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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작가 윤근택이가 신작 및 기발표작 모아두는 곳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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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乞饒(걸요;그를 용서해 주사이다)’
    수필/신작 2018. 12. 25. 06:56



                      乞饒(걸요;그를 용서해 주사이다)’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요즘 나는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푹 빠져있다. 바로 천일야라는 프로그램. 역사적인 사건(?)을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게 펼쳐 보이는 프로그램이다. 이번에는 조선조의 어느 협객(俠客) 이야기였는데... .

        평안도 관찰사에 부임한 채제공(蔡濟恭)’이 어느 죄인을 처형하려고 끌어냈더니, 사방에서 그를 살려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채제공은 내심 놀랐으나, 나라의 중죄인을 살려 줄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사형을 막 집행하려고 했는데, 이때 기생 백여 명이 몰려와 일제히 무릎을 꿇고 노래를 합창했다.

     

        그를 용서해 주사이다[乞饒; ‘너그러움()’갈구한다는 뜻임.).

        그를 용서해 주사이다(乞饒).

        장복선을 용서해 주시기를 만 번이라도 비나이다(萬 乞饒 張福先).

        미동 어르신, 채 판서님(美洞爺爺蔡尙書),

        저 장복선을 용서해 주사이다(彼張福先乞饒全).

        장복선을 용서해 주시면(張福先如得饒),

        한양에 올라가셔서 정승이 되오리다(此回知登上台筵).

        만약에 그리 되지 못한다 하여도(上台筵雖未筵)

        고운 비단 댕기를 맨(剪板樣子錦唐)

        젊은 첩을 무릎 앞에 앉히리다(得小郞君在膝前).

        그를 용서해 주사이다(乞饒).

        그를 용서해 주사이다(乞饒).

        장복선을 용서하여 명대로 살다 죽게 용서해 주사이다(乞饒張福先 終年).

     

       녹의홍장(綠衣紅粧)으로 치장한 백여 명의 기생들이 일제히 사형장에서 장복선을 용서해줄 것을 간청하는 노래를 그렇게 불러댔다.

       또한, 구름처럼 모여든 사람들도 노래를 따라 부르며 손을 모아 싹싹 빌어댔다. 이에 채제공은 기생들까지 사형장에 나와 노래를 부르자 의아해 했다.

       대체, 1775(영조 51) 무렵, 평안도에는 어떤 사건이 있었기에?

       채제공이 관찰사로 부임하여 정무를 보던 어느 날, 천류고(泉流庫; 중국관계 물자를 보관하던 창고)를 조사하게 되었는데, 장부상 은 2천 냥(1만 냥이라고도 함.)이 부족했다. 해서, 창고지기인 장복선(張福先;張福尙이라고도 함.)을 잡아다가 문초하니,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묵묵부답이었다. 채제공이 판관에게 물어 보니, 장복선은 빼돌린 은 2천 냥을 갚을 여력이 없다하니, 그를 옥에 가두어 두고 관찰부 관리들과 회의를 한 뒤 그를 참형에 처하기로 했다.

       옥에 갇힌 장복선. 자신에게 참형(斬刑)이 떨어졌음에도 옥리(獄吏)들과 태연하게 시시덕대고 술을 마시며 통닭을 뜯기까지 하였다. 그는 죄목이 건몰(乾沒; 아전이 나라의 물건을 훔쳐서 자신의 배를 채운 죄)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러자 그는 태연하게 말한다.

      “나는 이제 죽어도 아쉬울 것이 없으나, 나라의 물건을 훔쳐서 내 배를 채웠다는 말을 듣는다면, 대장부로서 어찌 치욕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천류고에서 은을 빼돌린 사정을 말하겠네.”

