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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 라인(Pipe-line)’을 듣다가수필/신작 2019. 1. 18. 21:14
아름다운 꿈 꾸세요.
‘파이프 라인(Pipe-line)’을 듣다가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마침 라디오에서 ‘벤처스악단(The Ventures)’의 연주곡,‘파이프 라인(Pipe-line)’이 흘러나온다. 이 연주곡을 듣노라면, 저절로 흥이 났던 기억.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본디 이 곡은 ‘첸테이스(The Chantays) 악단’의 연주곡이었다. 첸테이스는 1962년 캘리포니아주의 ‘Santa Ana고등’학생으로 결성된 5인조 그룹으로, 1963년에 ‘Pipe Line’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으로 공전(空前)의 히트를 했다. 국내 D.J의 대부, 최동욱씨를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 줬던 ‘동아방송’의 ‘Top Tune Show’ 의 시그널뮤직으로 더욱 유명한 곡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벤처스의 곡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 곡‘파이프 라인’은 ‘송유관(送油管)’을 뜻하는 게 아니란다. 하와이의 명소(名所)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Sunset- Beach’의 ‘반자이(Banzai) 해안’의 파도를 일컫는다고 한다. 그곳은 파도가 높고 둥근 터널 모양을 만들어 내기에, 해마다 서핑 콘테스트까지 열리는 곳이란다. 그렇게 파도가 칠 적에는 마치 ‘멍석말이’처럼 ‘파도 터널’을 지어내게 되는데, 그걸 ‘파이프 라인’이라고 이름지어 노래한 거란다. 아무튼, 다시 들어도 신나는 음악이다.
파이프 라인이라... 문득 겹쳐지는 장면이 하나 있으니, 이미 위 단락에서 소개한 ‘멍석말이’가 그것이다. 사실 우리는 어릴 적에, 내 선친(先親)이 손수 결어 만든 짚멍석을 잘도 말곤 하였다. 우케를 말린 다음, 혹은 모기향을 피우고 둘러 앉아 저녁밥을 먹은 다음, 그 짚멍석을 정성스레 말곤 하였던 기억. 그게 멍석말이이지만, 형벌의 수단으로, 죄지은 이를 멍석에 말아 뭇매로 때려죽이는 것을 두고도 멍석말이라고 하였다는 거.
나의 연상(聯想)은 금세‘권토(捲土)’ 혹은 ‘권토중래(捲土重來)’에 닿게 된다. 권토란,땅[土]을 말아대는[捲] 걸 이른다. 부대가 말[馬]을 달려 전진할 때 일으키는 흙먼지가, 멀리서 보면 마치 땅을 말면서 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권토중래란, 한 번 패했다가 세력을 회복하여 다시 쳐들어오는 걸 이르며, 실패 후에 재기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이번에도 내가 요즘 즐겨 쓰는 ‘꼴라주(collage) 기법의 수필’ 형태를 또 취하고자 한다. 이번에는 ‘DAUM 백과’ ‘고사성어대사전’에서 떼다 붙인다.
<초패왕 항우(項羽)와 한왕 유방(劉邦)이 천하를 놓고 다투었던 초한 전쟁은 5년간 지속되다가
유방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유방이 협정을 위반하고 항우를 공격했다. 홍구위계(鴻溝爲界) 참조) 항우는 해하(垓下)에서 유방의 한나라 군대에 포위되었는데, 밤에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이미 싸움에 진 것으로 착각하고 낙담하고 말았다. 사면초가(四面楚歌)참조. 궁지에 처한 항우는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800명의 기병을 인솔하고 포위망을 뚫었다. 하지만 회하를 건넌 후 남은 군사는 100여 명뿐이었다. 이들은 음릉(陰陵)에 이르러 그만 길을 잃고 말았는데, 한 농민에게 속아 왼쪽 길로 도주하다가 늪을 만나 시간을 허비하고, 다시 되돌아와 동성(東城)에 이르렀을 때는 고작 28명이 남아 있었고, 수천의 추격군과 맞닥뜨리게 된다. 항우는 이 28명을 4대로 나누어 돌진하여 수없이 많은 한군을 사살하고 다시 뭉쳐 포위망을 뚫고 계속 동쪽으로 도주했다. 이 전투가 바로 유명한 동성쾌전(東城快戰)인데, 여기에서 항우의 부하들은 단 2명이 죽었을 뿐이다. 치열한 전투 끝에 오강(烏江)에 이른 사람은 고작 26명. 오강의 정장(亭長)이 배를 대놓고 말했다. “강동이 작다고는 하지만 아직 천 리 땅이 있고 몇 십만 백성이 있으니 왕업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빨리 강을 건너십시오. 지금 신(臣)만이 배를 가지고 있으니 한나라 군대가 와도 강을 건너지 못할 것입니다.” 항우가 웃으며 말했다. “하늘이 나를 버렸는데 내가 어떻게 강을 건너겠는가. 또한 내가 강동의 자제 8천 명과 함께 강을 건너 서쪽으로 갔었는데 지금 한 사람도 돌아가지 못한다. 설령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동정하여 왕으로 삼아 준다 한들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볼 수 있겠는가. 