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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이 꼬이면 행복해지더라
    수필/신작 2016. 10. 23. 17:29

     

                                            일이 꼬이면 행복해지더라

     

                                                                             윤근택(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단언컨대, ‘일이 꼬이면 행복해지더라.’

       이는 내가 60여 년 살아오는 동안, 숱한 경험에 바탕을 두고 하는 말이다. 몇 가지 사례만 소개하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내 아버지는 이내 취업하지 못한 나를 구박하여 집 뛰쳐나오게 하였고, 남이 버려둔 어느 골짝의 폐농가에 은신토록 만들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쓴 처녀 수필작품 ‘댓잎편지’는 어느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 당선 후보작이 된 바 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300대 1 경쟁을 뚫고 국영기업체 공채에 합격했다. KT 영양지점 총무과장 재직 때에 노조원 관리를 잘 못하였다는 핑계로, 회사가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노사합의(안) 찬반투표 결과가 나왔다는 핑계로, 쥐도 새도 모르게 낯선 저 예천으로 보직까지 박탈당한 채 유배를 간 적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휴대전화를 연간 500여대씩이나 팔아서 수당을 무려 1,500여 만 원 벌었다. 그렇게 눈물 나게 번 돈을, 의미롭게 쓰고자 지금의 ‘만돌이 농원’ 780여 평 토지를 살 생각을 했고, 이를 실천했다. 그러한 회사 덕분으로(?) 이미 40대 중반에 그렇듯 은퇴를 준비한 셈이다. 가장 최근의 사례다. 나는 어느 아파트 경비로 근무하고 있었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라는 이가 어찌나 ‘갑질’을 해댔는지, 내가 근무한 지 불과 5개월도 아니 되어, 관리실 요원들 5인과 경비원 6인을 보태 정원 11인 가운데, 누적 인원 10인 가량이 그곳을 떠났다. 그들은 공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면서 조용히 사직서를 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그의 폭언과 막말이 용케도(?) 나한테 걸려들었다. 해서, 그를 말로 다 하기 어려우리만치 말로써 행동으로써 궁지에 몰아넣고 새벽에 그곳을 떠났다. 사직서 내용은 내가 생각해도 걸작이었다.

       ‘사직서/ 경비원 윤근택/ 위 소직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김ㅇㅇ)의 찬란한 갑질로 말미암아 사직코자 합니다./ 2016.10.15./ 위 본인 윤근택 (사인)’

       그리고는 성질 돋치어(?) 새벽밥을 먹고 이력서를 써 들고 지금의 아파트로 달려왔다. “오늘부터 바로 근무 가능합니다.” 하는 등 적극적인 면접 자세를 보임으로써 합격했다. 이번에는 경비가 아닌 전기실 전기주임이다. 사실 이곳은 자격증이나 면허증 없이도 근무 가능한 곳임을 사전에 알았기에, 이력서에다 ‘25여 년 KT 전력실 등 부서에서 근무함.’으로 적었던 것이다. 사실은... . 나아가서, 맞교대자인 ‘전기과장’한테 성실히 배우겠노라고 했기에 높은 점수(?) 받았다. 하여간, 월 급여는 오히려 10만 원 정도 더 올라갔으며, 지하 별실이라 PC를 24시간 비교적 맘대로 쓸 수 있고... . 수필작가인 나한테 이만한 조건은 없다. 나한테는 ‘일이 꼬여 행복해진’ 사례가 이밖에도 꽤나 많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키로 한다.

       이른 아침, 출근에 앞서 문방구에 들렀다. '찾음표[견출지]'와 ‘포스트잇(Post-it)'을 사기 위함이었다. 전원 스위치 등에다 찾음표를 붙이고, 주요한 장부 따위에다 ’포스트 잇‘을 붙여야겠다고 여기며. 나는 그문방구 여성 사장한테 말했다.

       “ 이 ‘포스트잇’ 대단히 훌륭한 발명품 같지 않아요?”

       그랬더니, 그분은 ‘포스트잇’의 발명에 관한 에피소드를 좔좔 꿰고 있었다. 어느 외국의 회사가 점착제(粘着劑)를 개발하다가 일이 꼬여 얻은 결과물이라지 않은가. 왜 진작 나는 그걸 몰랐던고?

       직장의 지하 전기실 나의 사무실에 도착한 나. 나는 곧바로 ‘포스트잇’의 탄생에 관한 사항을, 세상에서 모르는 게 거의 없는 ‘네이버 박사(?)’와 ‘다음 박사(?)’한테 졸라서 물어보게 되었다. 지금부터의 글은 ‘꼴라주(collage)’다. 즉, 네이버에 게재된 내용을 떼다 붙이겠다는 뜻이다.

     

      < 3M의 공식 사명은 미네소타광산제조회사(Minnesota Mining and Manufacturing Company)이다.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으로 의료용품, 전자·전기·통신 관련제품, 사무용품, 자동차·조선 부문 제품, 보안제품 등 6만 5,000여 가지 제품을 생산한다. 전 세계 약 65 개국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이 회사의 제품은 전 세계 200여 개 나라에서 판매된다.

       3M은 1902년 미네소타 주 투 하버스에 설립한 광산회사에서 출발했다. 처음에는 연마재 휠 제조용 미네랄을 채광하기 위해 설립되었는데, 광물질이 품질 기준에 적합하지 않았다. 1905년 미네소타 주 덜루스로 이전해 사포(sandpaper) 사업에 집중했다.

       3M에서 생산하는 ‘스카치테이프’는 플라스틱 테이프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즉, ‘스카치테이프’는 그 회사 제품명임을 알겠다.(나의 생각.)

