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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배[船]
윤근택(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1957년에 태어난, 이른바 전후세대인 나. 사실 무슨 어려움이든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다. 청년기에 군대생활 36개월을 하며 전쟁연습(?)은 했어도, 전쟁의 비참함은 참말로 모르고 지낸다. 그러한데 일전,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방문을 하여 첫 방문지가 ‘장진호(長津湖) 전투 기념관’이었고, 거기서 이런 내용도 포함된 명연설을 하게 된다.
“장진호 전투로 이어진 흥남부두 철수. 그 흥남철수가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은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무식쟁이 수필가는, 아니 이 게을러터진 수필가는 그제야 온갖 자료를 뒤져,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가 흥남부두에서, ‘기적의 배’로 일컬어지는 ‘매러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화물선에 피난의 몸을 싣고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했고, 3년 후 아이를 낳아 ‘재인’이라고 이름지었다는 것을.
이제 내 이야기의 실마리는 잡은 셈이다. 인터넷 ‘전쟁기념관’이란 블로그의 블로거는 비교적 간략하게 적고 있었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 따라오기 쉽도록 그때 영웅들을 중심으로 적어나가겠다.
1. ‘한국의 쉰들러’ 현봉학 박사(1922~2007)
그는 당시 민사부 고문이자 지휘관 ‘알몬드 장군’의 통역관으로 지냈다. 28세에 불과했던 그는, 지휘부를 거듭거듭 설득한다.
“이대로 저 사람들을 두고 가면 모두 몰살당합니다.”
그가 눈물로 호소하자, 알몬드 소장은 큰 인심 쓰는 척 말을 한다.
“ 병력과 장비를 싣고 남는 자리가 있으면 피난민을 태우시오.”
그리고 알몬드 소장은 ‘레오나드 라우(Leonard P. Larue)’매러더스 선장에게 묻는다.
“피난민을 태울 수 있겠소?”
사실 이미 300톤가량의 화물을 싣고 있었고, 정원 60명에 승선중인 선원이 47이었기에, 추가 탑승 가능 인원은 13명밖에 되지 않았던 화물선이다.
레오나드 라루 선장은 대답한다.
“배에 실린 화물을 모두 버리고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빠짐없이 태우시오.”
그렇게 해서 태운 피난민이 14,000여 명. 탑승완료까지 걸린 시간이 무려 16시간. 흥남항을 출발하여 동해를 거쳐 거제항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사흘. 어떤 이들은 그해 크리스마스에 출항했던 관계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도 부른다.
2. 레오나드 라루 선장
그는 후일 1954년 미국 뉴저지주의 가톨릭의 성 베네딕도회 마리너스 수사로 일생을 봉헌하고 2001년 선종을 했는데, 그는 당시의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저는 때때로 그 항해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었는지,그리고 어떻게 한 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들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 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서 하느님의 손길이 제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가 저에게 옵니다.”
3.매러더스 빅토리호
화물 전용이던 메러디스호. 1950년 12월 23일 흥남부두에서 무기와 화물을 버리고 14,000여 명 피란민을 태웠다. 물, 음식, 화장실, 의사, 통역관도 없는 배는 혹독한 동해바다의 겨울 추위를 서로의 체온으로 녹이며 3일 만에 거제에 도착. 신기하게도 그 3일 동안 배 안에서는 5명의 새 생명도 태어났다고 한다.
2004년 기네스북에는 이렇게 올라갔다.
‘인류 역사상 한 척의 배로 가장 많은 인명을 구조한 선박.’
4. 알렉산더 헤이그의 증언
당시 미 육군 10군단 사령관의 부관이었던 그. 그는 매러더스 빅토리호를 다룬 책 < 기적의 배>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는 거 아닌가.
“10만 명에 가까운 피난민을 (여러 선박을 이용해)승선시키느라 동분서주하는 상황 속에서 어느 누구도 피난민들의 국적이나 정치상황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죄 없는 희생자들일뿐이었으며 구출해야 할 생명들이었을뿐입니다. 피난민을 탈출시키기로 한 결정은, 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인간 생명의 문제였습니다.”