설령 그들이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 마음에 부끄럽지 않겠는가?” 이렇게 말하고 정장에게 자기가 타던 말을 선물했다. 항우의 부하 26명도 모두 말에서 내려 한군과 또 한바탕 치열한 접전을 벌여 항우 혼자서만도 100여 명의 한군을 사살했다. 치열한 접전 중에 항우는 옛 부하였던 한의 장군 여마동(呂馬童)을 발견하고, 천금의 상과 1만 호의 봉읍이 걸린 자신의 수급(首級)을 바쳐 공을 세우라고 소리쳐 말하고 자결하고 만다. 이로써 일세영웅 항우는 장렬하고도 처절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항우의 나이 31세 때였다. 왕예(王翳)라는 인물이 항우의 목을 베어 가졌고, 여마동 등 4인은 항우의 사지를 갈라 가져갔다. 이들은 같은 날 후(侯)에 봉해졌다.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온다. 항우의 초나라는 모두 9개의 군(郡)을 관할했는데, 항우가 패전을 하고 자살하기 직전까지도 5개의 군은 여전히 항우의 수중에 남아 있었다. 하여 후인(後人)들 중에는 항우가 오강을 건너 재기를 노렸어야 했다며 안타까워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강을 건넜어도 별 희망이 없었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다. 당나라의 시인 ‘두목(杜牧)’이 전자에 해당하는데, 그는 오강을 유람하다가 〈오강정(烏江亭)〉이란 시를 지어 일세의 영웅 항우가 오강을 건너 강동으로 가지 않고 자결한 것을 아쉬워하고 탄식해 마지않았다.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의 일로 뜻대로 되지 않는 것/ 수치를 끌어안고 부끄러움을 견디는 것이 대장부지/강동의 자제들 뛰어난 이 많았으니/땅을 말아 다시 올 수 있었을지 어찌 알겠소//
勝敗兵家事不期
包羞忍耻是男兒
江東子弟多才俊
捲土重來未可知
두목의 이 시에서 ‘권토중래’가 유래했다.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으로는 송나라의 문인으로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왕안석(王安石)을 들 수 있다. 그 역시 〈오강정〉이라는 제목의 시를 남겼는데, 두목과는 상반된 관점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싸움에 지친 장사들의 슬픔이여/중원의 싸움에서 패하고 나니 세를 회복하기 어려워라/지금 강동의 자제들이 살아 있다고 해도/대왕과 더불어 땅을 말아 오려고 하겠소?
百戰疲勞壯士哀
中原一敗勢難回
江東子弟今雖在
肯與君王捲土來 >
(이상 [Daum백과] 권토중래 – 고사성어대사전에서 베껴옴.)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과 송나라 시인 ‘왕안석(王安石)’은 동일 전쟁사(戰爭史)와 동일 전장(戰場)을 바라보는 견해는 위의 시에서 보여주듯 각각 달랐다. 하더라도, 그들 양인(兩人)은, 시대의 영웅이며 패전(敗戰)을 한 항우를 무척 안타깝게 여긴 것만은 사실이다. 그들 시인들은 각각 노래했다. 31살 젊은 나이에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자결(自決)하기에 앞서 유언인양 부하들로 하여금 현상금이 걸린 자신의 수급(首級)을 적에게 내어준 역사 속 항우를 그렇게 노래했다.
라디오에서 흐르던 벤처스의 ‘파이프- 라인’연주곡은 이제 막 끝났지만, 여음(餘音)으로 남는 이유를 정말로 모르겠다. 아마도 아마도 63년 여 살아오는 동안 타인의 헐뜯음 등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어왔던 기억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실 지금으로부터 3개월 전 쯤에도 나는 어떤 이의 거짓보고(?)로 인하여 어느 아파트 경비원에서 해고된 적 있는데, 와신상담(臥薪嘗膽)해 왔다. 오히려 급여가 월 40여 만 원 더 늘어난 아파트로 왔고, 이번엔 경비원이 아닌 전기 주임 자리를 꿰찼다. 하더라도, 명예회복 내지 복권(復權)을 내내 생각해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자 기회가 기어이 왔다. 그 아파트 관리 용역업체가 바뀌어, 나를 모함했던 그이뿐만 아니라 모조리 해고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나. 나는 떠나왔던 그 아파트 경비원 구인(求人) 광고를 보았으며, 응모를 하였다. 며칠 후 나는 말을 타고“이랴!이랴!”몰아, 흙먼지를 일으키며 그곳 면접장으로 달려갈 텐데... . 그것이야말로‘파이프 라인’ 혹은 ‘권토중래' 아니겠는가.
작가의 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하는 말이 있습니다.
문장과 문장, 단락과 단락이 서로 혼집(混集)이 아닌,
'의미로운 결합(結合)'이어야 합니다.
무릇, 작가는 연상작용도 빼어난 사람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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