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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곬을 치고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밤새 내가 곤히 잠든 사이에 장맛비가 퍽이나 많이 내렸던가 보다. 새벽에 일어나자, 내 ‘만돌이농원’을 쓸어안고 도는 개울의 물소리가 드세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비라서 고맙기도 하지만, 바짝 신경써야할 일도 있는 게 사실이다. 작물이 심겨진 밭에 장시간 빗물이 고이면, 작물 뿌리의 호흡저해로 이어져 말라죽는 예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추와 참깨의 경우는 24시간 안에 배수가 원활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 경험상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우의(雨衣)를 입고, 장화를 신는 등 복장을 갖추고 물괭이를 들고 최우선적으로 두 뙈기 서로 떨어져 있는 고추밭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산에 접한 터라 밭고랑마다 빗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딴에는 지난 4월 밭을 장만하면서 되도록이면 ‘물곬’을 깊이 내었다고 여겼지만... . ‘물곬’은 우리 쪽에서는 ‘도구’라고 하나, ‘물곬’이 표준말이다. 물곬은 물이 잘 빠지라고 밭에다 내는 배수구를 일컫는다. 오전 내내 이 밭 저 밭 다니면서, 그야말로 ‘물이 흐르는 대로’ 순리에 따라 물길을 깊이 고쳐 내어 고인 물이 시원시원 흐르도록 조치하였다.
물곬을 그렇듯 깊이 내는 동안, 지난해와 지지난해에 겪었던 아린 기억이 겹쳐졌다. 큰 도로변 200여 평 밭에서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나도 수필작가이기에 앞서 사람인지라, 원색적인 욕을 이럴 때에는 아니 할 수가 없다. 그 밭은 마을에서 성질 더럽고 고약하기로 버금버금인 영감탱이 둘을 밭이웃으로 둔 탓에, 농사 해먹기 엿 같다. 지난해는 그곳에다 참깨를 심었는데, 바로 아랫밭 나잇살 일흔이나 먹은 ‘이OO’ 영감탱이가 나의 밭 물곬을 막아버려 장마철에 물이 밭에 잔뜩 실려 망쳐버렸다. 사실 참깨는 침수(浸水)가 독약이다. 지지난해에는 그곳에다 고추를 심었는데, 바로 옆 밭 나잇살 일흔 둘씩이나 먹은 ‘최OO’ 영감탱이가 자기 밭으로 물곬을 내지 못하게 함으로써 망쳐버렸다. 사실 그때마다 입이 달싹달싹 했으나, 타향인 터에 더러워서 말을 아니 했다. 두 영감은 이 마을에서 소문난 위인들이니, 갋으면 내가 더 더러운 사람 될 거라고 여기며 참았다. 그 영감탱이 둘은 정말로 나이를 헛먹은 사람들이다. ‘나이 곰백살 먹어도 인간 아니 된다.’는 우리 쪽 말에 아주 어울리는 위인들이다.
물은 언제고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고, 본디 셋 다 밭이 아닌 논이었다. 굳이 물곬을 아니 내더라도 맨 위에 위치한 내 밭에서 이녁들 밭으로 물은 자기 갈길 찾아 자연스레 흘러내려갈 터인데, 무슨 심술인지 그들은 내 밭둑을 오히려 그처럼 막아댔으니 그게 될 말인가.
물곬을 고쳐 깊이 내는 동안, 위와 같은 기억 외에도 여러 생각이 오갔다. 밭과 논의 근본적 차이는 그 가장자리에 둑이 있느냐 없느냐일 거라고. 그 둑의 도움으로 물을 가득 담으면 논이다. 놀랍게도 논을 일컫는 한자, ‘畓’도 ‘田’에다 ‘水[물]’을 담은 형태다. 벼, 토란, 연꽃 따위는 물에다 자신들의 발목까지 담그고서 자라지만, 대개의 밭작물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침수가 되면 숨을 제대로 못 쉬어 죽고 만다. 밭과 논의 또 다른 차이점은, 밭은 이랑과 고랑으로 되어 있으나, 논은 장판을 깔아둔 듯 편편하다는 거. 논은 ‘물꼬’를 통해 물을 끌어들이고, 또 물꼬를 통해 물을 아래로 내려 보내도록 설계 되어 있다. 반면, 밭은 이랑·고랑· 물곬 등으로 다소 복잡한 구조로 만든다는 거. 이들 가운데 물곬의 기능은 위에서 이미 주욱 이야기 다 하였다. 그러나 이랑과 고랑의 개념과, 그것들을 따로 고안해 낸 우리네 선조들의 지혜를 생각하자니 새삼 놀랍기만 하다. 이랑과 고랑에 관해서는 따로 떼어 다음과 같이 한 단락으로 꾸며보고자 한다.
