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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작가 윤근택이가 신작 및 기발표작 모아두는 곳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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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무' 이야기(1)
    수필/신작 2017. 2. 17. 20:06

                               ‘고무’ 이야기(1)

                                              - 국민학교 시절의 고무-

                                                                                                                       윤근택(수필가)

     

     

       기술도 시원찮은, 역량미달인 내가 이 아파트의 ‘전기·영선(營繕) 주임’으로 지내면서 어느 세대에서 낮에 겪은 일이다.

       ‘파이프렌치’ 며 십자드라이버며 멍키스패너며 몇몇 연장을 부려 써서 ‘싱크대코브라수도꼭지’를 새것으로 교체해 주었다. ‘테프론 테이프’를 감아 물이 새지 않도록 수도꼭지의 볼트를 꼭꼭 죈 다음, ‘이젠 됐겠지!’하며 세대주한테 수도계량기 쪽 ‘메인 밸브(main-valve; 主밸브)’를 열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수도꼭지 이음새에서 분수마냥 물이 치솟아 주방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말았다. 실수였다. 볼트와 너트 사이에 마땅히 끼워야 할 ‘고무 패킹(rubber-packing)’을 깜박 잊고서 채우지 않았던 탓이다. 고무의 위력을, 고리처럼 생겨먹은 그 얇은 고무판 한 장의 위력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다시 한밤이고 나의 정위치인 전기실이다. 불침번을 서면서 ‘고무’에 대한 추억 등에 몰입하게 되는데... .

       지금부터 국민학교 (나는 분명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에 다녔다.) 시절의 고무 이야기다.

       가난한 농부 부처(夫妻)의 열 남매 가운데 아홉 번째로 태어난 나. ‘타이어표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다녔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대개의 아이들이 거의 다 그러했다. 그래도 형편이 좀 괜찮은 집 아이들은 이미 ‘노랑고무신’이나 ‘하양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일학년 때 일이다. 그 노랑고무신이 하도 탐이 나서, 신발장에다 바닥 뚫어진 내 고무신을 둔 채 친구의 그 고무신으로 바꾸어 신고서 하학길에 달아난 적이 있다. 그 아릿한 추억은 이십 대 후반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해서, 대학시절에 ‘흰 고무신’이란 수필 처녀작을 낳게 만들었고, 그 작품은 ‘관동대’가 주최한 ‘전국 대학생 현상문예’에 출품하여 당당히 당선된 바 있다. 사실 나는 고무신, 아니 고무 덕분에 28세 젊은 나이에 수필계에 입문(入門)했던 셈이다.

       내 또래나 내 또래 이전의 선배들은 다들 ‘게시고무’ 에 대한 나름마다의 추억도 있을 터. 게시고무란, 연필지우개를 일컫는 말이다. 오늘에야 ‘네이버 박사(?)’한테 물어보아 안 일인데, 게시고무는 일본어 ‘けしゴム[消しゴム]’의 음역(音譯)이다. 그 고무지우개는 요즘의 그것에 비해 현저히 성능이 떨어졌다. 어찌나 딱딱한지, 글씨를 지우다가 보면 공책이 북북 찢어지기 일쑤였다. 형들과 누나들은 그 게시고무를 부드럽게 만들어 쓰는 요령을 일러주곤 하였다. 호롱불에 쓰곤 했던, 등유(燈油)에다 일정 시간 담가두면 부드러워진다고 했다. 정말 그러했다. 환갑에 이르러서도 ‘게시고무’라고 불러야 지우개의 참맛이 나는 건 왜일까.

