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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58) - ‘다듬이소리’수필/음악 이야기 2024. 2. 2. 15:08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58)
- ‘다듬이소리’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지난 번‘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57)’에는 ‘미니멀리즘 음악’의 시원(始元)을 좇아, 거슬러 올라가다가 만나게 된, 여러 서양음악인들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그 글 가운데에는 이런 부분도 있다.
<(상략)‘다들 별 거 아니네. 당신들이 추구한 예술세계 이전에, 이미 우리네 여인들이 그러한 음악세계를 열고 있었어. 특히, 존 케이지(1912~1992, 미국, 전위예술가), 당신 말이야,<거실음악(Living room music)>이란 음악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 윤 수필가한테 ‘미니멀리즘 음악’의 실체가 들통난 걸!’(중략)
최초 누군가가 위의 작곡가들 유형의 음악을 ‘미니멀리즘 음악’이라고 불렀지만, 우리네 여인들은 그러한 연주를(?), 시름을 달래는 야간작업으로 여겼을 따름. 대체, 상상력 뛰어난 대한민국 수필작가 윤근택이가 무슨 연상? 다시 이야기하지만, ‘존 케이지, 당신이 <거실음악>을 통해 나한테 미니멀리즘 음악의 실체를 다 까발랐어.’다. 그의 그 곡은 우리네 여인들 ‘다듬이질 방망이 소리’의 변형이었을 따름.
벌써 60여 년 전. 유년기의 나는 밤마다 ‘다듬이 방망이 소리’를 들으며 잠들곤 했다. 특히, 이웃 과수댁의 다듬이소리는 참말로 애절하였다. 먼저 간 남편을 원망하듯, 양손에 방망이의 목을 잡고서, 아주 리드미컬하게, 남편이 두고 간 삼베적삼과 모시바지를 두들겨 패던... . 요요한 달빛 아래, 그 음악은 단속(斷續)이었다. 소리가 잠시 멈춘 순간은 풀 먹인 그 옷을 다시 개는 순간이었을 테고... .(하략)>
어쨌든, 그 글에서 수필작가인 나는, 대한민국에서도 빼어난 수필작가인 나는, 남달리 음악적 감각도 뛰어난 수필작가인 나는, 당시 나이 서른둘에 유명 수필전문잡지를 통해 수필작가로 데뷔한 나는,‘존 케이지’의 <거실음악(Living room music)>을 들으면서, 시쳇말로‘내리꽂히는’게 하나 있었다는 요지로 비아냥 투로(?)적고 있다.
다시.
‘다들 별 거 아니네. 당신들이 추구한 예술세계 이전에 이미 우리네 여인들이 그러한 음악세계를 열고 있었어. 특히, 존 케이지, 당신 말이야,<거실음악>이란 음악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 윤 수필가한테 ‘미니멀리즘 음악’의 실체가 들킨 걸!’
지금부터는 진정한 이번 내 이야기. ‘다듬이소리’로 이야기 고삐를 바투잡는다. 실제로, 존 케이지는 부엌 등 일상에서 나는 이런저런 잡음을(?) 음악으로 여겼고, 고(故) 백남준 ‘비디오 아트의 거장’과 일화도 여럿 있지만... . 그의 <거실음악>은 우리네 여인들의 ‘다듬이방망이소리’를 연상케 한다. 하여, 서양음악의 한 조류인 ‘미니멀리즘 음악’도 우리네 여인들 ‘다듬이방망이소리’와 맥이 닿아 있다는 사실. ‘존 케이지’, 그가 태어난 1912년 이전에 이미 대한민국의 전신(前身)이다시피 한,‘조선조’부터, 당신이 말한 ‘우연의 음악’의 일종인‘다듬이소리’가 존재했다.
실증해보이겠다. 지금부터는 나의 신실한 애독자님들께서 추억의 소리(음악) 추억케 하고자, 간략간략 다루겠다.
1. 다듬이 소리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내 유년 시절. 밤이어야 했다. 특히, 달빛 요요한 밤이어야 했다. 풀 먹인 무명삼베, 풀 먹인 이불홑청이여야 제격이었다. 재질이 단단한 ‘대추 재목 다듬이’이거나 화강감으로 다듬은 다듬이돌이어야 했다. 몸매가 ‘S라인’인 방망이어야 했다. 선배 수필가인 ‘윤오영’의 명작 수필, ‘방망이를 깎던 노인’이 깎아주었던 ‘방망이’ 모양이어야 했다. 내 어머니는, 이웃 아지매들은, 내 손위 누이들은 다듬이질이 잠들기 전에 행해야 할 필수 코스. 왜 그리도 청승맞게 다듬이 방망이질을, 리드미컬하게 했을까. 밤이 이슥토록. 그 다듬이소리는 그 이후 차츰 사라져버렸다. ‘나이론’으로 대변되는 ‘합성섬유’의 출현으로 인하여. 해서, 다듬이소리는 ‘미니멀리즘 음악’의 시원이었을 것이다.
2. ‘숯불 담은 다리미’에 관한 추억
부득이, 글이 길어질세라, 저어한다. 새벽 빨랫줄에 이슬 맞게 하여 널어두었던 빨랫감을 걷어, 눈을 양손으로 부비며 맞잡게 한 후, 다리미질을 하던 내 어머니의 콧노래. 애독자 여러분께 나머지는 상상토록하고 끝도 밑도 없이 이 글 마무리토록 한다. 이 또한 ‘미니멀리즘 수필’의 한 예이니까.
작가의 말)
다들 모자라는 부분은 ‘꽉꽉’ 채워서 읽어주시길. 다들 나 같은 추억이 있을 겁니다. 가만히 눈감고, 한참 추억에 잠겨보세요.
그리고 제가 40여 년 수필작가 행세하면서, 이젠 지칠 대로 지쳐, 끝내는 이런 유형의 글을 적을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특히, 내 손위 형님, ‘영택’님한테 이 글 바쳐요. 이 아우는 더는 어쩔 수 없어요.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국문학자가 되길 바랐던 형님! ‘양주동’을 능가하는 사람이길 바랐던 형님! 저는 정말로 공부하고 있어요. 죽을 때까지요. 기왕지사 시작한 일. 나의 수필문학 완성을 위해서요. 사랑해요. 이 모자라는 글, 님께 공손히 바쳐요. 고스란히 바쳐요. 형수님, 잘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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