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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7-17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우선,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도 더러는 아실 듯한‘성인유머’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도록 하겠다.
같은 마을에 홀애비와 과수댁(寡守宅)이 각각 살았다. 둘 다 해마다 경쟁적으로 고추농사를 하였다. 그런데 과부(寡婦)네는 연년(年年) 풍성한 수확을 보았던 데 비해, 홀애비네는 흉작을 거듭하였다. 이에 홀애비는 그 비법을 알아내고자 무던히 애썼으나, 과부는 도대체 그 노 하우(know-how)를 알려주지 않았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홀애비는 호시탐탐 과부의 고추 재배법을 커닝하게 이른다.
홀애비는 드디어 그 비법을 알아내게 된다. 그러고는 혼잣말을 하게 된다.
‘별 거 아니네. 저 과부가 요요한 달빛 아래 소복(素服)하고 고추밭 고랑을 누비고 다니던 걸! 나한테는 스물, 열아홉 연년생 딸들이 있으니... .’
홀애비는 두 딸들한테 통사정을 하였다. 해서, 아버지 간청에 못 이긴 두 딸들은 팬티만 걸치고 고추밭 고랑 사이를, 달밤에 휘젓고 다녔다. 그러했건만, 홀애비는 그 해 고추농사도 또 망치고 말았다는 거 아닌가. 왜? 과부보고도 바짝바짝 섰던 고추들이... 숫처녀들을, 그것도 쌍으로 보았으니 모조리 그 정도가 넘쳐(?) 터져버렸던 게다.
지금부터는 실제로 나의 경험담이다. 시장 종묘사에서 수박 묘, 참외 묘, 토마토 묘 등을 사다가 심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것들 열매들이 한창 굵어질 무렵, 무슨 이유인지 턱턱 갈라지는 불상사가(?) 생겼던 기억. 특히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그런 일이 생겨났다. 뒤늦게 안 일이지만, ‘21-17-17’로 대변되는 복합비료 즉, 화학비료를 과다시비(過多施肥)한 탓이었다. ‘21-17-17’에 관해서는 이따가 다시 소상히 소개하겠다. 그때 나는 가뭄과 뙤약볕에 시달리던 위 수박 따위의 작물들 발치에다 속효성(速效性)인 화학비료를 뿌려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소낙비가 내려 그 화학비료가 녹자, 수박 등의 작물들은 ‘웬 떡!’하며 한껏 그 비료성분을 실뿌리를 통해 빨아들였을 것은 번한 이치. 그랬으니, 위 성인유머 속 홀애비네 고추 꼴이 되었을 수밖에! 급격한 외부환경변화에 따른 즉, 열기(熱氣)에 데고 냉기(冷氣)에 식고를 번갈아 하는 통에 그 참하던 수박이 ‘쫙쫙’ 갈라졌던 것이다. 사실 그러한 열과(裂果)를 예방코자 종이나 잎으로 과일을 가려주는 것도 보완책임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지만... .
자, 나는 속효성 비료인 화학비료의 무절제한 사용의 폐단을 위 단락에서 이야기하였다. 이제 조심스레 위에서 미뤄뒀던 ‘21-17-17’로 접근한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비료의 3원소는 질소·인산·칼륨인데, 이들의 함유비를 ‘21-17-17’따위로 표현한다는 거. 가령, 포대에 그렇게 표현된 복합비료는 이들 성분이 각각 21퍼센트,17퍼센트,17퍼센트 함유되어 있다. 이들을 다 합쳐 51%이고, 나머지 49%는 ‘화학적으로 결합시키기 위한 화합물질’이다. 이들 3대 원소 가운데 질소 성분이 꽤나 문제가 된다. 주로 질소는 식물의 키를 멀쑥하게 키우는 데 이바지한다. 그런데 질소를 과다하게 주면, 작물은 몸이 허실해서 쓰러지기가 쉽다. 이를 농업전문용어로 ‘도복(倒伏)’이라고 한다는 거.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도 가끔 보리밭의 보리들 혹은 벼논 벼 들이 그야말로 단체로 넘어진 광경을 더러 본 적 있을 것이다. 대개 농부가 욕심 부려 질소비료를 많이 준 데서 비롯되었다.
