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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84) - 결국 자신을 위한 ‘레퀴엠(requiem)’을 적은 음악인-수필/음악 이야기 2022. 7. 7. 12:26
폭염이지요?
꾀 많은, 지혜로운 이 '윤 농부'는요,
'131번(일기예보)' 전화 수시로 걸어,
하늘의 사정에 맞춰 농사를 해나가요.
엊그제는요,
해질녘까지 들깨모를 300여 평 밭에다 다 이식했어요.
스프링클러를 틀어 샤워도 하면서, 들깨모에 물도 주어가면서... .
우리끼리만 얘기인데요,
아내, '차 마리아님'은 도저히 그 일머리가(?) 아니 되겠더라고요.
꼼지락대어서요.
섬세한 거는 몰라도, '대충 철저히'는 저한테 못 따라와요.
해서, 역할 분담을 제의한 거죠.
들깨모 쪄다 나르고, 농주인 막걸리 새참술로 내오고,
종종 물이 덜 가는 들깨모에 호스로 물주기 등.
오늘 새벽 아파트 경비실에서 퇴근하여 농장으로 와 보니 90% 팔팔하게 살았데요.
여름철 성가시는 '바랭이풀'만 골라잡는 제초제 두 말을 치고,
개울에서 홀라당 벗고, 멱을 감고, 팬티며 와이셔츠(지난 날 직장 다닐 때 입었던 게 이제는 작업복 역할)며
양말이며 장화며 온갖 걸 빨아 바윗돌에 걸쳐두고... .
고맙게시리(?), 잔소리꾼 '차 마리아님'은 성당 봉사활동으로(?) 따라 오지 않아 '자유 한껏'.
님들께서 또 은근히 기다리실 것 같아, 모차르트의 레퀴엠 적었지요.
사실 잠깐이면 적어요. 사전에 메모도 하고 머릿속에도 넣고 하니까요.
글감은 흔해빠졌고요.
부디,
아름다운 나날.
아닌 척 하면서도 저를 무척 사랑하시는 님들,
더위 잡수시면 아니 되어요.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84)
- 결국 자신을 위한 ‘레퀴엠(requiem)’을 적은 음악인-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우선, 본인이 이미 적어 인터넷 매체에 올린 ‘레퀴엠(requiem)을 바침’이란 수필작품의 앞부분을 여기 베껴다 붙인 후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하자.
* 인터넷 검색창에다 ‘윤근택의 레퀴엠을 바침’ 치면, 글이 딸려 나올 것이다.
< 레퀴엠(requiem), ‘Requiem ateranam dona eis Domine(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의 첫 말이다. 즉, ‘레퀴엠’은 ‘안식을… .’의 뜻을 지닌다. 이는 본디 성당에서 장례미사에 쓰인 곡이기도 했다. 후일, 이 레퀴엠은 독립적인 음악 장르로 자리잡게 되었고, ‘진혼곡(鎭魂曲)’으로도 풀이된다. 모차르트, 케르비니, 베를리오즈, 베르디, 가브리엘 포레 등을 5대 레퀴엠 작곡가로 꼽는다. 이들 다섯 작곡가들이 레퀴엠을 작곡한 동기도 제각각이다. 하나하나 소개해 보기로 한다.(하략)>
모차르트(1756~1791,오스트리아)는 35세에 요절했다. 대체, 그의 그 짧은 생애 말년에 무슨 일이 있었던지에 관해서는, 내 ‘화제 전개’를, 아무래도 이번에는 ‘시간적 배열’로 함이 좋을 듯.
1790.?.?.
그는 세상을 뜨기 한 해 전부터 시작한 오페라 <마술피리>를 1791. 9.28.완성하게 된다. 경제적으로 궁핍할 대로 궁핍해진 그. 그는 속된 말로, 찬밥 더운 밥 가리지 않고, 의뢰 건을 모조리 소화해내야만 했다. 게다가, 친분이 두터운 대본가 ‘요한 엠마누엘 쉬카네더’가 건네준 대본이었기에, 혼신의 노력으로 그 작품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 작품을 쓰는 동안에도 여러 차례 쓰러졌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그는 살아생전 그 작품 초연도 보들 못하였다. 그 숱한 시련에도 ‘침묵의 서약’을 끝끝내 지킨 남자 주인공 ‘타미노’가, ‘밤의 여왕’의 하사품 마술피리 등의 덕분으로, ‘밤의 여왕’의 공주인 ‘파미나’를 악인들로부터 구해 부부의 연을 맺게 되는 그 <마술피리>. 참말로, 모차르트, 그도 작중인물 ‘타미노’처럼 마술피리를 불며 자기 생명을 연장하여 ,‘파미나’ 공주와 환희의 노래를 한바탕 부르고 싶었겠지만... .
1791.7월 어느 날.
어느 남자가 은밀히 모차르트한테 찾아온다. 온몸을 검은 옷으로 감싼 남자.
“어떤 분의 부탁으로 왔습니다. 그 값은 얼마라도 좋습니다. 그분은 지난 2월 자기 부인이 세상을 떴고, 내년에 기일(忌日)을 맞게 되는데요, 자기 이름으로 지은 레퀴엠을 영전에 바치겠대요. 단, 시간은 넉넉히 드릴 게요.”
