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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Grease)'에 관해
    수필/신작 2017. 4. 2. 08:47

                                ‘그리스(Grease)'에 관해

                                                                                                                                                  

     

                                                                                                                         윤근택(수필가)

       ‘그리스(Greece)’가 아니다. 유럽 남동부 발칸반도 남단에 위치하며, 헬레니즘과 그리스정교를 꽃피웠던 나라, ‘그리스’가 아니다. ‘올리비아 뉴튼-존Olivia Newton-John)’이 출연하여 노래까지 곁들여 부른 1978년작 뮤지컬 영화 , ‘그리스(Grease)’도 아니다. 그 뮤지컬의 제목 ‘그리스’는 머리에 바르는 기름인 ‘포마드(Pomade)’를 뜻한다. 내가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그리스’는, 흔히들 ‘구리스’ 혹은 ‘그리이스’로 부르는 물질이다. 내 어릴 적에는 ‘콩기름’이라고도 불렀던 물질이기도 하다.

    인터넷 ‘두산백과’는 이렇게 적고 있다.

         

       <반고체 상태로 사용하는 윤활유인데, 그 특징은 운동 중에는 액체상태를 나타내고, 정지하면 유동성을 상실하여 반고체가 된다. 주로 베어링에 대한 회전축의 하중이 큰 마찰 부분, 급유하기 어려운 부분 등에 사용한다.

    (중략)

       용도와 성분 및 성질에 따라 여러 가지 제품이 있는데, 대부분 이 액체의 광유계(鑛油系) 윤활유에 금속비누와 소량의 물을 가하여 콜로이드(colloid) 상태로 혼합하여 제조한 것으로, 버터 모양으로 되어 있다. 기계의 운동에 의하여 마찰 변형을 받거나 온도가 상승하면 속에 있는 기름이 겉으로 배어 나오는 작용이 일어난다. 베어링에 대한 회전축의 하중이 큰 마찰 부분, 급유하기 어려운 부분 등에 사용한다. 그리스컵에 넣어 한 번 급유해 두면 장시간 사용할 수 있다. 광유 대신 실리콘유 등의 합성유도 사용되며, 금속비누에는 칼슘 ·알루미늄 ·리튬 등의 지방산염이 많이 사용된다. >

        이상은, [네이버 지식백과] 그리스 [grease] (두산백과)에서 따옴.

       60여년 살아오는 동안, 나는 내 이웃들과 마찬가지로 그 윤활유를 다양하게, 유용하게 써 왔다. 특히나 농사를 하는 관계로, 전동분무기며 예초기며 관리기며 경운기며 온갖 농기계의 요소요소에 사용전점검시에는 반드시 그리스를 주입해 왔다. 그러한 경험을 아주 유용하게 활용함으로써 기술력을(?) 관계자들로부터 인정받은 일이 있었으니... .

        어느 아파트 전기실에 때늦게, 사무직 출신이었던 나한테는 썩 어울리지도 않으면서 ‘전기주임’으로 재취업해 있는 나. 일전, 새벽녘에 106동 맨 꼭대기층에 위치한 1701호 세대로부터 민원을 접수받았다.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옥상에서 ‘빽빽빽’ 기계돌아가는 소리가 들려 밤마다 잠을 설친다는 거 아닌가. 해서, 짚이는 게 있어, 그리스통과 긴 나무꼬챙이와 긴 드라이버를 들고 부리나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그 댁의 초인종을 눌러, 곧바로 고칠 테니 일단 안심하라고 했다. 그러고는 옥상문을 따고 ‘벤츄레이터(ventilator)’를 하나하나 점검해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그 가운데 한 놈이 말썽을 부려 기분 나쁠 만치 금속음을 내고 있었다. 회전축 뚜껑을 열어 듬뿍 그리스를 바른 다음, 손으로 여러 차례 녀석이 어지러울 지경으로 ‘뺑뺑이’를 돌려 보았다. 잡음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참, ‘벤츄레이터’ 소개를 깜박 빠뜨릴 뻔 했다. ‘벤츄레이터’란, ‘ 동력 지붕 환풍기’ 일컫는다. 다시 말해, 경량(輕量)의 날개를 수십 개 촘촘 지닌 ‘공기 흡출 팔랑개비’를 일컫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생겨먹은 ‘벤츄레이터’야말로 고전적(古典的)이다. 혹은 ‘무동력 공기 흡출기’의 전범(典範) 내지 대명사 같은데... . 나아가서, 그 흡출배기 팔랑개비의 최초 고안자는, ‘베르누이의 정리 (Bernoulli's theorem)’까지를 제대로 익혀, ‘유체(流體)와 압력 관계’에 의한 효율적 공기배출을 설계했던 것 같은데... .

