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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61)
    수필/음악 이야기 2018. 11. 24. 14:18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61)

                            - 헝가리 집시(Gypsy)들의 무곡(舞曲)이 그들에게 가면-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우선, 이 글을 적기에 앞서 집시의 역사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Daum 백과는 이렇게 적고 있다.

     

       <전세계에 퍼져 있으며, 피부색은 짙은 편이다. 집시어를 쓰며, 계속적으로 이주하여 인도를 떠나 11세기 페르시아, 14세기 초 유럽 남동부, 15세기 서유럽에 거주하였고 20세기 후반에는 아메리카 대륙, 오스트레일리아에까지 퍼져나갔다.

    방랑 중 거주민으로부터 핍박을 받아왔으며 특히 아리아인 보존 정책을 폈던 나치가 약 40만 명의 집시를 학살했다.

       전통적으로 집시들은 떠돌이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중개인, 동물 조련사, 구내 매점원, 점쟁이 등의 직업에 종사한다.

    나름의 전통적 규범을 형성하고 무리의 연장자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문화를 형성해 왔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거주지역의 통합, 경제적인 독립, 집시가 아닌 사람들과의 결혼 등으로 집시들의 전통이 점차 희석되고 있다. >

     

       일설(一說)에 의하면, 몽골제국이 세계를 침탈할 적에, 인도에서부터 시작된 각국 피난민들이 세계 도처로 흩어졌다고 한다. 어쨌거나,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으로 모여든 집시들은, ‘플라멩코(flamenco)’라는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양식을 만들어내었다. 플라멩코란, ‘집시의 음악과 춤을 일컫는다. 한편, 헝가리는 1241년 몽골인의 침공으로, 인구의 절반이 목숨을 잃게 되었단다. 해서, 살아남은 그들 또한 이리저리 방황하게 되었을 터. 그들 집시들도 독특한 무곡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맞춰 춤을 추었을 테니... . 클래식 애호가인 나는 다양한 음악장르 가운데에서헝가리 집시 무곡도 무척 좋아한다. 해서, 이번에는 헝가리의 전통음악에 매료되었던 작곡가들을 차례차례 소개코자 한다. 무순(無順)이다.

     

      1. 몬티(Vittorio Monti,이탈리아,1868~1922)

     

      1904, 그가 36세가 되던 해 헝가리의 전통춤곡인 차르다시(Czardas 또는 Csárdás)’에 매료되어 , ‘차르다시 1을 적게 된다. 사실 이 곡이 그의 대표작이다. 그의 곡은 본디 만돌린을 위한 곡으로 쓰였지만,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 곡으로 편곡되어 연주되고 있고,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협주곡 또는 여러 악기들을 위하여 편곡되어 연주되기도 한다. 특히, 나는 마림바(marimba; 대형 실로폰의 일종임.)’로 연주되는 이 음악을 좋아한다. 그의 곡은 본디 차르다시에 근거해서인지, 일곱 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부분들은 각기 다른 템포를 지녔다. 해서, 음악이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조성(調聲)을 바꾸기도 한다.

     

      2. 브람스(Johannes Brahms, 독일,1833~1897)

     

       에피소드다. 브람스는 1852년 헝가리계 바이올리니스트인 레메니(Eduard Remenyi)의 함부르크 독주회를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아, 1853년 그와 함께 연주 여행을 떠나게 된다. 브람스는 열아홉의 청년이었고, 아직 무명에 가까웠지만 그보다 세 살 많은 레메니는 이미 유명한 음악가였다. 그 덕에 브람스는 독일 주요 도시에서 많은 연주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 도중 레메니의 소개로 평생의 친구가 될 요제프 요아힘을 만나기도 하였다. 레메니는 브람스에게 집시 음악, 혹은 집시 스타일이 도입된 연주를 많이 들려주었고, 브람스는 그것들을 메모하였다가 후에 곡에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제1, 2집이 출판된 후에 자신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훔쳤다며 저작권 침해를 주장에 시달린다. 브람스의 악보를 낸 출판사가 이 문제를 재판으로까지 끌고 간 이 사건. 브람스는 작곡이 아닌 편곡이라고 발표하여, 작품번호도 아예 붙이지 않았으며, 원작자가 분명치 않다는 이유로 레메니의 패로 끝났다. 이 사건을 의식했는지, 이후 출판된 제3집과 4집에는 브람스의 순수 창작곡도 들어가 있다.

