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우비에 관한 토막추억
    수필/신작 2014. 4. 15. 08:45

    우비(雨備)에 관한 토막추억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지난 밤부터 봄비가 제법 많이 내리고 있다. 이른 새벽, 승용차를 몰아 출근을 하다가 보니까, 밭 가운데 세워둔 관리기가 날로 비를 맞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 곁으로 가서, 비바람에 벗겨진 가빠(capa)를 도로 씌워주고 싶었으나, 복장이 복장인지라 에라 모르겠다 하며 그냥 지나쳐 왔다. 종일 비는 그치지 않고, 사무실에 앉아 있으려니 마음이 영 개운치가 않다. 말 못하는 기계이더라도 그렇지, 농부인 내가 애지중지해야 할 존재가 아닌가.

    문득, 우비에 관해 이런저런 추억도 되살아날 게 뭐람? 우비는, 우산·비옷· 삿갓·도롱이 등 비를 가리기 위하여 사용하는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그 가운데 우산 <<월간 에세이>>1989 3월호에서 초회추천을 받은 나의 수필 제목이기도 하다. 궁색한 내 어머니가 조반도 거른 채 올망졸망한 당신의 아이들이 등굣길에서 비를 날로 맞을세라, 살 부러지고 지붕 벗겨진 비닐우산을 꿰매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하여간, 그 작품, 우산으로 나는 수필계에 입문하게 되었으니, 우비로서도 우산은 나한테 특별한 의미임에 틀림없다. 삿갓과 도롱이에 대한 추억은, 내 아버지와 이웃 노인 운호영감(그분 택호였다.)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신들은 비 오는 날이면 삿갓을 쓰고 도롱이를 몸에 두르고 들일을 했다. 삿갓이란, 대나무로 살을 붙인 대형의 대나무우산으로서, 머리에 삿갓처럼 썼던 걸로 생각하면 되는 우비다. , 대나무우산이되, 손잡이 대신 모자가 부착된 것으로 여기면 된다. 요즘은 흔해빠졌지만, 당시는 비닐계 수지가 나오기 전이라 창호지를 댓살에 붙이고, 거기다가 빗물이 스며들지 말라고 들기름 등을 여러 차례 발랐다. 손잡이가 달리고 그보다 적은 우산을 지우산(紙雨傘)이라고 불렀다. 도롱이란, 짚으로 비늘지어 마치 이엉을 엮듯 한 우비였다. 당신들은 그걸 요즘 우리가 비닐비옷을 입듯 두르고서 일을 했다. 어느새 나도 이렇듯 옛 상품(?) 설명까지 보태야 할 정도이니, 이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 아닌가. 실로, 우리네 조상들은 그처럼 우비마저도 부실하기 짝이 없는 시절을 살다가 갔다. ()를 거슬러 올라가면 더욱 불쌍한 삶을 살았을 테고.

    그러한데 농촌혁명과 녹색혁명뿐만 아니라 제2의 산업혁명을 주도할 이가 혜성같이 나타났다. 그는 그 누구도 아닌 비닐계 합성수지였다. 그러자 세상이 온통 개벽했다. 비닐계 합성수지는 비닐하우스야 우비야 천막이야 봉지야 그 모든 것을 단박에 해결했다. 덕분에 우비의 용어도 다채로워지고 있었다. 가빠(포르투갈어에서 옴.)·호로(일본어에서 옴.)·천막·방수천·치알[차일(遮日)의 사투리]·폴리에틸렌 타포린·포장·덮개·레인코트 등등. 사실 요즘은 방수재료가 지천(至賤)이다. 흔하면 귀한 줄을 모른다고 하였다. 그래서 오늘 아침 나처럼 게으름 피워서 그 소중한 농기계도 비를 쫄딱 맞도록 했을 따름이다. 내가 농부로서 지내면서 가장 익숙한 우비는 역시 가빠다. 비교적 싼 값인데다가 척척 접고 쫙쫙 펴는 데만 익숙하면 못 덮을 게 없다. 웬만한 농산물과 어지간한 농기계도 가빠 한 장이면 깔끔하게 덮을 수가 있다. 그리고 요새는 애써 짚멍석을 엮을 일도 없다. 실제로는 짚멍석을 엮을 줄 아는 이도 거의 다 사라졌다. 짚멍석을 제대로 엮을 줄 알면 이른바, 인간문화재로 지정될 호시절을 우리는 누리고 있다.

