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수필작가 윤근택이가 신작 및 기발표작 모아두는 곳임.

Today
Yesterday
Total
  • 분통(憤痛) 덕분에
    수필/신작 2019. 1. 14. 21:46

     

     

                                           분통(憤痛) 덕분에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63년 여 살아오는 동안, 타인으로 말미암아 분통터진 일이 한두 번 아니다. 특히, 사반세기 동안그 떵떵대던 직장에 다녔지만, 그곳에서도 예외 없이 상사나 동료들의 헐뜯음 등으로 나 자신이 저평가된(?) 적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마다 속으로 삭임으로써 더 좋은 결과를 얻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를 두고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들 한다.

     

     문득, 오늘은 제법 큰 빈 깡통소리를 듣다가, 역사 속 인물을 다시 떠올리게 될 줄이야! 참말로, 우리는 그가 고안해낸 그 훌륭한 물건을 깡통이라고 불렀다. 그 기계가 작동할 적에는 온 방 가득 드르륵 드르륵’  기계음을 일으켰다. 미국 미주리주 장의사(葬儀士)였던 그. 그도 크게 분통터지는 일을 겪게 된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초상이 나면, 주문이 밀려 호황을 누렸는데... . 언제부터인가 주문 전화가 퍽 줄어들어 사업을 망치게 되었다. 해서, 그는 그 사유를 파고들었다. ‘공전식 수동교환기를 운용하던 전화국 교환원의 소행이었다. 그 교환수는 이제 막 또 다른 장의사와 결혼한 상태. 그녀는 고객으로부터,“ 시내 장의사 한 군데 연결해 주세요.” 전화를 받을 적마다 자기 남편 전화번호를 대어주고 코드를 꽂아 연결해주곤 했던 것이다. 그는 곧바로 당해 전화국에 찾아가 항의도 해보았고, 심지어 소송까지 하였으나 별반 소득이 없었다. 해서, 그는 엔지니어인 자기 조카와 갖은 노력 끝에 인류 최초로 전화자동교환기를 고안해 내었다. 물론, 그는곧바로 특허를 내었다. 그때가 1891. 대체, 그가 누구냐고? 바로 그가알몬 스트로우져(Almon B. Strowger)’. 그가 만들어낸 이른바 스트로우져 교환기는 그 이후 100여 년 동안 자동교환기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Step by step’방식을 우리는 스트로우져 방식이라고 부르곤 했다. 다이얼을 돌렸다가 다시 돌아갈 적에 접점(接點)마다에서 전류가 흘러 기계로 하여금 숫자를 인식케 하는... .

     

     자, 내가 스트로우져를 알게 된 데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 나의 신실한 애독자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나의 과거사를(?) 이미 알고 계신다. 나는 체신부에서 통신 분야가 막 분리되어, ‘한국전기통신공사[KT의 전신(前身)]’ 로 발족하였을 때 사무직 초급사원 1기생으로 들어간 사람이다. 내 첫 발령지는 고향인 경북 청송에 자리한 청송전신전화국’. 때는 1984. 그때 그곳에는 ‘ST 교환기(스트로우져 교환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4,000회선이었으며, 기계실에는 퍽이나 많은 깡통 모양의 그 교환기 기계들이 매달려 있었다. 어쩌다 그 방에 들어가면, 소리는 왜 그리 요란하던지. 한편, 그때까지도 면 단위 지역에는 공전식 수동교환기가 설치되어 1,400회선을 수용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자동교환기와 자석식 교환기로 이원화되어 있었던 셈. 해서, 숙녀들로 구성된 교환실이 운용되고 있었다. 그들은 기량평가라고 이름붙은 번호암기가 주요업무였다. 명절 전후, 읍내 업체 사장들은 경쟁적으로 그들 교환원들한테 선물공세를 취하기도 하였다. 위에서 소개한 장의사스트로우져의 스토리를 연상하게 하는 일.

