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62) -‘윤 수필가, 시간여행을 떠나다 -수필/음악 이야기 2024. 2. 22. 13:14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62)
-‘윤 수필가, 시간여행을 떠나다 -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나는 며칠 동안 정말로 쉼 없이 여행하였다. 온 전신이 아플 정도로, 시쳇말로 머리에 쥐가 나도록 공부하였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를 두루 여행하였다. 듣고, 읽고, 메모하고 하면서 딴에는 부지런을 떨었다. 시간적으로는 1700년대와 2024년 현재까지를 어지러이 오가고 있었다.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 이처럼 온통 헷갈리게 해두고서, 더 엉뚱한 이야기. 나는 요즘 젊은이들 표현대로이면,‘3-Job의 남정네’이다. 농부 겸 수필작가 겸 아파트 경비원. 격일제로 농장, 격일제로 아파트 경비실. ‘하루는 농장 근무, 하루는 경비실 근무’. 이를 바꿔 말하면,‘하루는 농장 휴식, 또 하루는 경비실 휴식’. 이 가운데에서 아파트 경비원으로서 나는, 늘 시간과 싸움이다. 노동 강도는 그리 강하지 않으나, 밤마다 경비초소에서 정해진 시간 ‘불침번’을 서야하는데, 휴대전화기와 라디오는 나의 10년지기 사실 ‘멍청이 텔레비전’도 더러는‘야메로(?)’ 볼 수는 있지만, 그 시간은 죄다 허송세월로 여긴다. 설령, 다시 태어나도 나는 학교에 가서 정규교육은 받지 않을 요량이다. 내 손아귀에 든 스마트폰 하나면 족하니까. 어쨌든, 생산적인 일만이 나의 몫. 특히, 예술가의 길을 가는 나한테는... .
자, 이제 슬슬 여행담. 이미 첫 단락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몇몇 날 스마트폰을 통해 듣고, 읽고, 메모를 거듭 하였다. 18세기, 특정 문학작품과 음악작품을 집중탐구하였던 게다. 지금부터는 출생 순서대로.
1. ‘E. T. A 호프만(1776~1822,독일, 향년 46세)
그의 생애에 관해서는 ‘위키백과’가 아주 잘 요약하고 있어, 약간 편집을 하기는 했으되, 거의 그대로 따다붙이겠다.
<에른스트 테오도어 빌헬름 호프만은 독일의 후기 낭만주의 작가이자 작곡가이다.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현재의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서 출생하였으며 그림과 음악에 뛰어났고 대법원 판사를 지냈다. 그 후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공상적이며 마법적인 기괴한 것이 많으며 에드거 앨런 포를 비롯해 니콜라이 고골, 찰스 디킨스, 샤를 보들레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프란츠 카프카 등의 문학가들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로베르트 슈만, 자크 오펜바흐, 표트르 차이콥스키, 파울 힌데미트, 리하르트 바그너, 레오 들리브 등과 같은 음악가들이 작곡한 작품의 원천이 되거나 영감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문학가와 음악가뿐만 아니라 알프레드 히치콕, 잉마르 베리만, 길예르모 델 토로 등과 같은 영화 감독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정신분석학의 선구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그의 작품인 〈모래 사나이〉를 대상으로 논문 〈섬뜩함〉(독일어: Das Unheimliche)을 쓰기도 했다.>
2. 오펜바흐(1819~1880, 오페레타 및 오페라 작곡가, 독일 출생, 프랑스, 향년 61세)
오페레타(소규모 오페라) 전문작곡가였던 그.그는 말년에 호프만이 적은 단편소설 <호프만 이야기>를 바탕으로, 생애 단 한 편의 오페라를 적게 된다. 그의 말년의 일. 척수결핵으로 향년 61세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적다가 마감을 채 못한 유작(遺作). 그가 세상을 떠난 1880년에 후진 작곡가가 완성하여 무대에 올린 오페라.
