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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바치
윤근택(수필가)
겨우내 외형이 구두인 털신을 신고 지냈다. 이 털신은 작은딸아이가, 2년 동안 캄보디아로 한국어 강사 봉사활동 떠나면서, 이 애비의 재취업 선물로 사준 신발이었다. 녀석은 ‘발로 뛰라’는 소망을 담아 그렇게 사주었다. 봄이 되어, 신발을 갈아신고자 하나, 막상 신발장에는 마땅한 신발이 없다. 물론 아내는 의미로운 그 신발을 기념품으로 잘 닦아 간수할 것이다. 사실 신발장에는 아내와 두 딸아이의 신발은 수두룩하지만... . 해서, 벗어뒀던 한 켤레의 구두를 다시 꺼내 신어 본다. 겉은 멀쩡해도 뒤축이 너덜거린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그 동안 이 구두를 팽개치다시피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게다. 곧 아내와 큰딸아이는 또다시 의논하여 265mm 신발을 몰래 사 두겠지만, 당분간은 이 뒤축 덜렁대는 구두를 신고 지낼 요량이다.
어느 아파트의 ‘전기,영선(營繕)주임’으로 지내는 나. 그 동안 나름대로 기술이 축적되었으니, 이 말썽스런(?) 구두도 간단히 수선할 수 있을 듯하다. 이른바, ‘직결피스’를 전동 드라이버로 요소요소에 박으면 될 것이다. 그러기에 앞서, 방수(防水)와 접착강화를 위해 본드를 바르는 등의 조치를 취하면 될 터이고. 이리저리 해서 구두 수선은 끝났다. 심지어 ‘투명색 방수 실리콘’까지 발라 수선을 마감했다. 내가 생각해 보아도 기특한 일.
지금은 밤이고, 다시 나의 야간 정위치인 전기실 책상맡. 구두를 벗고 실내화로 막 갈아신으려는데... 문득, 이젠 잊혀가는 직업, ‘갖바치’가 떠오를 게 뭐람? 갖바치, ‘구두를 만드는 사람’을 일컫는다. 사실 갖바치도 양복사, 이용사, 대장장이 등과 마찬가지로 우리 곁에서 시나브로 사라져간 직업인이다. 물론 전통신발을 만드는 명장(明匠)은 어디엔가 있겠지만... .
내 생각은 ‘어느새 옛사람들의 신발은 어땠을까?’에 이어진다. 요즘은 아주 다양하고 질 좋은 신발이 나와서, 자기 취향에 맞는 신발을, 때와 장소에 따라 골라 신게 되지만... . 인터넷을 통해 살펴본즉,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어, 일단은 그대로 옮겨와 본다.
<<한국인의 신발, 화혜>>는 우리 전통 신발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책이다. 왕실의 최상위 권력을 표상하는 의례용 신이었던 석, 관료가 공복에 갖춰 신던 화, 반가의 남녀가 일상에서 신던 혜, 서민의 발을 대신했던 짚신, 궂은 날에 요긴하게 신었던 나막신, 서민에게도 특별히 허용되었던 혼례신, 왕실 잔치의 격에 맞춘 무희들의 비두리와 무우리, 그리고 망자를 위한 습신이 그것이다. (이하 생략)
위에 소개된 신발을 낱낱이 살펴본다.
석(舃, 潟) : ‘이(履’)의 일종으로 나무나 가죽을 여러 겹 대어 습기가 오르는 것을 막았다. 낙랑고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우리 나라에는 삼국시대에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화(靴) : 신목이 붙어 있는 신발로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전통신이며 기마용이다.
혜(鞋) : 운두가 낮은 단요형(短靿形)의 신. 코고무신류.
무우리 :조선 시대, 궁중 무용인 망선문(望仙門)을 출 때 신던 여자 신의 하나.
습신(襲-) : 염습(殮襲)할 때 망자(亡者)한테 신기는 종이로 만든 신.
위에서 살펴본 대로, 우리 조상들도 일찍부터 신발을 신었으되, 신분에 따라 격식에 따라 다양한 신발을 심었음을.
이제 내 생각은 특이한 신발에 가 닿는다. 내 아버지는 짚신도 잘 삼았다. 당신이 나무하러 갈 적에 신을 짚신, 이웃 초상집 상제(喪制)들이 신을 짚신, 그리고 일소[役牛] 발굽에 끼울 특이한 짚신 등. 특히, 우리집 소가 신작로에서 달구지를 끌고 갈 적에 그 발굽에 독특한 짚신을 신기곤 하였던 기억. 아버지야말로 갖바치였던 셈이다. 소의 발굽에 끼우도록 만든 그 짚신은 ‘편자’ 대용품(代用品)이었다는 게 새삼스럽다. 어른들은 편자를 두고, ‘대갈’, ‘따갈’, ‘때갈’ 등으로 부르곤 하였다. 그 본디말은 ‘대갈마치[蹄鐵]’란 일본어임을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蹄’는 발굽을 일컫는다. 독자 여러분께 덤으로 알려드리겠는데, 축산농가를 간헐적으로 괴롭히는 ‘구제역(口蹄疫)’도, ‘발굽[蹄]가진 동물의 발굽과 입에 생기는 역병’이란 뜻이다. 또, ‘-鐵’은 대갈마치 즉 편자의 재료로는 주로 철제를 이용해 왔음을 나타낸다.