     

     내가 사무직이었기는 했으되, 통신기술직 직원들한테는 못 미치지만, 교환기와 관련해서 곤욕 아닌 곤욕을 치른 적도 많았다. 공중전화 사용량과 낙전(落箭;거스름돈)’이 서로 맞지 않는 일도 잦았다. 그러니 상부에서는 삥땅했을 걸로오인하기에 딱 좋았다. 해서, 부득이 매월 지수가 제대로 맞지 않으면, 통신기술직 직원의 도움으로 그 지수를 송곳으로 강제로 돌려 사진관에 의뢰하여 정기적으로 촬영했던 기억. 어디 그뿐인가. 승진에 필수코스인 연수원 교육 때에도 스트로우져 교환기를 비롯해서 백화점식으로 널린 그 많은 교환기의 특성 등을 억지로 익혔던 기억. 그것까지도 약과(藥果)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대구직할시에 소재한 본부에 스카우트되어 2년여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때 매월 대구 및 경북 전체의 계약자수를 집계할 적에는 혼쭐이 났다. 교환기 기종별로 집계하여 본사로 보고해야 했던 관계로. 가뜩이나 숫자에 어두운 내가... . 벌써 30여 년 세월이 흘렀으나,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남은 전화교환기의 이름들은 꽤나 된다. ST, AXE-10, No1-A... S1240, 크로스바, EMD, M10-CN, ESK, TDX-1,TDX-10 ... . 이것들 모두가 내가 매월 기종별로 시설수 및 계약자수를 집계해야했던 교환기 기종들이었다.

     

     내 신실한 애독자 여러분께 위에서 주욱 소개한 교환기 기종들 가운데 몇을 덤으로 간략히 소개하겠다. 교환기실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몸서리가 나서인지, ‘M10-CN’엠텐씨엔으로 부르지 않고10-씨엔으로 불렀다는 거 아닌가. TDX-1은 국내 연구진들이 개발한 국산 전전자교환기(ESS). 내가 재직 중에, 경북 고령에 전국 최초로 설치되었다. 그렇게 해서 거듭거듭 발전해나간 순서에 따라, TDX-10식으로 숫자가 더해졌다. 사실 당시 연수원에서 교관으로부터 들은 이야긴데, 스웨덴 에릭스(Ericsson)에서 개발한 ‘AXE-10’프로그램을 훔쳐 베꼈다는 거 아닌가. 그 두 기종의 특징은 공히묘듈화(modul)’되어 있다는 거. 그때 교관은 칠판에다 여러 생선을 얹은 접시를 그리고서 모듬회라고 일러주었던 기억. 물론, 시험 답안에도 모듈화라고 적었다. 어쨌든, ‘TDX’ 시리즈물로 하여 전국 광역화가 완성되었고, 외국 수출까지 하고 있다니, 국민 모두가 자부심을 느껴도 될 터.

     

     이제 내 이야기는 다시 분통터졌던 장의사 스트로우져로 돌아간다. 그는 분통이 터졌기에 인류 역사상 위대한 자동교환기를 그처럼 고안해 내었다. 나는 그가 통신장비에 관해서 문외한이었다는 점을 놓칠 수가 없다. 매양 내가 신실한 나의 독자들한테 비슷한 이야기를 해 왔지만, 남이 엿 먹으라고 할 적에 그것이 곧바로 꿀이 되더라는 거. 살아생전 내 양친이 자주 일러주던 말도 비슷하다.

     

     “이 눔들아, 아무튼 (한이) 맺힌 구석이 있어야 한대이. ”

     

     성경 시편 126(순례의 노래)에도 분명 적혀 있다.

     

     ‘눈물로 씨 뿌리던 이들 환호하며 거두리라.(5)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이 곡식 단 들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6)’

     

    다시 한 번 분통터졌던 역사 속 스트로우져를 생각하며 글 줄이기로 한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