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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류'에 관해
    수필/신작 2014. 5. 27. 21:51

     

                      분류에 관해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선거철이다. 많은 출마자들이 현수막 등에다 자기 사진과 선거구호와 함께 숫자로 된 소속정당을 밝혀두기도 하였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관련법에 의거, 등록된 정당이 썩 많지는 않은 편이다. 그러기에 많은 출마자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하기도 하였다. 문득, 무소속이란 말이 야릇하게 느껴질 게 뭐람? 그들 나름대로 여러 가지 사정도 있겠으나, 여러 가지 의미도 있겠으나, 이 당 소속도 아니고 저 당 소속도 아닌 이들. 도 아니고 도 아닌 것 같고, 하양도 아니고 검정도 아닌 회색같기도 하고, []도 아니고 [俗還이;俗人]도 아닌 것 같고, 네 편에 들기도 싫고 또 네 편에 들기도 싫은 듯하기도 하다. 내가 지난 날 익힌 식물분류학과 수목학에 빗대어 생각해 보면, 그들의 정체는 애매하기만 하다.

    내 이야기는 이제 조심스레 생물분류학으로 옮겨간다. 요즘 흔히들 이러한 말을 쓴다. 정서, 취미, 정치적 성향 따위가 다르다고 느낄 때 곧잘쓰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그 사람과 ()가 달라!

    여기서 말하는 , 대학 등의 전공학과에서 온 말인지도 모른다. 배운 학문이 다르면, 살아가는 방식도 다소 달라질 수는 있을 테니 . 그러나 나는 누군가가 그렇게 말할 적이면, 생물분류학에서 말하는 를 곧잘 떠올리게 되며,린네(Carl von Linne,스웨덴,1707~1778)를 동시에 떠올리게 된다. 우리네 인간은, 린네가 분류한 바, 인류과(hominidade)에 속한다. 린네의 분류상 우리네 인간을 더 구체적으로 풀이하자면 이렇다.동물계>척색동물문>척추동물아문>포유강>영장류목>인류과>호모속>사피엔스종. 사실 분류학적으로 따지면, 나는 그 사람과 ()가 다르다.하는 말은 대단한 욕이 된다. 본인과 달라도 너무나 다른 동물이란 말이 되니까. 그러니 나의 애독자들만이라도 그러한 쌍욕을 앞으로는 아니 하였으면 좋겠다. 우리는 다 같은 속(; genus) 다 같은 종(;species)이니까. 참고적으로, 우리가 자주 쓰는 인종(人種)이란 말은, 생물학적 분류에 기초한 말임을 알려드린다.

    이번엔 분류학의 창시자 린네에 관해 소개해볼 차례다. 그는 식물학자 겸 의사 겸 탐험가였다. 그는 이미 8세때부터 꼬마 식물학자란 별명을 얻었다. 1758년 그는 이명법(二名法)을 창시하였다. 속명(屬名)과 종명(種名)을 함께 두 단어로 쓰고, 그 뒤에 명명자의 이름을 적는 걸 말한다. 그렇게 적으면, 그 종이 정확히 무엇을 일컫는지를 쉽게 알 수 있게 된다. 가령, Homo sapiens L.라고 쓰면, 인종을 나타내는 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 Salix koreensis AnderssL 라고 쓰면,버드나무를 나타냄을 알 수 있다. Salix 물가를 좋아하는 나무를 뜻한다. 속명의 첫 자는 대문자로, 종명은 전체 다를 소문자로 쓰되, 모두 라틴어로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 속명은 고유명사로, 종명은 보통명사 또는 그 생물의 특징 등을 나타내는 형용사로 되어있다. 그리고 최초명명자를 밝힌다. 그가 창안한 이 이명법은 국제식물명명규약, 국제동물명명규약으로 발전하게 된다. , 린네라는 그의 성씨(姓氏)도 본디 성이 아니라, 어느 성당 보좌신부였던 그의 아버지가 바꾼 거란다. 린덴(Linden)이란 참피나무속 식물 이름에서 따왔다니, 그 아버지에 그 아들임 셈이다. 린네는 무려 7700여 종의 식물과 4400여 종의 동물에다 이름을 붙였다. 린네에 관한 일화는 나의 또 다른 작품, 보리뱅이의 한 단락을 자기표절(?)하는 것으로 갈음코자 한다.