     ‘헝가리-’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 이 춤곡은 21곡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실 헝가리 본토의 음악이라기보다는 헝가리에 정착한 집시들의 음악을 차용한 작품이다. 이들 21곡들 가운데에서 헝가리 춤곡 제5이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라는 것은 두루 아는 사실.

     

      3.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 스페인, 1855~1908)

     

       그를 두고서, ‘19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여기며 주로 기교적인 바이올린곡을 많이 작곡했다.’고들 요약한다. , 영국의 유명한 극작가이자 음악 평론가인 버나드 쇼는 사라사테를 이렇게 극찬했다.

     ‘세상에 바이올린을 위한 음악을 쓴 작곡가는 많지만, 진정한 바이올린 음악을 작곡한 사람은 드물다. 그의 바이올린곡은 비평가의 펜을 무색하게 만든다.’

      1878, 그가 23세 때에 대표작인 찌고이네르바이젠(Zigeunerweisen)을 적게 된다. 독주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으로 작곡했다. ‘찌고이네르바이젠이란, ‘집시의 노래라는 뜻. 그는 헝가리 지방을 여행했을 때 집시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그 멜로디를 바탕으로 작곡한 것이다. 기교적으로 아주 어렵지만, 화려하고 예술적으로 매우 세련된 취향과 정열을 담고 있는 곡으로 평가받는다.

     

      4. 리스트(Ferenc Liszt,헝가리,1811~1886)

     

       어린 시절에 헝가리를 떠나, 자기 모국어로 말도 제대로 못했다는 그. 1839~40년 무렵, 그는 나이 서른 안팎일 적에 고국을 방문하게 된다. 이미 작곡가로서, 피아니스트로 대성했던 그. 그는 그제야 자기 고국 헝가리의 민속음악 양식에 관심을 갖게 되어, 헝가리 광시곡(Hungarian Rhapsody)19곡을 짓게 된다.

    그는 환상적이고, 영웅적이며, 민족적인 성격이 강한 자유로운 형식의 작품을 광시곡(랩소디)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 작품에서 낭만적인 감정과 피아노의 화려한 기교, 헝가리 집시의 정열적인 멜로디를 결합시켰다. 그는 광시곡의 창시자로 일컬어진다.

       사실 그는 당대 수많은 염문(艶聞) 등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인물이었으며, 혁신적인 성향으로 인해 사람들의 공격 대상이 되거나 화려함과 허세로 질투를 받기도 했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그는 오랫동안 화려하기만 하고 내용은 없는 작곡가로 여겨졌지만, 근래에 들면서 당대 음악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고 이후의 여러 변화들을 예견한 작곡가로서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되었다는 거. 그가 한 때 사귀었던 비트겐슈타인후작 부인의 말대로, ‘리스트는 미래를 향해 창을 내던진 인물인 셈이다.

       그의 따른 업적은, ‘마리 아구백작부인의 도움으로, 음악가 최초로 매니저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거. 덕분에, 그는 무려 400여 명의 제자들을 무료로 가르친 기록도 있다. 자기가 그렇게 한 것이, 베토벤의 수제자이자 자기 은사였던 체르니한테 기워 갚는일이라고 생각했다는 거 아닌가.

       그의 헝가리안 광시곡가운데 제2번을 나만이 아니라 다들 좋아하리라.

     

       이제, 엄연히 농부로, 수필작가로 돌아오는 아침. 나는 위에서 소개한 작곡가들의 생애를 더듬고, 그들 작품 감상을 통해서, 짚이는 게 또 하나 있다. 어느 분야의 예술가이든, 언제고 깨어있어야 한다는 거. 모름지기 예술가란, 아주 사소한 사물에서도 영감(靈感)을 얻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거. 그 나머지에 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기왕지사 수필작가의 길을 걷고 있으니,끊임없이 적어대는 것만이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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