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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레짐작[지레斟酌]하지 말라수필/신작 2026. 1. 12. 06:35
지레짐작[지레斟酌]하지 말라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나이가 들어갈수록 차츰 슬기로워지는 것일까? 이는 자기자랑이지만, 나 또래의 늙은이들한테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준 사례가 40~50명에 달하며, 취업준비생들한테 길 안내를 하여 취업한 사례가 예닐곱 명에 달한다. 다들 ‘윤근택의 키즈(kids)’인 셈.
나는 요즘 둘레의 사람들, 특히 나보다 나이가 적은 이들한테 입버릇처럼 쓰는 말이 있다.
“제발 지레짐작하지 마시오. 예단(豫斷)하지 마시오. 해보들 않고서... .”
어제 낮에 실제로 있었던 일. 사실 그 동안 내가 70여 년 동안 실행했던 일들 가운데에서 하나의 작은 예에 불과하지만... .나는 30대의 취업준비생 아들은 둔 그 객지 후배의 승용차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홍 과장님, 내가 수차례 일러준 대로 이력서 양식 챙겨왔어요? ”
그랬더니, 그는 빈손으로 왔다고 응답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 남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고서, “요다음에요.” 답해오는 꼴이라니! 더욱이, 내가‘고기 잡는 방법’을 일러주겠다고 부른 터에, 그 일로(?) 그 먼 데에서 승용차를 몰아 온 사람이... . 사실 나는 점퍼주머니에다 그를 위해 연필을 깎아 넣어왔던 게다.
나는 종용했다.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저기 앞 골목으로 갑시다. 두 곳 학교가 나올 겁니다. 문방구 앞에 차를 세우시오.”
그랬음에도 그는 또 다시 나를 실망케 하는 말을 했다.
“형님, 오늘은 일요일인데요, 문방구들은 다 문을 닫았을 겁니다.”
첫 번째 문방구 앞을 지나다니까, 그의 말이 일단은 맞은 듯하였다. 문이 닫혀 있었다.
내가 그만한 일로 그만둘 사람인가? 언제고 답이 나올 때까지 ‘Trial & Error’만이 나의 몫.
“저기 앞에도 문방구가 하나 더 있어요. 그 앞에다 차를 세우고 기다리시오.”
그 문방구에 들르니, 사장은 스트레칭을 하며, 언제고라도 손님 맞을 만반의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이력서 양식을 찾아 건네주며, 나이 칠십에 이른 나의 외모를 보며 따뜻하게 말했다.
“어르신, 종이로 된 이력서 양식은 참으로 오래간만에 팔게 되네요.”
홍 과장 승용차로 돌아와 조수석에 앉은 나는 이내 꾸지람 아닌 꾸지람을 하였다.
“내가 홍 과장 알고 지내는 지가 2년여 째. 아직도 날 모르겠소? ‘지레짐작을 하지 말라’,‘예단하지 말라’고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였건만... ”
그제야 그는 비닐포장에 든 이력서 양식 한 다스를 받아들며, 1,500원 양식 값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한사코 사양했다.
“내 농막에 가서 이 이력서 양식에다 모법답안을 적어둘 테니, 아드님더러 그대로 베껴서 이곳저곳 아파트 전기주임 자리에 도전하라고 하시오. 나는 거금 1,500원 투자함으로써 취업준비생 하나를 건진 게오. 그는 ‘윤근택의 키즈’가 될 게오.”
지레짐작,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 또는 어떤 기회나 때가 무르익지 전에 넘겨짚어 어림잡아 헤아림’. 이 지레짐작은 ‘예단’과도 통하는 말이다.
막상 내가 ‘지레짐작’을 제재로 삼고 보니, 지난날 내가 4독 5독 참으로 열심히 익힌 ‘문장기술론<文章技術論>’ 중에서 나왔던 ‘논증과 논리’단원이 떠오른다. 그 책은‘개념’을 설명하고 있었다. (b)‘적극개념’·‘소극개념’·‘결성개념(缺性槪念)에 이르면, 아래와 같이 적혀 있었다. 제법 나의 글이 길어지더라도 그대로 베껴적으려 한다.
< 아름다운 꽃·밝음·광명·금속·유기체·출생·성공 같이 일정한 내포를 긍정적으로 지시하는 것을 적근개념이라고 하고, 어둠·비금속·무기물처럼 내포를 부정적으로 지시하는 것을 소극개념이라고 하며, 소경·벙어리·배고픔·죽음 등 적극개념인 듯하면서도 사실은 소극개념인 것을 결성개념이라고 한다.>
물론, 작가도 예외는 아니어서, 소극개념이나 결성개념의 어휘들을 가급적 멀리하고, 적극개념의 어휘들을 자주 부려 써야 한다.
내가 둘레의 사람들한테 입버릇처럼 쓰는 ‘ 지레짐작을 멀리하라’는 충고가 그들 부자한테제발 공염불이 아니길.
지레짐작, 그 의미는 다르나 어렸을 적에 내 어머니로부터, 큰형수로부터 ‘질게밥’이란 말은 자주 들었다. 등굣길이 바쁜 터에, 어쩌다 가마솥에서 뜸이 들지 않은 밥을 차려주며 하던 말.
“질게밥, 지레밥이라서 미안하대이.”
그 질게밥도 이제금 생각해보니 고맙기만 하였다.
아무튼, 생활인으로서 지레짐작하는 일은 멀리해야 한다. 어제 자기 아들을 대신하여 나한테 고기 잡는 법을 공부하러 온 홍 과장. 그는 ‘적극성 부족’에 못지않게, 또 하나 귀중한 사항을 놓치고 있었다. 지난 날 연인처럼 지냈던 어느 손위 여류 수필가의 아이디 내지 애칭은 ‘Just Now’였음을 덤으로 일러주었다. ‘바로 지금’이란 뜻을 지녔으니, 얼마나 적극적이며 진취적이냐고?
작가의 말)
이 글을 아주 손쉽게 쓸 수 있도록 해준, 홍 과장 부자(父子)한테 감사의 뜻을 전한다.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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