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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작가 윤근택이가 신작 및 기발표작 모아두는 곳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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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난 없이 참 평화 없어라'
    수필/신작 2017. 3. 11. 12:46

                               ‘고난 없이 참 평화 없어라’

     

     

     

                                                                                                                    윤근택(수필가)

     

     

     

       승용차의 시동을 걸면, 곧바로 ‘FM' 라디오에서 클래식이 흐른다. 나는 클래식 음악 듣기가 생활화 되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번엔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 이탈리아, 1678~1741)’가 흐르고 있다. 이번 곡은 <고난 없이 참 평화 없어라>다. ‘칠삭둥이’, ‘<사계(四季)> 작곡가’, ‘빨강머리 사제(司祭) 작곡가’ 등으로 알려진 그. 그는 살아생전 몸이 허약해서 미사(missa)를 집전(執典)한 적은 없으나, ‘사제’였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더라도, 내 신실한 애독자 여러분께서도 그 곡이 성음악(聖音樂)임을 눈치채실 것이다. 맞다. <고난 없이 참 평화 없어라>는 종교음악이되, ‘모데트(Motet)’다. 이 모데트는 가사가 붙은 여러 개의 성부들이 조화를 이룬 다성 합창곡으로,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 카톨릭 종교 음악으로 무반주의 성악곡을 일컫는다.

       지금 흐르는 비발디의 대표적 모데트 노랫말은 이렇게 되어 있다.

     

     

     

        고난 없이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밝고 정의롭도다

        당신 안에 달콤한 예수 있도다

        고뇌와 아픔 가운데서도,

        평온한 마음, 오직 소망과 ​순결한 사랑으로 살았도다

     

     

     

       라디오에서 그의 모데트는 끝났으나, 여운이 남는다. 이어서, ‘고난 없이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첫 소절이 너무도 가슴에 와 닿는다. 그 말이 종교적이며 철학적이며 경험적이라는 것을.

       문득, 60여년 내가 살아오는 동안 겪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겹쳐진다. 다들 그러했고, 다들 그러하겠지만, 나도 숱한 고비를 겪었다. 굳이 낱낱이 밝힐 까닭도 없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정복의 왕, 다윗의 손가락지에다 세공(細工)이 새겨줬다던 그 명문(名文), ‘그 또한 지나가리라(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가 여축없이, 깔축없이 맞아떨어졌다. 실은, 뒤늦게나마 우리 네 가족 즉 나, 아내, 큰딸, 작은딸이 모두 거의 동시에 세례를 받고 천주교인이 된 이유도 어떤 종류의 고난 때문이었다. 해서, 요즘은 주님의 가없는 은총으로 참 평화를 찾아가고 있다.

       사제 서품까지 받았던 비발디. 그는 선천적으로 몸이 허약했기에 미사 집전 대신 <고난 없이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작곡했을는지 모른다. 그 노랫말은, ‘고생 끝에 낙이 온다.’도 겹쳐진다. 또한, ‘위기(危機)’라는 어휘의 뜻을 새삼 새기게 한다. ‘危險’과 ‘機會’라는 완전 반대개념의 낱말이 합쳐진 말이며, ‘위험은 곧 기회’라는 등식(等式)이 통하는 말이 아닌가.

       유년시절, 땅바닥에 넘어져 무릎을 깬 적이 많았다. 마구 앙앙대면, 어른들은 왠일로 흐뭇해하며 말하곤 했다.

       “착하지, 우리 아기! 무릎을 깨었으니 앞으로 쑥쑥 자라겠는 걸!”

        그 뜻을 몰라 했으나, 세월이 흐를수록, 아니 환갑이 되어갈 즈음에야 그 깊은 의미를 알게 되었으니... .

       ‘만고(萬古)의 진리’는 아주 간단하다고들 했다.

        내가 매양 편편(編編) 소개하는 내 가정사(家庭史)에도 그러한 진리가 숨어 있다. 내 양친께서는 살아생전 슬하에 나를 포함해서 10남매를 두었고, 돈 쓰임이 많았으며, 가난한 농부 부처(夫妻)였다. 내리 열 번의 자녀들 혼례(婚禮)를 치렀다. 돈 쓰임이 많자, 번번이 마굿간에서 일소를 내다 팔아서 결혼비용으로 충당했다. 그러고는 남의 집으로부터 ‘풀밟히기소’ 즉 ‘배내기송아지’를 얻어다 멕이곤 하였다. 참, ‘풀밟히기’는 농부의 애환이 서린 우리 쪽 사투리다. ‘마굿간을 비워놓느니, 남의 집 배내기송아지라도 빌려다가 깔개풀을 밟혀 두엄으로 삼겠다’는 뜻이 담겨 있으니... . 아무튼, 내 어머니는 그 어려움에도 언제고 의연했다.

       “야들아, 이번에도 이 에미는 (잔칫날) 하루해만 잘 넘기면 된대이. 남들이 우리 살림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

       그 말은, 요란스레 잔치를 하지 않고 격식만 차리겠다는 뜻이었다. 이제금 생각해보니, 위에서 이미 언급한 다윗왕의 반지의 글귀, ‘그 또한 지나가리라(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거기에 더해, 내 어머니는 당신 말마따나 ‘아랫돌 빼서 위에 얹고, 윗돌 빼서 아랫돌로 삼곤’ 했으니... .

       가수 구창모의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도 그 진리 속에 깃들여져 있다. 천주교 교리를 익히는 동안 자주자주 듣던 말도 다름 아니다. 내가 믿는 주님께서는, 우리한테 견딜 만큼의 고통을 주신다고 하였으나, 처음에는 기연가미연가(其然―未然―) 했다. 그러나 겪어본즉, 옳았다.

       자, 두서없는 나의 글을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감히 말하건대, 우리네 삶은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Aleksandr (Sergeyevich) Pushkin,1799~1837)’이 노래했던 대로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가 맞다. 참말로, 우리네 삶은 비발디의 모데트 ‘고난 없이 참 평화 없어라.’에서 한 치 오차가 없는 듯하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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