그 내용은, 작중인물인 호프만 자신이 괴짜 과학자인 ‘스팔란차니’박사가 만든 기계인형 올림피아( 이따가 이야기하겠지만, ‘들리브’의 발레곡 <오펠리아>에 해당하는 작중 기계인형임.)가 일생일대 사랑한 세 여인 가운데에서 첫 번째 사랑이었다는 술회(述懷)로부터 시작된다.
조수미도 그 오페라 ‘인형의 노래’의 스페셜리스트인데, 내가 그 실황을 스마트폰으로 수차례 감상해본즉, 참으로 흥미로웠다. 조수미가 목조인형 의상을 입고, 마치 로봇처럼 팔 다리를 움직여 춤추던... . 오케스트라 단원 가운데에서 피아노 담당과 작중 괴짜 과학자 스팔란차니 박사가 조수미 등 뒤에서 태엽을 감는 시늉을 하는 퍼포먼스까지 곁들여진 ... . 사실 태엽 감는 소리도 연주에 수차례 행해졌다.
나의 신실한 애독자님들께 덤으로 하나 드림. 오펜바흐의 <호프만 이야기> 작품 가운데에서 ‘뱃노래’는 심심찮게 라디오에 흐르곤 한다.
3. 들리브 (1836~1891, 프랑스, 향년 55세)
그는 ‘프랑스 발레 음악의 아버지’로 칭송받는다. 발레 음악이 무용장르로 발전하는 데 공헌한 작곡가라는 이야기. 특히, 내가 주목하는 점은, 러시아 차이코프스키의 발레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는 그를 찬사했다고 한다. 쉬이 말해, “나의 발레음악은 선생님의 발레음악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인 걸요.” 고백할 정도였다고 한다.
들리브, 그는 34가 되던 1870년에 호프만의 단편소설 <호프만 이야기> 가운데에서 첫 번째 호프만의 애인이었던 ‘코펠리아(오펜바흐 오페라에서는 올림피아임.)’를 바탕으로 발레곡을 적는다. 코렐리아가 추는 3박자의 느린 왈츠. 그게 그 유명한 <오펠리아>다. 그 또한 인간이 목조인형이 되어서 부르고 춤추는 모양새.
들리브, 그는 41세가 되던 1876년에 <코펠리아> 후속 발레곡으로 <실비아>를 적게 된다. <실비아>는 신화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아주 단기간에 인기를 끈 작품이라고 한다.
잠시. 이 <실비아>에 관해 덤 하나. 발레 작품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곡가는 아마도 차이코프스키인데... .그런 차이코프스키가, “(들리브의)〈실비아(1870년작)〉에 비해 나의 〈백조의 호수(1877년 초연)〉는 얼마나 부족한가>?”라고 쓰며 들리브의 〈실비아〉를 찬양하였다고 한다. 또, 알프레드 브루네우는 들리브의 〈실비아〉가 이전의 발레 작품을 마치 저속한 어디에나 있는 춤꾼들의 노예로 만들어버렸다며, 들리브 작품은 참신하고 창의적인 작품으로 들리브 이후 프랑스 발레는 가장 화려하고 행복한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한다.
들리브, 그의 명작들은 위 두 작품만이 아니다. 들리브의 마지막 오페라 〈라크메(1881년 제작). 당시 인도를 식민통치했던 영국. ‘피에르 로티(Pierre Loti)’장교의 자전적 소설을 기반으로 한 작품. 이국적인 배경과 들리브 특유의 감미로운 음악으로 초연 직후부터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오늘날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 ‘꽃의 이중창’은 종종 라디오에서. 그 오페라 스토리는 푸치니의 <나비부인(‘초초상’의 다른 이름임.1904년 작.)>의 판박이. 아니, <나비부인>이 <라크메(닐라칸타의 딸 이름. 1881년작.)보다 23년 후에 발표된 작품이니... .