5. 본인의 생각 얹음
사실 위와 같이 적고 보니, 정작 내가 더 보탤 말도 없어져버렸다. 특히, 위 4에서 소개한 헤이그의 증언에, 인류 보편적인 희망 등이 다 담겨 있다. 그러함에도 동서고금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는 게 참말로 슬프다. 100년도 채 못 사는 삶임에도 불구하고, 과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세상 다 가질 듯 전쟁을 일으키는 이들이 있어왔다는 거. 그들이야말로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생명체들일 거라는... .
한 걸음 더 나아가서, 19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의 가족사(家族史)가 한 편의 드라마 같음도 놓칠 수가 없다. 피난민의 2세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반공주의자이며 평화주의자임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함에도 막상 선거철이 시작되자, 경쟁자들은 온갖 험담을 마다지 않았다. 특히, 내가 사는 이곳 대구·경북의 유권자들 가운데 수많은 노인네들은 그를 빨갱이라고 함부로 말하곤 했다. 참으로 그분들은 ‘정치적 미숙아’들이었다. 박정희 시절부터 오랜 세월동안 세뇌되었음이 분명하다. 내 마음 같아서는, 새로운 정부는 대구·경북 출신자들한테는 장관 자리 하나도, 아니 말단 임명직 하나도 내어주지 않았으면 좋겠더라만... .
나는 오늘 인터넷을 통해 위와 같은 ‘기적의 배’ 약사(略史)를 읽었다. 이제 이 글을 아래와 같이 맺어야겠다.
어찌 되었든 이 지구상에 전쟁은 없어져야 한다. 이는 비원(悲願)이다. 우리들 천주교인들은 ‘미사’가 끝날 무렵, 전례(典禮)에 따라 서로서로 ‘평화를 빕니다.’ 하게 된다. 인류 모두를 위해 기도해야겠다.
“샬롬(shalom;평화를 빕니다)! ”
*참고사항) 흥남항의 당시 상황
(이하는 어느 분의 블로그에서 그대로 옮겨옴. 당사자한테 양해를 구한다.)
흥남철수 당시 흥남항은 대부분의 유엔군이 이미 철수했고, 도시는 포화에 의해 화염에 싸여 있었고, 다가오는 중공군의 대포 사격과 공습의 위험으로 탈출이 매시간 위태로워지고 있었다.
1950년 11월 미 해병 1사단이 주축이던 UN 연합군은 함경남도 개마고원 의 장진호에서 북한의 임시수도였던 강계를 점령하려다 중공군에게 포위되었다. 전멸 위기까지 겪었던 이 전투는 미국 전쟁 사상 가장 고전한 전투로 기록될 정도로 많은 희생자를 냈다. 당시 18000여 명의 연합군이 12만 명의 중공군에게 포위되면서 7000여 명이 사망하고 1만여 명이 부상했다. 당시 중공군에서도 4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950년 12월의 어느 날 함경도 흥남항에 주둔 중이던 미군 제10군 단장 에드워드 아몬드 장군은 인간적 고뇌에 빠졌다. 10만 명에 달하는 함경도 피란민들이 흥남부두에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혹한을 견디며 연합군을 따라 100여㎞를 걸어온 주민들이었다. 연합군도 그해 10월 남하한 중국 공산군에 밀려 함경도 장진호에서 도보로 후퇴해 흥남항에서 철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항구 주변에는 190여 척의 전함과 수송선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병력과 물자를 싣기에 빠듯했다. 군인들만 탈출시키기도 힘겨웠던 당시에 피란민 구출은 기적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고심 중인 아몬드 장군에게 2명의 간부가 찾아온다. 현봉학 민사부 고문과 그의 협조 요청에 동참한 에드워드 포니 참모부장이었다. 피란민들을 구출해야 한다는 거듭된 두 사람의 설득에 아몬드 장군은 군수물자 등을 대거 포기하고 대신 피란민을 싣기로 결정을 내린다. 그달 중순부터 약 2주간에 걸쳐 기적적인 민간인 구출작전이 단행됐다. 인류 전쟁사에 전무후무한 규모였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 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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