    이번엔 좀 색다른 이야기를 해야겠다. 인류 역사상 가장 이름을 잘 지은 작명가는카룰루스 리나이우스(Carolus Linaeus ; 스웨덴의 의사 겸 식물학자; 1707~1778)’일 것이다. 후세 사람들은 그를린네라고 부른다. 두루 알다시피, 그는 생물분류법의 창시자다. 의학도였던 그는, 강사가 소위 펑크 낸 식물학을 대타(代打)로 강의하다가 일약 스타가 되고, 수강생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고 한다. 거기 고무되어 그는 그 위대한생물분류법을 고안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른바,’이명법(二名法)’이 그것이다. 후렴구인 양 이탤릭체로 된 동식물 이름 뒤에다 ‘L’ 또는 ‘Linne’라고 붙여 두었다. 그가 최초로 학명(學名)을 붙였다는 뜻이다. 그는 마음 후하게도, 최초 명명자로 사촌 이름도 써주고, 마음씨 착한 이웃의 이름도 써 주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애석한 것은, 우리 한반도의 식물 이름 최초 명명자가 대부분 일본인 이름 ‘Nakai(나카이)’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본디 조선인이었으나 창시개명으로 ‘Nakai’로 썼는지 여부는 알 길 없으나, 이러나 저러나 아쉽기는 매한가지다. 그나마 고마운 것은, 수목학의 대가였던 고 이창복 박사가 몇 몇 변종(變種)의 수목(樹木)에다 자기 성 ‘Lee’를 붙여두었다는 점이다. 참으로 자랑스런 일이다. ‘

         자기표절한 위 단락이 그 위의 단락 내용과 중언부언된 부분 없지 않으나, 독자님들께서 너그럽게 보아 주실 것으로 믿는다. 어쨌든, 린네는 분류학의 기초를 닦은 식물학자다. 그는 동식물을 가족관계라는 위계질서를 토대로,인위적으로 분류하였다. ‘유연관계(類緣關係)’가 핵심이다.

        이제 다시 우리네 생활주변 이야기로 돌아온다. 사반 세기 다니던 직장에서 3년 전 명예퇴직을 한 나. 사실 한 두 해는 그런 대로 견딜 수가 있었다. 그러나 3년째가 되자, 우울증이 엄습해 왔다. 수입원(收入源)이 사라져 호주머니가 빈 때문만은 아니다. 소속감이 없어져 버렸다는… . 그러자 둘레의 지인(知人)들은 하나같이 격려해주었다. “돈벌이도 돈벌이지만, 남정네들은 하여간 어디에든 나가야 된다네.”하면서. 깔끔하게 옷을 차려 입고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는 맛. 그 맛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뭔가 일을 찾아야만 하였다. 그리하여 운 좋게도 지금 이 연수원 사감실에 격일제로 오게 되었다. 출퇴근길 주요 길목에서 자원봉사자들이라고 하는 선거운동원들과 함께 90도로 절하는 지방선거 출마자들을 보게 된다. 그들 가운데 소속 정당이 없는 무소속 출마자들도 있다. 그들 무소속 출마자들도 어찌 해서든 당선만 되면, 소속감을 갖게 될 터. 내가 몇 해 동안 겪어보았기에 잘 알지만, 그들의 심정인들 오죽하랴! 그렇다고 하여 이 민감한 시기에 특정인을 편들 의향은 전혀 없다. 다만, 어떠한 경우에라도 당신은 나와 과()가 달라!”라는 말은 함부로 내뱉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저 둥글둥글하게 살아가야겠다. 내가 분류학자도 아니면서, 타인과 친소관계(親疏關係)만을 따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사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그 실천은 어렵다는 것도 너무도 잘 알다. 그런 점에서는 나는 Homo sapiens L (호모속 사피엔스종,명명자 린네)’임이 분명하다. , 침팬지나 원숭이와 다른, 인종(人種)이다. 감정의 동물이다.

     

    옛날, 중국의 북산()에 우공이라는 90세 된 노인이 있었는데, 태행산()과 왕옥산() 사이에 살고 있었다. 이 산은 사방이 700, 높이가 만 길이나 되는 큰 산으로, 북쪽이 가로막혀 교통이 불편했다. 우공이 어느 날 가족을 모아 놓고 말했다. "저 험한 산을 평평하게 하여 예주()의 남쪽까지 곧장 길을 내는 동시에 한수()의 남쪽까지 갈 수 있도록 하겠다. 너희들 생각은 어떠하냐?" 모두 찬성했으나 그의 아내만이 반대하며 말했다. "당신 힘으로는 조그만 언덕 하나 파헤치기도 어려운데, 어찌 이 큰 산을 깎아 내려는 겁니까? , 파낸 흙은 어찌하시렵니까?" 우공은 흙은 발해()에다 버리겠다며 세 아들은 물론 손자들까지 데리고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와 광주리 등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황해 근처의 지수라는 사람이 그를 비웃었지만 우공은 "내 비록 앞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내가 죽으면 아들이 남을 테고, 아들은 손자를 낳고……. 이렇게 자자손손 이어 가면 언젠가는 반드시 저 산이 평평해 질 날이 오겠지."하고 태연히 말했다. 한편 두 산을 지키는 사신()이 자신들의 거처가 없어질 형편이라 천제에게 호소했더니, 천제는 우공의 우직함에 감동하여 역신() 과아씨()의 두 아들에게 명하여 두 산을 하나는 삭동(), 또 하나는 옹남()에 옮겨 놓게 했다고 한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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