        사실 이 아파트 옥상마다에 여러 개 설치된 그 ‘벤츄레이터’한테는 웃지 못 할 사정이 있었다. 지난 1월1일자로 이곳에 취업해, 전임자(前任者)들과 함께 인수인계를 겸한 순회점검을 한 바 있다. 그 때 벤츄레이터 가운데에서 제법 많은 수효의 그것들이 마치 강아지한테 목줄을 달 듯 묶어두고 있었다는 거 아닌가. 영문을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축(軸)에서 소리가 시끄럽게 나자, 맨 윗층에 사는 세대에서 민원을 제기했을 테고, 전기실 근무자들은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그렇게 묶어댔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하면 팔랑개비가 돌아가지 않고 멈춰서서 공기 배출 효율이 현저히 떨어질 게 뻔한데... . 어디 그뿐이던가. 아예 팔랑개비 형태의 벤츄레이터를 떼 내고, 삼층 지붕 형태의 벤츄레이터를 단 곳도 많았다. 마치 찐빵을 찔 때 쓰는 찜통 같기도 하고 세 개의 포개놓은 삿갓 같기도 한 그것들. 공기 배출 능력이 팔랑개비 형태보다 현저히 떨어질 듯한 그것들. 단지, 관리직원의 편의 위주로 설치했다는 것을.

       최근 관리소장과 과장도 근원적으로 민원을 없애자며 그러한 삿갓 모양의 배출기를 10개 사왔다. 이에, 크게 내색 않고 그것들로써 문제 있다는 팔랑개비를 바꾸어 달기는 했다. 그러나 끝까지 침묵하는 것은 직무유기이며 비굴함이다. ‘개선(改善)’이 자칫 ‘개악(改惡)’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해서, 나직히 보고를 드렸다.

       “소장님, 이젠 생돈 들여 벤츄레이터 더는 사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제가 책임질 게요. 앞으로 우리가 함께 이곳에서 근무하게 될 날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나, 그리스를 축에 바르니, 한방에 문제가 해결되던 걸요. 제가 벌써 몇 개 벤츄레이터에 시험적용도 해 봤던 걸요.”

        그 계기로, 소장도 그리스의 위력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아울러, 나의 하찮은(?) 기술력을 치켜세우기까지 하였다. 이처럼 뭣이든 알면 일이 한결 수월해진다. 경험보다 좋은 스승은 없는 법. 그리스가 나를 으쓱해 보이도록 도와주었다. 이곳에 근무하는 동안, 더 이상 벤츄레이터를 바꾸어 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참말로, 그 높고 위태로운 17층 옥상까지 벤츄레이터를 바꾸어 달기 위해 오를 일이 더는 없을 것이다. 대신, 그 자투리 시간에, 전기실에서 대기하며 아직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뮤지컬 영화 ‘Grease'를 즐겨야겠다. 그 잘 생긴 배우 ’존 트라볼타( John Travolta)‘의 연기도 보고, ’올리비아 뉴튼-존’의 작품 속 노래도 다시 들어봐야겠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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