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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15) - 아내, 아내, 그의 아내-수필/음악 이야기 2022. 9. 15. 12:44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15)
- 아내, 아내, 그의 아내-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이번 글은 지난 호 제114화 <수수께끼 변주곡>의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가 바로 ‘엘가(Sir Edward (William) Elgar, 1857~1934, 영국)’이다. 영국이 자랑하는 ‘헨리 퍼셀’ 이후 300여 년 만에 나타난 음악인. 그는 지난 호에서도 살짝 언급했으나, 촌뜨기에 불과했다. 그는 신분상승을 꿈꾸며, 평소 사투리도 애써 아니 쓰려 하였다. 위 그의 이름 앞에 ‘Sir[卿]’가 붙은 것은, 그가 음악적으로 대성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실제로 그는, 1904년 그가 47세가 되던 해에, ‘Sir[卿]’란 작위를 받았다.
그의 9세 위인 아내의 공로는 대단하였다. 엘가가 무심코 즉흥적으로 친 피아노 선율을 들은 그의 아내. 그녀는 진즉 ‘재능 없음’을 자탄하며 작곡을 그만두려는 남편한테 때때로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여보, 그 곡 너무 좋은데요. 다시 한 번 제게 들려줄 수 없을까요?”
해서, 그 선율을 더 늘려 적은 곡이 바로 <수수께기 변주곡> 14개. 그 가운데에서 제 9 변주곡, ‘Nimrod(님로드)’는 아주 인기 있는 곡. ‘님노드’는 구약성경의 인물인, ‘사냥꾼’에서 온 말. 이 작품 주인공의 가장 친한 친구인, ‘Jagar(재거)’에서, 장난스럽게 부르고자... .
‘재거’의 공로도 그의 아내 못지않았다. 그는 어느 출판사 음악 담당 편집자였다. 평소 엘가한테 충고해주는 절친 ‘재거’와 어느 날 대화를 묘사한 곡이 바로 ‘님노드’다. 엘가는 재능 없음을 자탄하며 작곡을 그만두려고 하였다. 그러자 ‘재거’는, 청력을 잃었던 베토벤 이야기를 들려주며, 베토벤의 <비창> 제2악장의 도입부를 흥얼대기까지 하였다. 그러했던 ‘재거’를 떠올리며, 엘가는 그 ‘님노드’에다 그 베토벤의 제 2악장 도입부를 차용하게 된다. 친구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애정이 담긴 ‘님노드’. 엘가의 본의는 친구인 ‘재거’에 대한 우정 표현이었지만, 영국 장례식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추모곡. 우리나라에서는 ‘세월호 참사’ 때에 그 곡이 아주 자주 연주되었다는 거 아닌가.
다시 그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 그는 새로운 악상이 떠오르면, 제일 먼저 아내한테 피아노 연주로 들려주어 의견을 묻곤 하였다. 한번은 합창곡 하나를 짓기 위해 거의 몇 달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식사도 거르다시피 하였다. 마침내 완성단계에 이르자, 아내한테 달려가서 묻게 된다.
“당신이 듣기에 만족스러운 것 같소?”
창백한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의 아내는 그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마음이 가벼워진 그는 침실로 가서 모처럼 푹 잘 수 있었다.
이튿날 아침, 그가 작업실에 갔을 때 악보 위에는 예쁜 쪽지가 하나 얹혀 있었다. 다정한 위로의 말과 함께 애교스런 조언이 적혀 있었다.
“ 여보, 어제는 당신한테 충고보다는 휴식이 더 필요할 것 같아 아무 말 하지 않았어요. 제 생각에는 다 잘 되었고, 그대로 해도 좋겠지만... . 마지막 부분을 한 번 더 생각해보심이 어떨까요? 당신도 생각하지 않는지? 사랑하는 여보, 마지막 부분만 약간.”
사실 피아노 제자였던 9세 위 귀족 가문의 규수와 결혼하기까지 양가(兩家)의 반대로, 둘은 난관에 부딪힌 적도 있다. 엘가는 약혼기념으로 그 유명한 <사랑의 인사>를 적어, 아내한테 헌정하였다. 우리네가 결혼식에서 양가 어머니들이 화촉을 밝힐 때 연주되는 그 <사랑의 인사>는 그렇게 해서 탄생.
엘가는 제 2의 영국국가로 일컬어지는 <위풍당당 행진곡> 총 5곡도 작곡하였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가운데에서 3막 3장에 나오는 대사, “Pomp and Circumstance (위풍당당 행진곡).”제목을 차용하여, 가사를 붙여 작곡한 작품. 그는 영국 왕실 에드워드 7세 대관식에 연주할 음악 작곡을 청탁받아, 그 곡을 적었다. 마침 때는 제1차 세계대전이 절정에 달하였다. 국민 애국심을 고취하는, 영국 대표작곡가가 된 계기였다.
1905년 그가 49세가 되던 해, 그는 예일대 학위 수여식에, 음대 교수이자 친구인 ‘사무엘 포드’의 초빙을 받아 가게 된다. 그의 친구 ‘사무엘 포드’는 그를 위해, 뉴욕 음악인들을 다 불러 모아 <생명의 빛>, <위풍당당 행진곡 1번>을 연주하게 된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날까지 영국의 모든 고등학교와 대학의 졸업식에 그 1번이 연주된다.
엘가, 그는 지인(知人)들을 너무도 소중히 여겼던 사람. 이 농부 수필가는 이 연재물 제 114화에서 소개했던 <수수께끼 변주곡 제 12곡>을 결코 지나칠 수가 없다. 그 곡의 주인공은 첼리스트 ‘베이질 네빈슨’이라고 소개하였다. 엘가는 그의 첼로 연주곡을 듣고 영감을 얻어, 그의 최후 역작으로 꼽히는 <첼로 협주곡>을 작곡했다는 점. 그 <첼로 협주곡>은 그가 1934년 77세 나이로 세상을 뜬 다음에 나타난, 세계적인 첼리스트 덕분에 그 곡은 세상에 다시 빛을 발한다. 영국이 낳은, ‘우아한 영국의 장미’ ‘재클린 뒤 프레(1945~1987)’. 그녀는 당시 연인이었던 ‘다니엘 바렌보임(1942~,아르헨티나 태생, 이스라엘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와 세계 도처를 순회하면서,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아주 성공리에, 완벽하게 해석해낸다. 후일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부부가 되었으나, ‘재클린 뒤 프레’는 ‘중추 신경마비’로 42세 나이로 요절하고, 그의 남편 ‘다니엘 바렌보임’은 사지(四肢)가 뻣뻣해진 아내를 두고, 러시아 출신 성악가와 밀애를 즐기고, 아내 사후 재혼하였지만... . 사실 ‘오펜바흐’의 곡을 재해석한 독일의 어느 음악학자의 ‘재클린의 눈물’까지 다 이야기하자면, 이 농부 수필가는 벅차다. 동시에,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도 지칠 터.
엘가, 그는 9세 연상의 아내를 잘 만났고, 결혼생활도 행복했다. 그리고 곁에 좋은 친구들인인 ‘재가’와 ‘사무엘 포드’를 두었던 게다. 거기다가, 그의 사후(死後)에 온, 자기 조국 영국의 비운의 여류 첼리스트 ‘ 재클린 뒤 프레’ 등으로 하여 영원히 인류의 가슴에 남을 음악인.
엘가, 그는 영국에서는 베토벤급의 음악인으로 대접받는다.
(다음 호 계속)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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