4. 차이코프스키(1840~1893, 러시아)
그는 50세가 되던 1890년 <호두까기 인형>이란 발레곡을 적었다. 그 창작 연도를 위 여러 예술가들 연보와(?) 견주어 볼 적에, 한 참 후임을 금세 알 수 있다. 위 1~3의 예술가들 공히 제 1에서 소개한 ‘E. T. A 호프만’의 단편소설을 기반으로 그처럼 훌륭한 예술작품을 빚어냈다는 점. 이 점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46세 젊디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한 호프만이 살아생전 고백한 말이 새삼스러울 줄이야!
‘나는 광기(狂氣)에 대해 광적(狂的)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했는데, 호프만 사후(1822년 사망) 18년이 지난 다음 1840년에 태어난 차이코프스키가 또 그러한 일을(?) 저질렀을 수가? 차이코프스키는 호프만이 적은 동화를 기반으로 발레곡을 적게 되는데... . 그 유명한, 차이코프스키 발레곡 3곡 가운데에서 하나로 꼽히는 ‘호두까기 인형’.
거슬러, 광기어린 호프만이, 1700년대를 풍미한 호프만이, 46세에 생을 마감한 호프만이 도대체 어떠한 일로 그 동화, ‘호두까기 인형’ 동화를 적었을꼬? 그야말로 ‘실제상황’이었다고 한다. 절친한 이웃의 아이들한테, 실존인물인 그아이들 이름을 섞어넣어 들려준 이야기라고 한다. ‘마리’의 집을 배경으로 하는... . 그것이 호프만 사후 18년 이후 차이코프스키한테 닿았던 게다. 초코릿은 스페인 춤, 커피는 아라비아 춤, 차는 중국 춤, 풀피리는 프랑스 춤 등 각국 민속춤이 들어간 그 발레곡. 그 가운데에서 ‘꽃의 왈츠’는 사탕요정과 왕자의 2인무이며 피날레.
5. 윤근택(1957~, 나이 32세에,1989년에 수필작가로 데뷔, 대한민국)
그는 나이 32세였던 1989년에 <월간에세이>란 문학잡지에, 그 한 해에,‘우산(초회 추천)’, ‘메뚜기(천료)’로 데뷔하였다.
윤근택, 그는 위 1~5까지를 적는 동안, 가급적 문학적 기교를 최대한 버렸다. 가급적이면 역사적이며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만 꾸미지 않고 적고자 애썼다. 조미료를 넣지 않고서.
그렇다면 이 글에 대체 무슨 메시지가? 이러할 때에는 ‘속된 말’이 명쾌하다.
요컨대,
“E. T. A 호프만(1776~1822,독일, 향년 46세) 당신께서 멕여살린(?) 예술가들이 위에서 소개했듯, 엄청 많소이다. 여기 대한민국 수필가 윤근택도 이제야 뒤늦게나마 숟가락 하나 걸치고 있나이다.”
(다음 호 계속)
작가의 말)
예술가한테는 ‘매너리즘(mannerism)’, 즉 ‘타성’이 독약입니다.
제 뮤즈들의 게으름 내지 무응답 덕분으로(?), 저는 궁여지책 이러한 수필 장르를 열게 되었습니다. 감사한 일. 이 모두 다 제 뮤즈들 덕분입니다. 저는 줄기차게 세계도처 음악 여행할 것입니다. 주입식으로라도 제 뮤즈들께 아름다운 음악 귓전에 흘려드릴밖에요.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수필 > 음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64)- ‘음악도 추억이요, 체험이다’ - (2) 2024.02.24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63)- ‘윤 수필가, 드디어 미쳤어’ - (4) 2024.02.24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61)- ‘윤 수필가, 어쩔 수 없이 해외여행 나서다- (1) 2024.02.20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60) (0) 2024.02.14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59) - ‘습작메모’- (2) 2024.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