부는 씨앗 값만큼은 아낄 게 못 된다는 걸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이참에 알려드린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훌륭한 농부는 종자 값만은 절대로 아껴서는 아니 된다.

          내 어머니의 추수감사제로 화제를 옮긴다. 당신은 햇곡을 수확하게 되면, 그 곡식으로 떡과 를 지었다. 지차(之次)였던 당신은 조상들께 추석명절에 따로 제()를 올릴 일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정성을 다해 떡과 메를 지었다. 그러고서는 당신이 모시던 성주(城主)’께 제를 깎듯이 올렸다. 두 손을 싹싹 비비며 감사의 기도문까지 바치곤 하였다.

          성주님, 햇곡을 거두었나이다. ~든 게 성주님의 보살핌 덕분이옵나이다. 부디 내년에도 저희 가정에 풍년을 주옵소서. ”

          이제금 생각해보니, 어머니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추수감사제를 올렸던 것 같다. 물론 우리가 추석명절 조상님들께 제를 올리는 것도 조상님들의 음덕(蔭德)을 기리는, 일종의 추수감사제성격을 띠고 있지만... .

          여태 조지 윈스턴‘Thanksgiving(추수감사절)’은 거듭거듭 흐른다.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 연주곡을 거듭 듣자니, 이번에는 미국의 ‘Thanksgiving Day(추수감사절)’이 오버랩 된다. 그들의 추수감사절은 매년 11월의 네 번째 목요일이라고 하는데, 1864년 링컨 대통령이 그날을 국경일로 지정했다고 한다. 그 유래를 살펴보니 흥미롭다. 1621년 메이플라워호에 몸을 싣고 청교도들이 도착한 곳은 메사추세츠. 그 해 이주민들은 흉년이 들어 기근에 허덕였다고 한다. 그러한 그들은 인디언들의 식량 도움으로 기근을 면했다는데, 이주민들은 보답코자 구운 칠면조 요리, 크랜베리 소스, 감자요리, 호박파이 등으로 저녁에 인디언들을 초대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그들 미국인들은 이들 네 가지 요리가 전통적인 추수감사절 요리라고 한다. ‘칠면조‘turkey’인 관계로, ‘Thanksgiving Day’‘Turkey Day’로 부르기도 한다는 거 아닌가.

          이 글을 적기 이전에 여러 자료를 살펴본 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채로운 추수감사절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날짜와 형태는 달라도 그 정신만은 같았다. 한 해의 수확과 신의 은총에 감사하며 기념하는 날임을. 이제 온전히 농부로 돌아온 나. 나는 오늘 밤 더덕 씨앗을 갈무리하면서 나름대로 맘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주님, 이토록 고귀한 씨앗을 풍성하게 맺도록 해주심에 감사드리나이다. 내년에도 내내년에도 더덕 농사가 잘 되도록 도와주소서. 주님은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아멘.’

          덧붙여, 국제적인 종자전쟁에서 더는 우리가 밀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한 점에서 나의 애독자이며 세계적 권위를 지닌, 우리 콩 연구가 정규화박사님 영육간(靈肉間)의 건강도 다시 한 번 빌어마지 않는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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