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수필작가 윤근택이가 신작 및 기발표작 모아두는 곳임.

Today
Yesterday
Total
  • 대체, 그들 사이에는 어떤 일이
    수필/신작 2019. 1. 8. 06:20

      


                                      대체, 그들 사이에는 어떤 일이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이 겨우내, 내 농막 화단에서, 아내가 범고사리라고 부르며 가꾸어오던 관중(貫衆;호랑고비)’의 그루터기를 베어내다가 문득 그들을 떠올리게 될 줄이야!

       그들 둘은 죽마고우로서, 젊은 날 시장에서 동업으로 생선가게를 한 적 있다고 한다. 장사가 끝나면, 그날 수입에서 은 언제고 배나 더 가지고 돌아갔다. 이에 을 따르는 이들이 항상 불평했다.

      “같이 번 돈인데 절반씩 나누어 갖지 않고... ‘, 당신은 왜 가만히 있는 겁니까?”

       이러한 말을 들 적마다 은 그들을 달래곤 했다.

      “그는 구차스럽게 돈을 탐해서 나보다 배나 더 가지고 가는 게 아니네. 그는 집안이 가난하고 식구가 많아서 내가 그에게 더 가지고 가도록 양보한 걸세.”

       사실 은 위 사례 외에도 죽마고우인에게 거의 일방적이다시피 너그러움을 베풀었다. 해서, 후일 의 은혜를 입어 천하에 공명을 떨친 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가난할 때 그와 함께 사업을 하여 이익을 남기면 내가 꼭 더 가져갔는데도 그는 나를 탐욕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를 위해 일을 하다 잘못 되어 그를 더 난처하게 했는데도 그는 못난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운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 번 관직에 나갔다가 모두 물러나왔는데도 그는 나를 무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 여러번 전쟁에 나갔다가 번번이 내가 도망을 쳤는데도 그는 나를 비겁하다고 무시하지 않았다. 내게는 돌봐야 할 노모가 계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와 소백(小白)이 권좌를 다투다가 공자 규가 패하자, 그를 따르던 소홀(召忽)은 주인을 따라 자결했지만 나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는데도 그는 나를 염치없다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작은 절개(小節)’를 지키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보다 (군주를 도와) 천하에 이름을 떨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님이시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실로 그로다(生我者父母也, 知我者鮑子也)!’ ”

     

       위의 내용은 사마천(司馬遷)사기(史記)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는 그들의 감동 스토리이다. 여태 나는 신실한 나의 애독자들께서 한눈팔지 말라고 ’, ‘으로 각각 표현해 뒀는데, 그들은 각각 관중(管仲;管夷吾)’포숙(鮑叔;鮑叔牙)’이다. 그들 양인(兩人)은 중국 춘추시대의 제()나라 3대 왕 제환공(齊桓公)을 섬기던 정치가들이다.

       내가 몇몇 역사서 다이제스트를 통해 살펴본즉, ‘포숙없는 관중은 감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정권혼란기에 포숙 자신은 공자 둘째인 소백(小白)의 군사(軍師)가 되고, 친구인 관중한테는 공자 맏이인 규()에게 추천하여 군사가 되게 하였다. ‘운명의 장난인지는 모르겠으나, 왕위 쟁탈전에서 두 친구는 잠정적으로나마 서로 적대관계에 놓이게 되는데, 포숙의 승리로 일단락되는가 싶더니... . 포숙은 자기가 관중보다 모자란다고 하면서, 이제 막 왕이 된 소백한테 간청하여 옥중에 갇힌 관중을 천거하여, 재상 자리에 앉히고자 한다.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소백의 그릇도 대단하기는 마찬가지. 자기를 죽이려던 적장(敵將) 관중을, 포숙의 천거를 받아들여 선뜻 재상에 앉혔으니까. 사실 소백은 관중이 쏜 화살에 맞아 죽을 뻔 하기도 했다. 잠시, 그 거대한  대륙 중국을 생각해 본다. 큰물에는 큰 고기가 나는 법이니... . 그때 전쟁에 승리한 소백은, 형인 공자 규를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그를 따르던 가신들도 모두 죽이려고 하였다. 그런 소백을 만류하며 포숙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거 아닌가.

        “주군께서 만약에 제나라의 제후로 만족하신다면 저 포숙으로도 족하나, 만약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려고 하신다면, 관중이 없고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소백은 포숙의 충언을 받아들여 관중의 목숨을 살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관직까지 부여했다. 관중은 자신의 재능을 맘껏 발휘할 수 있었고, 이런 관중의 보필에 힘입어 제 환공은 마침내 천하를 호령하는 패자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관중은 중국의 역사가 자랑하는 명재상들 가운데 하나다.

       다시 나는 이런저런 친구 덕을 톡톡히 본 관중이 아닌, ‘포숙그릇 됨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 본다. 제 아무리 출중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더라도, 포숙의 사람을 알아보는 눈과 깊은 우정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역사 속의 관중은 존재하지 않았을 터. 어쩌면 그 재능면에서는 관중이 포숙보다 다소 나았을는지 모르겠으나...

        그런데 그런데 ... 관중의 그릇은 또 남달랐다. 이는管子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천하의 패업을 이루고 얼마간 시간이 흘러, 관중이 그만 큰 병을 앓게 된다. 병문안을 온 제 환공이, 만일 혹시 관중이 쾌차하지 못할 경우 누구에게 정치를 맡겨야 할지를 물었다. 환공은 속으로 둘 사이의 우정이나 저간의 사정을 감안하면, 관중이 당연히 포숙을 추천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관중은 의외로, 생명의 은인이자 오늘까지 자신을 있게 한 절친한 벗, 포숙이 아닌 습붕(隰朋)’이란 사람을 천거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포숙은 군자입니다. …… 그의 사람됨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함이 심하기 때문에 한 가지 악한 일을 보면 죽을 때까지 잊지 않습니다. 게다가 포숙은 사람됨은 정직하나 나라에서 바르지 못한 일을 당하면 굽힐 줄을 모릅니다. 반면에 습붕의 사람됨은 많이 알면서도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좋아합니다. (;관중)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융통성 있게 굽힐 때는 굽히고, 주장할 때는 주장할 줄 알아야 나라의 편안함이 그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습붕이야말로 그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습붕의 사람됨은 행동할 때는 반드시 그 역량을 헤아려 보고, 일할 때는 반드시 그 재능을 고려합니다.”

     

       뜻밖의 대답이다. 한 마디로, 훌륭한 정치가란, 유연성과 포용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포숙은 선악과 호불호가 너무 분명하여 재상의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관중의 사비분별력도, 자기 죽마고우인 포숙의 그것만큼이나 뛰어났던 셈. 그들 포숙과 관중의 우정이여! 사람 보는 눈이여! ()과 사() 판별력이여!

        다시 한 번 거대 중국의 역사 속 두 위인들을 떠올려보며, 내 화단에서 베어낸 관중그루터기를 감나무 발치에다 거름삼아 덮어준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