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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바리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언제고 경험만이, 체험만이 윤 수필작가 창작의 원동력이다. 거기에다 아주 사세(些細)한 사물들조차도 허투루 보아 넘기지 않고, 파고듦까지 더해져, 32세에 수필문단에 오른 이후 약 35년 수필작가 행세를 거뜬히 하도록 한다. 잘은 모르겠으나, 나는 현존하는 그 많은 대한민국 수필작가들 가운데에서 최다작(最多作)의 작가일 것이다. 내가 싸질러놓은(?) 새끼들, 즉 작품들 이름도 이제는 다 모른다. 줄잡아 5,000편은 될 것이다. 다만, 그 동안 종이매체로 발표를 아니 하여 왔을 뿐.
각설(却說)하고. 지난 삼월 초부터 나의 ‘만돌이농장’ 아래밭을 가로지르는 폭넓은 ‘콘크리트 다리’가 건설 중이다. 사실 나는 일절 보챈 적도 없건만, 경산시 당국에서 ‘생기골 제방(堤坊) 정비공사’의 일환으로, 그렇게 콘크리트다리 공사까지를 하여주고 있다. 시쳇말로, 나는 땡잡은 사람이다. 거기에서 나의 행운은 그치지 않았다. 일꾼들한테 ‘새참’을 수시로 사 드려도 모자랄 판인데, 현장소장이 나를 ‘명예감독’으로 부르는 한편 종종 일용인부로까지 부려 쓰며 톡톡히 일당까지 챙겨주고 있다.
콘크리트 다리를 건설하는 광경을 여태 지켜보아왔던 나. ‘동바리’라는 건축 자재명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어린 날 냇가에서 반두로 두 개의 독침을 지닌 ‘통가리(퉁가리)’란 민물고기는 잡아봤어도, ‘서클’을 달리 부르는 ‘동아리’는 들어봤어도, ‘동바리’란 건축자재 이름만은 여태 모르고 지내왔다. 이번에 현장소장으로부터 들어 알게 된 사항이다.
동바리란, 광산이나 탄광, 토목 공사를 위하여 땅속에 뚫어 놓은 길이 무너지지 않도록 받치는 기둥을 일컫는다. 공사현장에서는 ‘샤포드(scaffold)’라고들 말한다. scaffold는 발판, 교수대, 비계(飛階) 등으로 풀이된다. ‘지적(知的) 호기심’ 많은 내가 인터넷 등을 통해 아니 알아봤겠냐고? 그 말이 ‘supporting post(버팀 작대기)’와 통하는 말임을 금세 알게 되었다. ‘갱목(坑木)’이라고 불러도 무난한 건축자재. 사실 탄광에서는 ‘갱목’이란 말을 주로 쓴다.
‘위키백과’는 ‘동바리’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비계(飛階)’에 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비계(飛階, scaffolding, scaffold, staging)는 건설, 건축 등 산업현장에서 쓰이는 가설 발판이나 시설물 유지 관리를 위해 사람이나 장비, 자재 등을 올려 작업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가시설물(假施設物) 등을 뜻한다. 건설 현장에서 간혹 쓰이는 족장(足場; 아시바)은 일본어, 각수가(脚手架)는 중국어.>
요컨대, 동바리는 scaffold·supporting post·坑木·아시바[足場]·脚手架 등으로 두루 부를 수 있는 건축자재 이름이다.
동바리는 그 무거운 레미콘을, 내 ‘만돌이농장’을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다리’의 경우, 50cm 두께의 물먹은(?) 레미콘을 한 달여 콘크리트로 제대로 양생[養生;굳어지기;가타마리(かたまり,固まり, 塊)] 될 때까지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뎌야 한다. 그것들 동바리들은 수백 개 무리지어, 촘촘히 상판(上板)인 거푸집 합판, 곧 ‘유러폼(Euroform)’들 조합들을 떠받들고, 레미콘이 온전한 한 덩어리의 콘크리트가 될 때까지 지내야 한다. 꿋꿋 견뎌야 한다. 그것은 그것들의 숙명. 참, ‘유러폼(Euroform)’ 소개도 빠뜨릴 수가 없다. 거푸집으로 쓰이는 합판을, ‘유럽에서 규격화’하였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참, 이 말도 빼놓을 수 없지. 지난 날 임학도(林學徒)였던 나. 우리가 익혔던 전공필수과목, <목재이용학>에서는 그걸 ‘합판’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플라이우드(plywood)’라고 불렀다. 종횡(縱橫), 홀수로 붙인 널빤지. 그 짝수가 아닌 홀수의 조합 위력도 대단하였다. 그 플라이우드가 저 높은 고층 아파트를 짓는 데에도 거푸집으로 쓰인다는 거 대견타. 나무의 위대함이여! 목재의 위대함이여! 위에서 말한 ‘유러폼’의 재료도 플라이우드.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나무. 해서, 나무는 우리네 생명 원천.
내 이야기 잠시 샛길로 빠져 든 듯. 다시 고삐를 다잡고 동바리한테 채찍을 가해야겠다. 오늘 저녁 무렵, 현장소장은 인부들이 다들 퇴근한 이후 독백하듯, 일용인부인(?) 나한테 주절주절 레미콘 부은(타설한) 다리 곁에서 불평을 늘여놓았다. 꽤나 전문적인 용어들이라 쉽게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렇더라도, 젊은 날 내가 닭장과 창고를 혼자 짓다가 경험했던 바 있어, 이해가 다소 되었다.
“윤 선생님, 그 양반들 말입니다. 작업한 게 영 맘에 아니 들어요. 저 많은 동바리들이 힘을 합해서 그 무거운 레미콘의 하중(荷重)을 받쳐줄 것 같지요? 결코, 그것만은 아니에요. 슬래브에 골고루 레미콘을 붓지 않으면, 전체가 뒤틀어질 수도 있거든요. 마치, 안면신경마비 환자의 얼굴이 뒤틀어지듯이요. 그런데 그 양반들은... .”
듣자하니, 수긍이 갔다. 위에서도 이미 언뜻 이야기하였지만, 내가 닭장과 창고를 혼자 짓다가. 전체 기둥이 뒤틀어져 무너지면서 사다리에서 떨어져 큰일 날 뻔했던 기억과 겹쳐진다. 동바리는 위, 아래 하중(荷重)만을 생각하며 괴어서는 아니 된다는 그의 말 충분히 이해한다. 동바리 상호간에도 결속해야 한다는 것을. ‘뒤틀어짐’을 예방하기 위해, ‘반생 결속선[철조 결속선; 풀림 철선; annealing(어닐링 결속선); 소둔(燒鈍) 결속선)]’으로 텐션(tension)을 주어, 탱탱 조여 매 나가야한다는 것을.
다시금 농막, 한밤, 수필작가의 책상 맡. 나는 동바리의 드러내지 않는 공로를 생각한다. 내 콘크리트 다리의 레미콘이 콘크리트로 온전히 굳어지면, 그것들 동바리들, 즉 철제 샤포드(scaffold)들은 나사가 풀려, 하나하나 해체될 것이다. 그것으로 그것들의 몫으로 끝나지 않는다. 또 다른 데로 화물차에 실려 가서, 자기네 몸이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또 다른 우주를 떠받치리라. 그것들 동바리들이야말로 지구를 양손으로 떠받치는 ‘헤라클레스’의 화신(化身)들.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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