모차르트는 쇠약할 대로 쇠약했고, 궁핍하기 그지없었다. 나중에 계약서 등으로 밝혀진 사실이지만, ‘후란쯔 폰 발제크 슈투파라 백작’의 청탁이었다. 당시는 유력인사들이 작곡가들을 부려 써서(?) 곡을 적은 다음, 자신이 적은 걸로 유세 아닌 유세를 떨던 분위기였다고 한다. 특히, 그 백작은 그처럼 허세부리기를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그 검은 옷을 입은 심부름꾼의 복장을 보고,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였을 거라는 게 중론(衆論)이다. 사실 부인인 ‘콘스탄체’한테도 “아마 나의 레퀴엠이 될 것 같소.” 말했단다. 그는 그처럼 저승의 사자(使者)가 왔다갔다 하는 가운데 그 곡을 작곡해 나갔다.
1791. 12.4.
그는 몇몇 친구를 불러들여 여태껏 작업한 부분까지 시연(試演)을 하며, 울음을 터뜨린다.
“이제 겨우 제 3곡 제6부 제 8마디‘ 라크리모사( Lacrimosa,‘슬픔의 나날’,‘눈물겨운 그날이 오면’ 등의 뜻을 지님.)까지밖에 짓지 못했는데... .”
그는 침대에, 병들고 지친 몸을 수시로 누이는 등 몹시 괴로워했다.
한편, 그는 애제자 ‘쥐스마이어’를 불러, 중단된 제 4곡 이후를 어떻게 할 것인지 지시하게 된다.
1791. 12.5.오전 1시 55분.
그는 눈을 감았다. 그가 이승에서 누린 나이는 35세.
그러기에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미완성곡이다. 나머지 부분은 제자 등이 적었다고 보면 옳다. 그의, 남을 위해 쓴 레퀴엠이 자신의 진혼곡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고인이 된 모차르트는 자 신이 적은 레퀴엠을 듣지 못하였다.
여기서 잠시. 여타 작곡가들의 레퀴엠도 가톨릭 미사 전례 등에 따라 유사하지만, 그의 레퀴엠 구성을 살펴보고, 그 레퀴엠 후일담을 마저 하도록 한다.
제 1곡 : 입당송. 아다지오,d단조
제 2곡 : 자비송. 알레그로, d단조
제 3곡 : 부속가
제 1부 : 진노의 날
제 2부 : 나팔소리 사람 불러
제 3부 : 지엄대왕 자비로워
제 4부 : 착하신 예수님 기억하며
제 5부 : 악인들을 골라내어
제 6부 : ‘ 라크리모사( Lacrimosa,‘슬픔의 나날’,‘눈물겨운 그날이 오면’). 라르케토, d단조.
(여기까지가 모차르트가 적은 부분이다.)
제 4곡 :봉헌송
제 1부 : 주 예수 그리스도여
제 2부 : 제물과 기구(祈求)
제 5곡 : 감사송
제 1부 : 상투스(거룩하시도다)
제 2부 : 베네딕투스(찬미받으소서)
제 3부 : 평화의 찬가(어린 양)
제 7곡 : 영성체송
(위 제 4곡부터 제 7곡까지가 모차르트 제자 쥐스마이어가 보탠 곡이다.)
* 위 용어들은, 가톨릭 전례 용어 등과 마구 섞여있는 점,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 이해해주시길. 어쨌든, 곡 구성은 그렇게 되어있다.
다음은, 모차르트 레퀴엠의 후일담이다. 정작 고인이 된 모차르트 본인은 그 레퀴엠을 장례식에서 듣지 못하였다. 대신, 1840년 나폴레옹 1세의 유해가 텔레나 섬에서 운구될 적에도 그 레퀴엠이 쓰였단다. 1848년 쇼팽의 사망시, 그의 유언에 따라, 그 어떤 레퀴엠도 아닌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연주했단다.
모차르트와 동시대를 살았고,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 출신인 하이든(1732~1809)은 힘주어 말했다.
“모차르트가 어떤 작품을 쓰지 않고 오직 ‘레퀴엠’과 ‘현악 4중주곡’만 남겼더라도, 그는 영원한 명성을 얻는 데 충분하였을 것이다.”
대체로, 음악애호가들은 ‘세상에서 슬픈 클래식 상위 10곡’을 뽑을 적에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꼭 포함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그가 제 3곡 8마디에서 펜을 놓고만 라크리모사( Lacrimosa,‘슬픔의 나날’,‘눈물겨운 그날이 오면’). 라르케토, d단조.
실로, 그 ‘라크리모사’는, 현재까지 1700여 곡 된다는 레퀴엠 가운데에서 가장 애연(愛演)된다고 알려져 있다.
“존경하는 모차르트 선생님, 2022년 기준으로, 231년 전에 저승으로 가신 님께, 당신이 지으신 바로 그 레퀴엠을, 아니 ‘라크리모사’를 영전에 바치나이다. 부디 명복을 누리소서. 아멘.”
작가의 말)
‘자료 챙김’은 몇 몇 날. A4용지에 ‘4B 연필’로 적은 게 10여 장. 완전히 나의 것으로 소화함. 그리고 ‘쓰기’는 잠시.
요체는 영감!
윤 수필작가는 5,000여 편 글을 써오는 동안, 미리 알아서 쓴 글 거의 없음. 쓴 후 관련된 ‘토막 지식 ’얻었음. 그것이 줄잡아 5,000개. 왜? 내가 쓴 글이 그 정도 편수이까. 그러함에도, 숨어 얼굴 내밀지 않는 나의 애독자님들, 님들은 양심에 솜털 났어요?
그리고 이 글도 이 세상에 하나뿐인 그이한테 바쳐요. 이 ‘농부 수필가... ’를 이어가도록 한 데는 님의 역할이 커요. 님은 ‘모티브’를 늘 주고 계셔요. 저한테 글 쓸 수밖에 없는, ‘동기(動機)’를 늘 주시는 분이시까요. ‘소리없는 깊은 강’처럼, 모성애를 항용 실천해보이시는 님.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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