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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수의 법칙( 큰 數의 법칙)’
윤근택(수필작가/ 문장치료사/ 수필평론가)
수학에서는‘큰 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이란 게 있다. 이는 대수의 법칙, 라 플라스의 정리(Laplace’s theorem) 등으로도 일컬어지며, 큰 모집단에서 무작위로 뽑은 표본의 평균이 전체 모집단의 평균과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는 통계와 확률 분야의 기본 개념이다.
우리가 자주 쓰는 어휘 가운데에도 이와 같은 비슷한 개념을 지닌 것들이 있다. 무릇’·‘대체(大體)로'.‘대저(大抵)·‘대
개(大槪)’·‘보통’·‘보편적으로’ 등.
육십 여년 살아와본즉, 경험보다 훌륭한 스승은 없더라. 시행착오보다 훌륭한 길잡이도 없더라. 경험과 시행착오로 얻은 것들을, 위에 소개한 어휘들을 두루 앞세워 말할 수 있겠다. ‘거듭거듭 해본즉, 대체로 아래 내용과 같더라.’식으로.
내가 이곳 산마을에 들어온 지 15년여. 나는 곧바로, 밭 이웃 농부들로부터 나무접붙이기[椄木] 기술을 배웠다. 지난날 명색이 임학도(林學徒)였으나, 이론적으로 혹은 학술적으로만 익혔던 접붙이기 기술. 특히, 가을날 행하는 눈접[芽椄]의 경우, ‘T 접’으로 교재에 소개되어 있었으나, 실제로 전문가들은 효율 내지 능률을 감안하여, 달리 ‘변형된 접(接) 기술’로 행한다. 하여간, 그렇게 해서 익힌 접목 기술로, ‘포모사 자두(Formosa 자두; 타이완 자두?)’도 손수 접을 해서 밭 둘레에다 심었다. 해서, 그것들은수령이 15살 정도 된다. 당시 농협공판장에서 그날 최고 낙찰가를 따냈던, 대과(大果)의 주인공 댁 과수원을 일부러 멀리 찾아가서 접수(椄穗)를 가져와서 행했던 일. 그런데 해마다 나의 자두농사는 엉망이었다. 농약 살포를 때맞춰 하지 않은 이유도 있고, 해마다‘빈 주머니 병’에 걸리는 이유도 있겠으나... . 보다는, 근본적으로 내가 해마다 전정(剪定)을 엉터리로 해 왔다는 거.
저 아랫녘 ‘밀양영감(그분 택호임.)’이 어제일러주었다.
“윤 과장(나의 택호임.), 자두나무 전정을 하고 계시는구먼. 자네도 소문 들어서 알겠지만, 나는 남의 과수원 과목(果木) 전정으로 돈 벌어 자식들 다 키웠잖은감? ‘자-’자(字) 든 나무는 끝을 자네처럼 몽탕몽탕 자르면 못 쓰네.”
그 사실을 왜 여태 몰랐던고? 나는 해마다 자두나무와 매실나무를 전정하되, 복숭아처럼 몽탕몽탕 더북 난 햇가지를 과감하게 잘랐다. 그리하여 이른바 개심잔형(開心盞形; 속이 훤히 드러나고 잔꼴인 나무꼴)로 만들곤 하였다. 그랬더니 자두나무와 매실나무는 다시 도장지(徒長枝; 더북나기 햇가지)를 내어놓곤 하였던 게다. 자연 자두나무와 매실나무는 자양분을 열매가 아닌 햇가지 키우는 데 주로 써버렸을 테고... .
실은, 과일나무의 전정기술도 선인(先人)들의 오랜 경험과 시행착오 끝에 얻어진 기술이리니. 밀양어른 지도에 힘입어, 나는 올해 자두 수확을 꿈꿔보게 된다.