        나한테는 우비와 관련해서 재미나는 추억이 하나 더 있다. 지난 해였다. 실직급여를 받으려고 고용센터에 갔더니, 재취업 희망직종을 적어내라고 하였다. 아파트 경비원이라고 적어 제출했더니, 얼마 아니 있어 어느 공장이라면서 경비원 자리가 비웠다고 전화연락이 왔다. 고맙게시리,고용센터에서 알선해주었던 모양이다. 갔다. 곧바로 취업을 하여 첫날밤 경비를 서게 되었다. 그곳이 폴리에틸렌 타포린 천막을 만드는 회사였다. , 천에다 폴리에틸렌 타포린이란 합성수지를 코팅하여 방수천으로 만드는 회사였다. 하룻밤 사이에 미로를 헤매며 6회 순찰을 해야 되는데다가, 공장 내외의 그 많은 장비 등의 전원을 켜고 닫아야 하는 게 임무였다. 가루로 된 화학품을 고온으로 녹여 대형 롤러로 천을 뽑아내는 공정. 선임자와 O.J.T. 차원에서 동행순찰하다가 기겁을 하고 말았다. 그곳에는 외국인 근로자가 방진 마스크를 끼고 독한 내음과 그 뜨거운 열기를 견디며 용광로 앞에 앉아 있었다. 위험등급이 해골표가 그려진 드럼통도 눈에 띄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냐고?  돈도 싫다. 살려만 다오. 하며 달아났다. 첫출근하던 날 곧바로 퇴사했다. 왜 장황스레 이 이야기를 하냐 하면, 그 열악한 환경에서 외화벌이를 하던, 눈이 새까만 그 젊은이도 가여웠지만, 그러한 공정을 거친 우비를 너무 허술히 여겨온 나 자신을 반성하고자 함이다. 얼마나 고마운 분들이며 얼마나 고마운 물건들이냐고!

        우비가 허술하기 그지 없던 시절의 궁색한 이야기는 국민학교 국어교과서나 도덕책에도 여지없이 등장하곤 하였다. 이야기는 늘 이러했다.

     어느 가난한 집이었어요. 비가 내리자, 천정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어요. 아버지는 병들어 누워 계셨어요. 아이들은 세숫대야며 양재기며 요강이며 온갖 걸 갖다 놓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하략)

     사실 요즘은 부인들이나 아이들조차도 지붕을 고치는 방법을 죄다 알고 지낸다. 아빠,우레탄 쏴야겠어요. 또는 여보,방수액을 발라야겠어. 하면서. 얼마나 좋은 세상이냐?  마음만 먹으면 못 얻을 게 없는, 참으로 좋은 세상 아닌가. 다만, 우리네가 그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말고, 좋은 것은 더욱 좋게 나쁜 것은 바르게 고쳐 나아갈 일만 남았을 따름이다. 오늘 나는 몇 토막의 추억을 더듬으면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명구(名句)를 되새긴다. 그리고 내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한데에 방치해둔 관리기를 닦고 가빠를 비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씌워야겠다고 벼르면서 두서 없는 글 접기로 한다.

     

    '수필 > 신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길에 관해  (0) 2014.04.15
    꿈쟁이 요셉에 관해  (0) 2014.04.15
    파밭에서  (0) 2014.04.15
    고르디우스의 매듭  (0) 2014.04.15
    참 좋은 분  (0) 2014.04.15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