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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토삼굴'
    수필/신작 2018. 11. 25. 07:23

    * 편집, 내지 재편집도 글쓰기 하나의 방식이겠죠?


      사실 지식도 평준화 된 마당에... .


     


                          ‘교토삼굴(狡免三窟)’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군계일학(群鷄一鶴)’이란 말이 있다. 본디 뜻은 그게 아니었으나, ‘평범한 여럿 가운데서 눈에 띄게 뛰어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새벽, ‘군계일학은 슬하에 아들 다섯, 딸 다섯들 두었던 살아생전 내 양친(兩親)이 곧잘 하던 말과 겹쳐질 줄이야!


    글타나(그러면 그렇지)! 열 가운데 한 놈이라도 잘 풀리게 되면... .”


      사실 나는 지난밤 내내 대륙인 중국을, 아니 중국의 역사 속 인물들을 탐방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2018년 기준으로, 14억 여 인구를 지녀 세계 총인구 76억 여 가운데에서 단일국가로 1위인 그 대륙에서 걸출(傑出)한 인물들이 왜 그리 많이 나지 않았을라고?’


      어젯밤에는 위 제목으로 삼은 교토삼굴(狡免三窟)’의 교훈을 새기게 되었으니... . 사실 인터넷상에는 여러 버전의 글이 있었으며, 나는 그 글들을 죄다 읽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 귀에 쏙 들어올 수 있는 네이버 지식백과의 글을 골라 그대로 옮기고자 한다.


     


     < 1. 맹상군의 식객이 되다


     


      풍훤은 풍환(馮驩)이라고도 하는데 전국시대 제나라의 재상 맹상군의 식객(食客)으로, 맹상군이 정치적 위기에 봉착했을 때 대책을 마련해준 인물로 유명하다. 그와 관련된 고사성어로 교토삼굴(狡兎三窟), 고침안면(高枕安眠), 유비무환(有備無患) 등이 있는데, 그 내용은 사기』 「맹상군열전에 잘 기록되어 있다.


    맹상군은 왕족인 정곽군(靖郭君) 전영(田嬰)의 아들로 이름은 전문(田文)이고, 맹상군은 그의 호이다. 그는 전국시대에 조나라의 평원군, 초나라의 춘신군(황헐), 위나라의 신릉군과 함께 전국시대에 식객 3천으로 명성을 떨친 전국사공자로 크게 이름을 날렸다.


      풍훤은 본디 거지였는데 맹상군이 식객을 좋아한다는 말에 짚신을 신고 먼 길을 걸어갔다. 맹상군은 그의 몰골이 하도 우스워 별 재주는 없어 보였지만 받아주었다. 맹상군은 그를 3등 숙소에 묵게 했는데 고기반찬이 없다고 늘 투덜댔고, 그래서 2등 숙소로 옮겨 주었는데 이번에는 수레가 없다고 불평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1등 숙소로 옮겨 주자 그럴 듯한 집이 없다며 투덜댔다.


     


       당시 맹상군은 설(, 지금의 산둥성 텅저우(滕州))1만 호의 식읍을 가지고 있었다. 3천 명의 식객을 부양하기 위해 식읍 주민들에게 돈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도무지 갚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누구를 보내 독촉할까 궁리하고 있는데 1년간 무위도식으로 일관했던 풍훤이 자청하므로 그를 보내기로 했다. 출발할 때 풍훤이 빚을 받고 나면 무엇을 사올까요?” 하고 물었다. 맹상군은 무엇이든 좋소. 여기에 부족한 것을 부탁하오.”라고 대답하였다.


     


      2. 은혜와 의리를 사다


     


      설 지역에 당도한 풍훤은 빚진 사람들을 모아서 차용증을 하나하나 점검한 후 이자로만 10만 전을 받았다. 예상외의 좋은 결과였다. 징수가 끝나자 그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맹상군은 여러분의 상환 노력을 어여삐 보고 모든 채무를 면제하라고 나에게 분부하셨소.” 그러고는 모아 놓았던 차용증 더미에 불을 질렀다. 차용증은 모두 재로 변했고, 사람들은 그의 처사에 감격해 마지않았다. 설에서 돌아온 풍훤에게 맹상군이 선생은 무엇을 사오셨는가?” 하고 물었다. 풍훤이 말했다. “당신에게 지금 부족한 것은 은혜와 의리입니다. 차용증서를 불살라 당신을 위해 돈 주고 사기 힘든 은혜와 의리를 사 가지고 왔습니다.” 이 말을 들은 맹상군은 매우 마땅찮은 기색이었다.


      1년 후, 맹상군이 새로 즉위한 민왕(閔王, 재위 BC.300~BC.284)에게 미움을 사서 재상직에서 물러나자, 3천 명의 식객들도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풍훤은 그에게 잠시 설에 가서 살라고 권유했다. 맹상군이 실의에 찬 몸을 이끌고 설에 나타나자 주민들이 환호하며 맞이했다. 그때 맹상군이 풍훤에게 말했다. “선생이 전에 은혜와 의리를 샀다고 한 말뜻을 이제야 겨우 깨달았소.”


      “교활한 토끼는 구멍을 세 개나 뚫지요(교토삼굴[狡兎三窟]). 지금 경()께서는 한 개의 굴을 뚫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아직 고침무우(高枕無憂, 고침안면)를 즐길 수는 없습니다. 경을 위해 나머지 두 개의 굴도 마저 뚫어드리지요.”


