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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쓰는 <농학개론(農學槪論)>(86)수필/신작 2026. 1. 16. 12:05
* 이번에도 이미 내가 적어 본 티스토리에 올려둔 글로 갈음.
87. 배추를 노래함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올해 나의 ‘만돌이농장’ 김장배추는 풍작이다. 아내가 지레 몇 포기 뽑아 담근 김치 맛도 여느 해와 달리 달큰하다. 그 동안 아내가 성당교우들한테 한, 두 포기씩 ‘맛보이기’로 자랑삼아 선물했던 모양. 그래서 김장배추로 뽑아가겠다는 이들이 많다. 요즘 아이들 말마따나 완판(完販). 예전 어른들 말씀대로라면 입도선매(立稻先賣) 완료. 아내가, 내 뮤즈들한테 선물로 부칠 배추들은 제발 마저 뽑지 않기를.
나는 배추 파종 적기인 처서(處暑)에 맞추어, 모판에 기르던 배추묘를 본밭에다 옮겨 심었다. 그 씨앗의 내력. 지난해에도 분에 넘치게 배추를 심어, 겨우내 이불을 덮거나 소형 비닐터널을 하거나 해서, 수시로 뽑아먹거나 닭들한테 주거나 염소한테 주거나 하였다. 그러했던 배추들 가운데에서 이른 봄까지 살아남은 배추들은, 노화(老化)로 인하여 끝내는 지상부(地上部) 잎들은 다 뭉그러지고 뿌리만 남게 되었다. 그랬던 것이 다 죽은 줄 알았더니, 봄날 그 뿌리에서 새 잎이 돋아나고 꽃대를 자랑스레 뽑아 올려, 꽃피우고 씨를 맺게 되었다. 나는 그 씨를 털어, 올해 김장배추 씨앗으로 삼았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는 금세 알아차리실 듯. 겨우내 배추뿌리만 얼리지 않고 온전히 간수하다가 봄날 밭에다 심어도, 씨받기를 할 수 있겠네 하고서.
지금부터 배추의 기특함을 줄줄 자랑할 차례. 배추는 '십자화과(十字花科)'의 식물이다. 그 꽃잎이 십자가처럼 네 이파리로 갈라 서 있고, 아주 수수하고 자잘한 꽃을 꽃대 가득 피운다. 그러니 한 포기만 채종용(採種用)으로 제대로 키워도 적잖은 양의 종자를 얻을 수 있다. 거기다가 그 씨앗이 양귀비씨, 담배씨, 겨자씨 못지않게 잘아서, 엄지와 검지로 한 알을 잡아 포트(플러그) 묘판에 심으려 해도 세심히 주의가 요할 지경. 그렇게 작은 씨앗 하나가 아름드리 배추 한 통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여간 기특한 게 아니다. 그 부가가치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 더더군다나 60일 배추니, 70일 배추니, 80일 배추니, 90일 배추니 할 정도로 그 짧은 생육기간을 거칠 따름인데... .
배추는, 특히 김장배추로 쓰이는 ‘결구(結球) 배추’는 서늘한 기온을 좋아한다는 점도 내가 놓칠 턱이 없다. 이는 흔히들, ‘고랭지 배추’라고 하는 배추를 선호하는 이유와 맞닿아있다. 기온 일교차가 심하면, 단맛을 더한다는 거. 이는 모든 작물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내 고향 경북 청송의 특산물로 알져진 ‘청송사과’도 기온 일교차가 심한 데서 이른바 '착색(着色)'이 잘 되는 덕분. 농업 전문용어인 '착색'의 개념은, 생장과 생장멈춤을 교대로 하면서 ‘켜’가 형성됨을 뜻하기도 한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대장장이가 연장을 담금질 하는 이치와 같다고나 할까. 마찬가지로, 배추도 기온 일교차가 심해, 얼었다가 녹았다를 거듭 해야만 단맛이 더해진다는 거. 그러니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는, 특히 나의 뮤즈들을 포함한 여성 애독자들께서는 김장을 하더라도 가급적 때를 늦춰 잡으시길. 내가 배추를 통해서 얻어야 할 삶의 지혜가 이 단락에도 머무르고 있다. 우리네 삶도 우여곡절 끝에 단맛을 더해간다는 것을.
배추의 갸륵함은 또 다른 데에서도 찾을 수 있다. 가을가뭄이 심해, 스프링클러를 틀어, 배추밭에 물을 주면서, 혼잣말을 하게 되었다는 거 아닌가.
