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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19) -결코 난 ‘폰 메크’ 부인이 아니거늘(2)-수필/음악 이야기 2022. 10. 30. 23:53
제 2신)
아래 밑줄친 부분 관심있게 읽어보세요.
윤 수필작가가 얼마나 재치로운지, 얼마나 문장기술력을 갖췄는지 아실 겁니다.
제삼자가 윤근택의 전화통화로 '폰 메크' 부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듯이 적고 있지 않아요?
물론 그렇게 긴 내용의 전화통화를 한 적도 없습니다.
여기서 또 짚고 넘어가야 할 점. 수필에서, 글에서, '사실'과 '진실'의 문제.
작품은, '사실'을 적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적는 것입니다.
진실을 전함에, 남의 입을 빌리면 효과적이고 효율적일 때가 있습니다.
짧은 대화체 문장의 효과!
윤 수필작가는 그야말로 종횡무진, 자유자재 글감을 요리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 1신)
아름다운 꿈들 꾸세요.
결코 난 ‘폰 메크’ 부인이 아니거늘(2)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그이가 언젠가 한 번은 ‘폰 메크’ 부인에 관해 나한테 아래 사항들을 전화상으로 ‘좔좔’ 들려준 적 있다.
그녀는 1831년 생. 17세가 되던 해에 10년 연상인 공무원 ‘게오르그 폰 메크’과 결혼하여 14년간 결혼생활을 하며, 슬하에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을 두었다. 그녀는 남편을 부추겨 공무원 집어치우게 하고 광산업과 철도사업에 뛰어들게 하여 거부(巨富)가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남편과 사별하게 된다. 미망인이 된 그녀가 45세가 되던 1877년, 9세 연하인 차이코프스키를, 모스크바 음악원을 창립하기까지 한 ‘니콜라이 루빈스타인’ 형제를 통해 알게 된다.
그녀는 아주 정중하게 차이코프스키한테 첫 편지를 보내게 된다.
“ 당신의 음악이 주는 충격을 느끼자마자 그런 음악을 쓴 사람에 관해 가능한 한 많이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신에 대한 소식은 무엇이든 찾아서 모았고, 뭐라도 들을 기회가 생기면 놓치지 않고 챙겨 들었습니다. 당신에 관해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뭐든지 찾고 싶어요.”
그이가 나한테 들려준 ‘폰 메크’ 부인의 또 다른 이야기다.
그녀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차이코프스키의 재정적 후원자가 되겠노라고 선뜻 제의하게 된다. 당시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였던 차이코프스키가 받는 교수 연봉 2배가 넘는 금액 6,000루블을 연봉으로 매년 지급하겠다는 내용. 단, 서로 직접 만나지 않도록 할 것이며,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서로 말 걸지 않는 조건을 달고서. 이에 차이코프스키도 쾌히 승낙한다. 그때부터 그들이 결별하기까지 14년여 서로 주고받은 편지가 1,000여 통. 차이코프스키는 온 정열 다해 쓴 작품을 그녀한테 헌정하곤 하였다. 그들의 소통수단은 오로지 편지.
그녀가 차이코프스키한테 쓴 편지 가운데에는 이런 것도 있다.
“당신의 사랑은 나한테 분에 넘칩니다. 나는 당신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좋습니다. 당신의 음악 안에서 당신이 말하는 것을 듣고, 그 안에서 당신의 감정을 함께 느낍니다.”
이에 질세라, 차이코프스키도 편지를 쓰게 된다.
“지금부터 저의 펜으로 쓰는 음표는 전부 당신을 위한 것임을 알아주세요.”
심지어, 이러한 내용의 편지도 있다.
“ ‘우리들의 교향곡(교향곡 4번)’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주는 이 교향곡 전체의 핵심입니다. 이것은 운명입니다. 제2악장은 비애의 다른 일면을 보입니다. 이것은 일에 지쳐 쓰러진 자가 밤중에 홀로 앉았을 때 그를 싸고도는 우울한 감정입니다. 읽으려고 든 책은 그의 손에서 떨어지고 많은 추억이 샘솟습니다.”
