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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64)- 미니멀리즘(minimalism) 음악 선구자-수필/음악 이야기 2022. 5. 10. 11:24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64)
- 미니멀리즘(minimalism) 음악 선구자-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미니멀리즘이란, 장식적인 요소를 일체 배제하고 표현을 아주 적게 하는 문화 예술 기법이나 양식을 일컫는다.
미니멀리즘 음악의 창시자에 관해서는, 여러 문헌에 아래 사람들을 열거하고 있다. ‘스티브 라이히(1936~)’· ‘ 존 애텀스(1944~)’·‘필립 글래스(1937~)’· ‘라 몬테 영(1935~)’· ‘브라이언이노(1948~)’·‘데이비드보위(1947~2016)’ 등. 그러한데 내가 끊임없이 파고들다보니, 1800년대에 어느 괴짜 작곡가가 이미미니멀리즘 음악을 구현했다는 거 아닌가.
그가 바로 에릭 사티(프랑스, 1866~1925)로, <세 개의 짐노페디(Trois Gymnopédies)〉와 <당신을 원해요>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그에 관해서 음악사(音樂史)는 이렇게 요약한다.
‘미니멀리즘과 큐비즘의 개념을 음악에 도입한 매우 독창적인 작곡가로 드뷔시, 라벨, 풀랑을 비롯한 20세기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에릭 사티는 음악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음악을 배웠으며, 13살 때 파리 음악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교수로부터 ‘형편없음. 앞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한 상태’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는 징집을 피하기 위해 학교에 적을 두고 있었지만, 학교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퇴학을 당했고, 그로부터 3년 후에 다시 학교에 들어갔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마지못해 군에 입대한 사티는 몇 달 후 일부러 기관지염에 걸려 의병전역(依病轉役). 그 후 집시들이 많이 모여 사는 몽마르트르로 이사했다. 이때부터 생계를 위해 〈검은 고양이〉라는 이름의 카바레에서 피아니스트로 일했다. 1888년, 그는 뒷날 대표작이 된 〈세 개의 짐노페디(Trois Gymnopédies)〉를 발표했으며, 그는 드뷔시를 만나 음악의 혁명가로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그의 괴짜스러움은 어지간하였다. 그는 스스로 수도교회라는 교단을 창설해 이 교단의 유일한 신자가 되었으며, 직접 교구 기관지를 발행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더 궁핍해진 사티는 방값이 싼 파리 남부 아르퀴유로 이사했다. 스스로 ‘미천한 우리의 여인’이라고 이름 붙인 초라한 집에서 죽을 때까지 살았다. 이 무렵 그는 작곡가로서 기법적인 한계를 느꼈다. 보다 전문적이고 집중적인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댕디가 운영하는 스콜라 칸토룸에 들어갔다. 파리 음악원 때와는 달리 열심히 공부한 결과,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작곡가 라벨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라벨은 사티의 새로운 작품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젊은 작곡가들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프랑스 6인조로 발전했다. 이들의 정신적 지원으로 사티는 음악적 신념을 고수할 수 있었다.
사티를 새로운 음악인으로 만든 이가 또 있었다. 그가 시인 장 콕도. 본디 은둔형 외톨이었던 사티는 장 콕토를 만나면서 다른 예술가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사티는 장 콕토가 대본을 쓰고, 피카소가 무대 장치를 맡은 〈퍼레이드〉라는 발레극에 음악을 붙였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평면적인 오케스트레이션과 기계적인 리듬, 기본적인 테마의 반복, 타이프라이터와 사이렌 소리 같은 잡음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평론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이를 참지 못한 사티는 평론가에게 욕설이 든 편지를 보냈으며, 이 때문에 고소를 당해 8일 동안 유치장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 많은 평론가들의 반감에도 불구하고, 젊은 예술가들은 사티를 음악적인 스승으로 받들었다. 사티는 이들에게 새로운 음악을 선보여야겠다고 별렀지만, 젊은이들의 관심은 당시 음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스트라빈스키로 옮겨 갔다. 사티는 체념한 듯 자신의 운명을 이렇게 요약했다.
‘나는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왔어.’
좌절감에 빠진 사티는 누추하고 허름한 아파트에서 누구의 방문도 허용하지 않고 혼자 가난하고 고독하게 살았다. 그러다가 지나친 음주로 인한 간경화로 1925년, 5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티의 음악은 과거 물결에 대한 반항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당대를 풍미하던 낭만주의 음악은 물론, 바그너, 드뷔시 등 인상주의에도 반기를 들었다. 그는 복잡하고 현학적인 음악, 아카데믹한 음악, 웅변적인 음악, 감정 과잉의 음악, 감각만을 앞세운 음악을 무척 싫어했다. 그가 추구한 이상은 오로지‘단순함’. 그는 음악 속에서 일체의 군더더기를 몰아내고 간결하고 명쾌함을 추구했다. 그 점이 그의 대표작인 <짐노페디>에 여실히 묻어난다. 금세기에 와서야 각광을 받고 있는 그 <짐노페디>야말로 미니멀리즘 음악의 선구자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잠시. <짐노페디>를 더듬고 넘어감이 좋겠다. 플로베르의 소설 《살랑보》를 읽고 작곡한 것이다. 짐노페디는 고대 그리스에서 행해졌던 의식 중 하나인데, 이 의식에서는 젊은이들이 나체로 춤을 추었다고 한다. 사티는 ‘젊은이들의 나체 춤’이 시사하듯, 여타 작곡가들과 달리, 자기의 음악만이라도 거추장스런 치장이 필요없다는 믿음으로 굳이 ‘짐노페디’라고 이름붙이지는 않았을까. 실제로 그는 그 곡을 적기에 앞서 스스로 ‘짐노페디스트’라고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 음악 평론가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체적으로 애조를 띠고 있으나 지나치게 어두운 음향은 아닌 것이 특징이다. 단음으로 이루어진 선율은 느리고 단순하지만, 선법적인 요소, 그리고 베이스와 만들어내는 미묘한 불협화음이 특징적이다.’