“이 녀석들의 뿌리는 그 지상부 몸집에 비해 턱없이 부실한데도... . 마치 하이힐의 뾰족 뒷축 하나가 50~60그램 여성의 몸무게를 감당하듯 한단 말이야!”
사실 ‘재배학 원론’에서는 ‘S/R률(shoot/root ratio)’, 혹은 ‘T/R률 (top/root ratio)’이라는 게 있다. 즉, 식물의 지상부(樹冠)와 지하부(뿌리)의 관계를 백분율로 나타낸다. 대체로, 여타 식물들은 자연상태에서 그 수치가 ‘1’인데, 배추는 과분수이니 신기할밖에. 잘은 모르겠으나, 공[球]처럼 생겨먹었기에 중심잡기가 오히려 쉬워서 그렇게 부실한 뿌리로도 지탱할 수도 있으려니.
배추밭에 서서, 내가 크게, 아주 크게 놀라워하는 점은 진짜 다른 데에 있다. 다 자란 배추의 속을 반절 쪼개어, 그 포개진 이파리수를 낱낱이 세어본 적은 없다. 또, 배추가 정말로 최장 90일만 자랄까에 관해서도 궁금해본 적 없다. 하더라도, 하루에 한 장 이상은 새로 나올 듯. 그 새 잎이 나오되, 겉으로가 아닌 안으로만 안으로만 자라 최대한 단단한 공이 된다. 참말로, 안으로 살찌는 존재는 배추와 게를 비롯한 일부 갑각류뿐인 듯. ‘알참’ 내지 ‘내실’은 배추가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미덕. 속살결이 노란 결구배추여! 젊은 날 앙탈하는 애인의 브래지어를 벗길 때 드러나던 그 고운 젖무덤 언저리 같은 결구배추의 속살이여! 그게 바로 우리네 밥상에서는 없어서는 아니 될 김치의 재료이나니!
내가 배추 이야기를 여기서 끝내자니, 못내 아쉬운 점 있다. 꼭히 이 이야기는 해야겠다.
이하는 본인의 수필작품, ‘단일성 식물’의 한 부분을 떼다 붙인 것이다.
<(상략)우장춘(禹長春, 1898~ 1959) 박사가 (결구배추)를 일본으로부터 맨 처음 들여왔다는 걸 나는 알고 지낸다. 기왕지사 내친걸음이니,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덤으로 알려드릴 게 있다. 우장춘 박사의 업적은, ‘씨 없는 수박’ 개발이 아니라 ‘겹- 패튜니아꽃’ 최초 개발이다. 또, 그분은 정부에 건의하여, 제주도에다 ‘감귤’ 재배를 하면 되겠다고 하여 감귤을 들여왔으며, 강원도 고랭지에다 감자를 재배하면 ‘더뎅이병’ 등에 잘 견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해서, 그 이후 ‘씨감자’ 하면 강원도 감자가 된 것이다. 우리 민족한테는 참으로 훌륭한 분이다.(하략)>
이하는 본인의 수필,‘속죄하며 산 이들’의 일부분이다.
<(상략)우장춘 박사는, 그는 명성왕후 시해사건의 주동이었던 무신(武臣) 우범선(禹範善)과 일본인 아내 사이에 태어났다는 거 아닌가. 사실 그의 부친은 우국지사(憂國之士)들로부터 암살당했다고 한다.(하략)>
문헌상, 본디 고려시대 때부터 중국 원산의 배추가 들어왔다고는 하나, 우장춘 박사가 ‘결구배추’를 새롭게 육종해낼 때까지는 ‘홀쭉이 배추’ 즉, 알을 크게 배지 않는 배추였다니... .
자신의 부친 모국에 그처럼 훌륭한 업적을 남긴 우장춘박사를 기리며, 글 줄이려 한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도 김장배추를 대할 적마다 우장춘 박사를 떠올려주셨으면 참 좋겠다.
관련 글 읽기)
단일성 식물
http://yoongt57.tistory.com/400
속죄하며 산 이들
hhttp://yoongt57.tistory.com/834
작가의 말)
단숨에 적었다. 해서, 넘치는 부분 다소 있을 듯. 넘치는 부분, 즉 절제되지 않은 ‘잉여표현’은 애독자님들께서 절제하여 읽어주시길.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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