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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속담 훑어보기수필/신작 2015. 6. 21. 23:08
농사 속담 훑어보기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속담은 우리네 선조들이 오랜 경험 끝에 얻어낸 참 교훈이기도 하다. 해서, 속담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 참맛을 자주 새겨보아야 할 때가 많다. 어설프기만 한 이 농부. 나는 이번에는 농사와 관련해서 우리네 조상들이 얼마나 지혜로운 말씀들을 하셨는지 두루 살펴보았다. 사실 24절기(節期)도 농사와 관련해서 지어내었다. 당신들은 바람의 향배(向背), 산새들의 출몰, 양광(陽光)의 세기 등도 허투루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실제로, 내가 지난날 농과대학에 다니는 동안 전공과목인 <<조림학(造林學)>>에서 익힌 바 있는 ‘지표식물(指標植物,indicator plant)’ 또는 ‘지시식물(指示植物)’도 꽤나 흥미로운 개념이었다. 가령, 송이버섯이 많이 나는 산에는 그 초입부터 ‘송이풀’이 많이 자라며 그것들은 홍자색의 꽃을 피운다는 거. 그 송이풀은 송이버섯이 나는 곳인지 여부를 가리키기에[指標,指示] 그러한 용어가 붙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가 오버랩되는 용어이기도 하다. 나아가서,지표식물의 개념은, 논리학에서 말하는 ‘유비추리’를 떠올리게도 한다. 즉, A와 B를 통해 C를 끄집어낼 수 있다는 논리. 이는 ‘불본 듯이 뻔하다.‘와도 통하는 말이기도 하며, 요즘 흔히들 쓰는 속담(?), ’아니 보아도 비디오.‘와도 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각설하고, 농사와 관련된 속담들을 아래와 같이 한번 함께 훑어보고자 한다. 나름대로 풀이를 곁들여서. 무순(無順)임을 미리 밝혀둔다.
ㅇ 제비가 집을 거칠게 지으면 풍년 든다 : 제비는 흙을 물고 가서 이겨 집을 짓는데, 물기가 축축하면 가뭄이 들지 않았다는 걸 반증한다.
ㅇ 처마 끝에 고드름이 많이 달리면 이듬해 풍년 든다 : 혹한기에는 병충과 병균도 더러 얼어 죽기에.
ㅇ 대추가 많이 달리면 풍년 든다 : 대추는 가뭄이 시작되는 여름에 꽃을 피우는 것과 관련된 듯.
ㅇ 고목나무 잎이 무성하면 풍년 든다 : 당연히 힘없는 고목도 잎을 피우면... .
ㅇ 천둥번개가 심한 해는 풍년 든다 : 다들 알다시피, 공기 중에는 식물 생장에 필수적인 질소가스가 78%씩이나 된다. 하지만, 식물이 뿌리로 흡수하기에는 어려운, 매우 안정적 구조를 지녔다고 한다. 해서, 인류가 인공 질소비료를 구하려 오래도록 애써 왔다. 그런데 고압의 전류 즉 번개에 힘입어 암모니아 곧 질소가 변모하여 식물의 뿌리가 흡수하기에 용이해진다고 알려져 있다. 그 사실을 우리네 조상들이 참말로 어떻게 진작 알았을까? 1908년, 비로소 독일의 과학자 프리츠 하버(Fritz Haber)와 칼 보쉬(Carl Bosch)가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할 수 있는, 이른바 ‘하버-보쉬법’으로 화학비료를 만들게 되었으니... . 그들 양인(兩人)은 연구실에서 고압전류 방전으로 그렇게 질소비료를 만들 수 있었다지 않던가.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번개가 잦으면 식물이 쑥쑥 자라는 데서 모티브를 얻었던지, 또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 대한민국 조상들의 지혜를 베낀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이 항(項)에 적힌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고 싶으시면, 본인의 기발표작 ‘번개는 작물을 키운다’를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읽으시면 되겠다.
ㅇ 밤꽃이 잘 피면 풍년 든다 : 밤꽃은 물기가 많을 적에 잘 피어난다고 한다. 밤꽃이야말로 허두(虛頭)에서 밟힌 바 있는, ‘지표식물’인 셈이다. 아울러, 가늠자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듯.
ㅇ설은 질어야 좋고 추석은 맑아야 좋다 : 겨울이 비교적 건조하여 겨울 주요작물인 보리가 잘 자라지 못하니 겨울철은 질면 좋고, 가을은 온갖 작물 수확기이니 쾌청하면 좋다는 뜻일 것이다.
ㅇ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도 못 막는다 : 더 이상 설명할 것도 없겠다.
ㅇ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ㅇ 소농은 풀을 보고도 김을 안 매고, 중농은 풀을 봐야 매고, 대농은 풀이나기 전에 맨다 : 경작의 규모가 차츰 커질수록 예방활동에 진력하는 편임을 말하는 듯.