위 이야기를 다시 풀자면 이렇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똑같은 리듬과 단순한 멜로디가 단조로운 인상을 주지만, 그 단순함 속에서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되는 곡이다.’
각각의 곡에다 템포와 분위기를 지정해 놓은 것도 특징적이다. 제1곡은 느리고 비통하게, 제2곡은 느리고 슬프게, 제3곡은 느리고 장중하게 연주하라고 지시어를 달아두었다.
흔히들 사티의 음악을 ‘가구음악’이라고 하는데, 이는 가구처럼 있는 듯 없는 듯, 그냥 흘려버리듯 듣는 음악을 의미한다. 카바레의 손님이 자신이 치는 피아노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연주를 멈추고, “제 음악은 집중해서 듣는 음악이 아닙니다.”말했다는 일화도 있다.
본디 <짐노페디>는 피아노 독주곡이지만 제1곡과 제3곡은 드뷔시에 의해, 제2곡은 리처드 존스에 의해 관현악곡으로 편곡되어 널리 연주된다.
괴짜였던 그의 작품 중에는 기발한 발상으로 주목받는 곡도 있다. 〈짜증(Vexation)〉이라는 피아노곡이다. 이 곡의 악보는 불과 한 페이지밖에 안 된다. 하지만 사티는 이것을 840번이나 반복하라고 악보에 써 놓았다. 이 지시에 따라 연주하면 전곡을 연주하는 데 대략 13시간 40분이 걸린다. 그래서인지 사티가 살아 있을 때는 단 한 번도 전곡이 연주된 적이 없다. 기네스북에도 ‘세상에서 가장 긴 음악’으로 기록되어 있단다.
사티는 음악을 통해 풍자와 해학을 즐기기도 했다. 그는 〈관료적인 소나티네〉, 〈차가운 소곡집〉, 〈엉성한 진짜 변주곡―개[犬]를 위하여〉, 〈배(梨) 모양을 한 세 개의 곡〉, 〈끝에서 두 번째 사상〉 등 작품에 기발한 제목을 붙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음악인으로서는 불우한 삶을 살았던 그. 하지만, 금세기에 와서 그의 <짐노페디>는 거의 날마다 FM라디오에서 한두 차례씩 흘러, 수필작가인 나를 감동시킨다. 나아가서, 그는 수 세기 후에 헤성처럼 나타난 어느 머니밀리즘 음악인을 대성케 하였다. 그가 바로 ‘루도비코 에이나우디(Ludovico Einaudi, 이탈리아, 1955~)’가 아닌가. 피아노 연주가 겸 작곡가인 그.
그는 스스럼없이 고백한다.
“ 나는 정의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미니멀리즘’이 우아하고(elegance), 개방적인(openness) 음악을 지칭하는 단어라면, 나는 다른 어떤 이름으로보다도 미니멀리스트로 불리고 싶다.”
그의 연주곡 ‘Primavera(‘봄’을 나타내는 이탈리아어라고 한다.)’은 그야말로 가구음악이다. 국내 어느 침대회사 광고음악으로도 쓰이며, 2022년 5월 현재 세계 130억회 뷰를 자랑하는 곡이다. 들으면 봄의 전경을 눈앞에 선히 느끼게 하는, 아주 편안한 곡이다.
다시 수필작가로 정좌(正坐)한 나. 40년 가까이 나름대로 여러 장르의 수필작품을 빚어왔다고 자부하고는 있으나, 에릭 사티처럼 괴짜스럽고 시험적은 작품도 꽤 빚어왔다고는 믿고 있으나... . 최근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놓고도'를 비롯하여 이미 수 편을 빚어 애독자들께 선보이면서 그것이 ‘미니멀리즘 수필’이라고 우겨대긴 하였으나, 가열차게 그러한 형태의 수필작품도 많이 빚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듣기)
관련 음악 듣기 보태서 재전송
에릭사티의 짐노페디 1번Primavera - Ludovico Einaudi
작가의 말)
사실 저는 이미 여러 해 전 '미니멀리즘 수필'이라고 우기며 적은 글이 있어요.
'미니멀리즘(minimalism) 수필’ - ‘관천저(貫穿底)’ 잎을 보다가
그 작품에 관련된 음악은요,
필립 글래스 / 변신 2 (하피스트: 라비니아 마이어)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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