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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채밭(油菜-밭)에 물을 주며
    수필/신작 2023. 3. 18. 21:53

          유채밭(油菜-밭)에 물을 주며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사랑하는 당신,

        삼월 중순입니다. ‘봄가뭄’이 심합니다. 사실 이맘때는 해마다 늘 그러했습니다.  어둠이 내렸음에도, 나는 유채밭에 스프링클러를 작동시켜 물을 주고 있었습니다. 하루라도 속히 길러, 곱게 베어서 당신께 택배로 부쳐드려야 하기에요.

        나는 지난 늦가을을 생각합니다. 지난 해 11월께에 세 이랑 유채 씨앗을 뿌렸습니다. 당시 얼마나 ‘쑥쑥’ 자라던지요. 나는, 아파트 경비원인 나는, 겨울초입에 예쁜 종이박스를,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챙겨, 승용차 트렁크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주저 없이 그 유채나물을 정성껏 베어 당신께 부쳐드렸습니다.

        당신의 휴대폰 문자 메시지는 감동이었습니다.

       ‘ 윤쌤, 딸아이가 샐러드를 하였는데요, 맛이 여간 아니었어요.’

        사랑하는 당신,

       나는 손위 아내, 차마리아님 몰래, 은밀히 당신을 연모해왔기에, 그 유채를 정성껏 베어, 당신 댁에 그렇게 택배로 부쳐드렸습니다.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당신께, 나의 뮤즈(muse)인 당신께 그렇게 부쳐드렸습니다. 사실 영화배우 ‘고두심’과 닮은꼴인 나의 아내, ‘차마리아님’은 넌지시 눈감아 주었습니다. 예술가들끼리 ‘짓고 까부는 것’쯤으로, 30여 년 그녀는 남편의 예술가 연인들에 관해서만은 눈감아주어 왔으니까요.

        사랑하는 당신,

        참말로, 겨울은 지루했습니다. 내 ‘만돌이농장’의 세 이랑 유채도 그 싱싱하던 잎들이 얼어죽고만 듯하였습니다. 사실 나의 사랑도 그렇게 시들어버린 듯하였습니다. 볼품없이, 그대 향한 나의 사랑도 떡잎이 되어버린 듯하였습니다.  당신도 자기 살이에 바빠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동안 나한테 다소, 아니 매우 소홀했습니다. 본디 당신은 나한테 열중하지 않은 것은 인정하실 터. 그저 나는 당신을 짝사랑하고 있었을 따름.

         사랑하는 당신,

        당신은 겨우내 나한테 실수를 거듭 하였습니다. ‘은둔의 수필작가’인 나는, 당신한테 살아생전 단 한 번도 얼굴을 내밀지 않기로 벼르고 있고, 1년여 알아오면서 그걸 굳게 실천해 왔습니다. 그런데 당신께서는 그 못 생긴(?) 얼굴 사진을, 나한테 겁 없이(?)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보내오곤 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나의 환상은 온통 일그러뜨려지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하더라도, 나는 그 얼굴을 보고서 당신을 사모해온 게 아닙니다. 여류시인인 당신의 그 고매한 문학세계를, 나의 수필 완성을 위해... .

         사랑하는 당신,

         어둠이 내려, 나는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음에도, 스프링클러를 틀어, 유채밭에 물을 뿌려주고 있었습니다. 왜? 속히 키운 다음에, 정성껏 베어 당신께 택배로 부쳐드리고 싶어서이지요.

        사랑하는 당신,

        지금부터 당신께서 여태 몰랐을 수도 있는 유채의 비밀을 ‘따발총’식으로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油菜(유채)는, 기름을 짤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월동초, 유채나물, 겨울초, 시나나빠, 월동춘재, 삼동초(三冬草),봄동, 하루나 등의 이름을 두루 지닌 식물. 당신께서 아침저녁 프라이팬에 두르는 ‘카놀라(canola)’ 식용유는 유채 씨앗에서 얻은 기름. 본디 유채는 배추와 양배추의 교잡종. 즉, 트기. 그 씨앗으로 짠 기름은 인체에 해로운 요소가 있다는데, 1960년대에 ‘캐나다’의 육종학자(育種學者)들이, 식용에 크게 탈 없고 기름을 짤 수 있는 유채 품종을 육종해내었다는 거 아닙니까? ‘Canola(카놀라)’는요, ‘Canada + oil +low + acid(지방산)’의 합성어라는군요.

        사랑하는 당신,

       며칠 아니 있어, 나는 당신께 유채의 잎들을 정성껏 베어서 택배로 한 박스 부쳐드릴 겁니다. 연령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택도(턱도) 없지만, 그래도 운 닿았으면, 당신의 시어머니가 될 수도 있었던 내 어머니를 잠시 생각합니다. 당신은 봄날 ‘밥 바라지’ 핑계로, 열 남매 가운데에서 끝으로 달린 삼형제한테 사글세방에서, ‘시나나빠 김치’를 담그어 주었습니다. 봄날이 되면, 내 어머니가 담그어 주었던 그 ‘유채 김치 맛’을 기억합니다. 풋내음 나는 나의 10대 시절을 그리워합니다.

        사랑하는 당신,

         충격은 받지 마시고... .당신이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무모하게(?) 보내오는 얼굴 사진으로 보아, 다이어트를 꾸준히 해야 할 듯한데, 내가 곧 부치게 될 유채는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아주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더이다. 물론, 조만간 돼지감자도 캐서 부쳐드릴 테지만... .

        사랑하는 당신,

        설령, ‘호박덩어리’라도 그댈 사랑합니다. 내가 선택한 여인이기 때문입니다. 새봄과 함께, 다 망가졌다고, 다 스러져버렸다고 생각했던 유채가 나의 ‘만돌이 농원’에 일제히, 자랑스럽게 소생(蘇生)했습니다. 그대 향한 나의 사모함도 그러합니다. 소생했습니다. 그러니 내가 곧 부치게 될 유채의 꼴을 헤아려주었으면 합니다. 겨우내 얼어, 떡잎이 된 걸 다듬지도 않고 통째 부치는 이 심정을 헤아려주시길.

        속 시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건 헌데가 아물어 새살 돋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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