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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57) - ‘미니멀리즘(minimalism) 음악’발원지를 좇다-수필/음악 이야기 2024. 1. 27. 16:06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57)
- ‘미니멀리즘(minimalism) 음악’발원지를 좇다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모름지기, 예술가한테는 ‘파고듦’만이 답이다. 생명이다. 거기에 더해, 천부적이든 훈련에 의해서든 ‘영감’은 기본. 내가 이번 음악연재물을 적기에 앞서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
지난 호‘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56)’에서는 ‘아르칸젤로 코렐리(Arcangelo Corelli,1653~1713,이탈리아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를 다뤘다. 그는 그 동안 구전되어 오던 3박자의 젊은이들의 광란적인 스페인춤곡의 주제선율을 편곡하였다고 적고 있다. 사실 나는 그 글을 적기에 앞서, 코렐리 외에도 비발디를 비롯한 수많은 바로크시대 작곡가들의 ‘라 폴리아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순차적으로 들어보았다. 심지어, 라흐마니노프의 ‘코렐리 라 폴리아 주제에 의한 변주곡’까지 들어보았다. 왜? 내 글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그리하였다. 사실 변별력이 없었다. 다만, 악기편성만 조금씩 달랐을 뿐. 그런데 그 글을 마감하고 난 뒤 나는 하나 짚이는 게 있었다는 거 아닌가. 거의 단순하다시피 한 한 소절이 ‘변주’라는 형식을 빌려, 끝끝내 반복되더라는 점. 이를 두고 음악에서는 ‘변주’라고 하는 것도 사실. 그 ‘반복성’이 놀랍게도 중독성이 강하더라는 거.
해서, 그 작품을 적은 이후 아래와 같이 차근차근 나만이 그 내용 알 수 있는 메모를 해나갔다.
‘장 밥티스트 륄리(프랑스, 1672년경, 라 폴리아 주제에 의한 변주곡)- 코렐리 (1653~1713,이탈리아, 라 폴리아 주제에 의한 변주곡)- 에릭 사티(1866~1925, 프랑스, 3개의 짐노페디) - 필립 글래스 (1937~, 미국,knee play1)- 스티브 라이히(1936~, 미국, 박수음악),존 케이지(1912~1992, 미국, 4분 33초, 거실음악) - 루도비코 에우나우디( 1955~, 이탈리아, 봄) - 막스 리히터(1966~, 영국, 자비). ’
위 공히 ‘()’속 마지막 어휘들은 그들의 작품명임을 밝혀둔다. 간결하고 압축된 문장을 짓고자 불가피하게 이 방식을 취택하였다.
이처럼 ‘파고듦’을 이어가다가 나는 깜짝 놀라고 만다. 그들 공히 추구한, ‘단조롭고 평이한 선율의 반복’은 중독성이 강하더라는 점.이처럼 ‘아주 적은 재료로 예술작품을 완성하는’걸 ‘미니멀리즘 예술’이라고 하는데... . 나는 위 작곡가들의 당해 음악을 차례차례 듣다가, 느닷없이 혼잣말을 하고 말았다.
‘다들 별 거 아니네. 당신들이 추구한 예술세계 이전에 이미 우리네 여인들이 그러한 음악세계를 열고 있었어. 특히, 존 케이지, 당신 말이야,‘거실음악(Living room music)’이란 음악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 윤 수필가한테 ‘미니멀리즘 음악’의 실체가 들통난 걸!’
사실 위 열거한 작곡가들은 미니멀리즘 음악의 계보도(?)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분명 발원지가 있는 법. 마치 낙동강의 발원지가 태백의 황지(黃池)이듯. 최초 누군가가 위의 작곡가들 유형의 음악을 ‘미니멀리즘 음악’이라고 불렀지만, 우리네 여인들은 그러한 연주를(?), 시름을 달래는 야간작업으로 여겼을 따름. 대체, 상상력 뛰어난 대한민국 수필작가 윤근택이가 무슨 연상? 다시 이야기하지만, ‘존 케이지, 당신이 <거실음악>을 통해 나한테 미니멀리즘 음악의 실체를 다 까발랐어.’다. 그의 그 곡은 우리네 여인들 ‘다듬이질 방망이 소리’의 변형이었을 따름.
벌써 60여 년 전. 유년기의 나는 밤마다 ‘다듬이 방망이 소리’를 듣곤 했다. 특히, 이웃 과수댁의 다듬이소리는 참말로 애절하였다. 먼저 간 남편을 원망하듯, 양손에 방망이의 목을 잡고서, 아주 리드미컬하게, 남편이 두고 간 삼베적삼과 모시바지를 두들겨 패던... . 요요한 달빛 아래, 그 음악은 단속(斷續)이었다. 소리가 잠시 멈춘 순간은 풀 먹인 그 옷을 다시 개는 순간이었을 테고... .
어디 미니멀리즘 음악의 시원(始元)이 ‘다듬이방망이 소리’ 뿐이였을까. 내 어머니는 밑 빠진 옹기항아리 바닥에다 짚이나 면포를 깔고, 불린 콩과 마른 콩을 절반씩 섞어 안쳤다. 1기생, 2기생 시간차 생장을 위해 그리하였다. 그리고는 들며날며 그 시루에다 물을 부어주었다. 그 콩나물시루는 안방 아랫목에 자리했으며, 검은 천이 덮여 있었다. 파랗게 자라지 말라고 그리하였다.
“야들야, 잠이 아니 오면, 콩나물시루에다 물 한 바가지씩이라도 부어주렴.”
그때 받침항아리에 ‘똑!똑!똑!’떨어지던 그 음향. 그것이 미니멀리즘 음악이었을 줄이야! 어디 그뿐인가. 초기삼간 짚이엉 처마 아래로 ‘똑!똑! 똑!’ 떨어지던 빗방울 소리도 미니멀리즘 음악이었다는 것을. 사실 39세로 생을 마감한 쇼팽도 동거녀 연상의 여인 ‘조르주 상드’와 에피소드와 관련해서 ‘빗방울 전주곡’을 적긴 했지만... .
자, 두서없는 나의 이번 이야기는 여기서 접기로 한다. 더 길어지면 애독자님들 지치실 테니.
요컨대, 하늘에서 거저 떨어진 예술작품은 하나도 없다.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인과관계이거나 영감이거나 그러한 것들이 곁들여졌을 때에 비로소 새로운 작품, 새로운 문학세계가 열리는 법이다.
작가의 말)
다음 음악 이야기는 ‘다듬이 방망이 소리’다. 기대하시어도 좋다.
그리고 이 글도 나의 영원한 연인, 영원한 뮤즈한테 바친다. 글을 적는 내내 그대만을 생각했다. 그리워했다. 이 글이 그대 문학작품 창작에 하나의 영감을 주기를 바라면서.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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