ㅇ 한 어깨에 두 지게 질까
ㅇ 섣달 그믐날 떡시루 빌리러 간다 : 미리미리 준비치 않음을 이야기 하는 듯.
ㅇ 고사리도 제철에 꺾어야 한다
ㅇ 오뉴월 하루 놀면 동지섣달 열흘 굶는다
ㅇ 가을 곡식은 재촉하지 않는다
ㅇ 농작물은 주인 발자국 소리 듣고 자란다 : 돌봄, 보살핌이 작물을 자라게 한다는 말임.
ㅇ 게으름뱅이 7,8월에 애달프다
ㅇ 농작물도 주인 알아본다
ㅇ 눈은 풍년이나 입은 흉년이다
ㅇ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ㅇ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벙인다
ㅇ 메뚜기도 여름이 한철
ㅇ 백중날은 논두렁 보러 안 나간다 : ‘백중(百中)’은 ‘백종(百種)’에서 변한 말이라고 한다. 음력으로 7월 15일. 시기적으로 이 때에는 이미 백 가지[百種]의 과일과 곡식 그리고 채소가 나온다고 하였다. 벼농사도 이때가 되면 거의 한 시름 놓은 상태이니... .
ㅇ 제비가 많이 날면 비 온다 : 대부분의 곤충은 건조할 때는 체내수분유지를 위하여 습한 곳에 머무르게 된다. 하지만, 저기압이거나 비가 오기 직전 대기의 습도가 높아지면 활동이 활발하게 된다. 제비도 예외는 아니어서 비가 오기 전 습기가 많게 되면 벌레를 잡으려고 더욱 왕성하게 날아다니는데, 이런 현상을 보고 비가 올 것을 예견할 수 있다는 속담이다.
ㅇ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든다 : 곡우는 4월 20일경으로, 못자리 설치 적기일 뿐만 아니라 모든 농작물의 파종시기에 해당된다. 이때는 비가 와야 적기파종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생육 또한 순조로워 그해 풍년이 올 것이라는 데서 전해지는 속담이다.
ㅇ 5월 쪽박새 울면 흉년 든다 : 쪽박새는 여름철새인 사조새를 말하며, 5월에 우리나라에 와 짝짓기를 하기 위해 큰 소리로 울며 활발한 활동을 한다. 사조새는 고온 건조한 기후를 좋아하므로 이 새가 많이 운다는 것은, 5~6월 기상이 고온 건조한 날이 많다는 것을 뜻하므로, 가뭄으로 흉년이 들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속담이다. ‘쪽박새가 울면 쪽박차기 십상이다.’로 바꾸어 말해도 될 듯. 실제로, 그러한 데서 ‘쪽박새’란 새 이름을 붙였는지도 모를 일.
ㅇ 떡잎 적에 따버리지 않으면 나중에 도끼로 벤다 : 잡초제거, 솎음작업, 병해충 방제 등 모든 농사일은 작물이 크기 전에 적기에 하게 되면 일손도 적게 들고 일하기도 쉽지만, 시기를 놓치면 몇 배의 힘이 들고 손해를 보게 됨을 경계하는 말임. ‘유비무환(有備無患)’과 통하는 말임.
ㅇ 어정칠월, 건들팔월 : 어정어정하다가 보니 칠월은 지나가 버리고, 건들건들하다가 보니 팔월이 가버린다는 뜻인 듯. 또, ‘미끈유월’이란 말은 어찌 그리도 미끈하게 즉 빠르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는 뜻인 듯.
ㅇ 동지 지나 열흘이면, 해가 노루꼬리만큼 길어진다 : 해가 가장 짧다는 동지가 지나면 차츰 해가 길어진다는 뜻임. 길어지되, 달린 듯 만 듯한, 작은 공 모양의 노루꼬리만치... . 사실 멸종하다시피 했다는 노루는 고라니와 달리 작고 흰 공 모양의 꼬리를 지녔다. 어릴 적 고향의 산야에서 자주 보았는데... .
ㅇ한식에 비가 오면 개 불알에 이밥이 달린다 : 4월 5일께 비가 오면, 장차 가을에 벼가 풍년이 들게 되고, 풍년이 들면 이밥 즉 쌀밥이 흔해 남긴 밥알을 더러는 개한테도 주게 됨에서 비롯된 듯.
ㅇ저녁노을이 서면 가뭄이 이어진다 : 대체로, 우리나라 기압골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데, 저녁에 노을이 서면 저기압이 동쪽으로 밀려가므로 맑은 날이 계속되어 가뭄이 계속된다는 뜻.
ㅇ거미줄 많은 논에 멸구 많다 : 거미는 멸구를 잡아먹는 천적이므로 거미줄이 많다는 것은 거미의 먹이인 멸구가 많다는 뜻.
