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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가사리
    수필/신작 2018. 11. 27. 08:09

     

                                                    불가사리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참으로, 내가 생각해보아도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 나는 밤마다 그야말로 비몽사몽(非夢似夢)으로 지내는 일이 많다. 깊은 잠을 자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하기야 5년여 아파트 경비원으로 지내는 동안 불규칙적인 잠을, 그것도 4시간 정도씩 자고 맞교대자한테 교대를 해왔던 탓도 있겠으나... . 어젯밤에도 꿈결에서 수필작품을 적었다는 거 아닌가. ‘열쇠어휘내지 소재는 는 테트라포드(tetrapod, tetrapode)’·‘()’·‘불가사리’ ·‘에릭 사티(Alfred Eric Leslie Satie, 프랑스, 1866~1925)’ .


       잠시. 어젯밤에 내가 잠결에 머릿속으로 떠올린 위 어휘들에 관해서는 이따가 이야기 다시 풀어가겠으나, 30대 초반이었던 시절의 내 잠버릇마저 소개해야겠다. 종종 신춘문예등에 당선하는 꿈을 꾸었다. 어린 내 딸아이들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행복해하는 꿈을 그처럼 자주 꾸었다. 심지어, ‘얼른 일어나야지! 밤새 꿈에서 적은 작품을 종이에다 곧바로 옮겨야 해!’용을 쓴 적도 많았다.


       다시, 어젯밤 비몽사몽간에 떠올린 위 어휘들 이야기다. 왜 그러한 어휘들이 떠올랐으며 왜 그것들 이질적(異質的) 요소들을 한 편의 글로 엮으려고 용을 썼던지 알 수가 없다. 해서, 새벽에 일어나 인터넷을 통해 마구 찾아보기 시작했다.


     


      1. 테트라포드


     


       파도나 해일을 막기 위해 방파제에 사용하는 콘크리트 블록. 테트라포드란, ‘네발 동물이나 탁자나 의자의 네 다리를 뜻하는 말이다. 1949년 프랑스의 ‘Neyrpic가 개발했다.


    잘은 모르겠으나, 그것이 특허품이라서 당시에는 그걸 만들 때마다 일정 로열티를 물어주어야 한다고 들은 바 있다. 테트라포드가 설치된 방파제는 유속(流速)이 낮은 등 어족(魚族)이 풍부해, 바다낚시터로는 최적지였다. 다소 위험했으나, 젊은 날 나는 울릉- 영덕- 울진으로 이어진 전근 때에 직장 동료들과 그 방파제에 자주 나가곤 했다. 하여간, 테트라포드는 네 발을 지닌, 아주 안정적인 물체’.


     


      2. ()


     


       정()은 중국 고대 왕조인 상대(商代)부터 제작된 예기(禮器), ()이 있는 왕조만 소유할 수 있다고 여기던 권력의 상징물이었다. 세 개의 다리[]와 두 개의 귀[]가 달린 원형 정[圓鼎]과 사족(四足)과 양이(兩耳)가 달린 방형 정[方鼎]이 있으며... .


     


     ‘鼎立, ‘세 사람 또는 세 개의 세력이 서로 대립함을 뜻하며, 고구려·신라·백제 삼국시대를 항용 삼국정립이라고 표현한다. 하여간, ‘은 솥은 솥이되, 세 개의 다리가 가지런히 달린 형태의 솥을 일컫는다.


     


      3. 불가사리


     


      몸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도 죽지 않고 살아난다고 하여 불가사리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참말로, 불가사의(不可思議). 몸은 별모양이고 중심에 있는 반()으로부터 방사상으로 나와 있는 완(: )을 가지며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다. 실제로 그 팔[] 다섯 개 가운데 어느 하나가 잘려도 이내 새로 생겨난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약 3,600종이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약 70종이 알려져 있다. 불가사리한테는 거의 천적이 없다고 한다. 불가사리는 바다의 불사조?


     


      4. 에릭 사티


     


      사실 어젯밤 내내 내 귓전에는 그의 작품 짐노페디 1을 거듭듣기로 흘려두었다. 한마디로, 그는 괴짜스런 음악인이었다.


     


     ‘Daum 백과 음악사를 움직인 1,000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그는 미니멀리즘큐비즘의 개념을 음악에 도입한 매우 독창적인 작곡가로 드뷔시, 라벨, 풀랑을 비롯한 20세기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중략)


       평론가들의 반감에도 젊은 예술가들은 사티를 음악적인 스승으로 받들었다. 사티 역시 이들에게 자신의 정신을 물려받은 새로운 음악의 탄생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런 행복도 잠시, 그 후 젊은이들의 관심은 당시 음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스트라빈스키로 옮겨 갔다. 사티는 체념한 듯 자신의 운명을 이렇게 요약했다.


     ‘나는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왔다.’


       이렇게 좌절을 맛보며 사티는 누추하고 허름한 아파트에서 누구의 방문도 허용하지 않고 혼자 가난하고 고독하게 살았다. 그러다가 지나친 음주로 인한 간경화로 1925, 5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하략)>


     


       이제 위 이질적인 요소들을 규합해서 한 덩어리로 만들 일만 남은 듯. 테트라포드· ·불가사리의 공통점이란, 모두 나름의 다리[]를 지녔다는 거. 다리를 가졌으되, ‘헛다리가 아닌, 저마다 아주 유용한 다리를 지녔다는 점. 어쩌면 프랑스의 ‘Neyrpic는 불가리의 다리에서 착안하여, 테트라포드라는 걸작을 만들어 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언뜻 하게 된다. 그 테트라포드는 유속(流速)도 조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엉킴으로써 경제적으로 즉,효율적으로 파도를 막아준다는 점. 마치 세 마리의 사슴뿔이 서로 엉키듯(거칠 추, 매조미쌀 추)’하게.


       자, 이제 마지막 하나의 키워드만 남겨 두었다. ‘에릭 사티는 위에서 자기 독백을 소개했듯,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왔던음악인이 분명하다. 그에 관해서 나는 더 공부하게 되었는데... . 그는 13살 때 파리 음악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교수로부터 형편없음. 앞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한 상태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성적이 좋지 않았다. 뿐더러 퇴학까지 하게 된다. 그러했던 그의 괴짜스런 음악세계는 어느 귀인(貴人)을 만나게 되면서 빛을 서서히 발휘하게 된다. 그 귀인이 바로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로 유명한 작곡가 라벨(Joseph-) Maurice Ravel,프랑스, 1875~1937)이다. 1912, 라벨은 사티의 작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사티의 새로운 작품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젊은 작곡가들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프랑스 6인조로 발전했다. 이들의 정신적 지원으로 사티는 음악적 신념을 고수할 수 있었다.


       사티는 1915년에 시인 장 콕토를 만났다. 본래 은둔형 외톨이었던 사티는 장 콕토를 만나면서 다른 예술가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수필작가로 행세해 온 지 어언 30. 나는 아직도 꿈에서도 수필작품을 적고 있다. 대체, 나라는 이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불가사리하고 불가사의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미니멀리즘과 큐비즘을 최초로 음악에 접목하였던 사티. 그는 신념을 갖고 있었으나, 그로 인하여 또 탄식까지 하였다.


      ‘나는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왔다.’


       여러 갈래의 수필작품을 적어왔노라 자부하는 나. 나도 사티처럼 탄식할밖에. 하더라도, ‘사티의 귀인 라벨이 나타나길 바라며, 앞으로도 꿈속에서라도 수필작품을 적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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