그 누구라고 밝히기는 뭣하지만, 일전 내 ‘밭 이웃’ 인 선배가, 내 농막에서 새참술을 나눠 마시며 자기가 시장에서 육묘업자한테서 사다 심은 고추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자네는, 자네 고향 청송의 형님댁에서 사다가 심었다는 저 고추 꼴이 왜 저 모양이야? 내 밭의 고추는 키가 커서 곧 열매가 달리겠던 걸!”
초보 농사꾼이며 농사에 관한 한 여태 일머리가 아니 돌아가는 선배. 그는 품귀현상으로 인하여 포기당 400원에, 그것도 뒤늦게 사다가 심은 데 대한 자위(自慰)와 부러움을 그렇게 달리 표현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기는 했지만... .
“성님, 해마다 경험하셨겠지만, 육묘업자들의 고추모는 믿을 수 없어요. 검증이 아니 되잖아요! 그들은 육묘공장에서 질소비료를 주어 겉보기만 멀쑥하게 키워내는 경향이 있겠지요. ”
나는 선배가 이번만큼은 제대로 알아들으라고, 부연설명을 해나갔다. 보리의 경우, 잎이 7장이던가 9장이던가 나온 후에야 이삭이 팬다는 거. 그걸 ‘유년기를 거쳐야 한다’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는 거. 마찬가지로, 음부(陰部)에 털도 아니 난 유치원생이 결코 아이를 만들지 못한다는 거. 해서, 선배의 고추모는 내가 자기 일을 거들어 이식하면서 그 줄기를 만져보았을 때 목질화(木質化)가 채 아니 되어 유들유들하더라는 거. 대신, 내가 고향에서 가져온 고추모는 그 줄기가 이미 목질화 되어 있다는 거. 고추 특산지이며 30~40년 동안 고추농사를 해온 형님으로부터 가져온 고추모이니, 여축없다는 거. 그러니 고집부리지 말고 내년부터는 고추모를 제발 예약하라는 거.
다시 ‘21-17-17’로 이야기를 돌린다. 사실 잘 먹고 지내는 우리네 이웃들은 과다체중 따위로 다이어트니 운동이니 하며 요란법석을 떠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찬가지다. 속성비료인 화학비료가 나온 덕분에 작물재배에 그다지 어려움이 없다. 하기야 북한 주민들은 이러한 화학비료마저 부족하여 아직도 기근으로 이어지기는 하지만... 그런데 나의 신실한 애독자들께서 아주 심각히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21-17-17’로 대변되는 비료의 3대 원소가 작물의 생장을 좌우하는 게 아니라는 점. 실제로는 칼슘이니 마그네슘이 하는 미량요소들이 작물의 생장을 좌우한다는 거 아닌가. 가령, 가지과(가지科)에 속하는 고추의 경우, 칼슘분이 부족하면 풋고추의 끝이 마치 탄저병에 걸린 듯 흉물스럽게 마른다. 초보 농사꾼은 그 사실도 모르는 체 ‘탄저병 예방약(치료제)’를 살포하게 된다. 사실 고추나무는 토양 속 칼슘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가뭄이 심하면 칼슘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다가 비가 내리면 그 ‘칼슘부족 현상’은 한방에 해결된다는 거 아닌가. 이렇듯 미량요소들이 식물의 생애를 좌우한다는 거 새삼 놀랍다.
어디 그러한 점이 비단 식물에만 그치랴! 세상에 둘도 없던 ‘아킬레스’도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그의 발목 힘줄 즉, ‘아킬레스건’. 우리네가 얕보거나 놓쳐버리기 쉬운, 식물한테 미량요소 같은 존재들이 우리 실생활에 얼마나 많을까. 나는 ‘21-17-17’모두 합쳐 51%에 지나지 않는 복합비료를 다시 생각한다. 이미 위에서 이야기하였지만, 복합비료의 나머지 49%는 이들 ‘21-17-17’을 ‘ 화학적으로 결합시키기 위한 화합물질’로 채워져 있음을 더 이상 지나쳐 볼 리가 없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 나는 숨겨진 ‘비밀의 미량요소’를 늘 떠올리리라. 내가 농사를 하는 동안 거듭거듭 밑거름 곧, ‘기비(基肥)’에도 유념할 것이며 웃거름 즉, ‘추비(追肥)’에도 유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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