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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17)수필/음악 이야기 2022. 9. 20. 05:39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17)
- ‘푸른 옷소매 환상곡(Fantasia on green sleeves)'-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옛날부터 영국서 널리 부르던 민요, <<그린 슬리브즈>>. 영국의 국민주의 작곡가, 본 윌리엄스(1872~1958)는 그 민요의 주제를 사용하여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으로 작곡하게 된다. 흔히들 그 곡을 <<푸른 옷소매 환상곡>>이라고 부른다.
그 선율은, 16세기말 푸른 소매의 옷을 입은 바람둥이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를 ‘푸른 옷소매’라고들 불렀고, 그것이 지금의 민요가 되었다고 하는데... . 엘리자베스 시대에 금광을 찾아다니던 사람들 사이에 생겨나, 당시에는 무곡 등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본 윌리엄스’의 당해 음악은,‘푸른 옷소매’ 여인의 어떤 매력에 폭 빠진 한 남자의 애절한 호소가 담긴 곡이라고들 한다. 명곡이다.
겹쳐지는 장면이 몇 있다.
하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란 곡. ‘스콧 맥켄지’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 그 노랫말은 이렇다.
<만일 당신이 샌프란시스코에 가신다면,/ 반드시 머리에 꽃을 꽂는 걸 잊지마세요/ 만일 당신이 샌프란시스코에 가신다면/ 거기서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에요./샌프란시스코를 찾는 사람들을 위해/ 여름엔 그곳에서 사랑의 집회가 열릴 거에요(하략)//>
특히, 폴 모리아(1925~2006, 프랑스)가 이끄는 ‘폴 모리아 악단’의 연주로 듣는 위 노래는 참으로 경쾌하다.
본디 위 노래는 미국 여대생들이 머리에 꽂을 꽂고 길거리 집회를 하며, 경찰관들의 총구에다 그 꽃들을 꽂는 행사 즉, 지리한 베트남전을 그만두라는 반전운동 등을 나타낸다고 한다.
둘.
‘금달래’도 겹쳐진다. 1960년대 대구 서문시장을 떠돌던 정신줄 놓은 여인. 그녀는 늘 멀리에 꽃을 꽂고 지냈다 한다. 서문시장 상인들이 입혀주고 먹여주고 하면서 정을 나누었다는데... . 그녀는 종놈과 붙어먹었다는 오해로, 시어머니한테서 내침을 당했다고 한다. 친정에서도 출가외인이라는 핑계로 받아주지 않았던 모양. 그녀의 뱃속에는 남편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고, 풀숲에서 아이를 낳게 되는데, 갓난아이가 죽고 말았단다. 그러자 그녀가 정신줄을 놓고 만다. 그때부터 그녀는 머리에다 죽은 아이를 기리기 위해 머리핀[喪章] 대용으로 꽃을 꽂고 지내게 되었단다. 서문시장 상인들은 해마다 ‘금달래’추모행사를 연다고 한다. 배우 금보라가 주인공이 된 영화 ‘금달래’도 태어나게 했던 여인.
셋.
‘곱단이’도 겹쳐진다. 내 유년시절, 읍내에 산다는 중년부인‘곱단이’가 마을에 자주 나타났다. 때때로 바느질하는 내 어머니 곁에 앉아 , 아주 단조로운 대화를 주고받던 여인. 그녀는 알록달록한 치마저고리를 깔끔하게 입고 있었다. 어른아이 할 것이, “곱대이 왔데이!” 놀려대었으나, 내 어머니는 우리들한테 되게 꾸지람을 하였다. 그리고 어머니 당신은 또래인 그녀한테 다정스레 짧은 대화를 이어가곤 하였다.
“곱단이, 어디 가서 밥은 얻어먹었어? 잠은 제대로 잔 거야?”
그러면 그녀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거나 가로젓거나 하였다.
그 불쌍한 떠돌이 여인을 아직도 잊을 길 없다. 대체로, ‘바보’라는 이들은 착하다. 남을 속이지 않는다. 인간 원형(元型)이다. 그 ‘곱단이’ 여인이 그런 축에 들어 있었다.
넷.
‘가방을 든 여인’도 떠오른다. 1960년대 이탈리아 영화 제목이기도 한 ‘가방을 든 여인’. 본디 OST는 색소폰 연주곡으로 흐른다. 그 OST 덕분에 빛을 본 영화. 그러다가 위에서 소개한 ‘폴 모리아 악단’의 연주곡으로 편곡되어 우리들한테 아주 친숙했던 곡이 된다. 작중인물 여인은 가출도 하고 여행도 한다. 그녀는 늘 ‘바퀴달린 가방’을 끌고 다닌다. 떠돌이. 그녀는 한 남자로부터 버림을 받고, 그를 찾아 나선다. 드디어 그 남자의 집을 찾게 되나, 정작 당사자는 그곳에 없었다. 그 댁에서 그 남자의 동생이며 연하인 17세 소년과 사랑에 빠진다. 연하 소년은 그녀한테 더는 쏘다니지 말고 귀가하라고 꽤 많은 돈도 건네준다. 그러겠다고 다짐을 한 그녀. 그러나 소년이 한눈파는 사이 그녀는 또다시 ‘바퀴달린 가방’을 끌고 도시로 향하는 열차에 오른다.
위 작중인물들 공히 자신의 분신(分身)같은 상징물들을 지니고 지낸 셈. 그들은 가고 없어도영화로, 음악으로 우리의 가슴에 길이 남게 한 여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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