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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운전자들의 애교수필/신작 2023. 3. 24. 09:21
모름지기, 작가는 늘 더듬이를 곧추세워두어야 합니다.
더듬이에 뭔가 걸려든 사냥감을 결코 놓쳐서는 아니 됩니다.
초보운전자들의 애교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결코 남들한테 자랑해서는 아니 되는 게 있다. 자동차운전에 관한 이야기.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운전면허증을 딴 지 30여 년 되고, 면허증에는 ‘2종보통 A’로 표시되어 있다. 두루 잘 아시겠지만,‘A’는 스틱, 즉 클러치가 아닌 ‘자동기어변속장치’ 달린 차량만 몰 수 있음을 뜻한다. 그 점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아직도 내가 ‘후진주차’를 못한다는 점. 게다가, 운전면허시험장에서 이르는‘평행주차’도 잘 못 한다. 자연, 번잡한 도심으로는 운행을 무척 꺼려한다.
앞차 뒷유리창에 적힌 문구를 볼 적마다 초보운전자들의 애교를 생각하곤 한다. 갸륵하다. 다들 경험하겠지만, 그 문구들과 그림들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초보’, ‘왕초보’,‘이쁘게 봐 주세요’, ‘밥 지어놓고 나왔어요’, ‘당신도 이런 적이 있었지 않아요’ 등. 재치로운 문구들과 ‘노란 병아리’ 그림이 그려진 경우도 있다. 최근에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초보운전자 표시 문구’는 ‘결초보은’이다. 그는 그 굵은 색색의 문구 아래에다 작은 글씨로 적고 있었다.
‘저도 나중에 남들한테 은혜를 꼭 갚겠습니다.’
그의 언어감각은 대단히 뛰어나다. 그는 문장수사법상 희언법(언어유희법,PUN)을 적절히 부려 썼다. 중간에다 ‘초보’라고 주기(朱記)한 재치도 놀랍고. 그는 고사를 익히 아는 듯.
결초보은, 정말 그랬다. 나의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이란 수필작품에서 일부 따다붙이겠다.
< (상략)또 빠뜨릴 수 없는 매듭이 있다. 바로 결초보은(結草報恩)의 고사다. 사실 중국고사도 그리스 신화 못지않게 흥미롭다. 거의 사실에 근거한 거라서 더욱 실감나기도 한다. 때는 춘추시대. 진나라 ‘위무’는 애첩을 두고 있었다. 그는 늙어 병이 들자, 아들 ‘과’를 불러 유언을 남겼다. 자신이 죽거든 작은 어머니인 애첩을 다른 곳으로 개가(改嫁)시키라고. 그러나 정신이 더욱 혼미해지자 유언을 번복한다. 그녀를 순장(殉葬)해달라고. ‘과’는 아버지가 죽자, 작은 어머니를 다른 데로 시집보낸다. 정신이 그래도 덜 혼미할 때에 아버지가 한 유언이 옳을 거라 여겨서 그리 하였다. 얼마 아니 있어 나라에 전쟁이 일어난다. ‘과’는 전장에 나간다. 적군의 우두머리가 말을 타고 달려가다가 어느 곳에서 넘어지게 된다. 그 곳에는 ‘수크렁’ 이란 풀의 매듭이 있었다. ‘과’는 적장을 사로잡았다. 그날 밤 ‘과’는 꿈을 꾸었다.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고마우이, 젊은이. 나는 젊은이가 개가시켜준 그 여인의 애비라오. 너무너무 고마워서 내가 그렇게 풀매듭을 해두었던 게오.”(하략) >
그날 내가 보았던 그 앞 차 운전자도 위 고사를 충분히 아는 모양. 뒷날 그가 ‘초보딱지’를 떼게 되면, 또 다른 후배 초보자한테 은혜를 베풀겠다는, 배려를 하겠다는 의지로 읽혀 흐뭇하다. 그런 글을 읽자니, 모처럼 살 맛이다.
일반적인 사항이지만, 운전자들한테 최고 덕목은 ‘방어운전’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덕목은 수구초심(首丘初心)이다. 수구초심이란, ‘여우가 죽을 적에는 머리를 자기가 태어난 고향 쪽으로 둔다.’이지만, 난들 위에서 소개한 초보운전자의 애교있는 ‘결초보은’을 패러디하지 말란 법 있나. 난들 희언법 부려 쓰지 말란 법 있나.
‘首丘初心’입니다.
30여 년 전 운전 교습소에서 익힌 대로,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나는 나의 애독자들께도 보고드리고자 한다.
‘내 여생 초심을 잃지 않고, 내비게이션 하나 없이도 나의 길 찾아가겠습니다. 나의 수필문학 완성을 향해 끝없이 앞으로만 나아가겠습니다. 나는 뒷걸음질칠 줄을 모릅니다. 시속(時俗)에 물들지 않고 예술가의 자세를 굳건히 지켜나가겠습니다.’
작가의 말)
돌고돌아, 나는 ‘미니멀리즘 수필’에까지 닿았습니다. ‘미니멀리즘’이란, ‘최소의 재료로 표현하는 예술기법’입니다.
한가로이 남의 글 읽을 겨를도 없는 현대인들의 삶을 생각하여, 구체없이(←구차없이) ‘미니멀리즘 수필’을 생각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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