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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임표’에 관해
윤근택(수필가)
옛말 하나 그른 게 없고, 어른들 말씀 하나 그른 게 없다.
“개 눈에는 X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 내가 승용차를 몰아, 도로를 달릴 적마다 눈앞에 보이는 흰 점선(點線)이, 자주자주 문장부호 가운데 줄임표 내지 말줄임표로 보임을 말하는 것이다. 누가 나더러 작가가 아니라할까 봐서? 참말로, 그 점선들은 줄임표처럼 여겨지곤 한다. 문장부호상 줄임표에 관한 이야기는 잠시 미루어 두고... .
도로의 차선은 크게 실선(實線)과 점선으로 나눠지는데, 실선은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추월금지를 나타낸다. 점선은 통행방법에 맞는다면, 그 선을 넘어도 됨을 뜻한다. 그리고 진행방향에 따라 시야가 확보된 구간에는 실선 옆에다 점선을 추가해서 표시해두게 되는데, 점선이 표시된 쪽에서만 추월이 가능하다. 예외적으로, 교각(橋脚) 위나 터널 속에는 실선뿐이다. 그곳은 교통사고시 인명구조가 어려운 곳이라서 추월 절대금지 구간으로 설정한 듯하다. 이밖에도 실선의 색깔이니 개수니 꽤나 복잡한 게 사실이다. 아무튼, 나는 승용차를 몰아 전진할 적에 그 흰색 점선의 단속(斷續)에 무척 매력을 느끼곤 한다. 끊어진 듯도 하고 이어진 듯도 하여 운행의 지루함도 누그러짐을 느끼곤 한다.
수필작가인 나는, 그 많은 바느질 가운데에서도 ‘홈질(호기)’을 볼 적에도 문장부호상 줄임표를 연상하곤 한다. 사실 바느질은 이 ‘홈질’ 외에도 박음질·감침질·상침질·시침질·새발뜨기·공그리기·휘갑치기 등이 있지만... . 무슨 영문인지 요즘은 ‘홈질’이 하나의 패션인양 양복저고리 깃 등에 자주 사용되는 것도 사실이다. 실밥이 그대로 드러난 걸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도 자주 보았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마다 성가책 악보를 들여다보게 되는데, 그 악보에서도 줄임표를 종종 보게 된다. 도돌이표니 D.C.(Da capo)니 D.S.(Dal segno)니 하는 용어들. 그것들은 연주법 따위를 간단히 줄여 나타내는 기호 또는 준말이라고 한다. 길게 말을 늘려 적는 번거로움을 없애주는 기호임에 틀림없다.
이제 미뤄뒀던 문장부호상 줄임표에 관해 이야기해 보아야겠다. 작가인 나는, 최근 들어 글을 적으면서 이 줄임표를 꽤나 자주 쓰게 된다. 특히, 문장과 문장이 연결되는 자리에다 자주 쓰게 된다. 그 한 예다.
‘드보르작은 51세가 되던 해에 미국 음악학교의 교장으로 초빙되어, 자기 조국 보헤미아(체코)를 떠나 2년여 체류하게 되는데요... . 그는 그곳에서 노스탤지어가 묻어나는 ‘현악 4중주곡 아메리카’를 적었지요. 사실 이따가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위 ‘되는데요... . 그는’는 잘못된 표기이다. 아래 ③을 근거로 삼으면, ‘되는데요, ... 그는’이 옳을 듯하다.
사실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게 글쓰기이다. 나는 수필가들과 수필가 지망생들에게 <문장수련(문장이론)>을 인터넷상으로 지도하면서 자주자주 말하곤 하였다.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기초적인 게 가장 전문적인 것이다. 문장부호의 올바른 사항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나도 막상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2015.1.1. 바뀐 규정까지 포함해서 줄임표에 관해 함께 짚고 넘어가기로 하자.
‘ 줄임표 내지 말줄임표는 할 말을 줄이거나 말이 없음을 때에 또는 문장이나 글의 일부를 생략할 때에 ‘ …… ’로 쓴다. 즉 6개의 중간점(워드프로세서의 용어임.)이 원칙이다.
① 할 말을 줄였을 때에 쓴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 단, 줄임표는 앞말에 붙여 쓴다.
위의 경우,‘할지 …….’여서는 아니 된다는 뜻이다.
② 말이 없음을 나타낼 때 쓴다.
“네가 정말 그랬어?”
“…….”
③ 문장이나 글의 일부를 생략할 때 쓴다.
백구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하얀 털을 가진 진돗개이다. …… 주인에게는 온순하지만 위급한 일이 있을 때에는 용맹하게 변한다.
* 단, 문장이나 글의 일부를 생략할 때에는 줄임표의 앞뒤를 띄어 써야 한다.
위의 경우, ‘진돗개이다.……주인에게는’여서는 아니 된다는 뜻이다.
위 사항이 원칙이었으나, 2015.1.1.부터 약간 융통성 있게 규정이 바뀌게 되었으니... .
컴퓨터나 휴대 전화 등에서 줄임표를 입력할 때 가운데에 여섯 점을 찍는 게 불편함에 기초하여 규정을 완화한 것이다. 어떻게? 가운데 여섯 점뿐만 아니라 가운데 세 점, 아래 여섯 점, 아래 세 점을 찍어도 된다. 다만, 주의할 점은 아래에 찍더라도 마침표를 생략하면 안 된다.
“약속을 지키지 않고…….” /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줄임표는 3개 또는 6개이되, 따로 마침표가 있어 4개 또는 7개가 됨을 알 수 있다.
“약속을 지키지 않고.......” (마침표까지 총 7개의 점을 찍는다.)
“약속을 지키지 않고....” (마침표까지 총 4개의 점을 찍는다.)
외우기가 쉽다. 어떤 점을 찍든 마침표를 포함해서 4개, 혹은 7개를 찍어야 한다.
줄임표의 매력은, 이미 위 ①,②,③에 다 적혀있다. 문장가는, 훌륭한 문장가는 일찍이 ‘윌리엄 와트’ 가 주장했던 ‘좋은 글 12개 척도’가운데 하나인 ‘경제성’도 추구하는 사람이다. 필요한 자리에서 필요한 만큼의 말만 쓰는 것이 글의 경제성이다. 적절하게 쓰인 줄임표야말로 문장의 경제성에 이바지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나아가서, 잘 쓰인 줄임표는 ‘문장의 생략과 압축’에도 도움을 주어, 여운(餘韻)까지 준다는 것을. 그러한 점에서 만국공통어인 문장부호들 가운데 줄임표는 꽤나 매력적인 문장부호인 거 같다.
나는 내일 아침에도 줄임표처럼 포도(鋪道)에 찍힌 흰 점선의 가드(guard)를 받으며, 40여 분 승용차를 몰아, 퇴근할 텐데... . 그 점선들이 함부로 찍은 줄임표가 아님을 되생각할 것이다. 실선과는 달리, 그 줄임표는 운전자들 눈의 피로를 덜어주고, 지루함을 달래주는, 아주 특별한 단속(斷續)이며 ‘가드’임을 새삼 깨닫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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