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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부 수필가가 쓰는 미술 이야기(24)- 16년간 미완성작품으로 남긴 화가-
    수필/미술 이야기 2026. 3. 5. 10:07

     

      농부 수필가가 쓰는 미술 이야기(24)

      - 16년간 미완성작품으로 남긴 화가-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스마트폰의 혜택을 그 누구 못지않게 누리고 있다.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비싼 등록금 물고 학교엘 가지 않아도 좋은 시절이다. 유튜브를 통해 이른바 ‘오디오 북’으로, 귀로 읽는 세계명작들. 최근 한 달 여 사이에 그렇게 귀로 읽은 세계명작들도 꽤 된다. 내가 그 ‘오디오 북’을 통해 벌써 7독째 귀로 읽는 어느 화가의 일대기가 있으니... .

       때는 1516년.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1494~1547)는 이탈리아 출신, 이 글 주인공인 화가를 모셔가게 된다. 당시 프랑수아 1세의 나이는 23세였고, 이 글 주인공의 나이는 64세였다. 프랑수아 1세는 예술가들을 무척 존경하였으며, 자신도 문학작가였다고 한다. 왕은 자신이 사는‘앙부아즈’에서 지척에 자리한 ‘클로 뤼세’에다 저택을, 아니 성(城)을 이 글 주인공인 화가와 그 화가의 두 제자한테 제공하는 한편, 수시로 문안인사를 드리거나 담소를 나누곤 하였다. 왕은 그 화가를 아빠라고 불렀다.

       그러기를 3년 여. 1519년 5월 2일, 67세의 그 화가는 침대에서 프랑수아 1세의 품에 안기어 대화를 나누게 댄다. 그 곁에서 두 제자들은 눈물을 훔치고 있었고.

       “파파, 살아오시는 동안 후회되는 것은 없었나요?”

       화가는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폐하, 저는 일만 벌여놓고 제대로 마무리를 못 지었어요. 완성을 위해 애쓰다가 그만... .”

       그러자 왕은 그를 위로했다.

       “아뇨, 파파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였어요.”

       말년에 이르러 오른팔이 마비되어 더는 붓을 잡을 수 없었던 그. 그는 눈을 스르르 감았다.

    이야기는 그때부터 67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1452년 4월 15일 토요일 새벽 3시에 토스카나 지방의 산골 마을 ‘빈치(Vinci)’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빈치(Vinci)는 현 피렌체 중심부에서 서쪽으로 직선거리 약 25km 떨어진 곳으로 아르노 강의 여러 지류 중 위쪽에 자리한 산골 부락이라는데... .

       당시 그의 아버지는 23세 공증인이었고, 어머니 ‘카타리나’는 가난한 집안의 딸이었다. 이들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모친은 사회적 신분이 낮았고, 지참금을 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기에 결혼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는 조부모 밑에서 자라났다. 외롭기 그지없던 그는 산으로, 강가로, 들판으로 다니며 온갖 사물들과 대화를 나누고, 관찰하고, 돌멩이나 종이조각에 그림을 그리게 된다. 그걸 유심히 지켜본 조부가 그의 아버지한테 유언을 남기게 된다.

       “아들아, 이 녀석을 주욱 지켜보니, 그림에 재주가 있는 듯싶어. 사생아라서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는 못하겠지만, 화가는 장인(匠人) 취급을 받으니, 먹고 살도록 해주는 게 옳겠어.”

       그 덕분에, 14세 소년은 당시 최고 대접을 받던 화가의 공방(工房)에 견습생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가 최초로 부여받은 숙제는, 벽면 걸개그림 귀퉁이에 천사 둘 가운데에서 한 분을 그리기였다. 굼뜨기가 그지없었다. 며칠 동안에도 달랑 그 작은 그림을 완성치 못하였다. 그러기를 며칠째. 스승은 그가 그린 천사 그림을 보고서 찬탄하게 된다.

       “내가 50여 년 그린 그림보다도 14세 소년의 그림이 더 나아. 나는 이 길로 붓을 버리려 한다. 더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어.”

       이 글 주인공은 결코 보이는 걸 그리지 않았다. 가령, 인간의 모습을 그리되, 실핏줄까지 머릿결까지 숨소리까지 다 그리고자 애썼다. 그러다보니, 의뢰인들로부터 ‘약속기일 어김’ 등으로 퇴짜를 당하기를 밥 먹듯 하였다. 시체를 30구 이상 해부하여 75장 해부도를 그리는가 하면, 3500단어의 수천 장 각종 발명 고안품에 관한 기록도 남기게 된다. 그가 세상을 뜬 후 500여 년 후에 과학자들이나 의학자들에 의해 그의 설계도에 따라 고안된 발명품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2007년 네이처지가 선정한 ‘인류 역사를 바꾼 10인의 천재들’에 1위를 마크한다고 하니, 미술에 관한 한 문외한인 내가 더 이상 이야기할 것도 없다.