이번엔 내가 다년간 경험으로 얻은 감나무 전정기술을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소개해야겠다. 사실 감 농사는 나의 주력농업(主力農業)이기도 하다. 경험해 본즉, 대체로 감나무 가운데에서도 해마다 풍성하게 알을 다는 나무가 따로 있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선순환(善循環)의 몫이 컸으리라는 것을. 이 무슨 이야기냐고? 감이 많이 달린 감나무는, 마지막 알까지 전정가위처럼 생겨먹은 ‘감집게’로 집어 따 내리고 보면, 보기 흉할 정도로 앙상하여 거의 마루타(통나무)처럼 되더라는 거. 그러함에도 그 이듬해 또 다시 풍성한 열매를 맺어왔다는 거 아닌가. 짐작컨대, 감나무만이 지닌 독특한 열매맺힘 습성 덕분이리라. 감꽃은 초여름에 오되, 햇순이 나오고 그 햇순이 새잎을 네댓 장 내어놓은 다음 그 잎겨드랑이에 오곤 한다. 참 그러기 전 그 햇순은, 감을 딸 때 잘린 가지 정단(頂端)에서 돋더라는 거. 다시 그 성질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감나무가 지닌 ‘잠복아(潛伏芽) 능력’에 기초한다. 묵은 가지 끝을 그렇게 자름으로써 감나무를 회춘(回春)케 하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나는 저 아랫녘 마을을 지나는 동안 노인네들의 감나무들을 유심히 쳐다보곤 하였다. 그 댁들 감나무들은 자기네 주인을 닮아 고령(高齡)이고, 해마다 감 수확 후에는 마루타 같았건만, 이듬해에는 어김없이 풍성하게 과일을 달더라는 거. 응용력이 비교적 뛰어난 나는, 이번 삼동(三冬)에 열 일 젖혀두고, 내내 감나무 전정을 하였다. 전정을 하되, 마치 전정가위처럼 생겨먹은 감집게로 알뜰히 햇가지 끝들을 다 잘라댔다. 아예 아랫녘 노인네들 감나무처럼 고태미(古態美)가 나도록 일제히 만들어버렸다. 내 감나무들의 오랜 타성(惰性)을 확 뜯어고치려고 그리하였다. 일단 예감이 좋다. 감나무 전정을 하는 내내 예전 어른들이 하던 말도 떠오르곤 했다.
그분들은 산후조리가 시원찮아 몸이 아프다고 징징대는 며느리한테 강권하곤 하였다.
"아가, 그러지 말고 애를 하나 더 가지려므나. 그 애를 낳은 다음에는 제대로 산후조리를 하게 되면, 몸이 말짱해질 테니.”
결코 근거 없는 말이 아닐 것만 같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바로 숙취(宿醉) 다음날 뜨뜻한 해장국을 안주삼아 마시는 해장술의 효과. 나더러 의학적으로 설명하라면 자신 없지만, 실제로 나의 경우 그렇게 하면 해장이 되었다. 참, 이참에‘해장’의 본딧말은 ‘해정(解酲)’임을,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덤으로 알려드린다. 여기서 쓰인 ‘酲(정)’은 ‘숙취’를 뜻한다.
두서없는 나의 이야기를 이쯤에서 과감히 정리해야겠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수필작가이거나 수필작가지망생인 분들한테 특별히 선사하고자, 적으나마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거. 그 메시지라는 게 대체 무얼까.
첫째, 시행착오를 수없이 겪으라는 거. 그 시행착오란, 습작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뜻이다. 내가 거의 15년여 만에 자두나무 전정법을 결국은 터득했듯.
둘째, 관찰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관한 사항. 내가 해마다 가을에 감나무를 쳐다보며 수 톤(ton)에 달하는 감을 따면서, 감나무 꽃맺힘 습성을 익혔다고 위에서 적지 않았는가. 거기서 끝내지 않고, 과감히 응용 내지 적용했다는 거. 그것도 거의 개혁 혹은 혁신에 해당할 만큼. 올해 내 감농사가 성공하게 되면, 이는 감 농사 신기술이 될 터.
끝으로, ‘일반에서 특수화’, ‘특수에서 일반화’를 교차적으로 활용하라는 거. 이웃 어른 ‘밀양어른의 자두나무 전정법 충고’ 및 ‘노인들의 며느리 산후조리법’을 곰곰이 새겨볼 만하다. 문학작품에서는 ‘일반어’보다는 ‘특수어’를 즐겨 쓰라는 권고가 있다. ‘추상어’보다는 ‘구체어’를 즐겨 쓰라는 권고가 있다.
그리고
그리고
나머지는 독자 여러분의 몫이다. 즉, 모자라는 부분은 꼭꼭 채워서 읽으시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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