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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62)수필/음악 이야기 2019. 2. 11. 18:04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62)
- 작품번호 TWV~의 작곡가 -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위키백과’는 그에 관해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오늘날 그의 작품에는 흔히 TWV 번호가 붙는다. TWV란, ‘T??’ Werke Verzeichnis(T?? 작품 목록)'을 뜻한다. TWV는 숫자와 콜론, 문자로 이루어져 있다. TWV 뒤에 첫 숫자는 매체의 일반 형태를 가리키며, 콜론 뒤의 글자는 특정 작품의 조성을 뜻한다. 그리고 뒤에 붙는 숫자는 각 작품 형태별 번호이다. 가령, T?? B 플랫 메이저의 현과 통주저음을 위한 폴로노이스 협주곡은 TWV 43:B3이다. 다른 예로 T??의 D 메이저 모음곡은 TWV 55:D18이다.>
위 단락의 내용이 시사하는 바, 그가 빚어낸 작품수효가 어마어마하다. 아직도 그의 악보를 다 찾아내지도 못했으며, 작품 해석도 다 이뤄지지 않았다는 거 아닌가.
한편, ‘위키백과’는 그의 업적을(?) 또 이렇게 적고 있다.
<기네스북에는 그를 역사적으로 800개 이상의 작품을 인정받은 가장 다작의 작곡가로 등재하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예를 들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출판된 그의 주제별 작품 목록을 살펴보면, 그가 지금은 소실되었지만 실제로 3,000개가 넘는 작품을 썼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잃어버린 그의 몇몇 악보는 음악학자 제이슨 그랜트가 최근에 발굴하기도 했다. 많은 필사본이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소실되었다. (다른 작곡자인 시몬 세히터는 8,000개가 넘은 작품을 써서 그를 능가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중 5,000여 작품은 작은 푸가이다.) >
대체, 그가 누구냐고? 하지만, 나의 신실한 애독자들께서 애를 태우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아직은 밝힐 수 없다. 이번에도 ‘스무고개’를 넘듯 글을 적을 요량이다.
그는 1681년 독일 ‘마그데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바로크음악의 쌍벽(雙璧)’으로 일컬어지는‘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헨델’과 동시대 작곡가이며, 사실 그들과 교분도 나누었다고 전한다. 그의 가족은 음악적 배경이 없었다. 다만, 그의 증조부는 가수로 활동했으나, 그 밖에 다른 직계 가족은 음악과 전혀 관련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4살 되던 해 사망하여, 그의 어머니가 어린 그의 양육을 도맡았다. 그들은 중상류 계층에 속했으며, 교회에서 일했다. 그는 10살 때 음악을 접하게 되어 소질을 드러냈는데, 12살에 처음으로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러나 그의 가족은 그의 음악적 재능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음악에 몸담기를 우려하여 그의 모든 악기를 빼앗고, 그가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진로를 택하길 기대하여 새 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그 학교의 관리인이 그의 재능을 인정해준 덕분에, 그는 계속 작곡을 하고 스스로 음악에 대한 지식을 넓혀나갈 수 있었다. 그는 오로지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한 셈. 그는 리코더, 오르간, 바이올린, 비올라 다 감바, 플루트, 오보에, 샬뤼모, 더블 베이스, 베이스 트롬본을 스스로 완전히 익혔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음악 양식을 접했으며, 일찍이 요한 로제뮐러와 아르칸젤로 코렐리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그가 대체 누구냐고? 그가 바로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 1681~1767)’이다. 아래는 주로‘위키백과’의 내용을 재편집한 것이다. 내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는 오로지 독학으로 음악을 익혔으며,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을 공부했고, 종종 역사상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 비발디, 그리고 절친한 친구였던 헨델과 동시대 사람이었다. 오늘날은 일반적으로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더 위대한 작곡자로 여겨지나, 당대에는 텔레만이 그의 음악적 능력으로 더욱 널리 인정받았다.
‘DAUM 백과’는 그에 관해 또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세속음악과 종교음악을 모두 작곡했지만, 특히 독창자·합창단·관현악단을 위한 소규모 칸타타로부터 대규모 작품에 이르는 교회음악 분야에서 뛰어난 성공을 거둔 작곡가이다. 그 시대의 독일·이탈리아·프랑스의 주요양식들을 섭렵했던 대가인 그는 그 어떤 양식의 작품도 쉽고 유연하게 작곡할 수 있었으며 폴란드와 영국 음악의 영향도 받아들였다. 그는 오페라와 연주회를 위한 작품은 물론 교회를 위한 작품도 같은 비중으로 작곡했다. >
이쯤 해두고... . 사실 클래식 마니아인 나는 어느 하루도 ‘요한 세바스찬 바흐’를 아니 듣는 날이 없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KBS FM’ 새벽 어느 프로그램을 통해, 프로그램 진행자의 소개로, 위에 부제로 삼았듯, ‘TWV 43:B3’식의 텔레만 곡을 자주 듣게 된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달리, 아직은 다소 귀에 익지 않은 그의 곡들. 하지만, 그 많은 그의 곡을 그렇게 듣다가 보면, 어느 한 곡에 빠져들 것만 같다.
이제 엄연히 수필작가로 돌아와, 텔레만의 그 위대성을 다시 생각해본다. 거듭거듭 이야기하지만, 그가 순전히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하였다는 거. 사실 나도 오로지 독학으로 수필창작을 익혔지만... . 그는 살아생전 어느 선배 음악인의 질투와 시기를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이 대한민국 현존하는 수필작가 윤근택도, 수필계의 이단아(?) 윤근택도 왜 그런 일이 없었을라고? 왜 없을라고? 그는 시력이 나빠져서 차츰 창작이 줄어들게 되지만, 86세로 이승을 떠나는 날까지 작곡을 멈추지 않아, 후세의 음악학자들이 골탕 아닌 골탕을 먹고 있다는 점. 그 많은 작품을 분류코자 부득이‘TWV-’를 달았다는 점이 이를 시사한다. 사실 나도 데뷔한 이후 30여 년 동안 작품을, 무려 3,000여 편 적어오긴 하지만... . 텔레만, 그가 적은 악보들 가운데 꽤나 많이 소실되었다는 점이 안타깝다. 종이책이 아닌 인터넷 매체에 올린 나의 그 많은 수필작품들은 온전할는지? 그는 살아생전에 동시대인들한테는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작곡가’였으나, 그가 죽은 후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새로운 음악 양식이 옛 것을 대체했다는 점. 그리고 바흐와 헨델의 음악이 재평가되었던 19세기에 이르러, 텔레만의 명성은 다작가이기는 하지만 실속 없는 3류 작곡가 정도로 떨어져 있었단다. 그러다가 20세기에 와서 역사적·미학적으로, 보다 정확한 견해가 성립되었는데, 그 대부분은 막스 슈나이더와 로맹 롤랑의 연구 덕분이라는 거. 무릇 예술가란, 예술작품이란, ‘텔레만의 경우’처럼 재평가되고 삼평가된다는 점도 이 글을 쓰는 내내 생각해보았다.
오롯이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하고, 기네스북에 오를 만치 많은 곡을 쓴 텔레만에게 경의를 표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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