     


    3. 교토삼굴 고사


     


      풍훤이 위()나라의 혜왕(惠王)을 만났을 때 맹상군을 등용하면 부국강병을 실현할 것이며 동시에 제나라를 견제하는 힘도 얻을 수 있다고 역설한 바 있다. 그의 말에 마음이 동한 혜왕이 금은보화를 준비하여 세 번이나 맹상군을 불렀지만 그때마다 풍훤은 맹상군에게 응하지 말 것을 은밀히 권했다.


       이 사실이 제나라 민왕에게 알려지자 그제야 맹상군의 진가를 알아차린 민왕이 맹상군에게 사신을 보내 자신의 잘못을 사과한 다음, 재상의 직위를 복원시켜 주었다. 두 번째 굴이 완성된 셈이다.


      두 번째 굴을 파는 데 성공한 풍훤은 세 번째 굴을 파기 위해 민왕을 설득하여 설 땅에 제나라 선대의 종묘를 세우게 하고, 선왕(先王) 때부터 전승되어 온 제기(祭器)를 종묘에 비치하도록 했다. 선대의 종묘가 맹상군의 영지에 있는 한 제왕의 마음이 변심한다 해도 맹상군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이것으로 세 개의 구멍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고침안면 하십시오.”


      이리하여 맹상군은 재상에 재임한 수십 년 동안 별다른 화를 입지 아니했는데 이것은 모두 풍훤이 맹상군을 위해 세 가지 보금자리를 마련한 덕이다. 이 고사는 불안한 미래를 위해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유비무환)는 말로, 완벽한 준비 뒤에는 뜻하지 않는 불행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참고문헌


    사기(史記)』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전국책(戰國策)』 「제책편(齊策篇)


    모략. 김영수 편역, 들녘, 1996, 2003, 2010.


    [네이버 지식백과] 풍훤 [馮諼, féng xuān] (중국인물사전, 한국인문고전연구소)


     


       다시 나의 이야기로 꾸려간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교토삼굴버전에 관한 한, ‘네이버 지식백과가 비교적 깔끔한 요약분이었다. 사실 나는 지난밤 내내 그들 양인(兩人)의 수작(酬酌)을 글로 읽게 되었는데, 혀가 내둘렸다. ‘풍환이 보여주었던 그 으름장 내지 투덜댐은 가관이었다. 자기가 맹상군의 식객으로 들어가면서 차고 있던 장검(長劍)한테 말을 건네는 장면도 퍽 인상적이다. 늘 이런 투였다.


     “(), (이 댁에서) 얼른 나가자꾸나.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르는구나.”


      그러면 또 다른 상급식객(上級食客)으로부터 그 소식을 접한 맹상군. 그도 통이 아주 큰 인물이었다.


     “ 그의 노모(老母)한테 집 한 채를 내어주거라. ”


      풍환은 또 이 같은 노래를 불러댄다.


     “검아, 얼른 나가자꾸나. 다른 식객들한테는 수레를 내어주건만, 이 늙은이한테는... .”


      맹상군의 다른 식객들처럼 그에게 수레를 곧바로 내어준다. 맹상군의 그 그릇 큼이여, ‘그릇 됨이여! 두 역사 속 인물은 결코 소인배(小人輩)가 아닌 대인배(大人輩)였음을. 그러기에 춘추전국시대, 그 한 시대를 풍미한(風靡)한 인물들로 역사서는 적고 있을 터. 세계 속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 대륙 중국에서나 나올 만한 이야기며 인물이었다는 것을.  힘주어 말하건대, 나는 결코 사대주의(事大主義)에 물든 이는 아니다. 나는 지금겐걸(맞는 걸) 게다.’고 말할 따름이다.


       사실 그 당시에도 이미 맹상군은 염량세태 (炎凉世態)’를 다음과 같이 개탄했다. ‘염랑세태를 자주자주 맛보는 현대의 우리도 새겨볼 만한 이야기라서, 또 거의 그대로 옮겨와 본다.



     


      <얼마 후 자신의 행동이 잘못됨을 느낀 제나라의 왕은, 맹상군을 다시 불려 들여 지위를 복권시키게 되었다. 그러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식객들이 다시 모이는 게 아닌가. 맹상군은 이런 일로 무척이나 당황하였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염치로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것인가?”


       그는 그들 모두를 내쫓으려 했다.


      그러자 그의 곁에 홀로 남았던 풍환이 말해온다.


    사람들이 아침에 시장에 모이고, 저녁이 되면 시장에서 흩어져 버리는 이유는, 아침시장을 무척 좋아라하고 지녁시장을 특별히 싫어해서가 아니옵니다. 저녁시장에는 이미 필요한 물품들이 모두 팔리고 없기 때문에 떠나는 것입니다.이렇듯 주군이 권세를 잃자 사람들이 떠나가고, 권세를 다시 되찾게 되자 모여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일 뿐입니다. 마음은 상하겠지만, 부디 저들을 물리치지는 마시옵소서.”>


     


     


    [출처] 짬짬이 한자성어 56- 염량세태 (炎凉世態)|작성자 두빛나래


     


       또다시 농부 겸 수필가의 농막에는 아침이 밝아오는 모양이다. 닭장의 장닭들이 기상나팔을 마구 불어댄다. 일복으로 갈아입고 농장으로 나설 시간이 되었다.페르시아 폭군(暴君)‘샤리아르곁에서 천일야화(千一夜話)를 들려주어 감화시켰던 세헤레자데를 또 다시 떠올린다. 나는 낮 동안 내 신실한 애독자들한테서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 바지런 떨며 글감을 또 챙길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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