이제 내 생각의 사슬은, 인류가 동물한테까지 신발을 신길 생각을, 아니 ‘蹄鐵[편자]’을 박을 생각을 했을까에까지 닿고 만다. 친절하기 이를 데 없으며 모르는 거라고는 없는 네이버 박사(?) . 그는 아래와 같이 전한다.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상을 바꾼 발명품 1001
로마인들이 '히포샌들[horseshoe]'을 발명하다.
강력한 여러 제국의 역사에서 말은 핵심 역할을 해왔으며, 그 활용도는 편자의 발명으로 더욱 증대되었다. 말이 일상적인 교통수단이자 가축이었던 시대에 편자는 딱딱하거나 거친 바닥에 말발굽이 닳는 것을 보호함으로써 장거리 여행을 가능케 했다. 또한 군사 작전의 일부를 이루는 기병대에 사용되면서 효율성을 증대시켰다.
편자의 정확한 발명 시기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로마의 시인 카툴루스가 기원전 1세기에 노새가 신발을 잃어버렸다고 언급한 기록이 있다. 알프스 이북의 로마 지역에서 출토된 증거들은 서기 100년경 오늘날의 독일 지역에서 온 말들이 최초로 편자를 정식으로 사용했음을 암시한다.
단단한 바닥을 말의 발굽에 대고 끈으로 묶는 편자의 형태는 로마인들의 '히포샌들'에서 오늘날 사용되는 U자형의 금속판으로 점차 개량되었다. 철제 편자를 언급한 최초의 기록은 910년의 것이다. 초기 편자의 무게와 모양은 말이 사용되는 지역의 기후와 토양, 출처에 따라 다양하다. 대장장이와 편자공들은 못을 사용하여 편자를 만들고 부착했으며, 그들의 기술은 중세 시대에 야금학이 발전하는 데 일조했다. 오늘날 편자는 강철과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말의 용도에 따라 구리와 티타늄, 고무, 혹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편자는 거의 유사한 시기에 여러 나라에서 발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이상은, 크리스터퍼 브로프,<<사이언티픽 아메리칸>>, 1891년에서 따옴.
말[馬]이 중시되던 시절에 U꼴의 편자가 얼마나 요긴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사실 나는 그 U꼴의 편자를 색달리 사용한 기억이 있다. 방공포인 발칸포 사수이며 육군병장 말년차였던 나. 저 충남 보령 대천해수욕장 근처 ‘방공포 사격연습장’에 수개월째 파견근무를 간 적 있다. 우리는 미군들이 쓰다가 버리고 떠난 막사(幕舍)를 썼다. 우리는 그들이 남겨둔 ‘U꼴의 편자’로, ‘말굽놀이’라고 칭하며 날마다 편을 갈라 게임을 즐기곤 하였다. 저만치 모래밭에 작대기를 세워두고 그 ‘U꼴의 편자’를 던져 걸어대던 게임. 그 편자가 말[馬]이 아닌 사병들테는 고작 그러한 게임 물건에 지나지 않았으니... . 그보다 더한 경우도 있다. ‘개 발에 편자.’라는 우리의 속담이 바로 그것이다. 옷차림이나 지닌 물건 따위가 제격에 맞지 아니 하여 어울리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그 말. 나는 그 편자’가 ‘징(hobnail)' 없이는 무용지물이었다는 것도 기억해낸다. 징이란, 내가 낮에 구두뒤축을 수선할 때에 박았던 ’직결피스‘와도 통하는 물건. 말굽ㆍ쇠굽 따위에 박는, 대가리가 크고 넓으며 길이가 짧은 쇠못을 일컫는다.
이제 내 이야기는 종점에 다다른다. 편자가 되었든, ‘대갈마치’가 되었든, 히포샌들이 되었든, horseshoe가 되었든, 징이 되었든 그것은 주로 쇠[鐵]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유의한다. 자연스레, ‘구두쇠’로 내 생각 이어진다. 참말로, 그것은 구두쇠였다. 실제로 우리가 신는 구두의 뒤축은 신축성이 좋은 합성고무 따위로 되어 있다. 간혹 얇은 철판으로 덧댄 것도 있기는 하지만... . 안전화의 경우는 바닥과 신발코는 철판으로 되어 있다. 거기 들어 있는 그 철판 즉 ‘구두쇠’로 하여 안전화야말로 진짜 쇠구두인 셈인데... . 살아생전 내 어머니는 종종 마을의 어느 노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우리한테 일러주곤 하였다.
“야들아, 저 영감탱이 아주 ‘쇠구두’대이(다)!”
내 어머니의 언어감각은 대단했다. ‘구두쇠’ 즉, ‘구두 뒤축에 박힌 쇠’는 닳기라도 하겠지만, 아예 ‘쇠구두’는 말 그대로 ‘쇠로 만든 구두’이니 닳지도 않을 터이니, 후자(後者)가 더 지독한 수전노 내지 노랭이인 것이다. 실제로, 천하의 구두쇠를 ’스크루지(Scrooge)'로 칭한다. 1842년 발표된 찰스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롤’에 나오는 주인공 스크루지. 우리는 국민학교 국어교과서에서 그 소설을 읽었지 않은가. 어쨌든, 수전노를 일컫는 ‘구두쇠’ 내지 ‘쇠구두’는 닳지도 않는다. 그리되면 그 많던 ‘갖바치’는 무얼 먹고 사냐고? 그러한 점에서, 내가 낮에 구두를 내 나름대로 수선한 게 잘한 짓인지 잘못한 짓인지조차 마구 헷갈린다. 가뜩이나 그 많던 갖바치가 사라져 간 마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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