       다들 ‘빤스 고무줄’에 관한 추억인들 왜 없겠는가. 요즘에 들어서야 ‘팬츠(pants)’라고들 부르지만, 일본식 발음인 ‘빤스’여야 제 맛이 난다. 빤스 고무줄이 터져 난감했던 일이며, 빤스 고무줄을 젓가락 또는 ‘핀침’을 도구삼아 끼웠던 기억이며, 지금의 아내인 애인의 ‘첫 빤스(?)’를 조심스레 벗겼던 추억이며... . 사실 그 당시만 하여도 여자아이들은 ‘고무줄놀이’가 일상이었다. ‘말[馬]만한’ 가시내들은 골목에서든 운동장에서든 펄쩍펄쩍 뛰며 고무줄놀이를 그렇게도 해대더니... . 그러면 개구쟁이 사내아이들은 ‘말타기놀이[乘馬놀이]’를 타다가, 몰래 가시내들 곁으로 다가가 ‘재키칼(‘jackknife’를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로 그 고무줄을 그렇게 잘도 잘라대더니... . 그렇게 자라난 여자아이들은 어느 남정네로부터 첫 빤스가 벗기고 쑥쑥 아이들을 낳았잖은가. 세계대전에 패한 독일이, 가임여성들로 하여금 속히 사내아이들을 낳아 군인으로 키우도록 하기 위해 ‘핸드볼’이란 구기종목을 개발했다고 한다. 그 사실에 비추어 보더라도, 우리네 고무줄놀이도 쑥쑥 아이 낳는 데 도움이 되었을 터. 또, 그렇게 짓궂었던 녀석들은 자라나 고무줄놀이를 하던 어느 가시내의 첫 팬티를 조심스레 벗겨, ‘말놀이’에서 익힌 대로 ‘말만한’ 아가씨를, '탈만한[乘]'  아가씨를 여자로 만들고... 그러고는 늠름한 애비들이 되었지 않았는가. 이제금 생각해보니, 고무줄놀이와 ‘고무줄끊기놀이’는 사랑의 표현방법 아니, 사랑연습이었던 셈이다. 그 고무줄놀이는 각자 성인이 된 이후, 색다른 고무인 ‘라텍스(latex] 콘돔’ 사용으로 이어졌으니, 고무를 통한 ‘구멍놀이’로 이어졌으니... .

       그 시절의 고무 가운데는 ‘무시고무’도 빼 놓을 수 없다. 무시고무란, 자전거 튜브에 펌프질해서 바람을 넣을 때 쓰던 ‘지렁이고무’를 일컫지만, 일본어 ‘무시고무[むし[虫] 고무]’로 불러야 제 맛이었다. 이른바, ‘던롭(Dunlop)방식’의 공기주입에는 필연코 ‘무시고무’가 쓰였다는 거. 물론, 공기주입 방식은 더욱 발전하여 ‘프레스타(presta) 방식’과 ‘슈레더(schrader) 방식’까지 나왔다.

       여기서 잠시, ‘던롭’에 관해 독자님들께 소개해야할 사항이 있다. ‘존 보이드 던롭(John Boyd Dunlop,스코틀랜드,1840 ~ 1921)’에서 따온 이름이다. 수의사에 지나지 않았던 그. 그는 허약한 아들을 두었고, 그 아들은 자전거타기를 무척 좋아했다. 당시까지만 하여도 자전거바퀴는 통나무바퀴로 되어 있었는데, 자칫 허약한 아들이 자전거를 타다가 다칠세라, 한걱정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다가 축구공에서 착안하여 탄력이 좋은 고무타이어를 개발했다는 거 아닌가. 그가 타이어를 개발함으로써 자동차산업이 본궤도에 올랐다고 과학사(科學史)는 적고 있다. 그가 떼돈 번 것은 두말나위 없고. 실은, 당시 자동차와 공기 타이어의 생산으로 큰 부자가 된 사람은 헨리포드(Henry Ford, 미국, 1863 ~ 1947)였다.

       다시 ‘무시고무’ 이야기로 돌아간다. 우리들, 조무래기들은 자전거 바퀴에 바람이 빠지면, ‘던롭’을 풀어 무시고무를 갈아 끼운 후 ‘자전거 펌프’를 온몸으로 펌프질해서 자전거 바퀴가 빵빵해질 때까지 바람을 집어넣었다. 이제금 생각해보니, 그 펌프도 요상한 물건이었다는 것을. 여성의 질(窒)처럼 생겨먹은 실린더, ‘헛김’이 새지 않도록 그 실린더벽을 꽉 채우는 피스톤, 그리고 그 피스톤의 왕복운동.

       ‘아, 그러고 보니, 그 피스톤의 테두리도 고무로 되어 있었어!’

       자전기 튜브의 ‘펑크 때우기’만은 훨씬 뒤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에야 익혔다. 우선, ‘자전거 펌프’로 바람을 넣어 세숫대야의 물에다 담갔을 때에 ‘뽀록뽀록’ 공기방울이 생기면 그 자리가 펑크. 물걸레로 튜브를 깨끗하게 닦은 다음, 그 자리를 사포(砂布)로 닦고, 또 다른 튜브 조각을 가위로 동그랗게 잘라, 본드를 바르고... 그렇게 하는 것이 ‘펑크 때우기’가 아니었던가, 당시 대다수 친구들도 또 다른 ‘펑크 때우는(?)’ 일에는 선수들이었다.

       자, 내 신실한 애독자들이시여! 이제 가만히 눈감고 고무와 관련된 옛 추억에 한 번씩 잠겨봄이 어떠할까?

     

     

    (이 연재물 다음 작품을 기대하시기 바람.)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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