       그는 옥리로부터 붓과 종이를 건네받아 쓰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처녀 아무개가 가난해서 초상을 치르지도 못한 채 백골(白骨)을 안방에 그대로 모시는 것을 보고 은 몇 냥을 주고, 아무 처녀와 총각이 혼인하는데 돈이 없어서 은 몇 냥을 주고, 아무개가 병이 들어도 약을 쓰지 못해 약값 하라고, 은 몇 냥을 주고, 아무개 노인이 환곡을 갚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은 몇 냥을 주고... . ’

     

       채제공은 그제야 진실을 죄다 알게 되었으나, 나라의 돈을 훔쳐 사용한 것은 중죄라고 생각하여 그렇게 판결대로 장복선을 참형에 처하기로 했던 것이고, 장복선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이들은 구름처럼 모여들어 선처를 호소했던 것이다.

       드라마는 역시 반전(反轉)의 묘미. 감영의 장교 하나가 벌떡 일어나서, 고리상자를 땅에 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장복선을 죽게 할 수는 없소. 그를 살리기 위해 속전(贖錢)을 냅시다.”

       그러자 일제히 옳소!” “옳소!”“옳소!”하였다. 사람들이 소리치며 호응하여 금방 천 냥이 넘어섰다. 채제공도 이에 거들어 부족분을 채워 놓고 장복선을 석방했다.

       어디 그뿐인가. 장복선을 위해 은을 모은다는 소문이 퍼지자, 이튿날 부족한 양도 전부 채워졌다. 장복선이 석방되고도 먼 지방에서 은을 싣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

       위 이야기는 이수광<雜人列傳 - 5 - 부제 조선 최고의 협객 장복선(張福先)>에서도 나온다. 이 일화는 심노승의 <효전산고(孝田散稿)>와 김려의 <담정총서(潭庭叢書)> 중 이옥의 산문집에도 실려 있다고도 한다.

       한편, 정약용의 다산시문집 제17권 유사(遺事)방친(旁親)의 유사에 장복상(張福尙)이라는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상략)장복상(張福尙)이란 자가 있었는데. 공은(公銀) 1만 냥을 축내었다. 마땅히 사형감이었으나 그는 성격이 호협하여 베풀기를 좋아하였으므로, 서도(西道) 백성들이 다투어 저마다 그의 죄를 대신 받으려고 하였다. (중략) 그러자 서인(西人)들이 다투어 차고 있던 칼을 풀어 칼자루를 장식한 테두리를 떼어 내놓았고, 아녀자들도 가락지를 벗어서 던져 주었다. 잠깐 사이에 은()이 모자라는 양만큼 채워져서 장복상은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략)

     

      同知公參議公之庶子也倜儻多奇氣少任俠嘗躡高齒屐於鳧厓之脊一線之徑而行逞能旣長折節爲恭謹性寬大不喜婦人瑣瑣多口舌嘗戲謂諸堂親曰吾聽從吾母氏之言幾不成人遂大笑其奇談善謔多類此嘗隨樊翁爲裨將赴咸興幕下....... 又隨至平壤有張福尙者欠公銀萬兩當死而福尙任俠樂施西民爭欲百身以贖之公爲之告主將竭俸錢以償之尙未滿西人爭解佩刀摘其櫑釦其婦女脫戒指擲之頃刻而銀相當福尙遂得活以故聲重搢紳間凡按節出外者

     

      [출처] 그를 용서해 주사이다(乞饒)|작성자 몽촌

     

       이 염량세태(炎凉世態), 장복선 드라마는 가슴이 후련한 이야기였다. 물론, 국고(國庫)를 무단으로 축낸 것은 큰 죄에 해당되며, 정당화 될 수는 없지만... . 하여간, 역사 속의 장복선은 협객이었음이 분명하다. 사실 내가 본 그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그 극()에서는 관리들의 수탈(收奪)과 착취(搾取)가 횡행하고 있었다. 그저 시청자들의 흥미를 한껏 돋우기 위함이었을까? 진실로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을 잠시 꿈꾸어 본다. 더러는 역사가 반복되기도 하지만, 또 역사는 발전해가는 것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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