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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족
    수필/신작 2019. 4. 27. 04:30

            보족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마침 비가 오기에, 농부인 나는 이른바 ()치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경산 시내 공구골목으로 나섰다. 이곳저곳 농기구 수리센터 등을 찾아 전동분무기의풀리(pulley,sheave)’를 구하고자 하였다. 풀리란, 전동기축에 끼워 벨트를 거는 원통형의 바퀴를 이른다. 벨트바퀴라고도 하며, 흔히들 일본식 발음으로 뿌레라고 부른다. 내가 들고 간 풀리에는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다. 내 농장에는 무려 네 대의 전동분무기가 있는데, 두 대의 전동분무기로도 족하나, 두 대는 여벌이다. 예비품이다. 그 여벌 가운데 하나는 마력수도 좋아 성능이 뛰어나지만, 본디 그 풀리는 전동기축에 끼웠을 때 헐거웠다. 게다가 내가 볼트와 풀리 사각키또는 풀리 기어 사각막대를 제대로 꽉 죄어주지 않음으로써 벨트가 벗겨지고, 풀리마저 허공에 날아가 저쯤 달아난 적이 있다. 해서, 그 전동분부기를 여태 방치하다시피 하였다.

       그건 또 그렇다 치자. 농기구수리센터 두 군데, ‘모터 집한 군데에 그 문제의 풀리를 들고 갔으나, 내가 원하는 풀리를 도대체 구할 수 없었다. 그들의 말은 매운 고추 먹은 듯 거의 같았다.

      “ 원동기를 통째로 들고 와야 궁합이 맞는 풀리를 맞춰 드릴 게 아닙니까? 우리 가게에는 ... .”

      ‘내가 어떤 사람인데... .’

       세 번째 모터집에 갔다. 문은 닫혀 있고, 외출 중이었다. 간판에 적힌 휴대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친절히 전화상으로 풀리 전문가(?)’공업사를 안내해 주었다.

       역시 프로는 프로였다. 그는 내가 들고 간 풀리의 내경(內徑)을 게이지(gage)로 재고, 이 둥근 막대 저 둥근 막대를 거기다가 시험적으로 끼워댔다. 그 막대란, 원동기축의 모형이었다. 사실 나는 그 문제의 풀리와 함께 또 다른 풀리를 하나 들고 갔던 게다.

      “사장님, 제가 쓰던 이 풀리는 약간 헐겁고,경운기에 쓰던 이 풀리는 약간 구멍이 쏠아 들어가지 않더군요.”

      그는 내가 제공한 정보를 통해, 그 많은 종류의 풀리들 가운데에서 내가 들고 간 풀리와 크기 및 모양이 똑 같은 걸 골라, 이내 선반작업을 해 나갔다. 풀리의 내벽을 기계는 그의 도움으로 정교하게 깎아 나갔다. 그는 다시 원동기축 모형의 막대를 끼웠다.

      “이거면 제대로 맞을 겁니다. 하더라도, 이번엔 볼트구멍을 한 개가 아니 두 개로 뚫어드릴 테니, 그 하나는 사각 키홈에다 맞춰 죄고... .”

      “역시 프로는 아름다워!”였다. 고작 2만원에, 정교한 3~4개 공정을 거친 맞춤형 풀리가 탄생되었다. 그는 폭 7mm ‘풀리 키도 끊어나한테 쥐어 주었다.

       그 나무 쪼개저젓가락처럼 생겨먹은 사각의 막대. 그걸 일컬어 (key)’라고 부른다는 거 아닌가. 핵심·중요한·주요한·열쇠 따위로 새겨지는 key! 사실 그 작디작은 사각의 막대가 없으면, 풀리와 원동기축은 결합이 아니 된다. 설령, 둥근 축과 둥근 풀리의 내벽은 궁합이 맞더라도, 회전하는 동안 헛돌기 마련이다. 그 것들 단면들을 보았을 때 각각()이 된다. 그 파인 홈에다 사각 막대, ‘를 채우게 되고, 위에다 볼트로 채워 키가 빠져 달아나지 않게 되면, 풀리와 원동기축의 결합은 완결. ‘요철(凹凸)’의 신비로움이여! 작디작은 사각막대의 힘이여!

       그 사각의 막대로 하여 내 생각은 어느새 쐐기에까지 닿고 만다. 삼각형으로 만든 그 물건을 쐐기라고 부른다. 쐐기는 실생활에 아주 유용한 고안품. 고대인들은 커다란 바위를 쪼갤 때에, 나무쐐기를 바위틈새에 꽂고, 거기다가 물을 부어 얼리거나 불리거나 하였다고 전한다. 얼마나 효율적이며 지혜로운지! , 나무판이나 돌판에다 끌 따위로 파서 만든 고대 문자가 쐐기꼴이라서 쐐기문자혹은 설형문자(楔形文字)’라고 불렀다는 거.

       내 생각은 어느새 보족에까지 닿았다. 내 아버지는 살아생전 보족을 친다라는 말을 즐겨 썼다. 도끼에다 도끼자루를 끼울 때에는 (+)자 꼴또는 (*)로 칡을 도끼구멍에 대고 도끼자루를 끼워 망치질했다. 그러는 걸 보족을 친다고 했다. 국어사전은 보족쐐기의 방언으로 소개하고 있다. 모르긴 하여도 , ‘보족곁다리, ‘補足에서 온 말인 듯. 어쨌든, 내 아버지가 일컫던보족풀리 키와 마찬가지로 ‘key’였음에는 분명하다. 그게 핵심이었다. 그게 없었으면 앙꼬 없는 찐빵’.

       농장에 돌아온 나는 그 공업사사장의 조언대로 사각 키를 채워 풀리를 전동기축에다 끼워 볼트가지 단단히 채웠다. 그리고 벨트를 감고 시동을 걸어보았다. 한마디로, ‘야호!’였다.

       이번 일로 하여 덤으로 얻게 된 지혜. 세상만사 ‘key’는 분명 존재한다는 거, 아귀가 딱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거, 0.001mm 오차도 아니 통한다는 거. 수필작가이기도 한 나는, 글을 짓되, ‘key-word’가 있는 글을 지어야겠다는 다짐도 해 본다. ‘앙꼬내지 ‘core’로 바꾸어 말할 수 있는 게 풀리 키임을 알았기에.

     

     

       작가의 말)

       나는 늘 말하곤 한다.

    생활이 수필이요, 수필이 생활이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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