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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우리말 가운데에는 같은 어휘임에도 상대방을 높여 이르는 말, 상대방에 대하여 자기를 겸손되이 이르는 말로, 두 가지 뜻을 동시에 지닌 게 있다. 그게 바로 ‘말씀’이다. 그 쓰임의 예는 이러하다.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럴듯하네요.’,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 아이들은 모두 손뼉을 쳤다.’,‘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네 성당에 가면, ‘하느님(개신교 쪽에서는 ‘하나님’이라고 한다.)이 자신의 뜻을 인간에게 알리기 위하여 쓴 수단.’을 일컫고 ‘로고스(logos)’로 번역된다.
이 ‘말씀’의 어원은 ‘말 <용비어천가 39장>’이다.
곱씹고 되씹으면, 한결 맛이 나는 ‘말씀’이란 어휘. ‘말을 쓰다(사용하다)’에서 줄여든 말인 듯도 하다. 또, ‘말솜씨’에서 줄어든 말 같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말’은 ‘말다’ 즉 ‘계속하지 않고 그만 두다( don't, not, but, no ).’와도 그 뜻이 통하는 듯하다. 흔히 하는 말로, 말을 많이 하다가 보면, 실속이 없어지거나 실수를 하게 된다고 하였으니... .
환갑 나이에 이르기까지 내가 입은 설화(舌禍) 가 적지 않았다. 나 자신은 악의(惡意)를 전혀 품지 않고 한 말이건만, 상대는 왜곡해 듣거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인 예가 더러 있었다. 남을 탓할 일이 전혀 아니다. 우리네 가톨릭신자들은 미사 때에 전례(典禮)에 따라, ‘고백기도’를 드리고 있지 아니한가.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아멘.>
남이 찰떡같이 이야기하여도 쑥떡이나 개떡같이 받아들이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남이 쑥떡이나 개떡같이 이야기하여도 찰떡같이 받아들이는 이가 있다. 후자(後者)야말로 그릇이 크고 발전적인 사람이다.
오늘 새벽 어느 연세 지긋한 직장 동료(?)가 평소와 달리, 아주 사세한 일로, 나의 자존심을 ‘팍팍’ 긁어놓은 일이 있었다.
“윤 주임, 어디에 가더라도 ... 전기주임으로 가더라도, 기술이 있느니 마느니 소리 아니 들으려면... .”
6개동으로 지어진 이 아파트. 이른 새벽, 노후화한 각동의 엘리베이터 가운데 한 대가 5층의 문이 열리지를 않는다기에 내가 그리로 얼른 쫓아갔다. 응급조치를 하되, ‘고장 수리 중. 불편하시더라도 4층 또는 6층에서 타세요.’라고 A4용지에다 매직펜으로 적어 붙여두었다. 아파트 구조상 5층에는 좌측, 우측 두 세대만 산다. 사실 엘리베이터 수리기사들도 24시간 비상대기 근무를 한다늘 걸 잘 알지만, 이 혹한에, 그것도 경미한 일로, 새벽에 부르기가 뭣했다. 과부 심정을 홀애비가 안다고, 24시간 맞교대를 하는 나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차원에서, 날이 밝으면 A/S 요청할 거라고 벼르고 있었거늘. 그 ‘경비원 영감탱이(?)’가 퇴직을 이틀 앞둔 나더러, 나의 강제퇴출(?)과 결부시켜 그렇듯 자극적인 언사(言事)를 행했으니... . 넘어진 놈을 또 어떤 이가 밟는 처사나, 물에 빠진 놈을 더 깊이 밀어 넣는 염량세태(炎凉世態)여!
나야말로 이날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초지일관(初志一貫)’인지 ‘조오지 1관(一貫)’인지를 실천하여 왔거늘, 마치 다시는 보지 않을 듯 그런 말투였다는 거 아닌가. 그 동안 1년여 알게 모르게, 전직(前職)이 ‘아파트 경비원’이었던 내가 그분들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업무협조를 해드린 게 얼마나 많은데... . 순간, 울컥해지기도 했고, 본전 생각도 났으나 꾸역꾸역 참기를 잘 했다.
말은 ‘씨[種;seed]’를 지녔기에, 즉 ‘말씨’이기에, 뿌린 만큼 거두게 되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걸 너무도 잘 아는 나. 돌이켜보니, 남의 밑에서 4반세기 직장생활을 하고도, 또 다시 아파트 경비원 등으로 여러 해 지내는 내가 신기하다. 집집이 하나의 입이라 하더라도, 이 아파트의 경우는 727개의 입인데, ‘365일 X 1/2= (격일제 근무였으니)’견뎌왔다는 게 거의 기적에 가깝다.
하더라도, 나는 또 다시 어느 아파트 경비원으로 재취업할 것이다. 거기 가서 또 인간 군상(群像)이 ‘본 데 없이’ 지껄여 대는 말씀을, 말씨를 들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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