이랑은 작물을 심는 두둑을 일컫는다. 도형으로 나타내자면, ‘凸(철)’에 해당한다. 고랑은 두둑 아래 골을 이른다. 도형으로 나타내자면, ‘凹(요)’에 해당한다. 해서, 대개의 밭갈이는 이들 이랑과 고랑의 교대작업으로 마무리되는 편이다. 곧 이랑은 산마루요, 고랑은 산골짝기인 셈이다. 정말로 우리네 선조들이 그렇게 밭의 표면을 만들 생각을 어떻게 하였더란 말인가. 이랑은 작물들한테 토심(土深)을 깊게 해줌으로써 실뿌리들로부터 취할 영양분의 양을 늘리게 된다는 점. 고랑은 오늘처럼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필요 이상의 물을 모아 물곬으로 흘러보냄으로써 침수피해를 줄인다. 고랑의 기능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뭄 때에는 적정량의 물을 보유함으로써 작물의 생장을 돕지 아니 하더냐고? 사실 가뭄이 심할 적에는 작물의 뿌리에 직접 물을 주게 되면, 가뭄을 더 타게 된다. 대신, 고랑에 물을 대어주면 시나브로 물이 잔뿌리에 옮겨가서 갈증을 누그러뜨린다. 그것을 농업전문용어로 ‘관수(灌水)’라고 한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팁으로 알려드리오니, 앞으로는 가뭄이 들수록 이랑이 아닌 고랑에 물을 대어 주시길. 고랑은 이처럼 아주 낮은 자세로, 자신은 직접 작물을 키우지 않으면서도 이랑을 보필하여 작물을 키워내니 가상하다고 할밖에. 달리 말해, 이랑은 고랑의 도움 없이는 작물을 키워내지 못한다는 사실. 내가 오늘 새벽 물곬을 깊이 내는 동안 우리네 선조들이 이랑과 고랑을 번갈아 지은 이유에 관해서 생각한 것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논의 경우, 그 면적이 가령 300평이면 300평에 지나지 않지만, 밭의 경우는 이랑과 고랑을 그렇게 번갈아 짓게 되면, 표면적 300평의 밭이 적어도 600평 정도는 될 거라는 거. 이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이랑과 고랑으로 번갈아 밭을 장만하게 되면, 마치 주름잡는 것 같아 다림질 하듯 펼치면 그 표면적이 늘어난다는 거. 이는 아주 의미롭다. 태양의 복사열도 더 많이 받게 되고, 그러면 작물의 생장속도도 빨라질 것은 뻔하다. 어린 날 내 선친은 우리한테 멍석에 내다말리던 ‘우케(벼나 보리)’에 ‘밀개’라고 하는 도구로 이랑과 고랑을 지으라고 이르곤 하였다. 그러면 참말로 우케가 빨리 마르곤 하였다. 밭에 이랑과 고랑을 짓는 이유 가운데 하나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랑을 띠 모양으로 짓는 이유는, 토양학에서 말하는, 토립구조(土粒構造)보다 입단구조(粒團構造;crumbled structure)의 유용함과도 맞물려 있는 듯하다. 즉, 토양 알갱이 하나하나는 그다지 의미가 없지만, 그것들 입자가 그룹을 이뤘을 적에는 생산성을 드높인다는 이론. 살펴보면, 그밖에도 이랑과 고랑을 번갈아 짓는 이유가 많을 것이다.
사실 이날 이때까지 우리네 선조들이 왜 그처럼 이랑과 고랑을 지어 왔는지 심각히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양친으로부터, 이웃 어르신들로부터 본 대로 따라 했을 뿐인데, 이제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랑과 고랑을 따로 짓는 것도 대단한 농사 기술임을 알겠다. 그 폭이나 깊이나 작물 식재(植栽) 거리 등도 작물에 따라 달리 해야한다는 것도 농부의 기본지식임을. 더더욱 오늘 내가 놀라워하는 점은, 고랑 없는 이랑은 존재할 수도 없으며, 고랑은 언제고 이랑보다 낮은 자세로 작물을 떠받든다는 것을... .
* 이 글은 본인의 또 다른 작품, ‘이랑을 보며’와 곁들여 읽으시면 더욱 맛날 것입니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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