       AP통신이 선정한 ‘20세기 10대 히트 상품’에 포함된 포스트잇(Post It). 3M의 연구원인 스펜서 실버의 실수에서 비롯되었다. 1970년 스펜서 실버는 강력접착제를 개발하려다 원료를 잘못 배합해 쉽게 떨어지는 접착제를 개발했다. 이 물질은 한동안 외면 받다가 직장동료인 아트 프라이에 의해 1981년 메모지에 떨어지는 접착제가 접목된 포스트잇으로 개발되었다. 포스트잇은 사무용품의 베스트셀러 스카치테이프의 판매량을 뛰어넘으며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국내에선 1977년 9월 두산그룹과 미국 3M의 합작으로 ‘한국 3M’이 설립되었다. 1996년 11월 미국 3M이 합작회사의 지분을 전부 인수했다. 서울에 본사가 있으며 부산에 지점을 두고 있다. 경기도 동탄에 기술연구소가 있으며, 평택과 양산에 유통센터, 나주와 화성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

     

       요컨대, 포스트잇은 ‘일이 꼬여’ 스펜서 실버와 그의 동료 아트 프라이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 나아가서, 그 회사와 온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 야간 퇴근시 FM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을 듣다가 알게 된 또 다른 에피소드. 13세 양치기 소년 조셉(요셉)이 철조망을 고안해서 떼부자가 된 스토리를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이참에 아니 전해드릴 수가 없다. 위와 마찬가지로, ‘네이버’에 소개된 내용을 ‘꼴라주’ 함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 전 세계의 수많은 발명품 중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진 가시철조망.

       미국에서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목동이 된 13세 소년 조셉은 게으름쟁이였고, 잠꾸러기였다. 어느 날 목장 주인으로부터 심한 꾸중을 들었다. 잠깐 낮잠을 동안 몇몇 양들이 울타리를 넘어가 이웃 농장에서 재배하는 농작물을 망쳐 놓았던 것이다. 그 후로 조셉은 어떻게 하면 양들을 도망칠 수 없게 할까 고민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장미넝쿨이 많이 우거져 있는 울타리로는 양들이 넘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조셉은 직접 실험에 나섰다. 장미넝쿨을 조금씩 잘라서 양들이 잘 넘어가는 울타리에 붙여 놓은 것. 그러자 한동안 양들은 그쪽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후 양들은 장미넝쿨을 뿔로 비벼서 떨어뜨린 후 다시 넘나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던 조셉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가시넝쿨처럼 가시가 박힌 울타리를 만들면 양들이 절대 넘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는 즉시 대장간을 하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커피원두를 가는 데 사용하던 날카로운 금속 조각들을 철사를 이용해 매단 가시철조망이었다.

      조셉 부자는 목장 주인의 도움을 받아 1874년 11월 24일 특허를 취득했으며, 이 발명품은 ‘더 위너(The Winner)’라는 상품명으로 탄생했다. ‘더 위너’가 일반인들에게 처음 선보인 곳은 텍사스 주의 샌 안토니오에서였다. 광장에 자신들의 발명품인 가시철조망을 치고 소떼들을 몰아넣은 후 소떼들이 철조망을 뚫고 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직접 시연해 보인 것이다.

      시연회는 대성공이었다. 소떼들은 한 마리도 철조망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으며, 시연회에 참가한 근처의 목장주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공기보다 가볍고 위스키보다 세고 먼지보다 값싸다’라는 광고 문구를 붙인 가시철조망은 그 후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갔다.

      그 무렵 조셉 부자는 미국 최고의 갑부 자리에 올랐다. 특허권이 완료될 때까지 조셉 부자가 벌어들인 돈은 미국의 공인회계사 10여 명이 1년 동안 계산해도 끝내지 못했을 만큼 거액이었다고 한다.>

      너무도 감동적인 이야기. 이 사례 또한 ‘일이 꼬여(조셉이 농장주로부터 야단맞아)’ ‘행복해진’ 게 분명하다.

     

        아직은 좀 더 겪어보아야겠지만, 내가 예측컨대, 말이 일터이지 놀이터 내지 쉼터인 이 아파트의 전기실. 사실 웬만한 전기시설은 자동제어된다. 게다가, 수전시설 등 덩치 큰 시설은 ‘안전관리 용역업체’에 위탁관리하고 있어, 이상 발생시 전화 한 통화면 이내 달려올 것이다. 대신, 나는 어제 문방구에서 사온 포스트잇과 찾음표를 적정한 자리에 붙여댈 것이다. 나아가서, 매일매일 기계작동요령 등을 꼬박꼬박 익혀 공책에 적어 나갈 것이다. 그렇게 모아가는 메모가 정리되면, 매뉴얼이 될 테고. 혹여 또 내가 사정이 생겨 이곳을 뜨더라도, 초등학교 일학년짜리 후임자라도 내가 정리하게 될 매뉴얼 대로 조치하면 될 수 있도록.

       다시 말하거니와, 60여 년 동안 내 경험과 체험에 비추어 볼 때에, ‘일이 꼬이면 행복해지더라.’ 가 결론이다. 굳이 사족을 붙이자면, ‘남이 나더러 엿 먹으라(낭패당하라) 할 적에 나는 그것이 언제고 꿀이었다’는 것을.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저하지 말고 다소 무모하더라도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거듭거듭 새로운 변화를 꾀해볼 만하다는 것을. 그러한 점에서 색다른 체험이 바탕 된 나의 수필세계도 예외는 아니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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