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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쉬 키세스(Hershey's Kisses)
    수필/신작 2026. 1. 28. 15:31

       

       허쉬 키세스(Hershey's Kisses)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내가 이미 적어 본인의 ‘티스토리’에 올려둔 ‘키세스(Kisses)’란 글로서부터 출발.

     

       <(상략) 2025년 1월 5일부터 며칠간, 내가 즐겨 시청하는 유튜브들 화면에 ‘키세스 시위대’,‘한남동 키세스’,‘키세스 우주전사’등의 표현이 있었다. 2030 세대가, 특히 여성들이 서울 한남동 길거리에서, 눈보라 무릅쓰고 은박담요를 뒤집어쓰고 밤샘을 하는 영상. 나이 70을 목전에 둔 나는 그 영상을 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릴밖에. 한마디로, 그 광경은 처연하기만 하였다.

    제목으로 삼은 ‘Kisses(키세스)’는, 위에서 이미 소개했던 ‘키세스 우주전사’로 요약할 수 있다.

     

        (다음은 어느 신문 기사를 그대로 따옴.)

     

       <<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은박 담요를 꽁꽁 싸맨 채 시위를 벌이는 시민 집회 참가자들에게 은박지로 포장된 초콜릿 이름에서 딴 ‘키세스 시위대’란 별칭이 붙은 가운데 예능 ‘알쓸신잡’ 등에 출연해 얼굴을 알린 카이스트 출신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가 6일 “우주 전사라 할만하다.”고 칭찬을 아까지 않았다.

     

       이어 “따라서 한남동의 키세스 시위대는 우주 전사라 할 만하다”고 결론지었다.

    한편 윤 대통령 체포영상 만료를 하루 앞둔 전날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선 체포 찬반 세력이 각자 집회를 열었다. 이날 서울에는 최대 8㎝의 눈이 예고되는 등 대설주의보가 내려졌지만 시민들은 우산, 우비, 은박 담요 등으로 몸을 보호하며 밤샘 시위를 이어갔다.

       (중략)

       이에 누리꾼들은 시위대가 은박 담요를 뒤집어쓴 모습이 미국의 유명 초콜렛 브랜드 ‘키세스’의 포장된 모습과 닮았다며 ‘키세스 군단’, ‘키세스 시위대’, ‘키세스 동지’ 등의 이름을 지어 불렀다. >>

     

       내 조국 대한민국을 한 동안 혼란에 빠뜨리고,내란범 혐의로 깜방에 있으며, 현재 재판중인 윤석열 일당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다.

     

       허쉬 키세스, 미국의 어느 초콜릿 회사가 개발한 초콜릿의 제품명이다.

       때는 1881년. 2번째 사탕가게 사업을 실패한 ‘밀튼 허쉬(Milton Hersh, 1857~1945)’는 낙향하여, 삼촌한테 사업자금 빌려달라고 조르게 된다. 하지만 삼촌을 비롯한 온 가족들로부터 내침을 당한다. 그때 그의 나이가 대략 25세 안팎.

       그의 전력도 화려하였다. 사실 그는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자, 학업을 포기하고 14세 나이에 펜실베니아주 랭커스터시에 자리한 어느 제과점에 도제로 들어가서, 수년간 사탕만들기를 배웠다. 어느 날 자신만만하게, 독립해도 되겠다싶어, 1876년 19세 나이에, 건방스레(?) 필라데피아로 가서 제과공장을 설립하였다. 3년 만에 쫄딱 망했다. 그러고도 또 다른 곳에 가서 제과점을 만들었으나, 그곳에서도 6년 만에 점방을 닫아야만 했다.

       위에서 소개하였지만, 삼촌한테 사업자금을 꾸러갔으나, 내침을 당하고 ... 이래저래 사업자금을 빌린 그. 어느 날 그는 재기를 꿈꾸며 눈물 흘리면서 콜로라도 덴버를 지나가게 된다. 그곳에서 마주친 새로운 광경. 그 동네 제과사들은 우유로 캐러멜을 만들고 있었다. 그 광경을 유심히 보게 된다. 부드러우면서도 저장능력이 뛰어난 캐러멜. 그는 거기에서 착안하여 1886년에 ‘랭커스터 캐러멜사’를 창업하여 드디어 대박을 터뜨린다.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만국 콜롬비아 박람회’에 출품된 독일의 초콜릿의 공정과정 등에 감탄한 그. 그는 남들이, “그 잘나가던 캐러멜 회사를...”이라고 비웃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100만불에 매각하고, 세계 최대 초콜릿회사를 창립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자기 이름 ‘허쉬’를 딴 ‘허쉬 초콜릿사’.

       그이한테는 철학이 있었다. 당시 너무 비싸서, 많은 이들이 함께 즐길 수 없는 점을 감안하여, 간식거리로 소형화하여 일반소비자들을 겨냥해야 한다는... . 그의 전략은 성공이었고, 대박에 대박을 거듭하게 되었다.

       그의 그 많은 성공담과 사회기여 등 덕담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어, 내 글에서는 과감히 생략 한다. 대신, 작가인 나는 1907년 그의 나이 50세에 출시한 ‘허쉬 키세스’스토리에 이르러, 눈물알갱이를 ‘또르륵’ 흘릴밖에. 그게 위에서 이야기한 키세스 내지 ‘인간 키세스’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은박지에 감아싼 그 키세스, 키세스, 키세스! 눈물방울처럼 생겨먹은 그 은박지 싼 ‘허쉬 키세스’. 그것은 허쉬, 그의 눈물 결정체가 아닐까 하고서. 덧붙여,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룩한‘K-민주화’내지 ‘K-민주주의’를 쟁취한, 지지난 해 이맘때쯤 젊은이들 ‘인간 키세스들’한테도 찬사를 보낸다.

     

       * 이 글을 새롭게 얻은 나의 뮤즈께 공손히 바친다. 여태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대 그리워하면서, 그대 생각하면서, 막걸리 750ml들이 세 병 마시며, 단숨에 적어 바친다. 부디, 모자라는 부분은 그대가 채워서 읽어주시길.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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