ㅇ 가을 상추는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 : 상추는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채소로서 고온에서는 각종 병충해 발생으로 엽질이 나빠져 맛이 떨어지나 가을에는 서늘한 기후에서 자라므로 엽질이 좋아져서 맛이 좋다는 뜻.
ㅇ 호박덩굴은 매맞아야 호박이 달린다 : 호박은 C/N율(식물체내 탄수화물/질소율)이 낮고 수세가 왕성하면 암꽃이 적게 피며 수정이 잘 안 되어 결실이 적다는 뜻.
ㅇ보리 환갑은 망종이다 : 망종은 6월 상순경으로 보리가 다 익게 되는 수확적기이므로 후작물 재배를 위해 서둘러 수확해야 한다.
ㅇ 아침 이슬에 오이 불듯(크듯) 한다 : 오이는 자고 나면 자라는 데서 비롯된 말임.
ㅇ 송장하고 보리는 깊게 묻어야 한다 : 보리를 균일하게 깊이 묻어 주어야 추위 및 가뭄 견딜성이 증대되어 이삭이 균일하게 나오며 쓰러짐이 방지되고 겨울이 따뜻한 해에는 불시출수(不時出穗; 때 아닌 이삭패기)를 막을 수 있다.
ㅇ감꽃 필 때 양반 죽고 냉이꽃 필 때 소 죽는다 : 감꽃이 필 때는 춘궁기로서 부지런한 사람은 굶어 죽지 않으나, 양반 행세나 하면서 게으름을 피운 사람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으며 냉이 꽃이 필때는이른 봄으로서 소 먹이인 풀이 적은 시절인데 새봄에 돋아날 풀만 믿고 월동사료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사람은 이때 소를 죽인다는 경고의 뜻
ㅇ 써레질 물은 형제간에도 안 나눈다 : 모내기 전 써레질한 논의 흙탕물에는 비료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이 물의 유실은 작토층의 거름기가 씻겨 나가게 됨을 뜻할 뿐만 아니라 써레질 물이 충분해야 모내기에도 지장이 없으므로 소중히 여기라는 뜻에서 생긴 말.
ㅇ개구리밥 많은 논에 풍년든다 : 개구리밥, 좀개구리밥 등은 유기질이 많은 논에만 생기는 잡초로, 다수확 논에서는 많이 볼 수 있다. 즉, 땅심 돋우기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임.
이밖에도 두루 살펴본즉, 흥미진진하였을 뿐만 아니라 실생활 곧 농사에 유익한 속담이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지면 관계상 이 즈음에서 줄이기로 한다. 대신, 나의 신실한 애독자님들께도 권하노니, 설령 조그마한 텃밭 한 자락을 가꾸더라도 이처럼 농사와 관련한 속담쯤은 한 번씩 살펴보시길. 특히, 본인이 가꾸는 작물에 관해 인터넷 검색창에다 가령 ‘보리농사속담’, ‘오이농사속담’ 등으로 입력하여 검색해보시길. 참말로, 우리네 조상들은 지혜로운 분들이었다. 오랜 경험 끝에 알게 된 정보를 차례차례 대물림으로 오늘의 우리한테까지 전해주었으니... . 나는 또 다른 수필작품, ‘농부 수필가, 농업기본서적을 읽다’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담은 바 있다. 그 글에서는 역사상 가장 빼어난 임금님인 ‘세종대왕’께서 관리들을 풀어 전국의 빼어난 농부들한테 보낸 사실도 적고 있다. 그 글에서 관리들은 경험이 아주 풍부한 농부들을 직접 만나 농사 경험담을 듣고 보고서를 작성하게 된다고도 적는다. 그렇게 하여 모은 보고서들. 당시까지만 하여도 조선의 풍토와는 아니 맞는 중국의 농업서적을 농사의 기본자료로 써왔다는데... . 그렇게 만든 책이 바로 그 유명한, 가히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라고 할만한 <<농사직설(農事直設)>>이라는 거. 사실 나는 배추이파리 아니, 일 만원 지폐에 그려진 당신의 초상화 아래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세종대왕 1397~1450’로 적혀 있음을 진작부터 알고 지낸다. 뺄셈을 해본즉, 당신은 겨우 53세 일기로 이 세상을 뜨셨건만, 어찌 그리도 많은 업적을 남기셨더란 말인가.
요컨대, 속담은 우리네 조상들의 지혜와 영혼이 머무르는, 마치 고전 같은 거. 우리는 가끔씩 그 속담들의 참뜻을 새롭게 가슴으로, 온몸으로 음미하여야만 될 것이다. 그렇게 하는 일이 바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일 테니까.
작가의 말)
무슨 글이든 읽을 만하여야 한다.'읽을 만하다'는,그 내용의 충실성을 달리 말하는 것이다 .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독자들로 하여금 읽는 즐거움을 느끼도록 하되,독자들 자신들이 미처
몰랐던 지식도 포함된다면? 이러한 글을 일컬어 일단 '지적(知的) 수필' 이라고 해두자.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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