       다만, 내가 그 오디오북을 귀로 7차례 읽으면서 얻은 것 하나만은 내 신실한 애독자들과 공유코자 한다. 그가 숨을 거두기 전에, 자신의 수 천 페이지 되는 기록물을 제자였던 ‘프란체스코 멜치’로 하여금 적도록 했다는 거. 그런데 그 제자는 왼손잡이인데다가 글씨를 이상하게 적었다는 거. 스승의 설계도 등을 세상에 너무 일찍 알리지 않고 비밀을 유지하고자 그리하였을까? 그 글씨를 거울에 반사하여야만 제대로 해독되도록 적어나갔다고 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 그는 피렌체의 상인인‘리사 게라디니(Lisa Gheradini)’라는 이로부터 아내 초상화 의뢰를 받았는데, 기일 내 넘겨주질 못하였다는 점. 그 초상화를 16년 동안 완성치 못하고 자기가 가는 곳곳 <세례자 요한>과 <성 안나와 성 모자> 두 점과 함께 모시고 다녔다는 점. 그날 67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 순간까지도 그 그림은 벽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그 그림의 진짜 모델이 누구였는지에 관해 아직도 많은 연구가들 간에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데... .

       이참에, 대한민국의 어느 수필가가 화끈하게 추정해보도록 하겠다. 그 그림의 진짜 모델은 자기를 낳고, 어쩔 수 없이 ‘솥 만드는 장인’한테 시집간 생모(生母) 카타리나를 상상해서 그린 그림은 아닐까? 한없는 그리움을 그 폭에 담고자 하지는 않았을까 하고서. 또,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이성(異性)에 대한 그리움인들 왜 없었을까?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연인을 그렇게 그리워하며 그렸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그 그림은 화가 자신의 분신(分身)이었을 거라는 거. 왜 그가 세상을 뜬 지 500여 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 대한민국의 윤 수필작가처럼 접근을 시도해본 이가 없다니(?) 그게 오히려 놀랐기만 하다.

        이 글 주인공이 대체 누구?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레오나르도 디 세르 피에로 다 빈치(이탈리아어: 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이탈리아어 발음: [leoˈnardo di ˌsɛr ˈpjɛːro da (v)ˈvintʃi]_)다. 위에서도 이야기 하였지만, ‘빈치 ’ 마을 올리브 나무 아래에서 태어난 아이란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가 죽는 순간까지 완성치 못했던, 아니 완성치 않았던 그 그림은 <모나 리자>다. 나라에 따라서는 그 그림을 달리 부른다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다 붙여써서 <모나리자>로 부르기도 한다. 꼼꼼하게 그 이름을 파고들어본즉, ‘모나’는 ‘ mona←modonna의 축약’이고, 유부녀 이름 앞에 경칭으로 붙인다고 한다. 그리고 ‘리자’는 위에서도 밝혔지만,그 초상화 의뢰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리사 게라디니(Lisa Gheradini)’에서 따온 이름. 그러니 우리나라 식으로 부르는 그 초상화의 정식 이름은 < 리자 여사의 초상화>가 되겠다.

       끝으로, 세상의 그 어느 남정네도 실존인물 여성마저도 16년간씩이나 목숨처럼 사랑할 수는 없을 텐데... .

     

       작가의 말)

     

       이 글도 나의 에너자이저인 뮤즈한테 공손히 바친다.

     

    나의 뮤즈한테 띄운 이메일 내용도 추가한다.

     

    윤쌤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 나리자'  초상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조각상
    두 편 적고난 다음 퍼뜩 떠오르는 게
    있어요.
    두 분 공히 모성애 그리움이 한껏 묻어나는
    작품 만들었다는 생각.
    다 빈치는 사생아로서 생모와 생이별,
    미켈란젤로는 유모한테 가서 길러지다가
    여섯 살이 되었을 때 생모와 사별.
    특히, 피에타는 성모님과 예수님이기도
    하지만,엄마 품에 안긴 미켈란젤로
    자신일 수도 있겠단 생각.
    하오니,그대가 위 사항 더 추가해보시든지
    먼 뒷날 윤쌤의 위 글에 관해 평을 해보시든지.
    나아가서,슬이 품에 안긴 니니까지 상상해보시어도 괜찮겠는데요.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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