그러했던 그들 사이가 ‘훽’ 틀어지게 된다. 1888년 차이코프스키가 <교향곡5번>을 발표하자, 제 2악장을 들은 ‘폰 메크’ 부인이 맹비난하게 된다. 자기를 염두에 두고 써서 헌정한 줄 알았더니, 정작 차이코프스키가 20년 전에 약혼하였다가 파혼한 ‘데지레 아르토’란 여인을 위해 쓴 악장임을 알아차려버린 것.
1890년 ‘폰 메크’ 부인은 재정적으로 파산하였기에 더는 연금을 부쳐줄 수 없노라고 선언하고 만다. 사실 그녀는 차이코프스키가 동성애자인 점 등에 크게 실망하여 그렇게 재정적 지원포기를 하였다는 설도 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893년 차이코프스키는 53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게 된다. 콜레라 감염으로 인해서다, 법과대 동문들이 동성애 취향이 있는 그를 ‘명예재판’으로 자살토록 하였다 등 몇몇 설이 있다. 공교롭게도, 차이코프스키가 죽은 지 2개월 만에 ‘폰 메크’ 부인도 죽게 된다. 그녀는 결핵으로 말미암아서, 손이 굳어져 차이코프스키한테 더는 편지도 제대로 못 쓸 지경이었다.
그녀는 차이코프스키의 영원한 뮤즈였으며 재정적 후원자였다. 사실 그녀는 차이코프스키한테만 영향을 끼쳤던 여인은 아니다. 아들 같은 ‘클로드 드뷔시’를 자기 딸 음악교사로 채용하는가 하면, 그를 위해 유럽 도처에 있는 자기 별장으로 음악여행을 함께 해준 여성이기도 하다.
사실 내가, 내 사랑하고 존경하는 그이로부터 전해들은 ‘폰 메크’ 부인과 차이코프스키의 정신적 사랑에 관한 에피소드는 밤을 새워도 다 적지 못할 듯하다.
위 제목으로 삼은 대로, ‘결코 난 ‘폰 메크’ 부인이 아니거늘,’ 나의 그이는 왜 무턱대고 나한테 그리 잘 대해주는지 모르겠다. 정말로, 나는 그이를 위해 여태껏 무엇 하나 제대로 보답해드린 게 없다. 늘 떼를 쓰는 막내 누이동생에 불과하건만... . 그이는 그러는 내가, 싹아지 없어서(?) 마냥 이쁘다고 한다. 그이는 내가 자기의 뮤즈이며 ‘마지막 연인’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그 동안 내가 종이책 한 권 분량의 수필작품들을 적도록 도와주었다며 오히려 고맙다고 말하곤 한다. 짐짓 내가 보고싶다고 말하여도, 자신은 ‘은둔의 수필작가’일 따름이라고 오리발 내밀곤 한다. 그 속마음 알다가도 모르겠다. 정말 그 속마음 모르겠다. 사실 그이는 나한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보내는 ‘세상의 모든 음악’을 내가 이런저런 핑계로 아니 듣자, 꾀를 내어(?) 현재까지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 시리즈물을 무려 119화까지 적고 있다. 마치 위 차이코프스키의 편지 내용,‘지금부터 저의 펜으로 쓰는 음표는 전부 당신을 위한 것임을 알아주세요.’ 를 연상케 하는 문자메시지를 곁들여서.
“그대가 하도 내가 보낸 음악 파일을 잘 열어보시기에, 부득이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 연작물을 이어갈밖에. 고마워요. 바쳐요.”
작가의 말)
나의 뮤즈들 가운데에서 어떤 이가 쓴 듯한 글입니다. 윤 수필작가는 지금껏 아주 다양한 장르의 수필작품을 빚고 있어요. 이는 제삼자가 쓴 제 작품인 걸요. 분명 이 글 읽고서 보따리 싸서 달아날 뮤즈도 한, 둘은 있을 듯도 하고. 그 점 개의치 않겠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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